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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139화 (139/242)

던전 사냥꾼 139화

요새를 수복하고 남부 사령관 오스웬이 본래의 자리를 되찾았다.

나에 대한 소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 지저 세계에 퍼져 나가는 중이었다.

나락 군주의 심장, 황제의 검을 든 자.

내가 진정으로 그들의 군주인지 궁금해하는 병사들이 많았다.

하지만 정식으로 공표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소문만 흘리는 게 전부다.

‘막시움, 어찌 나올 것이냐.’

막달리가 그랬듯이 사령관들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아예 믿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단순한 소문이라도 이름이 함께 개재된다면 움직임을 보일 자가 하나 있었다.

잔혹한 사령관 막시움.

그는 나를 안다. 황제의 검을 넘기며 후일을 기약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시스템을 벗어났고, 과연 그것을 막시움이 어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었다.

전과 같이 환호하며 달려올까?

아니면…… 적대할까?

물론 그 반응을 기다리고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요새를 안정화시킨 뒤 나는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바람이 분다.

한 번 탔으니 끝까지 가 보는 게 계획이었다.

‘내가 중심이 되겠다.’

모든 사령관의 동의가 있어야 보물 창고가 열린다.

나를 따르지 않는다면 철저하게 부술 뿐.

“따르라!”

작은 바람.

움직이자 날카로운 돌풍이 되었다.

남부를 벗어난 병력들이 대거 이동한다. 중부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며 파란을 예고했다.

사령관의 숫자는 총 열둘이었다. 그중 막달리가 흙으로 돌아갔고, 오스웬이 내 쪽에 있으니 남은 사령관은 열.

그들이 나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앞으로의 전개가 달라질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판단을 내리기 전에 단두대 앞에 세워 놓을 작정이었다.

억지로라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말이다.

남부의 세력, 막달리의 병사들을 어느 정도 흡수하고, 거기다가 혼령 기병마저 합세했다.

최고의 세력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약자부터 잡아먹는다.”

이 세계는 약육강식이었다.

나는 가장 약한 사령관부터 차근차근 잡아먹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들이 경악하며 준비하기 전에.

빠르게 세력을 부풀려서 그들이 주장하는 ‘정통성’이 모두 거짓임을 만천하에 밝히겠다.

‘주인을 문 개는 살아 있을 가치가 없지.’

창고를 벗어나 세력을 키운 사령관들을 비유하자면 이 이상 가는 게 없었다.

염치없게도 스스로가 황제가 되길 은연중 꿈꾸고 있다는 방증이 아닌가.

그나마 내게 붙어 열심히 꼬리를 흔들겠다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지만 아직까지는 접선해 온 이가 없었다.

이해는 한다.

돌연히 나락 군주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쉬이 믿지 못하는 것이겠지.

더불어서 진짜 나락 군주라면 막달리를 없앨 리 없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고뇌하고 방심하라. 시간이 지날수록 목줄은 더욱 강하게 너희의 목을 조이리라.’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해’만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칼을 갈았다. 칼은 매우 날카로웠고, 닿으면 즉사할 정도의 맹독을 품고 있었다.

무엇보다…… 전장에 설 때마다 내 무력은 놀라울 정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시간은, 온전히 나의 편이었다.

* * *

승승장구.

중부의 사령관들을 무릎 꿇리며 거침없이 나아갔다. 벌써 셋에 달하는 사령관이 흙으로 돌아갔다. 이로써 남은 사령관의 숫자는 여덟. 내가 처리해야 할 숫자는 일곱이었다.

세력도 빠르게 불어났다. 이 정도면 천하의 막시움과도 한판 벌일 수준이 되었다.

그러나 세 번째 사령관의 목을 따고 얼마 안 있어서 누군가가 내 요새에 찾아왔다.

그는…… 막시움이었다.

“황제 폐하! 진정 황제 폐하란 말입니까?”

“오랜만이군.”

털썩!

이곳은 내 막사 안이었다. 이곳에 있는 이라곤 나와 막시움뿐이었고, 그 외에는 누구도 들이지 않았다.

막시움은 나를 본 즉시 한쪽 무릎을 꿇었다.

“한참이나 늦은 점,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누군가가 황제 폐하를 사칭한다고 생각하여 움직이지 않았나이다. 누군가의 함정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황제 폐하께선 그곳에서 이룰 것이 있다고 하셨기에…….”

과연, 그런 이유였던가.

나는 고개를 주억였다.

“개의치 않는다.”

