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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137화 (137/242)

던전 사냥꾼 137화

여덟 차례, 추적자들을 뿌리치고 쉴 만한 장소를 찾았다. 자연적으로 생성된 동굴. 따로 주인은 없는 것 같았다.

확인해 본 결과 양쪽이 모두 뚫려 있어서 만에 하나의 사태에 몸을 빼내기 용이할 듯싶었다.

나는 동굴의 벽 쪽에 오스웬을 눕혔다. 벌써 3일이 더 지났지만 오스웬은 정신을 잃을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조금 쉬어야겠다.’

한계의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한 번 더 추적자가 붙으면 지금 몸 상태로는 어렵다.

적이 오면 알 수 있도록 자잘한 트랩을 입구 쪽에 깔아 두었다. 돌멩이와 넝쿨을 이어서, 누군가가 들어오거든 미세한 소리를 내는 장치였다.

기본적인 방비에 불과했지만 아예 없는 것보단 낫다. 이 미묘한 차이가 생사를 가를 수도 있었다. 적어도 전생에선 그 덕에 몇 번 살아난 적이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 즉시 잠에 빠져들었다.

5일째.

더 이상 추격자는 없었다.

하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주변을 정찰하며 조금이라도 지리를 파악해 두려 애썼다.

그렇게 정찰을 끝내고 동굴 안으로 돌아오자 오스웬이 몸을 뒤트는 중이었다.

“크으으…….”

고통이라도 느끼는 건가?

언데드는 기본적으로 무감각하다. 완전히 거세된 것은 아니지만 모든 감각이 아주 둔했다. 고통도 마찬가지였다.

“제, 젤림…… 젤림을…….”

오스웬이 미약하게나마 눈을 떴다. 그러곤 내게 손을 뻗었다.

몸을 부르르 떨며 갈구하는 것이, 마치 금단 증상과 같았다.

언데드들이 이 세계에서 몸을 유지하려면 젤림의 나뭇가지가 필요하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젤림의 나뭇가지 또한 구하는 게 불가능했다.

“남부 사령관 오스웬. 정신이 드나?”

“나는…… 남부 사령관이…… 크아악!”

“정신이 오락가락 한가 보군.”

분노에 손을 얹은 채 가만히 지켜봤다. 허나 오스웬은 몇 번 발작을 하더니 다시 정신을 잃었다.

이후로 오스웬은 몇 번이나 깨어났다가 기절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제정신이 아니었다. 헛소리를 늘어놓는 게 대부분이었다. 때로는 아이가 됐다가, 때로는 연극가가 됐다가, 때로는 남부 사령관이 됐다가…… 또 때로는 황혼의 대장장이가 되었다.

“7대 죄악은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되는 것이다. 당장 없애야만 해!”

“나락 군주! 나를, 나를 조종하려 들지 마라!”

이런 식으로, 무심결에 내뱉는 오스웬의 외침은 몇 가지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

‘정신 분열, 혹은 다중 인격.’

오스웬의 안에는 무수히 많은 오스웬이 있다.

남부 사령관의 자아가 가장 강렬하여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가, 사령관의 자아가 약해지자 여러 자아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튀어나오는 중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매개체는.

‘장갑.’

인격이 변할 때마다 장갑의 마력도 변했다.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대화가 안 된다. 깨어나고 기절하기를 반복했다. 모든 것이 내 심증으로 돌아갈 따름이다.

추이를 지켜보면 좋겠지만 여기서 밍기적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지저 세계의 일도 중요하나 내게 제일 중요한 건 던전의 상황이다. 마왕이 되는 것이었다. 지저 세계의 주인? 나락 군주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나는 이미 주인이었다.

“팔은…… 두 개만 있으면 충분하지.”

여섯 개의 팔.

그중 세 개가 이미 잘려 나갔다.

하나 더 사라진다고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것이다.

나는 분노를 들었다.

장갑을 착용한 팔을 마저 날려 버린 뒤 일어날 변화를 봐야겠다.

촤학!

망설임은 없었다.

단박에 팔을 나눴다.

그와 동시에.

“끄아아아악!”

기절한 오스웬이 비명을 내질렀다.

흉흉한 안광을 흩뿌리며 오스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내가 들고 있는 자신의 팔을 바라보며 거친 입김을 뿜었다.

“그 장갑은…… 내 것이다!”

팔보다 장갑을 우선시한다. 정상적인 반응과는 거리가 멀었다.

콰릉!

미쳤다. 물불 안 가리고 마구잡이로 달려든다.

누구의 자아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남부 사령관도 아니었고, 황혼의 대장장이도 아니었다.

처음 보는 인격.

‘어찌할까.’

잠시 고민했다.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죽이거나, 기절시키고 추이를 보는 것.

마음은 전자로 기울었다.

오스웬을 죽이면 팔에 고정된 장갑이 빠질 것도 같았다. 귀속된 상태라도 당사자를 죽이면 귀속 해제가 되니 타당한 결론이다.

