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143화
몰라볼 정도의 성장이다. 순수 능력치와 보정 능력치 전부가 크게 올랐다. 무엇보다 잠재력의 한계치가 50이나 상승했다. 이는 굉장히 가시적인 일이다.
마족은 기본적으로 500의 잠재력을 갖지만 그것을 전부 채우는 이들은 공작이나 대공에 한했다. 나는 그 ‘기본’을 벗어났다. 다른 이들과 한계지 자체가 다르니 500 이상의 성장 가능성을 활짝 열게 되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보정 능력치를 더하면 이미 500을 넘는다.
능력치 총합 527!
보통 500을 초월자의 기준으로 삼는데, 나는 그곳에 발을 깊이 담갔다. 마계에 있을 당시의 대공들을 상대로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 수치다.
어둠의 정령왕 아도니스조차 능력치 총합은 나와 비슷하다. 그러나 나는 한계 돌파를 행했고, 그는 방법을 찾는 중이라는 점이 달랐다. 그는 정체되어 있으나 나는 계속해서 나아가는 게 가능한 것이다.
‘레전드 등급의 칭호.’
‘지저 세계의 지배자(Legend)’가 눈에 밟혔다. 레전드 등급의 무언가는 단순히 강하다 해서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은연중 나와는 인연이 없으리라고, 구하더라도 5년은 더 흘러야 기회를 노릴 수라도 있다 여겼건만.
지저 세계를 다녀온 일은 내 완벽한 밑바탕이 되어 주었다. 다녀오지 않았다면, 내 한계를 깨지 못했다면 회귀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덕분에 스킬의 등급도 높아졌지.’
칭호의 옵션이다.
에픽 미만 스킬의 등급을 0.5 올려 주는 것.
가장 기쁜 건 역시 심안의 등급이 에픽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이제 오쿨루스와 같은 놈을 상대할 때 전과 같이 당하지는 않을 터였다.
신검합일의 영향인지 검술 자체의 완성도도 높아진 데다가, 다크 소드의 절삭력도 비할 바 없이 날카로워졌다. 다크 소드를 사용하고 달빛의 마력을 머금은 분노는, 아리엘 디아블로의 ‘어비스 소드’와도 필적할 듯싶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나는 그들의 대적자가 되었다. 아니…… 사냥꾼이 되었다.
짐승들은 사냥꾼을 두려워하며 바닥을 기어야 할 것이다.
“업적 상점.”
가만히 그 단어를 입에 담자 던전의 코어가 더욱 강렬하게 빛을 내뿜었다.
[업적 상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현재 업적 점수- 29,151]
[업적 점수를 활용해 상점의 물건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아이템의 이름 앞에 +표시가 된 것은 오로지 하나만 구매 가능합니다.]
[‘나락 군주의 보물 창고’에서 추가된 아이템과 마수를 개재 중입니다.]
[개재 완료. ‘업적 관련 추가 아이템’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락 군주.
그는 지저 세계를 만들었다. 시스템마저 인식하지 못한 세계를 창조해 냈다. 그리고 그 안에 자신만의 보물 창고를 두었다.
무엇을 꽁꽁 숨겨 두었을까?
얼마나 대단한 것들이 들어 있기에 사령관들은 배신을 하였던가.
시선을 옮기자 창이 떠올랐다.
[업적 관련 추가 아이템]
[천사의 알- 500]
[혼령 기병- 300]
[혼령 사수- 400]
[혼령 마도병- 1,200]
…….
[+천의 날개(Epic)- 5,000]
[+포효의 방패(Epic)- 6,800]
[+절대 빙정(Ex Epic)- 23.000]
…….
[+나락 하수인- 10,000]
[+산의 징표- 15,000]
[+둠 드래곤- 60,000]
…….
[+고급 수련의 방(5/5)- 8,000]
[+유토피아(Legend)- 99,555]
[+멸망의 오브(Legend)- 99,555]
목록은 길었다. 한눈에 전부 안 들어올 정도로 많았다. 그중 중요한 것만 간추려도 10개가 넘어갔다.
본래 업적 상점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자랑했던 건 진마룡 ‘아오진’이었다. 그보다 비싼 것들이 존재할 줄이야.
둠 드래곤과 유토피아, 멸망의 오브!
모두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지만 결코 간단히 넘길 수는 없었다.
둠 드래곤은 처음 보는 종이나 뒤의 두 개는 레전드 등급이었다.
