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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159화 (159/242)

던전 사냥꾼 159화

게다가 600만이란 포인트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제법 놀랐다. 위의 시스템 메시지로 인해서 대공들이 더욱 많은 포인트를 벌 거라고 추측이 가능해졌지만 그래도 대단한 수치임은 분명하였다.

평균 300만. 그중 아리엘이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까.

“800만!”

허나 아리엘은 달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천장의 소년과 소녀상은 웃지 않았다.

800만이라…… 어지간한 확신 없이는 지르지 못할 액수다.

‘지고한 불의 정수가 가진 값어치를 알아봤다는 말인가?’

사실 나조차도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불의 정령들과 모종의 접촉을 취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취할 생각이 없었다면 마음 편히 넘어갔을 아이템이었다.

이제는 진심으로 고민해 볼 수밖에 없었다.

더 지를 것인가, 여기서 멈출 것인가…….

불의 정령들도 700만 포인트가 얼마나 많은 수치인 지는 대강 알고 있을 것이다. 애당초 ‘격’이란 걸 무언가를 지불해서 산다는 게 말이 안 됐으니.

일단 성의는 보였다. 더 달리지 못한다고 해서 불의 정령들이 나를 욕한다면 그건 그야말로 웃기는 일이다.

정히 구하고자 한다면 자신의 격을 팔든가, 계약을 통해서 방법을 취할 것이다. 뻔히 알려진 방법이건만 가만히 있는 건 말이 안 된다. 자신들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거저먹겠다는 심보이지 않은가.

생각보다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럴 경우 정수를 구해 줘 봤자 ‘표면’으로만 동맹 관계에 놓일 가능성이 다분했다. 하여 불의 정령들이 가진 진심을 보고 싶었다.

나는 한 차례 어깨를 으쓱했다. 이후 지브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까지.’라는 행동.

물론 간만 보는 것이다. 아리엘 디아블로가 물건을 보는 안목은 상상 이상이다. 나도 뭔지 모를 끌림을 가지고 있었다. 지고한 불의 정수를 살 이유로는 충분했다.

지브스는 내가 전한 뜻을 알아차리곤 인상을 굳혔다.

이어서 간절한 눈빛을 보내왔다. ‘더 이상의 여력이 없느냐.’고 묻는 듯이.

쯧! 하고, 작게 혀를 찼다. 있기야 있지만 저기에 전부 쏟아부을 수는 없었다. 내 딴에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열심히 지어 보였다.

“대공 아리엘 님께서 800만 포인트를 부르셨습니다! 더 안 계십니까? 지고한 불의 정수는 불의 정령들이 모시는 아홉 가지 불 중 하나입니다. 불의 정령이 아니라 다른 손님들께서 입찰 경쟁이 붙은 건 의외입니다만…… 앞으로 다섯을 세겠습니다.”

드보롱이 불의 정령들을 비꼬며 경매를 진행했다.

자기네들 물건을 다른 이들이 구하고자 하는데도 계속해서 가만히 있을 거냐는 듯 은근히 무시하는 어조를 아래에 깔았다.

지브스의 표정이 더욱 찌푸려졌다. 드보롱의 계획을 나로 인해 알게 됐으니 여기서 분노한다면 어둠의 정령들이 짜 놓은 계획에 말려 들어갈 뿐이었다. 그것을 모르지는 않으나 저 말도 틀리진 않는지라 더욱 조바심이 생겼다.

‘어찌할 것이냐, 지브스?’

나는 그러면서도 짐짓 여유로운 자세를 취했다. 다리를 꼬고 턱을 올려세우며 지금까지 보여 준 게 전부가 아니라는 ‘여유’를 확실하게 어필했다.

지브스는 나와 드보롱을 번갈아 보며 갈등에 휩싸여 있었다. 그에게 선택지는 두 가지밖에 없었다.

격을 파는 것과 계약을 하는 것!

“다섯, 넷, 셋, 둘…….”

드보롱이 ‘하나’를 외치려는 순간 지브스가 나섰다.

“계약을 하겠다. 나 화염의 화수 지브스가 직접 말이다.”

드보롱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지브스 님의 계약이라면 그 이상의 값어치가 있지요. 하지만 800만 이상의 포인트를 보유한 이어야겠군요. 그조차 여유로이 쓸 수 있는 분이 아니라면 힘들 겁니다.”

드보롱이 은근슬쩍 아도니스를 바라봤다.

하기야 가장 여유가 있는 이를 꼽으라면 아도니스 외에는 더 없다. 어둠의 정령왕, 마계 옥션의 책임자. 4년간 쌓아 놓은 포인트가 상당할 터.

