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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173화 (173/242)

던전 사냥꾼 173화

느닷없는 메시지. 그중 마지막 문장만이 눈에 들어왔다.

상실된 존재력이 회복된 것이다. 영혼의 결여가 나타나고 며칠이 지났지만 이런 적은 없었다. 계속해서 상실될 뿐 회복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무슨 변화가 있었던가?

나는 한 게 없다. 500의 마수들도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지만 이렇다 할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 그 외적인 요소로 말미암아 지금의 현상이 일어났다는 뜻인데…….

‘알 수가 없군.’

심지어 던전 내에서 일어난 일인지 외부에서 일어난 일인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고작 0.1%.

이히의 상태에는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내리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올랐다.

나는 이 현상을 확실히 알아보고자 움직였다.

“줄리엄, 오스웬.”

크리슬리는 현재 외부에 있다. 로이와 로제를 도우며 공들여 탑을 쌓아 가고 있었다.

남아 있는 이들 중 던전 내에서 가장 지능이 높으며 믿음이 가는 게 그나마 이 둘이었다.

* * *

―오크가 다쳤어.

―상처를 불로 지지자!

―정원도 관리해야 해! 그런데 정원은 어떻게 관리해?

―영차! 영차!

불의 정령들은 바빴다. 10만의 정령들이 한 치의 쉴 틈도 없이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하는 일은 별 게 없었지만 우중충한 던전에 한 줄기 활력이 되었다.

축 늘어졌던 마수들이 힘을 되찾았고, 그간 방치되다시피 한 던전이 깨끗하게 치워지기 시작했다. 청소는 이히도 손을 놨었던 일인데 정령들이 솔선수범하여 치워 나가는 것이다.

이히의 정원을 관리하고, 근원의 나무와도 놀아 주며 정령들은 나름 의연하게 행동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들이 이처럼 움직일 수 있었던 건 오로지 하나 때문이다.

아버지!

그가 기뻐하길 바라서다.

요정의 부재로 슬퍼하는 그분을 위하여 요정의 빈자리를 채워 나가는 과정이었다.

외에 다른 이유는 없었다.

중급 정령이 된 레이와 세라가 총괄 지휘하며 10만의 정령들에게 일을 배분했다. 하나하나는 미약하지만 10만의 힘이 합쳐지니 어지간한 일 모두를 해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앗!

―아버지가 조금 기뻐하셨어!

이미 계약이 완료된 정령들은 미약한 감정의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눈에 띄는 감정은 아니지만 그간 워낙 우중충했는지라 이것만으로도 정령들은 만족할 수 있었다.

―더 열심히 하자.

―요정의 빈자리를 우리가 채워야 해.

―영차! 영차!

정령들이 더욱 활기를 띄웠다.

* * *

줄리엄과 오스웬의 보고를 받으며 나는 내심 황당해하고 말았다.

‘정령들이 원인인 것 같다니?’

정령과 요정은 비슷하지만 다른 존재다.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한데 줄리엄과 오스웬은 정령을 언급했다.

“황제 폐하, 그 외에 던전에서 변화한 일이라곤 전혀 없습니다. 설령 변화가 일어났던들 모두 정령들이 원인이 된 일입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오스웬이 정중하게 말하자 줄리엄이 보조했다.

“정령들이 대체 무엇을 했다고 혼의 회복이 이루어졌단 말인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단 이히의 근처에 정령들은 쉽사리 다가오지 않았다. 아니, 내 근처에도 요즘엔 잘 다가오지 않았었다.

“마음…… 아닐는지요.”

“마음?”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마음의 의미를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지금의 상황이 설명되지 않았다.

내 심정을 알아차린 오스웬은 더욱 신중하게 답했다.

“폐하, 저는 대장장이였습니다. 검에 혼을 싣는다……라고 표현할 만큼 모든 걸 담아 무기를 만들었지요. 검이란, 무기란 뭐겠습니까? 사실 철 덩어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열심히 하면 검도 보답을 해 줍니다. 열심히 망치를 내리치면 내리칠수록,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기도 하지요. 지금 정령들의 심정이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령들이 요정을 위해 열심히 하고 있고, 그게 혼의 회복으로 나타났다?”