레전드 등급의 아이템은 전생에서도 매우 희귀했다. 내가 아는 것만 세 개가 있을 따름이었다. 그 하나하나가 말도 안 되는 위력을 발휘했고, 모든 판도를 뒤집었다. 특히 인간 진영이 가지고 있었던 ‘천상 지팡이’는 한계 돌파를 행한 대공도 뒷걸음질을 치게 만들었다.
물론 사용자가 10강에 들어가는 최강자이긴 했지만 그 위력은 놀라웠다.
‘이걸 모두 가진다면…… 가히 신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지 않은가.’
나락 군주. 생각하면 할수록 그 끝이 안 보이는 놈이지 않은가. 인간인 주제에 초월자의 영역에 들어섰고, 신에 가까운 위치까지 올라갔다. 정작 신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만한 저력은 갖추고 있었다는 의미다.
이만한 힘을 모아 놓고 도박에서 패해 버렸지만 그 힘은 이제 내 것이 되었다. 온전하지는 않아도 사용이 가능해졌다. 당장 가진 업적 점수로 구매할 수 있는 게 상당한 것이다.
‘점검은 이만하면 되었다.’
고개를 주억였다.
포인트와 업적 점수 보유 현황에 따라 가능한 것들, 안 되는 것들을 구분했다.
복구하는 데 들어가는 예산은 충분하다. 차고 넘친다. 조금의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전보다 강력한 던전이 완성되리라.
피해는 있었을지언정 던전은 무사했다. 그것 하나면 족하다. 마족들을 상대로 여기까지 버텼다는 자체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돌아온 이상, 더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정 모드를 종료시켰다
이후 최상층을 빠져나가 크리슬리를 찾았다.
* * *
크리슬리는 중태였다.
나무집 안에 홀로 누워서 창백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크리슬리의 손목을 잡고 마력을 흘려 넣자 반발이 심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이는 몸이 본능적으로 외부의 개입을 막고 있음을 뜻하였다.
얼핏 살핀 결과 크라스라보다는 덜해도 생명의 근간이 꽤 훼손되었다. 마력도 꼬여 있어서 문제가 심각했다.
“이히, 크리슬리는 언제부터 이 상태였지?”
문 앞에서 내 쪽을 조심스럽게 바라보던 이히가 침착히 내 옆으로 다가와 조잘거렸다.
“그게요, 마스터. 정확히 58일째예요. 이히가 뚜렷하게 기억하는데요, 드워킹을 살리다가 기습을 당했어요.”
58일째라…….
‘위험하군.’
역시 직접 보는 것과 듣는 것은 차이가 크다. 그냥 몸만 상했다면 물약이나 엘릭서로 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 정도라면 내가 힘을 써야 할 것 같았다.
내부에서 마력이 폭주하고 있었다. ‘좋은 피’의 도움으로 버텨 내고 있는 것이었다.
진마룡 아오진과 다크 엘프 하이어의,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한 피는 크리슬리의 몸을 원상태로 돌려놓으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마력의 폭주, 어그러짐은 치료 사례가 거의 없었다. 한 번 꼬이면 그대로 죽는다는 게 정설이었다. 어지간하면 꼬이는 일 자체가 안 일어나지만 억지로 마력을 쥐어짜 내다가 이런 상황에까지 몰리게 된 듯싶었다.
일종의 불치병이다. 치료한 전례가 아예 없지는 않았으나 방법 모두가 중구난방이었다. 무엇보다…… 혼자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도움을 주는 외부자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러는 와중 십중팔구는 죽어 나간다. 운이 좋아 살아도 반 불구를 면치 못한다. 마력의 간섭, 더 나아가 상대의 밑바닥까지 훑고 들어가는 일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이는 나라도 마찬가지다.
‘마력의 뒤틀림, 그 상태가 58일째다. 손을 쓰기엔 늦은 감이 있지.’
마력이 뒤틀리고 사망하기까지.
평균 7일이 소요된다.
그런데 58일째 생존해 있다? 확실히 범상치 않은 일이다. 대단한 것이고. 허나 누구라도 ‘치료’를 언급하진 못할 터였다.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판데모니엄이었다. 마도에 정통한 그는 마력의 어그러짐도 연구를 했을 것이었다.
나도 몇 번 비슷한 행위를 해 본 적은 있지만 실질적으로 마력이 꼬여서 해결한 것은 아니었다. 예컨대 유은혜의 경우 전기의 방향을 바로잡아 준 것이 전부였다.
미간을 찌푸렸다.
의식을 맺고 내게 많은 도움을 준 건 사실이지만 크리슬리는 어디까지나 내 휘하의 수많은 이 중 하나에 불과하다.
