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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162화 (162/242)

던전 사냥꾼 162화

……뭐라고?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어둠의 정령들이 진마룡 아오진의 흔적을 좇고 있었던 것도 처음 알았지만 그와 관련이 있는 다크 엘프 하이어 쉴라의 시체를 구했을 줄이야. 적어도 전생에선 존재하지 않은 일이다.

다크 엘프 하이어. 최상급 3Lv의 격을 갖춘 마수이며 다크 엘프 무리를 이끄는 실질적 지도자다. 한 세기에 하나, 많게는 둘 정도뿐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중 ‘쉴라’는 크리슬리와 줄리엄의 마을을 이끌던 정신적 지주다.

크리슬리를 낳고 머지않아 죽었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을 뿐, 나도 자세한 사항을 알지는 못한다. 크리슬리도 쉴라에 대해선 거의 무지한 듯싶었다.

‘이상한 점은 있었지…….’

마계에 존재하는 세계수. 강한 다크 엘프만이 그 근처에서 살아갈 수 있다. 쉴라라면 넘칠 정도의 자격이 있건만 굳이 외지에서 크리슬리와 마을을 돌봤다.

하지만 크리슬리를 낳은 뒤 사라졌다. 줄리엄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모두 쉴라가 죽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체가 지금, 경매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하얀 머리칼, 초승달 문양의 자국이 이마에 아롱이 새겨져 있다. 아름다운 다크 엘프 여인이 무언가 절박한 표정으로 얼음 속에 갇혀 있었다.

더불어서 심상치 않은 마력의 향이 맡아졌다.

‘저게 저주로군.’

얼음 자체가 강력한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조차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묘한 힘! 그것이 쉴라의 전신을 봉인하고 있었다.

“이 저주는 결코 평범하지 않습니다. 진마룡 아오진과 전혀 상반되는 얼음의 힘이며 그 위력은 능히 아오진과 비견될 법합니다. 이런 저주를 걸 수 있는 자가 누구일지 조사해 봤습니다만, 아직까진 건진 것이 없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요. 알려지지 않은 초강자라니!”

드보롱은 흥분한 상태였다.

진마룡 아오진은 마룡 중의 마룡이다. 허나 같은 마룡과 격 자체가 달랐다. 초월의 경지는 진즉에 뛰어넘었을 것이라 추정되는 마수. 한데 그와 비슷한 힘을 지닌 다른 마수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것이다.

다크 엘프 하이어 쉴라는 그 마수에게 당했으리라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그만한 힘을 지녔다면 알려지지 않은 게 이상하긴 하군.’

나는 턱을 쓸었다.

만약 사실이라면 마계의 대공들도 쉽사리 대할 수 없다.

실제로 아오진은 마계에서 ‘넘을 수 없는 벽’, ‘번외’ 취급을 받으며 아예 건드리질 않았다. 대공이 휘하의 모든 병력을 이끌고 토벌하고자 한다면 불가능하진 않겠으나 그 과정에서의 피해가 상상을 초월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그래서 아오진은 아예 언급 대상이 되질 않았다. 아오진도 딱히 불화를 일으키는 사태는 벌이지 않은 탓에 서로 불가침의 영역 속에 있었다.

그럴진대…… 비슷한 힘을 지닌 마수라.

그것도 여태껏 알려지지 않은 녀석이었다.

“다크 엘프 하이어 쉴라는 그 대상과 맞서 싸우던 도중 이러한 저주를 얻고 죽은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시체를 어디다가 쓰냐고요? 여러분, 다크 엘프 하이어입니다. 보통은 세계수 근처에서 죽은 뒤 세계수에 귀속되어 버리는 탓에 다크 엘프 하이어의 시체를 구경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런데…… 지금 여러분의 눈앞에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다크 엘프 하이어를 언데드로 만든다면 그 얼마나 황홀한 힘을 소유했겠습니까? 이 저주의 힘으로 더욱 강력한 언데드가 완성될 겁니다.”

맞는 말이었다.

저 저주가 가진 힘은 심상치가 않다. 본래 언데드는 음의 속성을 지녔고, 강한 저주를 받을수록 더욱 강한 언데드가 탄생되었다. 다크 엘프 하이어가 가진 자체적인 가능성도 무궁무진했으니 언데드로 만들 경우 결과가 기대되었다.