“비슷하지만 그런 단순한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더욱 아리송했다.

“정령들은 폐하로 말미암아 탄생했습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맹목적으로 폐하를 따르는 모습을 봤습니다. 본래 정령은 집착이 크지 않은 성향일 텐데 말이지요. 하물며 ‘아버지’란 표현은 정령왕에게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팔짱을 꼈다.

어디 계속해서 말해 보라는 뜻이다.

오스웬은 그에 따라 재차 입을 열었다.

“어쩌면…… 요정님에게 문제가 생긴 이후 폐하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정령들이 눈치채지 않았는지요. 요정님의 부재로 생긴 일이니 그 빈자리를 자신들이 채우겠다고 여기며 일을 한 게 이런 결과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믿기지 않는 말이로군.”

“아니라면 자연적으로 회복되었다는 것이겠지요. 어디까지나 추측일 따름입니다.”

오스웬이 한 발자국 물러섰다.

나는 시선을 돌려 줄리엄을 바라봤다.

“같은 의견인가?”

줄리엄, 다크 엘프의 장로. 그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주술사들이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수많은 이가 강하게 염원하면 허구는 간혹 진실이 된다고……. 10만의 정령들이 한 치의 엇나감 없이 같은 마음으로 움직이고 있다면 영혼의 빈 공간도 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저 둘만의 의견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믿음은 안 갔으나 믿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영혼과 관련된 분야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게 많다. 혼의 결여가 쉽게 나타나는 일도 아니었으니 이런 경우가 생겨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좋다. 정령들이 혼에 관여하고 있다고 믿겠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뭐지?”

확실하지 않은 일.

하지만 믿기지 않는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모든 일은 옳다고, 이 가정이 맞다고 생각하며 움직이는 게 가장 좋다.

비장한 각오로 말하자 오스웬이 얇게 웃었다.

“가만히 내버려 두십시오. 그냥 흐뭇하게 지켜보시면 됩니다.”

정령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폈다. 하지만 오스웬의 말마따나 나서진 않았다. 그저 지켜보며 이히의 영혼과의 상관관계를 따져 봤다.

‘단순한 노력이 영향을 끼친다.’

영혼의 결여는 조금씩 회복이 되는 중이었다. 하루에 1%가량일 따름이었지만 이만한 희망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온전하게 이해는 되지 않았다.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그저 남을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 500의 마수와 내가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는 게 쉽게 와닿지는 않았다.

정령들이 하는 일은 별 게 없었다.

언뜻 보면 ‘놀고 있구나.’ 싶은 수준이었고, 던전에 아주 큰 영향력을 끼치진 못했다.

그러나 조금씩, 정말 조금씩 던전의 모든 부분이 나아지고 있었다. 미처 눈치채지 못한 것들, 미세한 틈 하나 놓치지 않고 정령들은 해결하려고 애썼다.

―아버지가 보고 계셔.

―내가 제일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근원의 요정 ‘이히’의 존재력이 0.2% 회복되었습니다.]

[14.5% → 14.7%]

가만히 지켜보자 정령들은 더욱 성심성의를 다해 움직였다. 그럴수록 이히의 영혼은 가파르게 회복해 나갔다. 이로써 정령들이 영혼의 결여에 관여하고 있다는 게 확실해졌다.

‘누군가를 위해 노력한다. 어려운 일이다. 나는 단지 나만을 위해 노력해 왔다.’

가만히 지켜볼 뿐이지만 내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정령들에게 해 준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나의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며 있는 힘껏 움직였다. 계약 관계로 소환된 마수나 마계 옥션에서 구매한 녀석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맹목적인 믿음. 처음부터 그러했다. 이히와 비슷하지만 그 전에 이히는 나와 계약으로 얽혀 있었다. 크리슬리도 함께 의식을 치름으로써 내게 종속되었다.

