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146화
* * *
서울 근교. 50에 달하는 각성자가 비장한 각오로 주변을 살폈다. 조금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숨조차 쉽사리 내쉬지 않았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거대한 도시였을 장소는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다. 해골이 사방 천지에 널렸고, 까마귀 울음소리가 즐비하다. 곳곳에 균열이 생긴 아스팔트 도로, 토막 나고 방치된 자동차, 깨진 창문들…….
생명이라곤 전무한 장소였다. 죽음만이 가득했으며 어디선가 알 수 없는 흐느낌 같은 게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였다.
“정지.”
선두에 선 각성자가 손을 들었다. 동시에 50에 달하는 인원이 멈춰 섰다.
공격대장 진우람. 그는 대원들과 함께 서울 근교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바닥에 새겨진 발자국들을 발견하곤 그것이 어디로 이어지는 지 확인한 진우람이 고개를 주억였다.
“나흘 전 이쪽으로 대규모 마수들이 이동을 시작했다. 발자국으로 보아 다수의 트롤과 소수의 오우거가 섞여 있는 듯하다. 동서 방향. 숫자는 500으로 추정.”
꿀꺽!
너 나 할 것 없이 모든 대원들이 긴장하고 말았다.
이곳에 도달한 각성자의 숫자는 고작 50이었다.
한데 중급 마수인 트롤과 상급 마수인 오우거 부대가 무려 500이라는 소리였다. 아무리 이곳에 모인 자들이 정예라곤 하지만 정면으로 붙었다간 상대가 안 된다. 학살당할 뿐이었다.
“들어가실 작정입니까?”
대원 중 하나가 슬그머니 물었다.
무모하다.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하여 움직인다면 저 발자국을 따라가는 건 너무나도 위험했다.
하지만 진우람은 그들의 바람을 애써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수백에 달하는 각성자가 먹이처럼 사육당하고 있다. 그중에는 각 길드의 주요 멤버들이 포함되어 있지. 그들을 모두 잃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마수들의 행동이 이상합니다. 매우 난폭해져 있는 상태입니다.”
맞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불과 며칠 사이에 마수들이 민감해져 있었다. 작은 것 하나에도 폭주하며 모든 걸 부숴 버린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어찌할 새도 없이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대원들이 모두 아는 걸 진우람이라고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진우람은 자신의 소신을 끝까지 관철하였다.
“10일 전, 드론으로 정찰한 결과 그들이 살아 있음을 확인했다. 생존자를 버리고 가겠다면…… 꺼져라, 내 앞에 다시 나타나거든 묵사발을 내 버리마.”
진우람이 이죽이자 침묵이 찾아들었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수백의 각성자가 살아 있음을 확인했지만 벌써 10일이 흘렀다.
10일!
사달이 벌어져도 진즉 벌어졌을 시간.
그사이 마수들은 폭주했고, 몇이나 살아 있는지 재확인은 되지 않았다. 솔직히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은 이들은 거의 없었다. 이미 모두 죽었으리라고, 은연중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진우람은 일말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 희망에 따라 수백의 각성자가 생존해 있다면 판도가 뒤집힐 수도 있긴 했다. 낮은 가능성. 거기에 거는 건 50명의 목숨이다.
“여기서부턴 공중형 마수가 다수 포진해 있으니 최대한 몸을 숙이고 이동한다.”
진우람이 가장 먼저 앞서 나갔다.
폐허가 된 서울…… 그 속에서 50명의 대원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표 장소가 머지않았다.
진우람과 대원들은 미리 준비한 트롤의 변을 몸 곳곳에 펴 발랐다.
역한 냄새가 코끝까지 스며들었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이런 행위 자체가 익숙한 듯 능숙하게 작업을 행했다.
이어 은신 스킬과 탐지 스킬을 가진 각성자가 짝을 이뤄 정찰을 나섰다.
“이곳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장소에 땅굴 하나가 파여 있을 것이다. 마수들의 눈길을 피해 그들의 생존 상황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진우람의 표정은 진중하기 그지없었다. 당장이라도 움직여서 생존자들을 구하고 싶지만 그래도 확인이 우선이었다. 무모하게 움직였다간 이도 저도 안 되는 수가 있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마저 전멸한다면…… 가뜩이나 좋지 않은 한국의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었다.
정찰조가 출발하고 대원들은 최대한 넓게 퍼졌다. 마수들의 움직임을 살피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끄륵.
끄으으으으.
트롤들이 침을 진창 흘려 대곤 실핏줄이 다 터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불안하기 짝이 없는 태도. 안정이 되지 않은 것처럼 흉흉한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간간이 섞여 있는 오우거도 흉흉한 살기를 감추지 못했다.
잘못 건드렸다간 저 마수들이 일제히 달려들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광경이었다.
‘트롤이 대략 500, 오우거가 셋.’
진우람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한국에 잔류 중인 마수의 숫자는 대략 3만으로 추정된다. 그중 500이라면 적은 숫자이지만 현재 한국에서 저 정도 숫자의 마수를 한꺼번에 제거할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었다.
