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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140화 (140/242)

던전 사냥꾼 140화

전쟁은 장장 3일 동안 계속해서 이어졌다. 밤낮으로 쉴 새 없이 몰아붙이며 엎치락뒤치락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모든 힘을 되찾고 전보다 강해진 나는 이미 이곳에서도 최강자였다. 뇌신으로 주변 적들을 태우며 오로지 사령관만을 노렸다.

내 의도를 알아차린 오스웬과 막시움이 병력을 끌고 난입을 시도했다.

그 결과…… 4일째 되는 날 저녁, 적이었던 여섯 사령관 모두를 흙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

그들은 내 검이 목에 닿기 전 말했다.

“모든 걸 잊고 싶었다.”

“단지 꿈꿨을 뿐이거늘!”

멈춰 있는 세계.

시간만이 무수히 흐른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지치고 말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단죄해 주길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결같이, 흙으로 돌아가기 전 평안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어 보인 것이다.

나락 군주를 따라서 더 긴 세월을 견뎌 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사령관들이 사라지자 남은 적군의 사기가 급속히 저하했다. 도망을 치거나 아예 포기해 버린 적군이 속출했고, 남은 이들을 빠르게 정리함으로써 전쟁의 승리를 알렸다.

드디어 지저 세계에서의 할 일을 모두 끝낸 것이다.

전쟁이 끝난 직후.

나는 거대한 산 앞에 섰다. 이곳이 바로 나락 군주가 묻은 보물 창고가 존재하는 장소였다.

‘이곳에 돌아갈 방법이 있다.’

있어야만 했다. 내 진짜 목표는 어디까지나 마왕이 되는 것이다. 지저 세계에서 군림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목표를 잊지는 않았다.

이곳을 빠져나가서 빠르게 상황을 살펴야 한다. 오쿨루스가 죽은 뒤 지구는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을 가능성이 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지도 주요 관건이었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반년이 조금 넘었지만 차원과 세계 자체가 다르다면 시간의 흐름도 다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혼들이 빨려 들어가는군.”

나는 가만히 전면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산의 전면이 거대한 입구였다. 그곳으로, 흙으로 돌아간 사령관들의 혼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사령관들이 몸을 잃으면 보물 창고로 그 혼이 빨려 들어가도록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황제 폐하, 저와 오스웬이 보물 창고에 손을 얹은 뒤 가운데 입구에 검을 꽂으면 창고가 열릴 것입니다.”

막시움이 설명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의 아랫부분에 열쇠 구멍과 같은 것이 있었다. 저곳에 검을 꽂으라는 말이었다.

머지않아 막시움과 오스웬이 보물 창고를 지키는 커다란 문에 손을 댔다.

나도 황제의 검을 뽑아 들었다. 이후 구멍 안에 밀어 넣자…… 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스템 복구 완료.]

[보호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마족 ‘랜달프 브뤼시엘’에 대한 상세 정보가 갱신됩니다.]

[불가능한 업적! 최초로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시스템이 지저 세계에 대한 정보를 새깁니다.]

[마족 ‘랜달프 브뤼시엘’의 던전과 ‘지저 세계’ 사이에 균열이 생성되었습니다. 연결 고리를 형성 중입니다. 1%, 2%…….]

[5,000,000PT를 획득했습니다.]

[업적 점수 3,000점이 추가됩니다.]

[‘나락 군주의 보물 창고’를 열었습니다. 판단 불가한 업적입니다. 비슷한 업적을 검색합니다.]

[4,000,000PT를 획득했습니다.]

[업적 점수 2,800점이 추가됩니다.]

[업적 상점에 보물 창고의 목록이 더해집니다.]

[믿기지 않는 업적! 최초로 한계 돌파에 성공했습니다.]

[1,500,000PT를 획득했습니다.]

[업적 점수 1,000점이 추가됩니다.]

[놀라운 업적! 최초로 5만 마리의 마수를 홀로 처리했습니다.]

[1,000,000PT를 획득했습니다.]

[업적 점수 500점이 추가됩니다.]

[굉장한 업적! 최초로 최상급의 언데드 두 마리를 굴복시켰습니다.]

[칭호 ‘언데드(Ex U)’를 획득합니다.]

[1,200,000PT를…….]

[대단한 업적…….]

…….

[‘지구’로 강제 전이 됩니다.]

* * *

대균열.

그 안으로 나는 빨려 들어갔다.

눈을 떴을 때 주변의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지구.’

주변의 공기와 마력. 반년 만에 맡아 보는 익숙한 내음.

이곳은 지구였다.

돌아왔다.

하지만 던전의 근처는 아니었다.

“갑자기 사람이 생겨났어!”

“젠장, 뭐 하는 거야? 어서 피하라고!”

유독 얼굴이 하얀 인간들.

백인이라 칭해지는 그들이 나를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주변으로는 높은 건물들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반파되었고, 여기저기에 깔려 죽은 인간이 많았다.