“허나 다른 사령관들을 압도하는 모습에서, 신 막시움은 황제 폐하의 재림을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배은망덕하기 그지없는 놈들이니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실 작정이셨겠지요!”

막시움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는 얕게 미소 지으며 그간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막시움,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고 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한 이유가 무엇이냐? 너도 보물 창고를 노리는 것인가?”

막시움이 고개를 휙! 들고는 냅다 저어 보였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황제 폐하를 알현한 뒤 쓰레기들을 정리하고자 움직이기 시작했을 따름입니다. 황제 폐하에 대한 충절이 변질되어 찌꺼기가 되어 버린 그들이 계속해서 남아 있거든, 황제 폐하께서 돌아오셨을 때 크나큰 실망을 하실 듯하여…….”

그가 움직이기 시작한 건 내가 원인이었다는 뜻이다. 이전까지 방관하고 있었던 죄가 있기는 했지만 나는 나락 군주가 아니었다. 굳이 막시움을 처벌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면 막시움이여. 나를 따라 변질된 사령관들을 단죄하겠는가?”

“당연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찾아왔나이다. 신 막시움과 30만의 병사들이 황제 폐하를 따를 것입니다.”

“좋다. 너만은 의심하지 않겠다.”

“감사합니다!”

막시움이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하온데…… 그곳에서의 일은 전부 성사하셨습니까?”

슬쩍 고개를 들고 말하자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답했다.

“이곳의 일을 처리하고 다시 돌아갈 것이다.”

“지저 세계를 이끄시는 건 나중이 되겠군요.”

살짝 실망한 기색이다. 그럴 법도 했다. 지저 세계에서 무수히 긴 시간을 그저 기다리기만 하지 않았나. 드디어 돌아왔다 싶었는데 돌아간다 하니 상심이 클 것이다.

“막시움, 확실한 건 없다. 그리고 기다린다고 하더라도 그 시간은 짧을 터.”

이미 그는 내가 기억상실에 걸렸다고 굳건하게 믿는 상태였다. 무슨 행동을 하던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보물 창고에 돌아갈 방법이 있다면 이곳으로 돌아오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곳과 던전 자체를 잇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런 가능성이 있으니 쉽게 말할 수는 없었다.

“신 막시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황제 폐하를 곁에서 보조하겠나이다.”

막시움이 모든 의심과 상심을 접었다.

앞으로 끊임없이 격전이 치러질 것을 감안하면 막시움의 태도는 올바르다 할 수 있었다.

이로써 막시움이 내게 합류했다.

단번에 전력이 두 배 이상 껑충 뛰었다.

더는 두려울 게 없었다.

따르지 않는 사령관들을 빠르게 없애고 보물 창고를 열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진정으로 내가 이 지저 세계의 중심에 급부상한 날이었다.

막시움과 남부가 동맹을 맺었다는 소문이 빠르게 번져 나갔다. 이에 위험을 느낀 사령관들이 대거 합류하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나쁠 게 없었다. 세력은 충분히 모았고, 내 자신의 힘도 만족할 만큼 키웠다.

“사령관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모이기 전에 처리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입니다.”

막시움이 조언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내버려 두어라. 한 번에 처리하겠다.”

일망타진의 기회.

하나씩 찾아가서 쓸어버리는 건 시간이 너무나도 오래 걸린다.

셋을 처리하는 데도 60일가량을 잡아먹었다. 그것도 그들이 방심할 때 빠르게 쳐서 그 정도다. 지금이라면 배로 걸려도 이상할 게 없었다.

‘대비하고 있을 테지.’

어차피 내게 숙이려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전력을 가다듬으며 틈이 보이기를 기다리고만 있을 것이었다. 굳이 찾아가서 시간을 끌 바엔 전부 모아서 단번에 쓸어버리는 것이 낫다.

“막시움과 오스웬은 들어라.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최후의 전쟁을 대비하라. 단 한 번으로 모든 걸 끝내겠다.”

“신 막시움, 황제 폐하의 명을 따릅니다.”

“신 오스웬, 황제 폐하의 명을 따릅니다.”

둘은 내 권속과 같았다.

막시움이야 둘째 치더라도 오스웬은 이 상황 자체를 즐기는 듯싶었다.

모든 이가 나를 나락 군주로 착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볼 셈이었다.

‘나도 준비를 해야겠군.’

하이엔달의 검술.

그것을 완성하기 직전이었다.

단서는 잡았고, 연습만 조금 하면 검술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길어야 수개월이다. 그 안에 완성시킨다.’

입을 꽉 다물며 연무실로 향했다.

양손에 든 분노와 황제의 검이 흥분으로 가늘게 떨렸다.

