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138화
* * *
3일 밤낮을 이동하자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산.
해골 병사들이 마지막에 묻히는 장소였다.
“남부 사령관은 이곳 지하에 비밀스러운 장소를 만들었습니다. 그곳에 혼령 기병을 숨겼어요. 왜일까요?”
오스웬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본인의 일 아닌가?”
“이해가 안 가서 그렇습니다. 대장장이인 저는 나락 군주를 증오합니다. 반면 남부 사령관인 저는 나락 군주 자체가 되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나타나지 않는 주인을 대신하여 그 자체가 되자고요.”
“시선의 차이가 있군.”
“예,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사령관들이 그러할 것입니다. 그 상태가 워낙 오래되어…… 진짜 나락 군주가 나타나도 쉬이 인정하지 못하겠지요.”
오스웬의 말에는 과장이 전혀 없었다. 남부 사령관일 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막시움이 특이한 건가?’
막시움, 그는 멀리서 내 심장 고동 소리만 듣고도 나락 군주의 것임을 알아차렸다. 심지어 전쟁터였음에도 모든 걸 뿌리치고 달려왔다.
반면 다른 사령관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엠페러 나이트, 황제의 최측근이었던 막시움이 특이한 것이라고 나는 가볍게 결론지었다.
“시간이라는 건 참 특이합니다. 모든 걸 변하게 만들지요. 그들의 절대적인 충성심도 결국 시간이란 마수에게 당했습니다. 마모되고 어그러지며 거짓 충성심이 되어 버린 겁니다. 그럼에도, 그들과 다르게 이 세계에는 전혀 변화가 없군요. 참으로 슬픈 장소입니다.”
오스웬은 시간이 날 때마다 이처럼 별거 아닌 감상을 늘어놓곤 하였다.
오랜 시간을 거쳐서 찾은 자아. 모든 게 변했고, 본인도 원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졌으니 입이 간지러울 법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슬픔이 스며들어 있었다.
“사령관들은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요? 나락 군주는 이 멈춰 버린 세계에서 무엇을 하고자 했을까요. 왜 그토록 ‘신’이란 존재에 집착했는지 대장장이였던 저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수호자의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고 들었다.”
“확실히 그는 마계의 침략에서 중간계를 지키던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황제이되 황제가 아닌, 그리하여 그림자 황제라고 불린 자. 말년에 미쳐 버려서 ‘나락 군주’라고도 불렸지요. 그런데 운명이라…….”
오스웬이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참으로 우습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남의 운명을 마구 꼬아 놓는 이중성이라니. 7대 죄악이 그의 손에 들어갔다면 세상은 종말을 맞이했을 겁니다.”
“7대 죄악은 네가 만든 것이 아닌가?”
“만들었습니다. 나락 군주가 가져다준 ‘신의 금속’을 가지고. 저도 무언가에 쓰인 듯이 몰두했지요. 그러나 완성이 되자 이해의 범주를 벗어난 물건이 되어 버렸습니다. 일곱 개 모두가 모이면 멸망이 오리라는 걸 깨닫고 균열에 버렸습니다만, 어둠의 정령들이 주운 모양이군요.”
씁쓸한 표정이었다.
산고 끝에 낳은 작품이 그러한 것이 될 줄은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한 듯싶었다.
“일곱 개를 모두 모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지?”
세 개를 모으자 스킬 ‘타락’이 생겼다. 일곱 개 모두를 모으면 무슨 효과가 있을지 심히 궁금하였다.
“저도 잘 모릅니다. 확실한 건, 착용한 자를 잡아먹고 멸망이 태어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도 충분히 도움을 받고 있을 것이니 더 이상 죄악을 모으는 건 그만두십시오.”
“생각해 보겠다.”
착용한 자를 잡아먹고 멸망이 태어난다, 라. 하지만 우연치 않게 7대 죄악이 만들어지진 않았을 터. 분명히 나락 군주는 그것을 만들고 착용할 생각을 했다.
‘나락 군주가 의도했다면 나도 안 될 것은 없다.’
모든 이를 뛰어넘는 게 나의 목표다. 나락 군주도 넓게 보아 그 범주 안에 있었다.