‘몬스터 웨이브로군.’

나를 본 마수들이 내 쪽으로 발을 옮겼다.

군침을 흘리며 다가왔다.

내가 막 검을 꺼내려는 찰나, 두 개의 균열이 연달아 일어나며 그 틈으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여기는……?”

“오오, 황제 폐하!”

바로 오스웬과 막시움이었다.

대균열이 일어날 때 둘도 함께 온 듯싶었다.

오스웬은 지구가 처음이었기에 어리둥절한 모습이었고, 막시움은 익숙한 지 여유로움을 내비쳤다. 난데없이 지구로 떨어졌지만 그런 경험도 막시움은 이미 한 번 겪어 본 덕분이다.

“주변의 모든 마수를 정리하라.”

분노와 황제의 검을 꺼내 들었다.

누구의 휘하에 있는 지 모를 마수보다는 인간과 이야기가 더 잘 통한다.

주변을 정리한 후 이야기를 나눠 보면 현재의 상황을 보다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이었다.

10여 분 후.

각성자들이 달려왔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되어 있었다.

단 셋이서 500에 달하던 마수를 깡그리 죽여 버린 것이다.

모든 이가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

주변의 참상을 조용히 바라보며 놀라워 할 따름이었다.

“그대는 마족입니까?”

50의 각성자 중 대표로 보이는 이가 앞으로 튀어나와 거리를 유지하며 말했다.

나 혼자는 몰라도 오스웬이나 막시움은 마수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저나…… 단도직입적으로 마족임을 묻는다. 내가 지구에 있었을 때와는 조금 달라진 듯했다.

‘마족의 존재가 두드러진 건가?’

확실히 시간이 흐르긴 한 것 같다. 나는 검을 집어넣고 입을 열었다.

“소환사다.”

극히 드물긴 하지만 각성자 중에는 소환사도 있었다. 미지의 존재를 소환하여 사육하는데, 의심을 벗어던지기 안성맞춤인 직업이다.

내 말을 들은 대표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아! 소환사이시군요! 혹시 어디 소속의 각성자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한국, 천명회 소속. 데빌 헌터 공격대의 공격대장이다. 이만하면 되었나?”

“한국…… 천명회, 입니까?”

반응이 영 석연치 않다. 불신이 눈에 새겨졌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현재의 연도와 날짜를 알고 싶다.”

“2021년 7월 13일입니다만.”

“2021년? 확실한가?”

“확실합니다.”

쯧! 혀를 찼다.

역시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

1년 8개월 정도가 지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태도가 이해되었다. 마족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들의 존재가 백일하에 드러났으리라. 다짜고짜 마족이냐 묻는 것도 그런 차원에서였다.

“그나저나…… 정말 한국에서 오셨습니까? 그곳은 지금 아무도 나올 수 없을 건데요?”

각성자의 대표는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 않았다.

슬쩍 검으로 손을 대며 나를 배제할 준비를 한다.

절도 있는 동작.

그사이 각성자들의 수준도 많이 올라간 것 같았다.

‘심안을 열면 되었지.’

그간 사용을 안 한 탓인지 그만 깜빡하고 있었다.

심안을 열어서 각성자들의 수준을 파악했다.

이름: 에드가 쉰

직업: 용사(전사)

칭호 :

* 생존자(R, 힘+4)

* 1,000번의 전투에서 승리한(U, 체력+7)

능력치 :

힘 65(+4) 지능 41

민첩 44 체력 48(+7) 마력 48

잠재력(246+11/311)

특이 사항: 없음

스킬: 일격필살(U), 정신 집중(R)

이곳에 모인 각성자들 대부분이 이와 비슷한 수치를 나타내고 있었다.

놀랍다. 1년 8개월 만의 변화라곤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있을 당시 이 정도 능력치를 보유한 이는 없었다.

이들을 최정예가 아닌 평균치로 여길 경우, 가장 선두에 선 인간들은 능력치 총합 300을 넘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는 그간 여러 가지 상황이 급변했음을 뜻했다.

“아무도 나올 수 없다는 게 무슨 뜻이지?”

“혹시 이 근처의 어디 산 같은 곳에 있었습니까?”

“2년 정도 그 비슷한 곳에 있었다.

“아, 그러면 모를 수도 있겠군요.”

각성자 대표가 검에서 손을 뗐다. 의심을 거의 지운 모습이다.

이어서 그가 말했다.

“한국은 여러 마족들의 공격 아래에 있습니다. 사방을 막고 토끼몰이를 하듯이 몰아가고 있어요. 마족들의 목표는 한국의 던전과 각성자들인 것 같았습니다.”

여러 마족의 공격 아래에 있다?

그나마 아직 점령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숨을 골랐다. 섣불리 판단하여 움직이는 건 악수를 둘 가능성만 키운다.

