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사냥꾼-142화 (142/242)

던전 사냥꾼 142화

길게 끌 것도 없었다.

나는 모든 제한을 풀었다. 마력이 개방되고 그 막대한 파동에 주변의 공기마저 일렁거렸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주변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사정권에 들어온 모든 마수가 본능적으로 주춤하며 겁을 먹었다. 이것이 내 존재력이고, 격의 힘이다.

말하자면 영역 선포와 같았다. 최상급 2Lv의 티탄. 강력하기 짝이 없는 놈마저 이상을 느끼고 한 발자국 물러섰을 정도다. 몸을 움츠리며 나를 향해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다.

디펠라를 비롯한 다른 마족들의 표정에도 변화가 생겼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절로 무기에 손을 가져갔다. 내가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방비를 한다.

대공들과 비교하여 전혀 부족함이 없는 ‘격’을 느꼈을 터. 부정해도 직면한 현실을 외면할 순 없다.

나는 지저 세계에서 몇 번의 거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스스로를 급속히 성장시켰고…… 그곳을 빠져나올 때 얻은 ‘보상’ 역시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나의 던전이다. 내가 돌아온 즉시 던전이 나를 인식하고 정상적으로 가동했다. 적어도 던전 안에서 나는 무적과 같았다.

타악!

분노와 황제의 검을 치켜세우며 땅을 박찼다.

달빛 낙하를 사용하며 마치 순간 이동을 하듯, 나는 디펠라와 티탄에게 다가갔다.

잠시라도 놈들이 던전 안을 활보하는 걸 용납할 수 없다. 농락하고자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지만 그 잠시의 시간조차 불쾌하다. 그나마 허용을 한다면 그것은 놈들이 시체일 때다.

콰앙!

티탄의 육중한 몸을 분노가 때렸다. 폭발 소리와 함께 티탄이 튕겨져 나갔다. 끝내 던전의 벽에 몸을 박고 한참을 들어갔다.

크어, 크어어.

벽에 박힌 티탄이 머리를 뒤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한 발을 엉거주춤 내밀더니 잠시 주춤거렸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갑옷도 맞은 부위가 폭발이라도 일어난 듯 뚫려 있었다.

“오만.”

작게 말했다. 그 순간 장갑에서 검은 불길이 솟아나며 내 전신을 뒤덮었다. 기존의 분노, 나태는 능력치를 올리고 내렸지만 이 ‘오만’은 달랐다.

거만한 불길. 적에게 닿거든 그 상대가 죽을 때까지 식지 않는다. 물론 지능이 높거나 대응하는 스킬이 있거든 효과를 반감시킬 수는 있겠지만…… 나는 이미 초월자의 경지에 한 발을 제대로 담갔다.

나와 비슷한 수준이 아니고선 이 불길을 피해 가지 못한다.

화르륵!

손을 뻗어 오만의 불길을 티탄에게 쏘았다.

끄어어억! 끄어어어!

티탄은 직격으로 불길을 맞고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뚫린 갑옷의 사이로, 불길은 전신에 시시각각 퍼져 나갔다.

“매혹의 입맞춤!”

티탄의 숨통을 끊고자 준비를 할 때 디펠라가 나를 공격했다. 수십 개의 입이 주변에 생겨나며 나를 매혹하고자 특정한 페로몬을 뿜어 댔다.

하지만…… 그 역시 ‘오만’의 불길에 의해 전부 타 버렸다. 내게 닿지도 못하고 스킬 하나가 무효화된 것이다.

“황혼의 채찍!”

주변을 맴돌던 입들이 채찍을 뱉어 내고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나 내게 있어선 귀찮을 따름이었다.

파삭!

분노는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무기지만 다크 소드와 달의 마력을 덧씌우고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베어 내는 게 가능하다. 디펠라 따위가 사용한 스킬을 베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채찍은 잘려 나갔고, 다시 재생되지 못했다.

이 일말의 과정을 지켜본 디펠라가 입을 열었다.

“그 검의 힘은……! 아리엘 디아블로와는 무슨 관계냐!”

“그녀와 나를 비교하지 마라.”

아리엘 디아블로가 사용하는 어비스 소드와 내 다크 소드는 비슷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비교하며 나와 엮는 건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엄연히 업적 상점에서 업적 점수를 내고 구매한 것인데 말이다.

주변의 모든 채찍과 허공에 떠오른 입을 잘라 내고 그 너머에 있는 디펠라를 향해 돌격했다. 어두운 던전의 안에서도 하이엔달의 검술은 빛을 발했다. 은은한 달의 마력이 사방을 잠식하며 디펠라의 마력을 조금씩 잡아먹었다.