* * *

3개월.

적들이 모두 모이는 데 들어간 시간이다.

우습게도 남은 여섯의 사령관이 모두 일시적인 동맹을 맺었다.

나와 막시움을 견제하고자 모인 것치곤 과하다. 나락 군주에 반응을 한 것인지, 단순히 위협을 느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덕분에 일이 편해졌다.

내 군세는 50만에 이르렀다. 이만한 대군을 지휘해 본 적은 없지만 훌륭한 사령관 두 명이 곁에 있었다. 이들을 사용하지 않고 무작정 홀로 지휘하는 건 무모한 일이었다.

적의 군세는 60만가량.

숫자가 조금 더 많다.

하지만 긴 시간 서로를 배척한 여섯이 모여서 겨우 만든 숫자다.

손과 발이 맞지 않을 건 자명했고, 그와 달리 내 군세는 나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죄송합니다. 신이 무능하여 저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막시움은 끝까지 면목이 없다는 자세를 취했다.

이곳은 보물 창고의 앞이었다.

마지막 전쟁이 치러지는 장소로는 안성맞춤이었지만 나와 적대하는 사령관들을 보자 재차 미안해지는 모양이었다.

원래라면 저들은 나를 따라서 지저 세계를 이끌 존재였던 탓이다.

“어찌 그것이 너의 죄겠는가. 시간의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변질된 저들의 잘못이지.”

황제의 검을 높이 뽑아 들었다.

그리고 적을 향해 겨눴다.

“막시움, 그럼에도 잘못을 느낀다면 저들의 목을 내 앞에 진상해라. 충분히 시간과 기회를 주었음에도 나를 거부하고 적으로 나선 저 무례한 것들의 목을 말이다. 그리하면 용서하겠다.”

“명을 따릅니다. 염치없는 사령관들의 목을 모조리 따서 황제 폐하에게 진상하겠나이다.”

조금은 면죄가 되었는지 막시움이 기운을 차렸다.

나는 재차 전방을 살폈다.

총합 100만이 넘는 무리가 보물 창고 앞에 모였다.

너른 평야. 아무런 특색 없는 산 하나만을 옆에 둔 채 대치하고 있었다.

승자만이 보물 창고의 문을 열 수 있다.

패자는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리라.

“돌격하라!”

나는 외쳤고, 동시에 빠르게 가장 선두에서 달려 나갔다.

마지막 전쟁의 시작이었다.

죽음의 냄새가 곳곳에서 흐른다. 익숙하다. 마치 고향과 같은 아늑함이었다.

은은한 달빛이 서린 분노와 황제의 검을 휘두를 때마다 수많은 적이 쓸려 나갔다.

촤악! 촤르륵!

검이 돌고 내가 돈다.

무아지경!

완성된 하이엔달의 검술은 놀라웠다. 이에 나는 몰입하며 이윽고 나 자신마저 잊어버렸다.

검을 휘두르고 적을 베는 게 반복될수록 내 안에서 무언가가 변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변화는 매우 자연스러웠고, 나도 그를 당연하게 여겼다.

방전된 마력이 돌아왔으며 심장이 빠르게 요동쳤다.

쿠아아아앙!

그러자 잠든 뇌신이 깨어났다.

뇌신은 내 앞을 막아선 모든 적을 불태웠다.

오랜만의 재회지만 불과 몇 분 전 만난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차 빨라졌다.

달빛은 더욱 강렬해졌고, 심장도 폭발할 듯 경종을 울려 댔다.

시간이 가속하며 모든 것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아!’

어느 순간 정적이 찾아들었고, 그와 동시에 나는 각성했다.

용솟음치는 힘!

모든 게 돌아왔음을 느꼈다.

과거보다 더욱 강해졌다는 사실도 알았다.

내 한계가 넓어지며 성장할 발판이 만들어진 것이다.

‘한계 돌파.’

그렇다. 처음 겪는 감각. 그러나 확신한다. 한계 돌파라고. 내 잠재력의 한계치가 크게 상승했다고……!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가속된 시간이 돌아오고 무아지경에서 깨어났지만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이래서였나?

이래서 대공들이 한계 돌파의 비법을 감췄던 것인가.

‘나는 완성되어 가고 있다.’

지저 세계에 도달한 것은 결과적으로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만약 그러지 못하고 다른 것에만 기댔다면 결국 나는 패배했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아니다.

그들과 동등, 혹은 그 이상으로 성장할 원동력을 얻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해결할 일이 있었으니.

‘전쟁을 종결시켜야겠지.’

종결자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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