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사냥꾼-161화 (161/242)

던전 사냥꾼 161화

“히드라?”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의 마수로군.”

그러나 나와 달리 마족들은 긴가민가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이가 많았다. 히드라란 이름이 생소한 탓인데, 나도 전생의 경험이 없었다면 확신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대 문헌에나 등장하는 신화 속의 생물.

본래는 봉인되어 있었다. 그것을 어둠의 정령들이 일깨웠다. 하지만 시기가 너무 이르다. 이제 고작 5년 차의 마족들이 다루기엔 난이도가 굉장히 높았다.

아니, 애당초…… 최상급 마수와 계약을 잇는 데 난색을 표하던 어둠의 정령들이 아닌가. 히드라라면 아홉 개의 각기 다른 계약을 행해야 했을진대 어떻게 가능했을 지 살짝 의구심이 들었다. 그 정도로 노하우가 쌓이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한 건가? 마고처럼?’

그랬을 수도 있다. 마고는 계약이 불안정하여 간혹 폭주하곤 했다. 내가 지칠 때까지 어울려 주지 않으면 주변 모든 것을 부숴 버리려고 들었다.

내 기억 속의 히드라가 정확하다면 그것을 다룰 수 있는 마족은 기껏해야 대공들뿐이었다. 능력이 부족한 이가 가지게 되거든 자멸할 뿐이다.

“아차차! 크기가 상당한 관계로 경매장 안에 들이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대신 수정구로 보여드리지요.”

드보롱이 깜빡한 듯 능청스럽게 연기하자 곧이어 거대한 수정구를 가지고 일꾼들이 나타났다.

수정구는 어떠한 영상을 송출하고 있었고, 그 안에 히드라로 추정되는 생물이 있었다.

하지만 히드라만 있지는 않았다.

아홉 개의 목을 가진 마수. 각기 다른 입에서 각기 다른 브레스가 쏟아졌다. 수천의 오크로 이루어진 부락이 히드라 한 마리에게 단숨에 뭉개지는 중이었다.

사정없이 짓밟으며 생명을 유린한다. 막을 수도 없었다.

콰오오오오!

아홉 갈래에서 쏟아지는 불, 물, 번개, 독 등의 숨결은 광범위하게 오크들을 몰살시켰다.

하물며 크기는 어떠한가.

산 하나가 통째로 움직이는 느낌이다. 저만한 크기의 마수는 좀처럼 없었다. 상급의 골렘들이 무색하게 보일 몸뚱어리였다.

마족들의 시선을 단번에 빼앗았다. 압도적인 광경에 모두가 침을 삼키는 것도 잊고 몰두하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드보롱이 작게 미소 지었다.

“‘붉은 깃털’ 오크 부족입니다. 마계의 외곽 중 한 곳을 담당하고 있으며 이곳의 오크들은 한 마리 한 마리가 중급 마수에 맞먹는다 전해지지요. 특히 붉은 깃털 부족의 족장인 오크 로드는 일반적인 로드보다 2레벨가량이 높습니다. 하지만…… 보시지요.”

수정구는 계속해서 다음 장면을 비췄다.

유린당하던 끝에 나타난 오크 로드!

주변의 오크보다 두 배는 큰 녀석이 대검을 휘두르며 지휘하기 시작했다.

브레스를 요리조리 피하거나 맞아도 크게 타격을 입지 않았다. 도리어…….

“오크 로드가 가진 검은 마검입니다. 마력을 흡수하는 ‘에세랄 블레이드’이지요. 사용자의 능력에 따라 옵션이 증폭되는데, 브레스를 되받아치는 것도 가능은 합니다. 이 검도 경매에 나올 예정이니 많은 관심 가져 주시기를.”

드보롱의 짧은 설명이 끝났다.

그렇다면 이미 싸움의 결판이 난 영상을 재생하여 보여 준다는 뜻.

에세랄 블레이드가 경매장이 있다는 건 히드라의 승리로 돌아갔음을 의미했다.

말마따나 브레스를 몇 번 되받아치고, 오크 로드가 히드라의 지척에 다다랐다. 하지만 히드라의 거대한 몸집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기였다. 발을 크게 구르자 땅이 뒤집혔고, 오크 로드는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멈추지 않고 뛰어올라 히드라의 목 하나를 베었다. 이에 잠시 의기양양해 하던 오크 로드가 다른 목에 의해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잘린 목은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어느덧 생성되어 다시금 브레스를 내뿜었다.

엽기적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욕심이 나는 장면이다.

‘히드라는 아홉 개의 목을 동시에 자르거나 태워야 죽는다.’

아니면 눈 깜빡할 사이에 재생하고 만다. 오크 로드는 대처법을 몰랐다. 그리고…… 대처법을 모르면 히드라는 결코 잡을 수 없다.

치익!

영상은 여기까지였다.

“어떠십니까? 욕심이 나지 않으십니까? 여태껏 판 최상급의 마수들도 그 품질은 보장합니다만 히드라 정도의 격을 소유하진 못했습니다.”