디펠라는 당황하였다. 매혹의 입, 황혼의 채찍, 모두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래라면 수백 개의 입술과 채찍이 나와야 정상이었다. 하물며 내가 잘라 낸 것은 복구가 되지 않았다.

마력의 고리 자체를 끊어 낸 탓이다.

“랜달프 브뤼시엘……!”

후움!

디펠라가 남아 있는 모든 마력을 폐부에 모았다. 무슨 스킬을 사용할지 익히 짐작이 되었다. ‘어둠의 숨결’이라 불리는 공작 디펠라의 전매특허 스킬.

콰아아아아앙!

이윽고 디펠라의 입에서 어둠의 숨결이 쏟아졌다. 닿는 모든 것을 순식간에 부식시키며 나를 향해 정면으로 날아왔다.

나는 뇌신을 불러들였다. 전기를 모았고, 그것을 오만의 불꽃과 함께 쏘아 냈다. 두 가지 기운이 합쳐지며 어둠의 숨결과 격돌했다.

쿠우우우우우웅!

던전이 흔들린다. 내 불꽃과 어둠의 숨결은 부딪치며 광음을 낳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이건, 이건, 말도 안 돼!”

비장의 한 수가 이리도 허무하게 뚫리리라곤 상상도 못한 걸까?

어둠의 숨결은 내 불꽃에 잡아먹혔다. 저항도 하지 못하고 순응하며 길을 내줬다. 그 끝에는 디펠라가 있었다.

콰지지지직!

이내 불꽃이 디펠라를 삼켰다. 불꽃과 뇌신은 한 점 살 조각도 남기지 않고 디펠라를 지워 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듯이 증발한 것이다.

주춤대며 마족들이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백작이 아니었던가? 저 힘은…… 믿을 수 없다.”

티탄을 한 방에 날려 버렸으며 디펠라도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들의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문제였다. 그중 가장 강한 공작 디펠라가 비장의 한 수까지 썼음에도 허무하게 패배하였으니…….

그들이 아는 ‘랜달프 브뤼시엘’과 지금의 나는 많이 다르다. 마계 옥션에서 보인 내 힘이라고 해 봤자 최상급 마수와 포인트 수치가 전부였다. 직접적으로 무력을 선보인 건 이번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여기서 아량을 베푼다는 건 내 성격상 불가능한 일이다. 어느 마족이라도 이 점은 비슷할 터였다.

자신의 것을 탐낸 약자, 죽어 마땅하다.

화르륵!

오만의 불길이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오스웬과 막시움이 전신에 피를 한가득 묻힌 채 내게 다가왔다.

“신 막시움, 황제 폐하의 명을 따라 적을 토벌하였나이다.”

“신 오스웬, 마찬가지입니다.”

막시움은 내 말이 천명인 양 받아들이며 필사적으로 움직이지만 오스웬은 대강이란 느낌이 강했다. 애당초 그가 나를 따르는 건 나락 군주를 조소하기 위해서다. 적어도 나락 군주와 다른 방향의 길을 걷는 한 오스웬은 나를 따를 것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내버려 두었다. 팔 네 개가 잘려 나갔음에도 오스웬은 강했고, 그의 지식이면 앞으로 도움 되는 일이 많을 것이었으므로.

허나 나는 오스웬과 막시움을 치하할 수 없었다. 한 지점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던전…… 마스터시여…….”

크라스라.

붉은 창을 한 손에 꼭 쥔 채로 시선을 들었다.

하지만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시력을 상실한 것이다.

전신의 상처는 심각했다. 생명력 자체가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한마디로 수명을 갉아먹어 가며 싸움에 임했다는 뜻이다.

한두 번이 아니라 수십 번을 반복했다. 여태껏 살아 있는 게 대단하다.

‘늦었군.’

이런 상태라면 엘릭서로도 살리지 못한다.

“진정…… 던전 마스터이십니까? 이상합니다. 잘…… 안 보이는군요.”

“맞다.”

“아아…….”

크라스라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곧 자신이 죽을 것이란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크라스라는 웃었다. 단지 내가 귀환했다는 사실 하나에.

처음 크라스라를 만날 때가 떠올랐다. 철창 안에 갇혀 있었고, 던전에 온 직후 나는 그와 다크 엘프 모두를 개 취급했다.

가장 열성적으로 개의 흉내를 낸 게 크라스라다. 여동생이자 여왕인 크리슬리를 살리기 위해 전사의 자존심을 내다 버린 것이다.

크리슬리가 살아나고 의식을 맺었을 때 그는 자신의 일인 것처럼 좋아했다. 더욱 열심히 나를 따랐으며 한 번도 실망을 시키지 않았다.

“부디…….”

