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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149화 (149/242)

던전 사냥꾼 149화

* * *

정확히 10일 차.

한국에 체류 중인 대부분의 마수를 몰살시켰다. 나를 따르는 인간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벌써 3만에 이르는 대규모 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뜬 업적 하나.

[최초로 3만이 넘는 인간의 ‘신앙’을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판독 영역 외의 업적입니다. 비슷한 업적과 보상을 찾습니다.]

[한 명당 0.001의 업적 점수를 얻습니다. 소수점 이하는 반올림 됩니다.]

[업적 점수 35점이 추가됐습니다.]

이런 것도 있었던가? 보상 자체는 있으나 마나였지만 추후의 가능성을 보자면 충분히 눈여겨볼 만한 시스템 창이었다.

3만이 아니라 수천만에 달하는 인간이 나를 신뢰하게 된다면 업적 점수로 몇만에 달하는 수치를 얻는 게 가능한 것이다.

지금처럼 늘어나는 추이를 보면 불가능할 것도 없었다.

물론 그 시간에 다른 작업을 하는 게 더 빠를 것 같긴 하였지만 부가적인 수입이라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주억여졌다.

뭐든지 얻어서 나쁠 건 없었다. 하물며 그것이 업적 점수와 관련된 것이라면.

“멈춰라!”

부산의 마수들을 초토화시키고 다시 위로 올라가려는 찰나였다. 장갑차와 총을 든 수많은 군인이 내 앞을 막아섰다.

헬기, 전투기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마족과 마수들이 가장 먼저 친 곳이 공군 기지와 보급소라고 들었으니……. 그래도 저만한 지상 병력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은 의외였다.

여태껏 내가 활개를 쳐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저의는 뻔히 읽혔다. 보나 마나 마수들이 제거된 걸 알고 슬금슬금 튀어나온 것이리라.

가장 선두에서 확성기로 소리치는 남자는 별 세 개가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우리는 서울을 수복할 계획이다! 협력해라!”

그 뒤로 몇 마디를 더 하긴 했지만 별 내용은 없었다. 강제성을 띤 ‘협력’만을 주구장창 외쳐 대고 있는 꼴이었다.

“사람들을 버리고 갈 때는 언제고……!”

“저 악랄한 새끼들! 마수가 사라지니까 튀어나와? 그 전까지는 나 몰라라 방관했으면서!”

“구세주께서 마수들을 제거하니 숟가락을 얹겠다는 거야, 뭐야!”

내 뒤를 따르는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격했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 보니 마수들의 공습이 본격화되자 사람들을 버리고 땅끝까지 후퇴를 한 것 같았다.

그곳이 진지를 구축하고 필요 없는 사람은 과감하게 버려 가며 지금까지 버텨 온 것이다. 생존자들의 입장에선 혈압이 뻗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군인이 버텨야 대한민국이 버틴다! 한정적인 자원, 보급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자급자족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서울을 수복하고 해로를 열면 이전과 같이 안락한 생활이 가능하다! 내부적으로 개발한 코어를 이용한 기술도 벌써 실용화 단계에 왔다! 각성자들은 협력해라! 함께 서울을 수복하자!”

무력시위와 다를 게 없었다. 군인과 무기를 앞세워서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끌고 가려는 셈이다. 하지만 이쪽의 숫자가 훨씬 많았고 각성자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하물며 그들이 ‘신앙적’으로 믿는 내가 있었다.

“퉤!”

“개소리!”

사람들은 침을 뱉고 불신했다.

“마스터, 왱왈왱왈 시끄러워요. 저 물건은 뭔가요?”

귀가 예민한 로제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확성기라는 거다.”

“저거, 없애 버려도 될까요?”

척. 대답 대신 나는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그 순간 잡음이 사라졌다. 불만을 토로하던 사람들도, 열변을 토하던 군인도 모두 침묵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분위기는 터지기 직전의 화약고와 같았다.

화아아아아!

나는 오만의 불꽃으로 거대한 구를 만들었다. 검은색 불꽃이 태양과 같이 둥그런 형태로 하늘에 떠올랐다. 장갑차보다 두 배는 커진 불꽃은, 계속해서 확장하다가 순식간에 압축되었다.