다른 대공들도 그만한 포인트를 보유하고 있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제아무리 지브스의 계약이라 한들 쉽게 내주진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지브스는 고개를 내저으며 나를 가리켰다.

“랜달프 브뤼시엘. 그를 내 계약의 상대로 삼겠다.”

“……확실히 그는 여태껏 진행된 경매에서 놀라운 모습을 자주 보여 주었지요. 하지만 계약이란 쌍방의 동의가 필요한 법입니다. 랜달프 브뤼시엘 님, 지브스와 계약을 하시겠습니까?”

800만 이상의 포인트 출자. 아무리 나라도 조금은 부담이 되는 건 당연하다. 본경매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그만한 포인트를 소모하는 일. 신중히 움직여야 했다.

허나, 나는 내심 미소를 지었다.

화염의 화수 지브스!

그와의 계약은 단순히 그 하나만의 계약으로 끝나지 않는다.

불의 정령들과 안면을 확실하게 터놓는 계기가 되리라. 더불어서 그로 인한 미개척 업적들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었다.

이는 결코 손해가 아니다.

“계약을 하지.”

[최상급 불의 정령, 화염의 화수 지브스와 계약을 진행합니다.]

[이 계약은 ‘지고한 불의 정수’를 ‘사용자’가 구매하였을 때 비로소 완전해집니다.]

[구매하는 데 소비된 포인트에 따라서 ‘화염의 화수 지브스’를 사용할 권리를 획득합니다.]

동시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요컨대 내가 사용한 포인트 액수만큼 지브스를 부려 먹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럼 몇 포인트를 부르시겠습니까?”

아리엘 디아블로가 800만을 불렀다. 이다음으로 부를 액수는 900만이 적당할 것이다.

“1,500만.”

“……1,500만이 확실합니까?”

드보롱이 경악하며 되물었다.

나는 고개를 주억였다.

1,500만 포인트!

거의 두 배로 껑충 뛰었다.

굳이 이렇게 부른 이유는 간단하다. 높은 가격을 부를수록 지브스와의 계약이 더욱 굳건해지는 탓이다.

내 계획은 판을 키우는 것이었다. 불의 정령을 확실하게 옭아맬 수만 있다면 1,500만 포인트는 기꺼이 출자할 수준의 액수였다.

지브스는 불의 정령 중 서열 4위다. 그가 움직이면 주변의 다른 정령들도 움직이게 되어 있다.

“대공 랜달프 님께서 1,500만 포인트를 부르셨습니다. 더 입찰할 분, 안 계십니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나저나 ‘대공 랜달프 님’이라…….

‘어감이 괜찮군.’

피식 웃고 말았다.

백작 나부랭이가 단번에 대공의 자리를 꿰찼으니 헷갈릴 법도 하건만 드보롱은 과연 능수능란한 진행자였다.

“욕심이 과한 거 아니냐, 랜달프 브뤼시엘?”

아리엘이 괜스레 비꼬았다.

나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서로의 욕심을 관찰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거니와, 솔직히 껄끄러운 면도 없잖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럴 땐 무시가 답이었다.

“축하합니다. 대공 랜달프 님께서 지고한 불의 정수를 낙찰하셨습니다!”

드보롱이 슬쩍 나를 바라봤다. 처음에는 의심이었으나 지금은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진 듯했다. 다른 정령들과 내가 모종의 거래를 했음을 말이다.

‘확증 없이 나를 몰아갈 순 없을 것이다.’

그러면 되었다. 어쨌거나 규칙을 위반한 것도 아니니 경매장에서 나를 내쫓을 순 없었다. 저들이 확증을 가지고 움직일 때쯤이면 전쟁이 본격화되었을 것이고, 그리된다면 내 포인트가 아까워서라도 나를 내칠 수 없다.

계륵!

그와 같은 존재가 되는 게 내 목적이었다.

지브스가 나를 바라보곤 짧게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 것이다.

‘나중에 가서도 고마워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나는 철저하게 본전 이상을 빼먹을 작정이었다. 1,500만을 단순히 물건을 사자고 투자했을 리가 없었다.

과연 부려 먹히면서도 고마움을 유지할지는, 두고 볼 일.

이윽고 드보롱이 살짝 긴장하며 입을 열었다.

“다음으로 판매될 물품은…… 근원의 정수입니다.”

‘그럼…….’

나는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드디어!

오매불망 기다리던 시간이 다가왔다.

이제 놈들이 가져간 포인트를 회수할 때였다.

* * *

“1,500만.”

“1,600만.”

