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사냥꾼-163화 (163/242)

던전 사냥꾼 163화

‘별것이 다 나오는군.’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하다못해 이제는 천사라니. 막 나가는 정도가 수위를 벗어났다. 저 알이 어디서 나온 건지는 몰라도 훔쳤다면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업적 상점에서 일반 천사의 알을 구매하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저 천사의 알은 보다 특이했고, 한눈에 봐도 뛰어난 신성력을 머금고 있었다. 그저 바라만 봤을 뿐인데 피부가 저릿하니 말이다.

전생의 마계 옥션에선 천사의 알은 나온 적이 없다. 당시 어둠의 정령들은 차근차근 안정적으로 힘을 키워 갈 때였고,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데 천사의 알까지 나왔다는 건 그만큼 급하다는 방증이었다.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도전 욕구가 생기지 않습니까? 본래 천사의 알은 천계의 깊숙한 장소에서 관리합니다. 천계에서도 금지로 지정되며 선택받은 몇몇 천사만이 오갈 수 있는 그 장소! 천사의 알을 처음 보는 손님들이 더욱 많을 것으로 사료됩니다만…….”

천사와 마족은 기본적으로 상극의 관계다. 알은 따로 본 적이 없었다. 죽고 죽이기만 무한정 반복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천족의 알이 나왔다. 그것도 무척이나 짙은 신성력의 향이 맡아지는 알이다. 만약 대천사급 이상의 천사를 휘하로 들여서 사육할 수 있다면…… 그러한 상상을 한 번도 안 해 본 마족들은 없을 것이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일.

하물며 마족과는 천적이니 적들을 제거하기엔 안성맞춤이다.

구매 욕구를 마구 자극했고, 드보롱이 쐐기를 박았다.

“아주 특별한 물건이지만 시작가는 낮게 잡아 보겠습니다. 모든 손님분들께서 참여하기를 바라며…… 시작가, 10만 포인트입니다.”

욕망을 둘러싼 달리기가 시작됐다.

천사의 알이 나오고 다른 구매욕을 자극하는 아이템이 연달아 출현하며 경매장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초반에 질 좋은 물품들이 고가에 팔려 나갔다면 후반부는 적당히 신비하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들이 주를 이뤘다.

천사의 알을 포함해서 내가 가져간 아이템은 10개에 달했다. 개별 경매에서 구한 지고한 불의 정수, 히아신스의 활, 기타 자잘한 물품을 합치면 15개였다.

그렇게…… 경매가 끝났다.

“크리슬리, 돌아가자.”

경매가 끝났으니 더는 이곳에 볼일이 없었다. 어서 돌아가서 구매한 물품을 정리하고 차후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의외의 수확이 많았던 만큼 내 전력은 상승되었다.

‘별 기대는 안 했거늘.’

나는 이미 초월자의 영역에 들어섰다. 마계 옥션에서 무언가를 구해 봤자 전체적인 전력을 상승시키진 못하리라고 잠정적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외부 정령들이 출현하며 어둠의 정령들이 크게 힘을 썼다.

뒤를 안 보고 급전을 마련하는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덕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크게 늘었다.

“예.”

크리슬리가 조신하게 답하곤 뒤에 따라붙었다.

막 경매장을 빠져나가자 아리엘 디아블로가 그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무슨 용무지?”

작게 물었다.

아리엘은 한쪽 입가를 올리며 여유로이 답했다.

“랜달프 브뤼시엘. 나는 움직일 것이노라.”

움직인다? 여태까진 잠잠히 있었다는 의미인가?

그것을 어째서 내게 선포하는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었지만 아리엘은 마지막 한마디를 더 남기고 몸을 틀었다.

“마지막까지 나를 즐겁게 해다오, 초월의 영역에 들어선 자여.”

그것이 전부였으나, 결정적이었다.

‘역시…….’

눈치채고 있었나.

맞수. 강자를 알아보는 눈 하나는 아리엘 디아블로가 최고인 듯싶었다. 초월자의 기량을 뽐낸 적도 없고 드러낸 일도 없건만 아리엘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 것이다.

움직인다고 말한 것은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다. 게다가 현재 세력으로서의 힘은 아리엘이 독보적일 터였다. 그녀가 움직인다면 전쟁의 판도가 무슨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었다.

우파의 전력을 깎고, 오쿨루스를 죽이며 쳐들어온 판데모니엄 휘하 마족들을 없앴지만 아리엘은 건드리지 않았다. 비록 판데모니엄이 오쿨루스의 잔존 세력을 흡수했다지만 온전히 힘을 비축한 아리엘에 비할 바는 못 됐다.