처음부터 나락 군주가 세운 계획이었다면 나 또한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혼령 기병은 이 안에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선 뼈의 무덤들. 그중 하나의 앞에 멈춰 선 오스웬이 뼈들을 치우고 바닥을 짚었다.
바닥의 먼지를 털어 내자 이상한 문양이 그려진 돌들이 눈에 띄었다.
쩌어억!
그 문양 위에 선 오스웬이 자신의 갈비뼈를 뜯었다. 괴이하기 짝이 없는 광경. 묵묵히 지켜보자 오스웬이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언데드라서 그런지 별로 아프지는 않습니다.”
“갈비뼈에 봉인과 반응하는 마력이 담겨 있군.”
“단번에 알아보시는군요. 흠…… 이 기억이 확실하다면 이쯤에서.”
문양 위에 갈비뼈를 올렸다. 곧이어 문양이 빛났고, 스르릉! 소리와 함께 바닥이 열렸다.
“아! 꿈속의 일을 실제로 겪는 느낌입니다. 이 기억은 진짜예요.”
“언제까지 떠들 셈이지?”
“흠흠, 죄송합니다. 이만 가 보지요.”
호들갑을 멈춘 오스웬이 남부 사령관의 기억을 토대로 나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지하는 넓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거대한 사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원의 안쪽.
해골임에도 은은한 은색의 빛을 띠는 기병 2천여 기가 늘어서 있었다.
그들이 탄 뼈로 이루어진 말조차도 주변으로 빛을 내뿜는 중이었다.
자체 발광.
딱 그 표현이 어울린다.
“이들의 열쇠가 되는 건 황제의 검입니다. 검에 피를 묻히고 이들에게 명하십시오.”
어렵지 않은 절차였다.
황제의 검을 들고 검지를 살짝 베었다. 피가 검을 타고 흐르자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깨어나라.”
쿠르릉!
땅이 흔들렸다.
휘이이이익!
신음과도 같은 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러든다.
이윽고 혼령 기병들의 공허한 눈에 빛이 서렸다.
척! 척!
허리를 펴고 정렬한다. 그 장엄한 모습에 나는 고개를 주억일 수밖에 없었다.
“훌륭하군.”
혼령 기병 2천여 기.
모두가 나를 따르며 움직인다.
다른 혼령 기병의 말에 얹어 탄 오스웬이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둘렀다.
“기억 속에서도 움직이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만, 정말 대단한 군세입니다. 나락 군주가 숨긴 최후이자 최고의 힘이 이들이라 하던데 과연 그럴 만합니다.”
연이은 감탄이었다.
나는 전방을 살피다가 말했다.
“남부의 중요 거점이 요새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기지들도 존재하겠지. 우리는 그곳을 친다.”
“좋은 계획입니다. 지금쯤이면 막달리가 모든 것을 먹어 치운 뒤겠지요. 위치는 제가 알고 있으니 이동 자체가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다른 기지들을 탈환하고 우리의 생존을 알린다면 남부의 남은 힘이 모여들 거고…….”
“여기서 가장 가까운 거점은 어디지?”
“북서 방향으로 이틀만 달리면 됩니다.”
“그럼 가자.”
말을 타고 달렸다.
2천 여의 혼령 기병이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내 뒤를 따랐다.
* * *
사령관 막달리를 모시는 서열 3위의 차우릉. 리치인 그는 남부의 전진기지 중 한 곳을 점령하고 병사들의 사기를 돋우는 중이었다.
젤림의 나뭇가지로 담근 술을 마시며 그가 성벽에 올랐다.
‘막달리 님은 최고 사령관이 될 것이다.’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령관이 흙으로 돌아간 일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남부 사령관을 없앴다.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이 바람은 막달리를 최고 사령관의 자리로 올려 줄 것이 자명했다.
‘잔혹한 사령관 막시움도, 다른 사령관들도 이제는 막달리 님을 함부로 여기진 못할 터.’
믿고 따르는 이가 잘나가자 차우릉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상상대로만 된다면 서열 3위인 자신은 막중한 자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
황제의 보물 창고를 열고…… 그곳의 보물 상당 부분을 하사받는다면 지금보다 강해지는 것도 꿈은 아니다.