과거 5대 길드라 칭해지던 곳들도 거의 몰락한 상태이지 않은가.
갑작스러운 급습에 따라 통신은 두절되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루하루를 영위해 나가고 있었다. 사실상 길드 전체가 무너졌다고 봐도 다를 게 없었다.
―생존자들 발견. 200명 정도가 살아 있습니다. 상태가 무척 나쁩니다.
얼마 안 있어서 무전기가 울렸다.
200명의 생존자!
진우람이 주먹을 꽉 쥐었다.
‘저들을 무사히 구출하는 데 성공한다면…….’
역전의 발판이 된다. 무너진 서울을 수복하고 마수들을 몰아낼 기초 말이다.
하지만 그 잠시의 기쁨은 방심이 되었다.
키에에에엑!
공중에서 몇 마리의 와이번이 이쪽을 발견하곤 크게 울부짖었다.
트롤의 변을 묻혔더라도 숨겨지는 건 체취뿐이었다. 육안으로 확인하면 그들은 어김없는 인간이었고, 마수의 표적이었다.
구루룩.
구룩?
트롤들이 고개를 돌렸다.
쿵! 쿠우웅!
오우거도 육중한 몸을 움직였다.
“젠장!”
진우람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와이번이 문제였다.
뒤쪽을 막고 방해를 해대는데, 그 탓에 벌써 셋이 죽었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이대로는 전멸을 면치 못한다.
이에 진우람과 대원들은 투쟁을 선택했다.
“미물들에게 인간의 힘을 보여 주자!”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마수 한 마리라도 더 데려가리라.
얕잡아 보일 순 없었다. 숫자가 적다고는 하나 이곳의 각성자들 모두는 나름 한가락 하는 실력자였다.
저 마수들에게 인간이 그저 먹이가 아님을 알려 줘야 한다.
인간이 가진 존엄성은, 결코 마수 따위에게 짓밟혀선 아니 되는 것이었다.
최소 절반은 데려간다는 생각으로 모두가 전투에 나섰다.
그리고 검을 휘두르며 진우람은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우리가 시간을 끌며 미끼가 되겠다. 생존자들을 탈출시켜!”
죽음을 전제한 싸움.
자신이 죽는 건 괜찮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소중한 이들은 이미 모두 죽었다. 더 이상 잃을 게 없으니 몸뚱이 하나 땅속에 묻힌다고 후회가 있을 리 없었다. 이곳에 모인 각성자들 대부분이 그랬다.
그러니…… 죽는 한이 있어도, 생존자들만큼은 구해 낸다.
그들은 희망이다. 대를 위해 소의 희생이었다.
촤아악!
살가죽을 찢고 검이 박힌다. 피가 낭자했다. 대원들은 필사적이었다.
―대장!
“꾸물거리지 마라!”
무전기를 타고 흘러오는 다급한 음성. 그러나 진우람은 그들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사방이 둘러싸였다. 대원들도 벌써 열이 넘게 숨을 거뒀다.
‘신이시여! 저희를 굽어살피소서. 저의 죽음은 마다하지 않겠으니, 부디! 부디!’
“크아아악!”
대원들의 비명 소리가 시시각각 커져만 갔다.
50에 달하던 대원의 숫자가 순식간에 절반으로 줄었다.
이대로는 시간 끌기조차 되지 않는다. 조금 더, 사기를 고취시키며 버텨야만 했다.
진우람은 트롤 하나를 베어 넘기고 소리쳤다.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는…… 강하다!”
10분만.
아니, 5분 만이라도!
버틸 수만 있다면 생존자들이 살아 나갈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 정찰조로 보낸 이들은 모두가 인정하는 실력자들이다. 몸을 숨기는 데도 도가 텄다.
구어어어어!
하지만…… 오우거들이 합세하며 그것도 어렵게 되었다.
콰득!
쿵!
마치 하루살이처럼 밟혀 나갔다. 인간에게 존엄성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허무하게.
끝인가?
정녕 여기까지란 말인가.
진우람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모두가 조금씩 희망을 놓을 그때였다.
촤아아악!
은빛의 전신 갑주를 입은 기사가 질풍처럼 달려오며 마수들 사이에 난입했다. 기다란 랜스를 사정없이 휘두르자 한 번에 수십의 트롤이 버티지 못하고 나뭇잎처럼 쓸려 나갔다.
화르륵! 검은색 불길이 날아들며 마수들을 태웠다.
진우람을 포함한 살아남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동시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검은색 불꽃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날개를 지닌 자!
해골 가면을 쓰고 흑색의 갑옷을 입었다.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인 존재감이 느껴지는 자였다.
그르르르…….
마수들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질풍처럼 달려온 은빛의 기사가 어김없이 처리하며 마수들을 빠르게 줄여 나갔다.
500의 마수를 전멸시키는 데 들어간 시간은 고작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 광경에 모든 이가 할 말을 잃었다.
상황을 종결시킨 후 로제가 입을 열었다.
“어때요? 로제의 실력이? 로이는 구경만 했어요.”