‘어쩔 수 없지.’

남부 사령관이 나오길 바랐다. 그럼 말이라도 섞어 볼 수 있었을 테니까. 그가 가진 정보를 가지고 상황을 타개해 볼 건더기라도 구할 작정이었지만 이 상태로는 답이 없다.

분노를 든 그대로 황제의 검을 꺼냈다.

그리고 그 순간.

흉흉한 안광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 검은……?”

곧바로 눈치챘다.

새로운 인격은 황제의 검을 알고 있다.

적의가 사라졌다.

‘막시움의 때와 비슷하군.’

그렇다면 아주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심장 주변에 남은 천둥새의 피를 전부 손등으로 지워 냈다. 이후 물었다.

“너는 누구냐?”

“나락 군주시여! 저, 저를 잊으셨습니까? 오스웬의 정신을 오염시키고자 저를 직접 이놈의 안에다 넣지 않으셨습니까?”

“기억이 안 난다.”

“괘, 괜찮습니다. 나락 군주님은 위대한 분!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진정한 신위를 얻으시고……!”

털썩!

오스웬의 탈을 쓴 녀석이 무릎을 꿇었다.

“이제 지저 세계는 안정 될 것입니다. 이곳의 창조주가 되시어 저희를 이끄소서!”

오스웬의 자아가 분열된 게 나락 군주의 소행이라는 걸 알았다. 그 외에 그다지 영양가 있는 정보는 없을 것 같았다.

“오스웬의 진짜 정신은 어디에 있나?”

“나락 군주님의 명령대로 갈가리 찢어 놨습니다. 진실된 오스웬은 이제 없는 것과 같지요. 비록 신체는 엉망이지만 금세 회복하여 나락 군주님의 충실한 개가 되어 줄 것입니다.”

아니다. 오스웬의 정신은 남아 있다. 그의 외침을 수없이 들었다.

‘이놈도 잘 모르는군.’

정신을 분열시킨 것 외에 힘은 없는 듯싶었다. 자아들이 약해진 틈을 타서 잠시 육체를 지배한 게 전부였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이러면 굳이 정체 모를 놈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오스웬의 자아들을 합치고 본래대로 복구할 방법은 없는가?”

“왜…… 아아, 분명 이유가 있으시겠지요. 예,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장갑의 저주를 풀고 다른 자아를 억누르면 됩니다. 오스웬의 자아가 표면 위로 올라오고 합쳐질 때까지 말입니다.”

철석같이 내가 나락 군주 본인임을 믿고 있었다. 알아서 오해를 해 준다는데 굳이 진실을 밝힐 필요는 없었다.

“저주를 푸는 방법은?”

“저주를 풀 생각이십니까? 제가 저주를 걸기는 했습니다만, 너무 오래되어 이미 한 몸처럼 되어 있습니다.”

쉽지 않다는 말이다.

잠깐 턱을 쓸었다.

‘저주는 저주를 건 주체를 제거하면 풀리게 되어 있다.’

심지어 그 주체도 알아냈다.

나는 오스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 모습으로 서 있을 것이지? 괘씸하기 이를 데 없다.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라.”

“아…… 아아! 기, 기다려 주십시오. 어찌 이런 괘씸한 짓을!”

곧이어 힘을 잃은 것처럼 오스웬이 바닥에 누웠다. 그러자 오스웬의 머리 위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는 이내 모양을 갖췄고…… 쉐이드의 형상을 갖췄다. 보통의 쉐이드보다 크기가 세 배는 컸다.

“이게 너의 본모습인가?”

“그렇습니다, 나의 군주시여!”

“이름은?”

“오드토라고 합니다.”

“오드토, 수고했다.”

“……!”

촤악!

반 영체의 상태라도 고농도의 마력이 있다면 타격을 주는 게 가능하다.

마력을 회복하지 못했지만 나는 달빛의 마력을 검에 스미게 하는 데 성공한 상태였다.

황제의 검을 들고 내리쳤다.

“왜……?”

횅하니 비어 버린 가슴팍을 내려다보다가 오드토가 경악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치명타를 입어서 점차 모습이 흐려지고 있었다. 머지않아 완전히 소멸을 맞이하리라.

검을 집어넣고 입을 열었다.

“나는 나락 군주가 아니다. 랜달프 브뤼시엘이다.”

그의 심장을 지녔으나 내 주체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이었다. 랜달프 브뤼시엘이라는 마족이 나였다. 결코 오스웬처럼 분열되지는 아니할 것이었다.

차가운 눈빛이 오드토에게 향했다.

머지않아 오드토가 완전히 소멸했다.

툭!

장갑이 손에서 떨어졌다.

저주가 풀렸다는 증거였다.

‘이건…… 오만이군.’

장갑을 손에 착용하자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7대 죄악 중 하나.

오만.

이로써 나는 네 가지 죄악을 모았다.

분노, 나태, 탐욕, 오만.

착용한 즉시 육체가 강해진 것을 느꼈다.