내 마력 수치는 110에 달한다. 모든 능력치 중 가장 높았고, 그로 말미암아 사용되는 스킬은 설령 등급이 낮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 이상의 파괴력을 선사할 수 있었다.

에픽 등급의 스킬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쿠아아아아앙!

손을 뻗자 압축된 구가 지척에 있던 산을 강타했다.

짧은 폭음.

족히 700미터는 되어 보이는 산이 부지불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현재의 인간에게 있어선 불가능한 영역. 그야말로 ‘권능’이라 칭해도 이상할 게 없는 능력이다.

“…….”

확성기를 통해 시끄럽게 외치던 군인은 그 광경을 보곤 침묵하고 말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지켜보는 모든 이가 마찬가지였다.

어찌 할 말이 있겠는가.

천외천. 하늘 바깥의 또 다른 하늘이었고, 마치 꿈속을 노니는 것만 같았다. 그런 것들을 보는 얼빠진 표정이었다.

이건 경고다. 더 시끄럽게 굴면 저와 같이 만들어 버리겠다는.

“신이다.”

“신이야…….”

구세주를 뛰어넘어 이제는 신이라는 칭호마저 얻었다. 그리고 그 중얼거림은 내 뒤의 사람들에게서만 들려오는 게 아니었다.

군인들, 그들도 마찬가지로 인간이었다. 마찬가지로 몰려 있었고, 나에 대한 것들을 사람을 통해, 기계를 통해 접했을 터였다.

객체마다 인간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큰 줄기는 같은 법이다. 나는 이미 신앙을 얻었고, 따르는 무리가 수만을 넘긴다. 그리고 재현 불가능한 이능 또한 보였으니 전의를 상실해도 할 말이 없다.

툭!

툭!

몇몇 군인이 총을 놓기 시작했다.

그러자 들불이 번지듯 차례차례 무기를 내려놨다.

장갑차 안에 있던 이들은 헤치를 열고 나와서 양손을 들었다. 적대적인 의사가 없다는 행동을 확실하게 취했다.

“이놈들! 뭐 하는 거냐!”

“하, 하지만 보셨지 않습니까? 인간은 신에게 거역할 수 없습니다.”

군인들도 강렬하게 동요하고 있었다.

구어어어어!

바로 그때 내가 날려 버린 산 근처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쿵! 쿵!

장신의 거인이 거대한 몽둥이를 들고 달려온다. 본래 두 개였어야 할 머리 중 하나가 날아갔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압도적이었다.

트윈 헤드 오우거!

지상에선 최강이라 칭해지는 마수 중 하나.

산 근처에 있다가 공격을 받고 상처를 입은 모습이다. 흉폭한 입김을 내뿜으며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적어도, 일반적인 인간은 절대로 상대할 수 없는 종이라 정평이 나 있었다. 트윈 헤드 오우거가 나타난 장소는 아비규환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파괴되기 마련이었다. 흉측한 몰골과 크기가 더해져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꼈다.

사아아아!

천의 날개가 더욱 팽창했다. 날개라고 이름 붙은 것처럼 마음먹기에 따라서 하늘을 날 수도 있었다. 땅을 박차고 수직으로 날아, 나는 트윈 헤드 오우거와 부딪혔다.

쿠르릉!

트윈 헤드 오우거는 둔하고 동작이 크지만 대신 힘이 굉장했다. 다른 건 몰라도 힘 하나는 100에 달하는 수치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105.

도리어 트윈 헤드 오우거보다 높다.

나는 놈이 휘두르는 몽둥이를 양손으로 받아 내며 그대로 밀어 나갔다.

이상을 느낀 트윈 헤드 오우거가 잠시 멈칫했다. 순수한 힘 싸움으로 자신이 밀리리라곤 상상조차 한 적이 없을 것이었다. 어떤 마수도, 마족도, 트윈 헤드 오우거와 힘을 겨루는 건 기피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놈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 냈다. 몽둥이를 잡고 놔주지 않았다.

쿵!