그보다는 확실하게 전후 사정을 들을 필요가 있었다.

“언제부터지?”

“1년 전부터 계속된 일입니다. 전기가 모두 끊기고 공중형 마수들이 하늘도 점거해서 연락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에요. 뭐, 그런 상황에 처한 나라가 한국밖에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곳에도 천사들과 마족들이 싸우는 와중이라…… 인간들은 안중에도 없지요. 에휴!”

각성자들 전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천사들까지…….

‘여유 부릴 시간이 없다.’

생각한 것보다 최악이다.

아예 손쓸 겨를이 없어지기 전에 움직여서 상황을 타개해야만 했다.

“아무튼 구조에 감사드립니다. 소환사는 굉장히 드문데 오늘 눈이 다 호강하는군요. 제 이름은 에드가, 미국 ‘골든타임’ 길드의 마스터…… 헉!”

몸을 돌렸다. 땅을 박차며 있는 힘껏 달려 나갔다.

순식간에 내 인영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각성자들이 웅성대며 소란을 떨기 시작했다.

“공간 이동 스크롤이라도 사용한 건가?”

골든타임 길드의 길드 마스터 에드가. 그는 눈을 깜빡이며 내밀었던 손을 조심스럽게 회수했다.

기본적인 것들은 회복되었지만 아직 이히와의 연결이 회복되지 않았다. 결국 던전의 상황을 확인하려면 직접 눈으로 보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여기가 지구라는 곳입니까? 놀랍군요.”

오스웬에겐 나락 군주의 심장을 얻은 경위를 설명하며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해 놓았었다. 적어도 내가 마족이며 마왕이 되고자 싸우고 있다는 것쯤은 알았다.

“황제 폐하께선 여기서 이룰 일이 있다. 잠자코 따라라.”

막시움이 무게를 잡고 말했다.

나를 따라 둘은 함께 이동하는 중이었다.

“당연히 따라야지요.”

오스웬이 가볍게 웃었다. 아마도 오스웬은 이 상황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막시움이 나를 나락 군주라고 착각하며 따르는 걸 통쾌하게 여겼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 소리보다 나는 전방을 살피는데 여념이 없었다.

‘곧 한국이다.’

거리가 있음에도 벌써부터 마수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개가 중급이었지만…… 나는 더욱 속도를 올렸다.

* * *

보석 왕관, 보석 방패, 요정 기사의 검을 착용하여 완전무장을 끝낸 이히가 마수들을 불러 모았다.

“벌써 14층까지 뚫렸어. 근원의 나무를 잃으면 그때는 끝이야! 마스터가 돌아오실 때까지 반드시 사수해야만 해!”

이히의 외침이 무색하게, 온몸에 상처를 입은 크라스라가 참혹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정님, 적들은 만반의 준비를 갖췄습니다. 얼마 전 그리핀과 기간테스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지요. 크리슬리도 무사하지 못합니다. 타쉬말과 마고, 저에 대한 공략이 끝나면…….”

“조용히 못해?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해. 그 외에는 있을 수 없어! 이히가 반드시 지킬 거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정님까지 나서실 필요는 없습니다. 요정님은 이미 ‘코어’ 자체가 되지 않았습니까? 근원의 나무와 던전의 코어는 요정님의 존재로 버티고 있을 뿐입니다.”

마족들은 단단히 준비했다.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던전의 마력을 꼬아 버린 것이다.

근원의 나무와 던전의 코어는 막대한 마력을 소비한다. 그것을 막자 던전이 붕괴되어 가고 있었다. 그나마 이히의 격이 계속해서 상승하고 존재력을 키운 덕분에 유지가 되고 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이히가 타격을 입는다면 그것도 소용이 없어진다.

“이히보고 손가락 빨면서 구경만 하라는 말이야? 이게 다 이히 때문에 벌어진 일이란 말이야. 씨이!”

“요정님…….”

쿠릉!

쿠르릉!

그때였다.

아래층에서 광음과 함께 대규모 이동이 시작됐다.

“적이 옵니다. 요정님, 부디 무리하지 마시길.”

크라스라가 붉은 창을 들고 일어났다.

1년 동안 벌써 백여 차례가 넘도록 공격을 받았다.

여태까진 잘 막았지만…….

적의 공세가 요즘 들어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그나마 타쉬말과 마고, 크라스라, 그리고 리치 가파람의 기상천외한 마법 아이템들 덕택에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내 한 몸 불사르는 한이 있더라도.’

지키리라.

오랜 시간 던전 마스터가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그에 대한 기대는 놓은 지 오래였다.

전신에 흉악한 상처를 가득 품은 크라스라가 등을 돌렸다.

“이히도 지킬 거야. 마스터가 돌아올 때까지 꼭 지키고 말 거야.”

이히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이히가 완전무장을 한 채 입술을 꽉 깨물고 날개를 퍼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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