맞다. 적어도 파괴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다른 마수들은 히드라에 미치지 못했다. 단순히 크기만 따져도 비교가 안 되건만 아홉 개의 입에서 뿜어내는 각기 다른 종류의 브레스는 또 어떠한가.

욕심이 나지 않으면 마족이 아니다.

어지간한 최상급 마수 둘을 사는 것보다 차라리 저 하나를 사는 게 나았다.

이건 굳이 정보가 없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문제는…….’

여전히 계약에 관한 부분이 미덥지 못하다는 것.

히드라를 팔기로 한 이상, 구매한다면 진짜 보내 주긴 할 것이다.

허나 이후 계약이 제대로 되어 있어서 나를 따르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주인을 못 알아보고 공격한다면 히드라를 막을 수 있는 마족이 몇이나 되겠나.

드보롱이 신사마냥 한쪽 손을 배에 대고 고개를 숙였다.

“자신하며 소개해 드린 전설적인 마수! 시작가 500만 포인트 되겠습니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시작가 500만.

그러나 개별 경매로 인해 포인트를 쌓은 소수의 마족이라면 참여하지 못할 것도 없는 수치다.

나만이 포인트를 벌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에 하나의 경우이긴 하지만…… 개별 경매로 포인트를 모는 행위가 불가능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별 볼 일 없는 아이템이 비싼 가격에 팔려 나간 경우가 몇몇 있었다.

‘우파.’

나를 제외한 마족 중 가장 많은 포인트를 보유한 이는 우파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상할 정도로 가격을 높여서 구매한 마족들 대다수가 우파 휘하의 마족이었다.

‘내게 업적 상점이 없었다면 불리한 싸움이 되었겠지.’

기실 개별 경매에서 가장 불리한 고지에 서 있던 게 나다. 나는 혼자뿐이고 저들은 다수이므로. 어둠의 정령들이 이러한 경우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개별적으로 팔기엔 무거운 물건들이 많나 보군.’

예상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잔꾀에는 도가 튼 놈들이니.

그저 방관했을 따름이다. 히드라처럼 이번 경매에 굵직한 것들이 나오게 된다면 그것을 구매할 포인트가 낮게 책정될 우려가 있었다.

최상급 마수의 시세는 언제나 높아야만 한다. 이 시세를 조정하고자 한 차례 넘어간 듯싶었다.

그러나…… 시스템이 가만히 있었을지가 또 의문이다. 시스템은 언제나 중립적 위치이고, 평등을 구가한다. 이런 식으로 균형이 무너지는 걸 가만히 내버려 둘 리는 없었다.

‘제제가 가해지거나, 이미 감수 중이거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진실은 어둠의 정령, 그중 아도니스만이 확실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관심을 돌리고 주변 분위기를 살폈다.

쉽사리 나서는 이가 없었다. 참여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그 이상의 포인트가 있음을 인증하는 꼴이 된다. 지금 그만한 여유가 있다고 밝혀진 건 나와 아리엘 디아블로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도 개별 경매에서 상당한 포인트를 사용했기 때문에 포인트가 탕진되었으리라고 생각하는 마족이 없지 않을 터였다.

“500만.”

수십 초의 침묵.

모두가 고민하는 가운데……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대공 우파 님! 안목이 훌륭하시군요. 500만 포인트 나왔습니다.”

기어코 우파가 가장 먼저 선수를 쳤다. 현재 수위를 달리는 포인트를 보유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자. 이어서 나선 건 아리엘이었다.

“600만.”

“대공 아리엘 님! 아름다운 미모만큼이나 화끈하시군요!”

“700만.”

“오오, 우파 님! 개별 경매에서도 거의 참여를 안 하셨는데, 본경매에서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하십니다. 700만 포인트 나왔습니다!”

우파는 히드라를 구매하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경매는 이제 시작했고, 뒤에도 좋은 마수나 아이템이 나올 가능성이 무척 높다. 그러니 히드라를 구매한 마족은 뒷심이 심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우파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아마도 히드라에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리라 잠정적으로 판단한 것이겠지.

우파의 판단은 어느 정도 타당했다. 히드라와 비견되거나 그 이상의 물품이 이번 경매에 나오리라곤 생각하기 힘들다.

‘판데모니엄은?’

우파와 아리엘은 경쟁이 붙었다. 그렇다면 판데모니엄도 움직일 거리로는 충분하다. 하지만 왜인지 판데모니엄은 아예 눈을 감아 버리고 있었다.

히드라에 목매지 않고 후반부를 보겠다는 건가?

“800만.”

“아리엘 님, 이번에는 반드시 손에 넣겠다는 건가요? 멈추지 않습니다!”

“900만.”

“감히 메테오와 견줄 만한 파괴력입니다! 자금 보유력이 무시무시하군요. 대공 우파 님께서 900만 포인트로 달려 나가십니다!”

천만을 직전에 남겨 두고 있었다.