이윽고 트윈 헤드 오우거가 바닥에 몸을 눕혔다. 발버둥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이미 한쪽 머리를 잃은 탓에 균형을 잡지 못했다.

나는 황제의 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놈의 목에 검을 꽂고 좌악 그었다.

푸악!

튀긴 피가 몸을 적셨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내 트윈 헤드 오우거가 숨을 멈췄다.

“신…….”

“수호신!”

너 나 할 것 없이, 그 비슷한 단어를 입에 담았다.

수호신이라? 나와는 정말 안 어울리는 이름이다.

나는 한 차례 검을 털어 내고 몸을 돌렸다.

이어 군인들을 향해 걸어 나갔다.

꿀꺽!

군인들 모두가 긴장했다. 나는 멈추지 않으며 천천히 걸었고, 바로 지근거리까지 다가섰다.

말은 필요 없었다. 가장 앞에 선 군인의 눈을 바라보자 그가 옆으로 비켜섰다. 그것을 본 다른 군인들도 재빨리 다리를 움직여 길을 텄다.

그렇게 밀집해 있던 군인들이 갈라지며 길이 생겼다. 내가 그 중앙을 뚫으며 나가자 사람들이 따르기 시작했다.

* * *

날개의 마력을 전부 모았다. 마수들은 씨가 말랐고, 사람들의 숫자는 더욱 불어나 4만에 이르렀다.

‘때가 되었다.’

이제 소환문을 열 차례였다.

전생에서 나타난 삼족오. 놈이 소환된 장소를 떠올린다. 마찬가지로 그곳에 가서 천의 소환문을 열면 삼족오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천의 소환문은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 특정한 물건에 반응하여 마수를 소환하는 스킬이다. 적어도 장소는 맞춰 줄 필요가 있었다.

나는 국경선을 넘어 북한으로 향했다.

북한의 상황은 남한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았다. 이곳은 아예 사람 자체가 보이질 않았다. 막아서는 이가 없으니 진군은 훨씬 빨랐다.

이미 한 차례 쓸고 지나간 듯 마수들도 거의 없었다.

약 3일을 더 강행군한 결과 나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까지 맞닿은 산을 올려다보았다.

백두산.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백두산 천지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백만의 마력을 모두 채운 날개는 그 안개 속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긴장했다. 그들이 바라던 천국으로 향하는 길이 이곳에 있다고 생각하는 듯싶었다.

마족에게 천국을 바라다니, 망상이 따로 없다.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굳이 그곳의 문을 열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여는 건 어디까지나 소환문이다. 대공 판데모니엄에게 혼란을 주기 위한 작업에 불과했다. 그들의 바람이나 소망은 내 알 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원’이 있어야 했다.

천국으로 가고 싶다는, 행복해지고 싶다는 그 기원은 소환문을 열고 마수를 소환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줄 것이었다.

“천의 소환문.”

홀로 호수의 근처까지 다가가 스킬명을 입에 담았다.

바로 그 순간…….

위이이잉-

날개가 연기를 흩뿌리는 것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몸집을 키우며 조금씩 공중에 원 하나를 그렸다.

[스킬 ‘천의 소환문(Ex Epic)’이 사용되었습니다.]

[소환문이 성공적으로 열렸습니다!]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마치 혼이 빨려 들어가듯 인간들의 마력이 소환문으로 조금씩 끌려가고 있었다. 저 마력은 바로 저들의 기원이 만들어 낸 힘이다.

과연 전생에서처럼 삼족오가 소환될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이 정도 규모라면 필시 평범한 마수가 소환되진 않을 터.

쩌억! 쩌억!

원의 공간이 찢긴다.

그 뒤를 따라 기다란 몸이 통과했고 그 존재는 곧 지상에 착지했다.

족히 30미터는 되어 보이는 크기. 날씬한 몸과 네 개의 발, 기다란 얼굴과 털.

날카로운 눈이 내게로 향한다. 너는 누구냐는 듯 탐색하는 기색이 강하다.

삼족오는 아니었다. 전혀 다른 마수다.

나는 마수의 전신을 살폈다.

특이한 점이라면…….

소환된 마수는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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