“1,700만.”

“2,000만!”

“……근원의 정수가 아도니스 님께 낙찰되었습니다.”

드보롱이 근원의 정수에 대한 설명을 안 해도 마족들은 모두 관찰 계열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숨겨진 옵션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근원의 정수를 사고자 하는 마족들의 입질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무려 한계 돌파를 강제적으로 시켜 주는 아이템이다. 그 값어치를 모르는 이는 없었고, 천만 부근까지 대공들이 바짝 쫓아왔으나 그 뒤로는 나와 아도니스의 독주가 계속되었다.

대공들의 포인트가 많아 봤자 나나 아도니스의 그것을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도니스는 내가 의도적으로 바람잡이를 하는 걸 알면서도 입찰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2,000만이라는 압도적인 액수에 근원의 정수가 낙찰되었다.

[20,000,000PT가 지급됩니다.]

계약이 즉시 발효되듯 판매된 물건의 값도 바로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꽈드득!

경매장을 울리는 이빨 가는 소리.

그 근원지에 아도니스가 있었다.

마치 배신자라도 보는 양 나를 바라보는데…… 나로선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어차피 처음부터 그가 내게 접근한 의도도 불순했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할 목적이 다분했건만 이제 와서 배신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아니, 배신조차도 되지 못했다.

‘승자는 하나. 나머지는 모두 패자가 되는 게임이다. 누가 먼저 치고 나가느냐의 차이임을 아도니스, 너도 알지 않았는가?’

영원한 우군이 없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어중간하게 지내다가 뒤통수를 맞을 바엔 내가 먼저 치고 나가는 게 낫다.

계속해서 이어진 경매 중 ‘히아신스의 활’이라는 아이템이 나왔다.

“저것입니다. 저게 우리 물의 정령들이 잃어버린 신기입니다.”

케르피가 첨언했다.

또한 자처하여 계약에 나섰다.

지브스의 경우를 겪어서인지 쉽사리 구매할 수 없으리라 계산한 것이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최상급 물의 정령, 케르피와 계약을 진행합니다.]

[이 계약은 ‘히아신스의 활’을 ‘사용자’가 구매하였을 때 비로소 완전해집니다.]

[구매하는 데 소비된 포인트에 따라서 ‘물의 정령 케르피’를 사용할 권리를 획득합니다.]

전처럼 경매가 과열되진 않았다.

700만 선에서 마무리가 될 가능성이 다분했지만 나는 그를 비웃듯이 말했다.

“1,500만.”

어차피 포인트는 모두 회수가 되게 되어 있었다.

물의 정령이나 불의 정령은, 이것을 내가 보여 주는 ‘우호’의 크기라고 착각하는 듯했지만…….

착각은 자유다.

* * *

만백검(慢銆劍, Epic)은 내가 업적 상점에서 구매한 스킬북이었다. 게으르단 이름을 가진 검. 답답할 정도로 느릿하게 펼치는 검술이었다.

그럼에도 에픽 등급이다. 등급이 높다고 무조건 좋다는 보장은 없지만.

실제로 하이엔달의 검술보다 두 단계는 떨어지는 위력을 가졌지만 내가 만백검을 구매한 건 아리엘 디아블로가 익히지 못한 검술이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아리엘은 무기술에 관해 관심이 지대하다.

특히 자신이 모르는 것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무척이나 컸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3,500,000PT가 지급됩니다.]

이런 식으로…… 나는 다른 마족들, 특히 대공들이 바라는 아이템을 판매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다지 좋다고 할 만한 것은 거의 없으나 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물건들, 스킬, 마수 따위를 모두 판매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산 물건이 내게서 나왔음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알았다면 탐이 나도 사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덕분에 보유한 포인트가 5천만을 넘겼다.

5천만……!

본래 가지고 있었던 게 4천만이 조금 안 됐고 그중 3천만을 지고한 불의 정수, 히아신스의 활을 사는 데 썼다.

근원의 정수로 2천만을 벌었으며 나머지 아이템을 판매해서 2천만 포인트를 더 긁어모은 것이다. 거기에 대공으로 오르며 획득한 600만 포인트까지.

반대로 다른 마족들은 생각보다 많은 포인트를 이 개별 경매에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몇몇 마족에게로 포인트가 집중된 것 같군.’

나 혼자 번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상대가 안 될 것은 자명했다.

“개별 경매가 끝났습니다. 그럼 2시간 이후 본경매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기나긴 개별 경매의 시간이 마감을 고했다.

드보롱이 고개를 깊숙이 숙이자 동시에 경매장 내부를 밝히던 빛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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