“음?”
병사들의 인사를 받으며 성벽을 거닐 때였다.
저 멀리서 수많은, 영롱한 빛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건 뭔가?’
안력을 돋우었다. 집중하자 곧 이곳으로 달려오는 빛무리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습격이다! 전열을 가다듬어라!”
말을 탄 병사 2천여 기가 기지를 향해 돌격하고 있었다.
* * *
혼령 기병의 돌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혼령 기병 중에서도 유독 거대한 이가 성문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콰르르릉!
그대로 성문이 쪼개지며 입구가 훤히 드러났다. 그 사이를 혼령 기병들이 뚫고 들어갔다.
이후 학살이 시작됐다.
다른 단어는 필요가 없었다.
‘마음에 든다.’
단순하고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지만 나도 이런 식의 전투를 싫어하진 않는다.
검을 들며 주변을 살피다가, 성벽 위의 리치를 발견했다. 저놈이 이곳의 대장이라는 걸 순식간에 눈치채고 몸을 날렸다.
“네놈은 누구냐?”
리치가 말했다.
가볍게 웃고는 분노를 꺼내 들었다.
“남부의 영웅이라 하더군.”
1만의 병력을 고작 2천의 기병으로 몰살시켰다. 서열 3위의 차우릉도 접전 끝에 격살할 수 있었다. 오만의 도움도 있기는 했지만 나 자신의 순수한 강함이 어느덧 이 수준에 이른 것이다.
물론 피해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혼령 기병 300여 기가 흙으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대승이라 아니할 수 없다.
승리의 여운을 즐기고 있을 그때 오스웬이 다가와서 입을 열었다.
“소문을 퍼트리겠습니다. 남부 사령관과 남부의 영웅이 살아남아 역전을 노리고 있다고.”
“시간이 없다. 요새를 안정화시킨 즉시 막달리가 기지를 향해 달려올 것이다.”
“막달리는 확실한 싸움이 아니거든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몇 번 견제 형식으로 부대를 보내고 이쪽의 힘을 파악한 뒤 움직이겠지요.”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도록.”
오스웬이 곁을 벗어났다.
막달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최상이지만 전쟁이다. 전쟁의 양상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 그가 늦게 움직일 것이라고 믿고 준비하지 않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제프, 토리엄.’
성벽 위에서 저 먼 지평선을 바라봤다.
소문이 퍼진다.
살아 있거든, 이곳으로 올 것이다.
* * *
한 달.
그사이 5만에 달하는 전사들이 모였다.
남부 곳곳에 퍼져 있던, 오스웬을 따르던 이들이다.
그간 막달리는 간을 보는 식으로 수차례 병력을 보냈다. 그럴 때마다 무참하게 패배하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서…… 혼령 기병에 대한 이야기도 지저 세계 전체에 퍼지게 되었다.
하여, 나는 나 스스로를 밝히기로 했다.
황제의 검을 들고 나락 군주의 심장 소리를 사방에 울리며 막달리의 끝을 향해 달려 나갔다.
나락 군주가 쳐들어온다. 그러한 소문이 퍼졌는지 적군의 사기는 최악이었다.
“너는…… 나락 군주가 아니다!”
반면 막달리는 최후의 최후까지 인정하지 못했다.
발악하며 사령관으로서의 자존심을 내세웠다.
그의 속에서 나락 군주는 이미 ‘없는 자’였다. 불현듯 나타난다고 해도 믿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막달리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검, 나락 군주의 심장, 하물며 나락 군주만이 다룰 수 있는 혼령 기병이 움직였다. 막달리의 처벌을 위해 먼 길을 달려왔다.
아무리 부정해 봤자 본심은 초조했으리라.
“맞다. 나는 나락 군주가 아니다.”
나 역시 딱히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랜달프 브뤼시엘이다. 나락 군주 따위가 아니었다.
분노와 황제의 검을 높이 들었다.
막달리가 비명과 함께 흙으로 돌아갔고…… 마침내, 남부의 전쟁이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