“여, 여긴? 여긴 어디인가?”

때마침 오스웬이 눈을 떴다.

“랜달프? 전쟁은? 왜 나는 이런 곳에 있는 거지? 막달리…… 그래, 막달리는 어디 있는가!”

아직도 오락가락한 기색은 있었지만 나를 알아보는 걸로 보아 분명히 남부 사령관의 자아였다.

‘다른 자아를 억누를 방법.’

간단하다. 남부 사령관이 필사의 상처를 입자 다른 자아들이 떠올랐다.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깨어난 자아를 뭉개 버리면 언젠가 오스웬의 자아가 나타날 것이었다.

스릉!

“랜달프? 남부의 영웅이여. 어째서 검을…… 크아악!”

99번. 오스웬을 기절시키고 강제로 깨우길 반복한 횟수다. 그사이 몇 번 황혼의 대장장이로서의 자아가 깨어났지만 크게 혼란을 느끼고 기절한 것까지 합치면 백 번을 넘긴다.

다행히 그 이상으로 넘어가진 않았다. 마침내 조금은 안정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몇 번이나 말했을 텐데. 랜달프 브뤼시엘이다. 나는 반복하여 말하는 걸 싫어하니 앞으로 유의하도록.”

“기억이 마구 뒤엉켜 있습니다. 여러 인물들의 기억이 혼재되어 있어요. 하지만 저는 대장장이 오스웬입니다.”

남부 사령관이나 다른 인격은 모두 가짜라는 소리다. 오스웬의 진정한 정체는, 아이템에 나와 있었다시피 황혼의 대장장이였다.

“원래부터 둠 나이트였나?”

“아아…… 그러고 보니 몸도 바뀌어 버렸군요. 세상에…… 나락 군주, 그 잔인한 놈은 수천 년간 저를 가지고 논 겁니다. 절대로 찾지 못하는 균열 속에 7대 죄악을 버렸으니 그로서는 부아가 치밀었겠지요.”

균열이라. 어둠의 정령들은 균열을 다룰 줄 알았다. 어디서 구했나 싶었는데 균열 속에서 공짜로 건진 것이었다. 그것을 있는 대로 생색내며 팔았다.

오스웬이 고개를 돌렸다.

“제 기억이 이곳은 죽은 자의 세계이고, 랜달프 그대는 남부의 영웅이라 합니다. 그런데 그대는 살아 있지 않습니까?”

“맞다. 나는 생자다.”

“놀랍군요. 그 검도 왠지 눈에 익습니다. 분노와 황제의 검! 망토는…… 나태로군요. 황제의 검은 차치하고 나머지는 균열 속을 떠돌아야 할 물건들일진대, 어디서 찾으셨습니까?”

고민하였다. 있는 그대로 알려 줘도 괜찮을까?

황혼의 대장장이 오스웬. 그에게는 기대할 게 많다. 웬만해선 나를 따르게 하고 싶었다.

한데 숨겼다가 나중에 내가 나락 군주의 심장마저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때는 알려 줘도 늦다. 그럴 바엔 지금 알리는 편이 나을 수도 있었다.

조금 각색하여 나락 군주의 심장과 황제의 검을 얻게 된 경위를 알렸다.

이야기를 들으며 오스웬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해 갔다.

“아아, 그런 일이…….”

“믿을 수 있겠나?”

“믿지 않을 수도 없지요. 허, 나락 군주는 그럼 소멸했겠군요. 그의 심장은 랜달프 그대에게 귀속되었고…… 막시움마저 그대를 나락 군주로 착각한다. 일이 재밌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오스웬이 웃었다.

그간의 고통이 조금은 나았다는 듯이.

나락 군주는 오스웬에게 있어서 원수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오스웬, 여기서 어렴풋한 기억 따위를 찾고 있을 시간은 없다.”

설명은 이쯤이면 됐다.

오스웬의 자아 찾기에 시간을 너무 들였다.

이제는 움직일 차례였다.

“저는 남부 사령관이기도 했지요. 전쟁은 패배했으나, 그래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남부 사령관의 진짜 힘은 요새에 있지 않습니다.”

“그럼?”

“남부 사령관은 아무도 모르게 혼령 기병 2천여 기를 숨기고 있었습니다. 혼령 기병은 나락 군주에게만 반응하게 되어 있지만 그의 심장을 지닌 그대라면 능히 깨울 수 있을 겁니다. 그 힘을 앞세워 저와 그대의 무사함을 알린다면 남부의 남은 힘이 모두 집결하겠지요. 천하의 막달리라도 한쪽 날개를 잃은 지금이라면 무난하게 승리할 수 있습니다.”

혼령 기병.

어쩐지 귀에 익다.

‘황제의 군세를 사용하면 나타나는 기병들이로군.’

나도 설명만 읽었다.

혼령 기병이 무엇이고, 고작 2천여 기로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오스웬의 표정은 자신만만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혼령 기병을 깨우러 가겠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오스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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