정령과도 계약을 하긴 하였으나 계약 전에도 저런 태도였다. 내가 계약의 내용을 바꿔도 싫은 기색 하나 내비치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세상에 이런 종류의 믿음이 존재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전생에서도, 마계에서조차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이다.

그래서 어색했다. 어떻게 바라봐야 좋을지 종잡을 수 없었다.

‘나는 바뀌고자 했다. 하지만 바뀌지 않았군.’

미간을 짚었다.

회귀하며 전혀 다른 삶을 살자고 맹세했다.

마수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나 혼자 독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마족이란 틀을 넘어 진정한 왕이 되자고, 그렇게 생각했건만.

가만히 나 스스로를 관조하니 근본적인 부분에선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이 성격 자체를 바꾸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잣대를 조금 내리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적어도 나를 믿고 따르는 이들에 한해서 기준을 낮추고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도 장족의 발전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나는 마냥 따듯하기만 한 바람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시원한 바람 정도는 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 마음먹자 조금은 시야가 바뀌었다. 정령들을 바라보는 눈에 약간이나마 온기가 서렸다.

[마력의 성질이 미약하게 변화했습니다. 조금 더 ‘조화’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순수 지능과 마력이 2 상승합니다.]

[잠재력 한계치가 5 상승합니다.]

일종의 깨달음이었다. 조금이지만 나는 또다시 벽을 넘었다.

발상의 전환. 조금 다르게 사고하고 바라볼 따름이었는데 이런 변화가 생겼다.

‘내가 나아갈 방향. 그 길엔 그저 파괴만 있을 줄 알았거늘.’

조화라니. 피식 웃고 말았다.

그야말로 개가 웃을 일이었다. 누구보다 독선적이고 남을 낮추길 좋아하는 내가 ‘조화’를 추구하게 되었단다.

하지만…… 이제 나의 차가운 시선은 적들에게만 향하게 될 것이다. 나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이들에 한하여 나는 조금 더 낮은 잣대로 지켜볼 ‘여유’가 생겼다.

―아버지가 기분이 좋으신가 봐.

―나도 좋아.

―더 열심히 하자!

혼의 결여는 날이 갈수록 빠르게 회복됐고, 고작 10일 만에 이히는 완치할 수 있었다.

“아우~ 뻐근해. 하암~ 잘 잤다.”

무사태평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이히는 눈곱을 떼곤 시선을 돌렸다.

“응? 마스터, 이히가 왜 이곳에 있을까요? 이히는 정원에서 잠들었는데.”

이상하다. 고개를 갸웃하는 이히 근처로 정령들이 모여들었다.

―요정이 깨어났다!

―그럼 이제 일 안 해도 되는 거야?

―놀래~

그간 쌓인 게 많았는지 정령들이 우르르 몰려 나갔다.

“뭐야, 쟤들은? 이히히. 마스터, 그렇게 쳐다보면 이히도 부끄러워요.”

“변한 것 같은 게 없나?”

“이히한테요? 음…… 아!”

이히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곤 크게 놀랐다.

“날개가 늘어났어요!”

본래 두 쌍이었던 날개가 네 쌍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 변화는 영혼의 회복률이 90%에 달했을 때부터 나타났다.

“뭐지? 왜 날개가 늘어났지? 막 힘도 넘치는 것 같구…….”

이히는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와 동시에 날개에서 환한 빛무리가 쏟아져 나왔다.

빛은 곧 최상층을 넘어 던전 전체를 집어삼켰다.

“어어……?”

당황한 이히가 눈을 깜빡였지만 나는 또다시 떠오른 여러 메시지에 놀라는 중이었다.

[근원의 정령이 가진 혼의 격이 한 단계 상승했습니다.]

[근원의 나무가 각성하였습니다. 보다 강한 영향을 던전에 끼칩니다.]

[정령들의 성장 속도가 더욱 빨라집니다.]

[던전이 ‘유니크(U)’ 등급으로 격상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내정 모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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