‘나도 제대로 준비를 해야겠군.’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이야기다.

아리엘이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그에 따른 대처 또한 마련을 해야 함이었다.

결국 승자는 하나다. 주변 모두가 적이다. 이 규칙은 절대적이었다.

나도 안심은 못한다.

비록 초월자의 영역에 들어가서 개인으론 최강이 되었다지만…….

‘전쟁은 나 홀로 치르는 것이 아니지.’

희미하게나마 앞으로 나아갈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의 던전 마스터시여. 바로 돌아가시겠습니까?”

“할 일이 남았나?”

크리슬리가 고개를 저었다.

“경매의 진행자가 따로 만남을 갖고 싶어 하는 눈치이기에…….”

“드보롱 말이로군. 신경 쓸 것 없다.”

경매가 끝나고 은근슬쩍 내게 눈치를 준 일이 있었다. 뒤에서 따로 만나고 싶어 하는 모양이었는데, 그다지 좋은 내용이 오가진 않을 것이었다. 이럴 땐 그냥 무시하는 게 상책이다.

사라진 기간의 일, 물과 불의 정령들과 얽힌 일 따위를 물어 올 게 뻔했다.

내가 무시하고 걸어 나가자 크리슬리가 조용히 뒤를 따랐다.

* * *

균열을 넘어 던전으로 돌아왔다.

익숙한 최상층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고급스러운 책상과 의자가 바로 앞에 구비되어 있었고, 그 위에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꿀물과 잘 빚어진 쿠키 등이 놓여 있었다.

“마스터, 돌아오셨어요.”

웬일로 이히가 정숙한 모습으로 나를 반겼다.

메이드 옷 같은 것을 입고 있었고, 그 모습이 굉장히 어울리지 않았다.

“힘드시죠? 앉아서 속을 삭히세요. 이히가 꿀물과 과자를 준비해 봤어요.”

“별일이 다 있군.”

저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내가 아는 이히가 맞나 싶을 정도의 준비성이었다.

이히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히는 더 이상 과거의 이히가 아니여요. 앞으로 이히는 마스터의 충실한 요정으로서 본분을 다하겠사와요.”

저 다짐이 얼마나 갈 지는 모르겠지만 나쁜 현상은 아니었다. 열심히 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자리에 앉아서 꿀물을 음미했다. 크리슬리도 자연스럽게 반대편에 앉았다.

“마스터, 이번엔 무엇을 구입하셨나요? 이히가 볼 땐 말이에요. 킹 비 같은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애요.”

그러고 보니 한참 이히가 끌고 다니던 킹 비가 보이질 않았다.

‘다 죽었군.’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공격을 받아서 죽은 모양이었다.

전혀 생각을 못했다. 킹 비 같은 게 나오지도 않았고.

이히는 열심히 내 주위를 날아다니며 쿠키와 꿀물을 공수했다. 직접 입에 먹여 주는 등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일말의 기대감이 서린 얼굴로 말이다.

보아하니 내가 킹 비를 샀다고 철석같이 믿는 듯싶었다.

지이이이이-!

잠시 후 주변 공간이 일렁거리며 균열이 생겼다.

경매 물품이 이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히히. 무엇이 무엇이 나올까요.”

이히는 균열 옆으로 쪼르르 날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경매가 끝날 때마다 이히는 이런 식의 행동을 취하곤 했다. 이것도 오랜만에 보니 정이 가는 장면이었다.

나는 뒷짐을 진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리슬리는 혹시 몰라 경계하는 기색으로 나를 보호하듯 주변에 섰다.

이윽고 나타난 첫 번째 타자는, 경매의 순서와 같았다.

“……어버버버.”

산과 같이 거대한 마수.

히드라!

층의 천장까지 닿는 위용을 뽐내며 가장 먼저 균열을 뚫고 나왔다.

그것을 본 이히가 기겁하며 물러났다. 사레라도 걸린 듯 몸을 떨어 댔다.

18개의 눈이 이히를 바라봤다.

“이, 이히는 맛없어요…….”

슬금슬금 자리에서 물러난 이히가 재빨리 내 뒤로 이동했다. 빼꼼히 내 어깨 위에 얼굴을 내밀었다.

크르릉.

크아아아아!

아홉 개의 목이 날뛴다.

상태가 정상적이진 않았으나 공격을 하진 않았다. 완벽하진 않지만 계약이 발동되고 있었다.

“내가 너의 주인이다.”