평소였다면, 예전의 나였다면 가차 없이 버렸겠지.
하지만…….
“크라스라의 죽음이 너를 살렸다. 그의 가치 있는 죽음에 감사하도록.”
손목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이히에게 명했다.
“절대로, 누구도 내가 나오기 전까진 이 안에 들이지 마라. 이히, 너도 마찬가지다.”
“알겠어요, 마스터. 이히가 앞에서 꼭 지키고 있을게요! ……이히히.”
이히가 작게 웃고는 방문을 나섰다. 아주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는, 문 앞에 서서 쥐 죽은 듯 서 있었다. 주변의 바람 소리도 전부 차단되었다.
‘그럼…….’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어 크리슬리의 옷을 벗기고 가슴을 억세게 움켜쥐었다.
심장 소리가 손바닥에서 여실히 느껴질 때 즈음, 나는 눈을 감았다.
내 마력은 이미 크리슬리의 마력을 크게 웃돈다. 그러나 진마룡이나 다크 엘프 하이어의 피는 나 못지않은 강대한 마력을 품고 있었다. 이 사이에 들어가 조율하며 꼬인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 작업이었다.
자칫하다간 폭탄이 터지듯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 나도 무사하지는 못할 테고, 58일이나 버텨 온 크리슬리의 심장은 끝내 기동을 멈출 것이었다.
‘너의 의지가 중요하다.’
톡톡.
두드리듯, 나는 마력으로 말미암아 크리슬리에게 말을 건넸다. 처음에는 무시였지만 끊임없이 두드리자 반응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 반응은 너무나도 미약했고, 찰나지간 사라졌다. 0.1초조차 아닌, 내가 초월자의 영역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면 그냥 지나쳤을 순간의 반응.
나는 그 반응이 난 곳으로 마력을 우회시켰다. 그리고 다시 문을 두드렸다. 그러한 행위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깨어나라.’
반응은 조금씩 강해졌다.
톡! 톡!
나 또한 더욱 거세게 두드렸다.
‘내게 모든 걸 맡겨라.’
엉킨 마력이 크게 흔들렸고, 몸 내부를 휘감았다. 크리슬리의 정신이 깨어났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믿을 수밖에 없다.
나는 전신에 마력을 돌려서 흐트러진 실타래를 찾았다. 그 뒤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했다.
이후 하나의 실을 잡으며 신중하게 풀어 나갔다.
크리슬리의 마력은 더 이상 나를 방해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살고자 내게 몸을 의탁한 것인지, 크리슬리의 의지인지는 모르겠으나 다행이었다.
더는 꺼릴 게 없었다. 나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이건?’
그러다가 언뜻 다른 종류의 마력을 발견했다.
죽음의 왕, 가낙!
그의 정수가 아직까지 몸 내부에 남아 있었던가?
오쿨루스와 결전을 치를 때 크리슬리는 죽음의 왕 가낙의 정수를 이용해 그의 힘을 빌린 적이 있었다. 일회성으로 끝날 줄 알았건만 내부에 남아서 은연중 마력 흐름을 방해하고 있었다.
‘이게 원인이었군.’
가낙의 정수가 흐름을 방해하지 않았다면 이처럼 큰일을 겪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선택의 기로에 섰다.
제거할 것인지, 다른 방향을 찾아볼 것인지.
하지만 돌아가기엔 이미 늦었다. 실타래는 너무 심하게 얽혀 있어서 이 길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다른 길을 찾다간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도 이상할 게 없었다.
‘가낙의 정수를 제거하는 것은 아깝다.’
그러나 나는 제3의 선택을 내렸다.
녹인다. 가낙의 정수를 크리슬리의 마력에 녹여낸다.
실타래를 푸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애당초 가낙의 힘은 크리슬리 본인이 가진 힘이 아니었다. 그래도 한 번 흡수했고, 그 힘을 발휘한 적이 있으니 아예 불가능하진 않다고 보았다.
물론 나나 크리슬리, 쌍방의 위험은 배로 증가한다.
배로 증가하지만…….
‘너를 강하게 만들어 주마.’
크라스라, 그는 힘이 없어서 죽었다. 그래서 힘이 있는 내게 부탁했다. 크리슬리를 잘 돌보아 줄 것을 말이다.
하지만 크라스라의 죽음은 가치가 있었다. 덕분에 던전을 지켰고, 나를 움직였다.
다른 이를 위해, 내가 이런 모험을 하게 만들었으니.
‘견뎌라.’
쿠웅!
크리슬리의 내부에서 마력의 폭발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