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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152화 (152/242)

던전 사냥꾼 152화

내 기억이 확실하다면 앞으로 다가올 5년 차의 마계 옥션까지 3개월가량이 남았을 뿐이었다. 지저 세계의 일로 인해 4년 차를 건너뛰었기 때문에 보다 제대로 된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3년 차의 마계 옥션에서부터 본격적인 거래가 시작되었지.’

마고가 등장하며 한껏 분위기를 띄우지 않았던가.

4년 차에선 무엇이 나왔을지 모른다. 당장 본 것만 하더라도 티탄이 있었고, 그것이 전부이진 않을 것이다. 역전의 발판, 더욱 힘을 비축한 계기 등이 되었을 터.

전생과는 다르다. 진행 속도 자체가 배는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 속도는 전생의 기억이 없다고 한들 범상치 않다. 3, 4년 차의 마계 옥션을 겪은 마족들은 이번 5년 차에 승부를 걸 가능성이 높았다.

천사들이 나타났고 오쿨루스가 죽었다. 땅따먹기가 본격화되며 수면 위로 떠오르는 중이었다. 이쯤 해서 히든카드 하나쯤은 모두가 원하고 있을 진대…….

그것을 마계 옥션에서 찾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오쿨루스 휘하의 마족들. 놈들이 어찌 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일단 본체인 오쿨루스가 죽은 건 확실하다. 하지만 남은 분신과 같은 휘하 마족들이 어찌 되었을 지는 금시초문이다. 영향이 없지는 않겠지만 생존했을 가능성도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만약 살아 있다면…… 다른 파벌에 흡수되었을 경우의 수를 배제할 수는 없었다. 나는 모든 걸 염두에 두고 계획을 짜야만 했다.

‘여러모로 이번 5년 차가 승부를 걸 기준이 되겠지.’

급격한 변화. 던전 안에 처박혀 있다고 해서 모를 리가 없다. 이대로 지지부진하다간 당장 잡아먹힐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으리라.

당장 판데모니엄만 하더라도 각성자를 사육하여 죽였다. 포인트를 모아서 던전을 강화하고 마계 옥션에서 사용할 기색이 다분했다. 아리엘과 우파는 무슨 전략을 세웠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변수는 분명히 있다. 변수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절대적인 나만의 무언가가 필요한 법.’

사실 내 입장에서 보자면 주변 모든 것이 변수다. 지금은 잠시 몸을 낮춘 채 주변을 파악하고 나만의 무기를 만들 시기였다.

‘포인트만으로는 부족해.’

이미 포인트적 우위를 앞세워 내 존재감을 떨칠 시기는 지났다. 아직까지도 개인이 갖기엔 막대한 포인트를 보유하긴 했지만 이전처럼 한 파벌급의 영향력을 행사하긴 힘들다.

무엇이 필요할까.

그들 모두에게 나라는 존재를 다시금 각인시키고, 긴장하며 대비하게 만들기 위해선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주도하여 변화를 꾀한다.’

고개를 주억였다. 답 자체는 간단했다. 내가 원하는 판이 아니었고, 그렇다면 다시 한번 판을 뒤집으면 그만이다.

문제는 판을 뒤집을 방법이었다.

‘드보롱…….’

작게 혀를 찼다.

적어도 드보롱과 연락을 취할 수만 있다면 판을 뒤집는 일은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정령계에선 내가 죽은 줄 알 터였다. 한 번쯤 연락을 취해야 했다. 그들은 마계 옥션의 출입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령계로 가는 방법이 또 고민이다. 이곳에서 내가 드보롱에게 연락을 바로 취할 수단은 없었다. 직접 가서 결판을 지으려면…….

‘균열을 열어야겠군.’

균열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게 많다. 들어가도 원하는 곳에서 나오리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내게는 드보롱이 건넨 증표가 있었다. 작은 돌멩이에 지나지 않으나 충분하다. 이게 있는 이상, 균열을 열고 통신만 하면 그만이다. 굳이 직접 균열을 건널 필요는 없었다.

균열은 일종의 회선이다. 이 회선을 열어야 드보롱과 통신을 할 수 있다.

그때 불현듯 떠오르는 인영이 하나 있었다.

오스웬!

그는 말했다. 7대 죄악을 만든 뒤 균열 속에 버렸다고.

말인 즉, 스스로 원해서 균열을 열었다는 뜻이다.