아리엘은 아예 대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무척이나 마음에 안 든다는 기색이 표정에 역력했다. 다른 이도 아닌 우파에게 뺏기게 생겼으니 더욱 열이 날 것이었다.

우파와 아리엘은 사이가 굉장히 좋지 못하다.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관계였다.

히드라를 구매하면 전력이 수직으로 상승한다. 그리고 그 전력으로 우파는 아리엘을 노릴 공산이 컸다. 아리엘도 그를 모르지 않았다.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드보롱이 재차 입을 열었다.

“900만. 더 안 계십니까? 히드라의 값어치를 생각하면 지금도 낮습니다.”

판데모니엄은 아예 참가할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포인트가 몰린다면 대공 위주로 몰릴 것이고, 판데모니엄이 기권한다면 히드라의 경매는 끝난 것과 같았다.

아주 만족스럽진 못하지만 드보롱이 고개를 주억이며 이어서 말했다.

“그럼 다섯을…….”

“천만.”

드보롱이 입을 열기 무섭게 나는 여유롭게 말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약간의 무게를 담아서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드보롱을 움찔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대공…… 랜달프 님! 천만 포인트가 나왔습니다!”

“흐흠.”

그러자 아리엘이 헛기침을 내뱉었다. 묘한 웃음이 지어진 게, 단번에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하기야 내가 참여하면 높은 확률로 해당 아이템은 내게 낙찰된다.

게다가 우파보단 내가 갖는 편이 아리엘로선 차라리 기쁠 것이었다.

우파는 눈살을 대번에 찌푸리며 나를 바라봤다.

3천만 이상의 포인트를 사용해 놓고도 다시금 경매에 참여한 내게 기가 질린 것 같았다.

“1,100만.”

“대공 우파 님! 끼어들지 말라는 걸까요? 치고 나갑니다!”

“1,200만.”

“그 끝이 보이질 않는군요.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을 보는 듯합니다. 대공 랜달프 님!”

우파가 슬쩍 천장의 소년, 소녀상에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소년, 소녀상은 웃지 않았다.

“쯧!”

크게 혀를 찼다. 우파의 표정이 구겨지자 반대로 아리엘의 미소는 짙어졌다.

‘그래도 상당히 긁어모았군.’

우파가 휘하 마족들의 포인트를 자신에게 몰아 버린 것이 분명해졌다.

달리려면 더 달릴 수도 있겠지만 우파는 잠시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작년은 쉬었지만 지난 3년간 쌓인 학습 효과로 나와 함께 달려서 좋을 게 그다지 없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자칫하다간 자신의 바닥을 다른 마족들에게 보여 줄 수도 있었다.

“더 안 계십니까? 1,200만 포인트 나왔습니다. 그럼…… 다섯을 세지요.”

드보롱이 못내 아쉬운 것처럼 말했지만 우파가 고민한 순간 정말로 끝났다. 나는 우파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달려 나가다가 갑자기 멈추면 우파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서 주변을 살핀다. 모든 게 확실해질 때까지.

그러나 경매의 특성상 그만한 시간을 줄 리 만무했다.

“셋, 둘, 하나! 축하합니다. 히드라가 대공 랜달프 님께 낙찰되었습니다!”

일단 큰 거 하나를 가져오는데 성공했다.

이후로도 쓸 만한 경매 물품이 다수 출현했다. 고작 2년 사이에 놀라우리 만큼 물품의 질이 좋아져서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아이템이나 마수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마족들이 무엇을 구매하는지 살피며 그들을 관찰하는 데 더욱 중점을 두었다.

마수를 많이 사는지, 아이템에 초점을 맞추는지, 아니면 특수한 아이템을 선호하는지…… 구매하는 물품에 따라서 그들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유추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다.

크리슬리도 귀를 쫑긋 세운 채 모든 마족의 일거수일투족을 읽었다.

그러는 사이 10개의 물품이 지나갔고, 마침내 11번째 경매가 시작되었다.

“다음 물품을 내놓기 전에 먼저 설명드리지요. 우리 어둠의 정령들은 지난 수십 년간 진마룡 아오진의 자취를 쫓고 있었습니다. 1년 차에 판매한 크라스라, 크리슬리도 그중 발견한 마수입니다. 그러던 중 올해 우연히도, 진마룡 아오진과 관련된 것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크리슬리의 눈이 커졌다.

진마룡 아오진!

마룡 중의 마룡. 크리슬리를 낳은 부모 중 하나다.

하지만 진마룡 아오진은 업적 상점에 있었다. 무려 5만 점의 점수를 들여야 소환할 수가 있었다. 한데 그와 관련된 무언가를 찾았다니, 나도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다른 마족들도 마찬가지다. 진마룡 아오진의 이름을 모르는 마족은 없었다.

그 시선을 받으며 이윽고 드보롱이 말했다.

“진마룡 아오진과 짝을 이뤘던 다크 엘프 하이어, 쉴라. 저주받은 그녀의 시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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