가볍게 다가가서 놈의 배 위에 손을 올렸다.

동시에 모든 힘을 개방하며 ‘주인’임을 보다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화르르륵!

마력이 개방되자 오만의 불꽃이 타올랐다. 히드라에게 큰 영향을 끼치진 않았지만 심기를 거슬렀는지 발을 크게 들었다.

하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놈의 모든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번 밟아 볼 테면 밟아 보라는 행동을 취했다.

“마, 마스터……!”

“던전 마스터시여!”

이히와 크리슬리가 다가왔지만 나는 한쪽 손을 들어 제지했다.

히드라와 나의 기세 싸움이다. 제3자의 개입은 서로에게 좋지 못하다.

머지않아 육중한 발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를 밟아 버릴 듯 내려왔다.

나는 꿈쩍도 안 한 채 그저 놈의 눈만을 바라봤다.

아무리 나라도 대비 없이 밟힌다면 타격이 없을 수 없다.

긴박한 상황.

참다못한 크리슬리가 지팡이를 꺼내어 움직이려는 찰나, 히드라의 발이 멈췄다.

크르르르…….

거친 콧김을 내뿜으며 히드라가 한 발 물러섰다. 놈도 당황스러운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한 번의 행동으로 모든 게 결정 났다.

“너는 나의 적을 죽일 거대한 검이 될 것이다.”

작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히드라가 대단한 마수라고 한들 나는 주인이고, 놈은 내 휘하의 마수일 뿐이었다.

다음으로 내가 한 것은 던전 마스터의 계승을 하는 일이었다.

대공이 됨으로써 내겐 그러한 권한이 생겼고, 즉시 실행하고자 마음먹은 것이다.

그동안 다른 던전은 너무 효율 없이 배치되어 있었다. 몸이 하나인 탓에 실시간으로 던전의 상황을 살피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던전 마스터로 임명이 된다면 그에 합당한 권한이 생긴다.

아무래도 요정 혼자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빨리 처리할수록 좋을 것이었다.

“크리슬리, 이것을 받아라.”

“이건…… 경매에서 구매하신 아이템이 아닙니까?”

인형술사의 마음가짐. 언데드를 만들고 조종하는 크리슬리에게 적합한 스킬북이었다.

“앞으로 중국의 던전을 너에게 맡기겠다. 이 아이템은 그에 대한 선물이다. 이제 던전 마스터로서의 직분을 다하도록.”

“제가…… 던전 마스터를 말입니까?”

믿기지 않는 듯 크리슬리가 눈을 크게 떴다.

“너에겐 충분한 자격이 있다.”

던전 마스터로 임명을 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내가 인정하고, 그 증표로 무언가를 건네면 되었다.

크리슬리가 인형술사의 마음가짐을 받은 순간 효력은 발동했다.

[다크 엘프 ‘크리슬리’가 ‘던전 마스터’로 임명되었습니다.]

[충성도가 매우 높습니다. 상태- 맹목, 헌신.]

[그녀는 앞으로 대공 ‘랜달프 브뤼시엘’의 휘하로서 가장 선두에서 적을 멸할 것입니다.]

내 휘하가 되었으니 그에 따른 상태도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던전은 중국 하나뿐이 아니었다.

일본에도 있었고, 그 상대로 나는 미리 점찍은 이가 있었다.

“타쉬말.”

“내게도 던전을 맡길 셈이냐?”

검은 여섯 쌍의 날개를 휘날리며 그녀가 물었다.

“너는 일본의 던전을 맡아라. 그곳에서 천사를 양육하며 세력을 키워라. 지형상 견제 없이 힘을 키우기엔 안성맞춤인 장소다.”

내가 타쉬말에게 건넨 건 ‘가즈넉의 메아리’다.

하프 형태의 그것은 지닌 마력의 종류에 따라 강력한 음률을 선사할 수 있었다. 특히 천족, 성녀 등과 관련하여 효과가 크게 상승했다. 타락은 했으나 본질은 같으니 타쉬말이 사용해도 뛰어난 모습을 보일 것이었다.

“사양하지 않겠다.”

타쉬말은 따지는 것 없이 시원하게 가즈넉의 메아리를 받아들였다.

[타락한 천사 ‘타쉬말’이 ‘던전 마스터’로 임명되었습니다.]

[충성도가 나쁘지 않습니다. 상태- 적의 적은 아군, 호감.]

[그녀는 앞으로 대공 ‘랜달프 브뤼시엘’의 휘하로서 힘을 발휘하는 데 크게 주저함이 없을 것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