그만이 거의 유일한 단서였다. 떠오른 즉시 발을 움직였다.

‘오스웬을 만나 봐야겠다.’

그가 해답을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

“균열, 말입니까?”

오스웬은 가파람의 연구실에서 자신의 손을 만들고 있었다. 본래 여섯 개였으나 네 개가 잘렸기에 그를 대신할 가짜 팔을 붙일 셈인 듯싶었다.

가파람과 드워킹도 근처에 보였지만 지금은 내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나는 오로지 오스웬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7대 죄악을 균열 속에 버렸다면 여는 방법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알고는 있습니다만…… 위험합니다. 그리고 저 혼자서는 불가능합니다.”

“필요한 게 뭐지?”

오스웬은 눈을 감았다. 이후 곰곰이 생각한 끝에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억지로 균열을 열면 알 수 없는 것들이 튀어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컨대 정령계의 존재들, 환수들…… 허무의 존재들까지 말입니다. 균열 속에 갇혀 있던 오래된 자아들. 그들은 매우 파괴적이고 비합리적입니다.”

“내가 그것들을 상대하지 못할 걸로 보이나?”

설령 초월 격의 존재가 나온대도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의지는 확고했다. 그것을 오스웬도 알았다. 결코 꺾이지 않을 것임을 깨닫고 오스웬이 고개를 들었다.

“좋습니다. 하지만 재료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 ‘장치’를 만들려면 가파람의 도움도 꼭 있어야 하고요.”

“필요한 걸 말해라. 모두 준비해 주마.”

“먼저 분노를 빌려주십시오. 장치의 틀을 만들어야 합니다.”

스윽.

거침없이 분노를 건넸다.

오스웬은 약간 의외라는 듯 나를 쳐다봤다.

“그냥 막 줘도 되는 겁니까?”

“애당초 네가 만든 물건이 아닌가.”

“저도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하여간, 이왕 분노를 빌려주셨으니 하나를 더 빌리지요. 그 천의 날개라는 아이템이 썩 훌륭하더군요. 막대한 마력을 저장하기에는 안성맞춤입니다.”

천의 날개는 탈부착이 가능했다. 마력의 공급을 중단하자 천의 날개가 등에서 떨어졌고, 그것을 또다시 건넸다.

“아! 파라노말의 반지! 그것도 주십시오. 균열의 불규칙성을 따지기엔 그만한 아이템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정말 필요한 건가?”

“황제 폐하, 제가 누구 앞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미심쩍었지만 이 분야에 있어서 제대로 된 지식을 아는 건 오스웬뿐이었다. 전생의 나였다면 의아해진 순간 단칼에 쳐 냈을 것이지만 모르는 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큰 ‘힘’이라는 걸 이제 와서 알았다.

그래야 휘하의 부하들이 더욱 능률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도 말이다.

“나머지 것들은 차차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틀을 잡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시간을 잡아먹는지라……. 그리고 장치는 1회용입니다. 반면 상상을 초월하는 재료들이 소모되지요. 정말 균열을 열 생각이십니까?”

확인차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다.”

“좋습니다. 그럼…… 가파람, 한동안은 내 조수가 되어 주겠소?”

옆에서 지켜보던 가파람이 살짝 불신의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정말 균열을 열 수 있는 거냐?”

“속고만 살았소? 보아하니 오랜 시간 산속에서 자기 위안을 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조금 더 시야를 넓히시오. 어떻게 나를 모를 수가 있소? 여기 드워킹이 내게 존경의 시선을 보내는 게 안 보이는지, 원.”

실제로 드워킹은 무한한 존경심을 담아 오스웬을 바라보고 있었다. 던전 마스터인 나보다 오스웬에게 더욱 시선을 돌리는 모습이다.

반대로 오스웬은 가파람이 자신을 못 알아봐서 조금 섭섭해하는 것 같았다. 서로가 분야는 다르지만 경지에 이른 장인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더욱 그러는 듯싶었다.

“지식이 있고 제법 손재주가 있는 것 같기는 하다만 내가 인정할 정도는 아니다.”

“쯧쯧, 두고 봅시다. 이번에 제대로 콧대를 눌러 주겠소.”

묘한 신경전이 오가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내가 말했다.

“완성되기까지 예상 시간이 어떻게 되지?”

“아무리 적게 잡아도 한 달은 있어야 합니다.”