보통 다크 엘프 하이어는 세계수 근처에서 사는 경우가 절대다수였고, 죽어도 세계수의 양분이 되어 버린다. 시체를 구하는 건 그냥 불가능하다.

어쩌면 언데드 중에서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본 드래곤을 넘어선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었다. 제작자의 실력에 따라선 굉장한 마수 하나가 새로이 창조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시선을 돌려 크리슬리를 바라봤다.

‘정말 쉴라가 맞느냐.’는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복잡한 표정으로 크리슬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구매해야겠군.’

단순히 크리슬리의 친모이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저 저주가 가진 힘 자체가 궁금했다. 다크 엘프 하이어 쉴라나 그녀를 언데드로 만드는 것보다도, 아오진과 대등한 힘을 소유한 그 어떤 ‘존재’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누굴까. 마계에 있으면서도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초강자.

어쩌면 내가 나아갈 지표 중 하나가 되어 줄지 모른다. 그만큼 저주는 강력했다.

“호오…….”

이윽고 누군가가 감탄을 터트렸다.

판데모니엄.

마도에 정통한 그는 언데드의 제조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구할 수 없는 최상급의 재료가 눈앞에 있으니 탐이 날 법도 하였다.

우파 쪽도 제법 눈길을 들이고 있었다.

‘더 확실하게 확인을 해 봐야겠어.’

심안을 열었다. 평소보다 활짝 개안하여 쉴라의 모든 것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이름: 쉴라

특이 사항: 죽었습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저주’에 걸린 상태입니다.

* 심장 내부에 알 수 없는 ‘힘’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칭호도, 능력치 창도 보이지 않았다. 죽었기 때문이다. 언데드로 부활한 것도 아니니 그러한 상태창은 하등 쓸모가 없긴 했다.

하지만 숨겨진 옵션에선 조금 건진 게 있었다. 심장 내부의 알 수 없는 힘. 그저 육안으로 보기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초월의 경지에 이른 내가 파악하지 못한 것이니 어둠의 정령들도 모를 가능성이 농후했다.

하여간 저 심장 내부의 힘이 유일한 단서였다. 저 힘이 무엇이고, 비밀을 풀어내면 무슨 변화가 생길지는, 직접 확인을 해 봐야 안다.

“시작가는 500만 포인트입니다.”

드보롱이 씽긋 웃으며 말했다. 히드라와 같은 시작가. 부담이 되는 수치지만 다크 엘프 하이어 쉴라가 가진 값어치를 생각하면 수긍이 갔다.

“500만.”

“대공 판데모니엄 님! 역시 바로 진가를 알아보시는군요.”

“600만.”

“대공 우파 님! 이번에야말로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아리엘은 참가하지 않았다. 시체를 구매해서 언데드로 만드는 취향은 그녀에게 없었다. 차라리 시체가 아니라 다크 엘프 하이어 자체였다면 주저 없이 나섰겠지만 이번 경매 물품에는 참여할 의사가 전혀 없는 듯 보였다.

우파와 판데모니엄이 서로를 바라보며 으르렁거렸다.

둘 다 언데드와 관련해선 일가견이 있었다. 구할 수 없는 지고의 재료를 두고 경쟁이 붙은 건 당연지사였다.

“700만.”

“드디어 포인트 보따리를 푸시는군요! 판데모니엄 님께서 700만 포인트를 부르셨습니다!”

판데모니엄도 알고 있을 것이다. 우파가 천만가량의, 어쩌면 그 이상의 포인트를 보유하고 있음을 말이다.

히드라를 입찰하며 드러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싸움을 걸었다는 건 그만한 자신이 있다는 것.

대공끼리 중요한 아이템을 놓고 다툴 때 승자는 의기양양하지만 패자는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다. 포인트도 하나의 ‘힘’이고, 그 힘이 부족해서 진 것이니 두말할 여지가 없었다.

여태껏 우파와 그의 휘하 마족들은 강력한 마수 위주로 경매에 참여했다. 전력을 상승시키려는 의지가 절절하다는 방증이고, 거기에 목을 매고 있었다. 쉴라의 시체라면 가진 바 여력을 거의 투입할 게 진배없다.

판데모니엄이라고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지려고 싸움을 건 것은 아닐 테고, 실제로 얼굴엔 자신감이 그득했다.

“800만.”

“900만.”

우파가 800만을 부르자 판데모니엄은 드보롱이 말할 겨를도 주지 않고 그 이상의 입찰가를 띄웠다.