크라스라가 잠긴 입을 힘겹게 열었다. 그러나 말이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대부분의 기력을 상실한 것이다. 하지만 크라스라가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크라스라, 너는 약했다. 약했기에 죽는다.”

매정하기 짝이 없는 말.

그것을 나는 무덤덤한 태도로 내뱉었다.

크라스라는 눈을 감았다. 생명의 초가 꺼져 가고 있었다. 1분 이내에 그 숨을 완전히 멈추리라고 나는 확신했다.

하여…… 크라스라가 하고자 했던 말을 대신해 주었다.

“크리슬리를 누구보다 강하게 만들어 주마. 결코 너처럼 허무하게 죽지 않도록.”

“감……사…….”

툭!

크라스라의 손이, 힘없이 땅에 닿았다.

더는 심장이 뛰지 않았다. 흐르던 피도 빠르게 식어 갔다.

허나 입가에 맺힌 미소만은 변함이 없었다.

내 발언이 그리도 안심이 되는 것일까.

무엇을 믿고, 1년 8개월이나 모습을 감췄던 나를 맹신하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히잉…… 훌쩍!”

이히가 고개를 푹 숙이며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또 닦았다. 굉장히 미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죽은 자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나는 가만히 크라스라를 내려다봤다.

힘이 없어 죽었지만 너의 죽음이 가치 없진 않았다고.

그리 생각하며 몸을 돌렸다.

“시체를 근원의 나무 옆에 묻어라. 나는 최상층에서 전체적인 점검을 하겠다.”

근원의 나무 근처에 죽은 마수들이 묻혔다.

그 과정은 길지 않았다. 마수의 죽음은 당연한 것.

슬픔에 차 있기보다는 내일의 계획을 세우는 게 먼저였다.

그러기 위해선 전체적인 던전의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남아 있는 게 거의 없군.’

처참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올랐다.

마수들의 씨가 말랐다. 그나마 주요 마수들은 대부분 멀쩡하다는 게 위안이었다. 사경을 헤매거나 큰 상처를 입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긴 했지만 크라스라처럼 생명력의 근원을 모두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충분히 치료 가능한 범위였다.

‘중국과 일본의 던전은…… 무사하구나.’

한국의 던전과 연결이 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한국의 던전과는 다르게 공격을 받지는 않은 것 같았다. 판데모니엄이 눈치챈 건 어디까지나 내 본진뿐인 듯싶었다.

작게 혀를 차고 던전의 현황을 살폈다.

‘던전을 정상화시키려거든 망가진 것들을 수복해야겠지.’

가장 급한 게 번식종이다. 3년간 모은 마수들이 바닥을 보였으니 그것을 수복하려면 천문학적인 포인트가 필요했다.

‘나는 지저 세계를 탈출하고 막대한 포인트를 얻었다.’

무수히 떠오른 업적들.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나는 달라진 것들을 파악하자고 마음먹었다.

[보유 포인트- 38,799,344]

[현재 업적 점수- 29,158]

포인트와 업적 점수 현황은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이 정도면 던전을 전보다 강하게 만들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저 세계의 보물 창고에 있는 물건들이 업적 상점에 추가됐다고 하였다. 업적 점수도 함께 이용하면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상태창.’

이윽고 상태창이 허공에 떠올랐다.

이름: 랜달프 브뤼시엘

직업: 마계 백작(던전 마스터)

칭호 :

* 던전 사냥꾼(던전 점령, 마족 사냥 시 잔여 능력치+1)

* 불굴의 전사(Ex U, 모든 능력치+2)

* 최초로 요정의 축복은 받은 자(U, 마력+6)

* 근원의 주인(Epic, 모든 능력치+3)

* 언데드(Ex U, 지능체력+5)

* 지저 세계의 지배자(Legend, 모든 능력치+5, 에픽 미만 스킬의 등급+0.5)

능력치 :

힘 85(+20) 지능 90(+15)

민첩 80(+20) 체력 85(+22) 마력 94(+16)

잠재력(434+93/550)

잔여 능력치: 13

전력량: 21GW

특이 사항: 지저 세계의 주인. 나락 군주의 심장이 완전히 각성했습니다.

스킬: 만물 조합(Ex U), 심안(Epic), 다크 소드(Epic), 신검합일(Epic, Passive), 전격의 정령(Epic), 오만(Epic), 타락(Ex Epic)

적용 중인 스킬 & 아이템 효과: 분노(힘+7), 나태(민첩+7), 오만(체력+7), 신검합일(힘민첩+3)

[전후 비교]

힘 96 지 93 민 86 체 85 마 98 잠재력(412+51/500)

힘 105 지 105 민 100 체 107 마 110 잠재력(434+93/55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