“진행 상황을 이히에게 보고해라. 필요한 게 있다면 마찬가지로 이히에게 말하면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오스웬이 동의했다.

이로써 균열을 열 방법도 마련되었다.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그간 나도 따로 할 일이 있었다.

* * *

[놀라운 업적! 최초로 ‘리자드맨의 부락’ 열 곳이 탄생했습니다.]

[200,000PT가 주어집니다.]

[업적 점수 300점이 추가됩니다.]

[대단한 업적! 최초로 ‘천사’가 번식 가능한 숫자까지 늘어났습니다.]

[400,000PT가 주어집니다.]

[업적 점수 500점이 추가됩니다.]

[엄청난 업적! 최초로 ‘근원의 씨앗’을 채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근원의 나무에서 나온 씨앗은 근원의 나무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세계수’라 불리며 일반적인 ‘세계수의 씨앗’과는 다르게 특정 조건 없이도 발아할 수 있습니다.]

[1,000,000PT가 주어집니다.]

[업적 점수 1,000점이 추가됩니다.]

…….

포인트를 불리기 가장 좋은 방법은 수많은 업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계획’을 위해서는 특수한 업적을 달성하고 특수한 아이템을 얻어야만 했다.

근원의 씨앗, 근원의 정수, 천사의 눈물, 기타 업적 상점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몇 가지 아이템들이 그것이었다.

포인트도 불과 한 달 사이에 3천만까지 복구했다. 이는 던전을 회복하고, 가파람의 연구실을 짓고, 연구에 투자하며 균열을 열 장치에 들인 포인트를 합산한 결과다.

그리고…… 드디어 오스웬에게서 장치가 완성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분노와 판박이로군.”

“균열을 열 강력한 발신 장치로는 분노만 한 게 없었습니다.”

오스웬이 만든 장치는 얼핏 보면 분노와 다를 바가 없었다. 물론 거기서 흘러나오는 마력은 전혀 달랐지만 겉모습은 완전 판박이였다.

“균열을 오랜 시간 열어 두면 안 됩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분명히 강하시지만 그런 존재들이 통로를 통해 수없이 나타난다면 힘에 겨울 수도 있으니까요.”

“잠시면 된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균열을 열도록 하지요.”

분노의 겉모습을 재현한 것 외에도 이상하게 생긴 아이템이 몇 가지 더 있었다. 나침판, 회색빛으로 넘실거리는 천의 날개, 파라노말의 반지까지. 똑같이 생겼지만 전혀 다른 물건이었다. 모두 오스웬이 만든 것이다.

오스웬이 반지를 끼고 천의 날개를 쥐었다. 그리고 분노와 판박이로 생긴 검을 천의 날개에 그대로 꽂았다.

화아아아아악!

동시에 온갖 마력이 흘러넘쳤다. 불꽃이 튀거나, 주변이 얼거나, 때로는 거친 바람이 불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혼돈!

이어 빛이 쇄도하더니 그 반대편에 어두운 통로가 나타났다.

빛을 머금은 통로가 조금씩 일그러진다.

‘다른 통로를 통해서 균열로 우회하는 방법인가 보군.’

나도 잘은 모른다. 그저 그와 비슷하리란 것만 알아볼 수 있을 따름이었다.

이후 일그러진 통로가 사라지더니 그 자리를 균열이 대신했다.

“열렸습니다. 가짜 천의 날개가 가진 마력이 다하거나 반지를 빼면 균열은 사라집니다.”

나는 균열 안으로 대뜸 손을 넣었다. 손안에는 드보롱이 내게 주었던 돌멩이가 쥐어져 있었다.

이어 돌멩이에 마력을 흘리자 조금씩 진동하기 시작했다.

툭!

직감적으로 알았다. 연결이 됐다.

―이걸로 연락을 해 올 사람이 없을 텐데…… 누구십니까?

“드보롱, 나다.”

―나다, 라고 하면 모릅니다. 어떻게 이 통신 회선을 알고 있는 겁니까?

드보롱의 어조에서 강렬한 의구심이 느껴졌다.

“이 돌멩이로 통신하는 이가 나 외에 더 있나?”

없다. 드보롱이 여러 사람에게 같은 것을 줬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과연 그것을 알아챘는지 드보롱의 목소리가 떨렸다.

―설마……! 아니, 하지만 그럴 리가?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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