우파의 인상이 사납게 찌푸려졌다.

“접전입니다! 제 살이 다 떨리는군요. 하지만 다크 엘프 하이어의 시체가 가진 값어치, 그 특수성, 유니크성을 따지자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진행자의 입장에서 좋은 물건이 좋은 취급을 받으면 저도 기분이 덩달아서 좋아집니다. 대공 우파 님께서 900만 포인트를 부르셨습니다. 더 입찰할 분 안 계십니까?”

분위기를 누그러트리고자 드보롱이 제법 길게 말을 했다.

여기서 한 번쯤 잠시 멈춰 설 필요가 있었다. 과연 쉴라의 시체가 히드라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지. 사실 언데드는 제작자의 실력도 매우 중요했다. 그저 재료만 뛰어나다고 괜찮은 작품이 나오진 않았다.

그리고 언데드 제작에 관련해선 우파보다 판데모니엄이 한 수 앞서는 게 사실이다. 우파가 제작을 한 대도 과연 최상급 3Lv 이상의 마수가 탄생할지는 미지수였다.

판데모니엄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승자의 표정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겼다고 확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냥 방심하고 있을 그때…….

나는 작게 입을 열었다.

“1,000만.”

이런 싸움에서 내가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1,200만에 쉴라의 시체를 구매하였다. 문제는 크리슬리가 과연 쉴라를 언데드로서 소생시킬 의지가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내 휘하의 마수 중 그나마 언데드 제조에 정통한 것이 크리슬리였다.

던전 마스터인 내가 지시하면 행하긴 할 것이다. 그러나 진심을 담아서 작업을 할지는 미지수였다. 자신을 낳아 준 친모. 비록 기억에 거의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서 더욱 미화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소생이라고 하긴 했지만 언데드로 만든다는 건 명령에 따르는 인형으로 둔갑시킨다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시체가 손상된 정도에 따라서 기억의 누락이 심할 수도 있고, 아예 이지를 상실할 여지도 다분했다. 아니면 아예 다른 인격이 나타나서 자신이 쉴라인 것조차 기억 못할 경우의 수도 없다고는 못한다.

‘그래도 해야 한다.’

크리슬리의 표정은 어두웠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애써 참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영리한 여자이니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도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다음으로 소개해 드릴 물건, 저 드보롱이 자신 있게 선보입니다. ‘프라가모의 피리’입니다!”

다시 시선을 돌렸다. 어쨌든 모든 아이템은 경매가 끝나야 직접적인 내 소유가 된다. 아직은 경매에 집중할 때였다.

‘정복자의 반지’, ‘인형술사의 마음가짐’, ‘가즈넉의 메아리’, ‘에세랄 블레이드’, 이 네 개를 나는 순차적으로 구매했다. 본경매는 벌써 중반이었고, 그중 여섯 개를 손에 넣은 것이다.

남은 포인트는 2,500만가량.

다른 이보다는 여유가 있었다.

경매 자체에서 사용된 포인트가 1억을 넘겼으니 다른 마족들도 포인트 대부분을 소모한 상황이었다.

‘이게 끝일 리는 없다.’

나는 계속해서 경매를 주시했다. 지금 구한 여섯 개를 끝으로 구매할 게 없다면 그것도 나쁠 것은 없었다. 남은 포인트는 던전에 투자하면 되고, 내년의 마계 옥션에서 사용할 예정으로 남겨 두어도 되었다.

그러나 일말의 기대는 가지고 있었다.

개별 경매로 포인트를 몰아 버린 어둠의 정령들이다. 경매 물품 중에서 큼지막한 것이 많아서, 시세 유지를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고 나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고작 히드라, 쉴라의 시체에서 끝날 리가 없었다.

준비한 무언가가 더 있으리라고 나는 확신했다.

하여, 경매의 진행을 한 장면도 빠짐없이 유심히 지켜봤다. 그리고 정확히 54번째 경매 물품에서 내 기대를 충족시킬 경매 물품이 등장했다.

“주목하십시오. 다음 물품은 손님 여러분 모두가 깜짝 놀라실 것이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바로…… 천사의 알입니다. 그것도 평범한 알이 아닌, 적어도 대천사급의 천사로 내정된 알입니다. 어쩌면 그 이상의……. 설명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이제 직접 보고 판단하시지요.”

드보롱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등장한 천사의 알!

내가 아는 형태와 비슷했으나 더욱 진한 신성력을 머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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