M3를 홀로 움직였다는 의미다. 나는 잠시 M3의 전투광경을 떠올리다가 짧게 답했다.
“쓸데없는 기교가 너무 많다.”
로제가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여왕님은 칭찬해 주셨는데…… 역시 마스터는 눈이 높으세요! 더 노력할게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자세는 훌륭했다. 전혀 어린아이답지가 않았는데, 모두 크리슬리의 영향인가 싶었다. 제대로 교육을 시킨 것이다.
모든 적을 사살한 M3가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 뒤에서 20에 달하는 각성자 무리가 멍하니 눈만 뜨고 있었다.
“대표가 누구지?”
“저…… 접니다.”
곰과 같이 우람하게 생긴 이가 앞서 나왔다.
나는 잠시 심안을 열었다.
이름: 진우람
직업: 투사(용사)
칭호 :
* 등을 맡길 만한(R, 힘+4)
* 경지에 이른 투사(U, 힘체력+3)
능력치 :
힘 62(+7) 지능 55
민첩 49 체력 57(+3) 마력 52
잠재력(275+10/368)
특이 사항: 없음
스킬: 투사의 의지(U), 감각 활성화(R), 약점 파악(Ex U)
이 정도면 인간으로선 훌륭한 수준이다. 다른 각성자의 수준도 이에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어색하게 서 있는 진우람을 향해서 말했다.
“멀지 않은 곳에 다른 각성자들이 있더군. 같은 공격대인가?”
“아……!”
그제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는 듯 진우람이 무전기를 꺼냈다.
“마수들을 모두 처리했다. 합류하라.”
―그게 무슨…… 정말입니까?
“외부의 조력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짧은 무전을 끝내고 김우람이 고개를 돌렸다.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미스릴 길드 소속의 김우람입니다.”
귀에 익다.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5대 길드?”
“맞습니다. 지금은 유명무실해졌습니다만……. 물론 이곳에 모인 모두가 미스릴 길드 소속인 건 아닙니다.”
나는 지금까지 몇 개의 지점을 공략했다. 가파람이 남긴 책에는 그 지점의 정보까지 상세하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존자는 전무했고, 살아 있는 각성자를 보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생존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움직인 건가? 그런 힘을 갖춘 곳이 남아 있을 줄은 몰랐군.”
“용인에 거점을 두고 모여 있습니다. 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누구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사냥꾼이다.”
“예?”
진우람과 대원들이 조금은 경각심을 가지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다크 엘프를 대동하며 ‘천명회 소속 데빌 헌터 공격대의 공격대장’이란 사실을 밝히기는 꺼려졌다. 전생과는 분명히 다르게 일이 진행되고 있었고, 판데모니엄이라면 인간을 이용할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았던 탓이다.
어쩌면 내가 데빌 헌터 공격대의 공격대장임을 이미 파악했을 수도 있었다. 전생이었다면 코웃음을 쳤겠으나 이미 금기를 깬 오쿨루스의 관례가 있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가 힘든 상황.
고정관념은 과감하게 부숴 버릴 필요가 있었다.
생각을 정리하곤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너희를 해칠 생각은 없으니 안심하라.”
“죄송합니다. 제대로 소속을 밝히지 않으면 쉽게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옆에 있는 두 다크 엘프의 정체도 심히 미심쩍은지라…… 구해 주신 건 감사합니다만, 부디 저희가 경계를 풀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진우람이 안절부절못하는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어지간히 속이 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로제는 대뜸 볼을 부풀렸다.
“여왕님의 말씀 그대로예요. 인간들은 정말 멍청해요. 마스터가 구해 줬는데 왜 저렇게 의심을 할까요? 죽이려면 벌써 다 죽였겠다.”
“가만히 있어라.”
“……네에.”
로제의 볼이 더욱 빵빵해졌다.
로이는 안절부절못하며 로제와 나만 번갈아 바라봤다.
둘 다 이히와 비견될 정도로 귀여운 모습이나 지금은 그것을 감상할 때가 아니었다.
“나는 남쪽으로 간다. 가는 도중 만나는 모든 마수를 없애 버릴 참이다. 따라오려면 따라오되, 그러지 않겠다면 갈 길을 가라.”
그 말을 남기며 몸을 돌렸다.
이에 로제가 인간들을 향해 입술을 내밀곤 바삐 내 뒤를 따랐다.
“……공격대장님.”
“제기랄.”
대원 하나가 입을 열었고, 진우람은 이마를 짚었다.
곧 생존자들 200이 추가되면 그들을 이끌고 용인으로 돌아가야 한다.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마수라도 마주칠 경우 여력이 거의 없으니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었다.
그러나 진우람은, 살아남은 각성자들은 또한 보았다.
500의 마수가 제대로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전멸한 모습을.
인간이라고 여기긴 어렵다. 다크 엘프를 끌고 다니는 인간이 있다는 소린,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정체불명의 남자를 따라가느냐, 온 힘을 다해 남쪽을 뚫어 보느냐.
잠시의 고민 끝에 진우람이 답을 내놨다.
“따라간다!”
기실, 그들에겐 선택지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