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174화
이히의 존재력이 한층 더 커진 건 분명했다. 날개가 한 쌍 늘어나면서 격이 올랐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히의 격이 상승함과 동시에 근원의 나무마저 각성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더불어서…… 던전의 등급 또한 오를 줄이야.
위기가 기회가 된 셈이었다. 이 모든 시작이 정령들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만약 정령의 씨앗을 받아 오지 못했다면, 그들을 탄생시키지 못했다면 이런 우연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 혼자서는 혼의 결여를 해결할 능력이 안 되는 탓이다.
우연과 우연이 겹쳐서 일을 냈다. 조금씩 덧칠된 밑그림이 대작으로 완성되었다.
쿠르릉!
메시지가 떠오른 직후.
던전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근원의 나무가 뿌리를 던전 전체에 넓히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마치…… 근원의 나무가 던전과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력의 농도가 짙어졌다.’
던전이 가진 고유의 방어력이 상승했음은 물론이거니와 내 ‘권한’도 늘어났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더 자세한 사안은 내정 모드로 들어가 봐야 알 수 있겠지만…….
‘유니크 던전이라니.’
전생에서조차 던전에 등급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어 봤다. 던전은 그저 다 같은 던전인 줄로만 알았다. 그것은 레어 등급으로 격상했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 이상 오르진 못할 것이라 지레짐작 하였는데…… 그 위인 유니크 등급에 도달한 것이다.
‘에픽, 레전드 등급도 있다는 뜻.’
고개를 주억이며 앞을 바라보자 이히의 몸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줄어들었다. 잠시 후 빛무리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히는 조금 더 몸집이 커져 있었다.
“어? 이히가 성장했어요, 마스터!”
머리통만 한 크기에서 손가락 반 마디쯤 늘어난 것에 불과했지만 이히의 기준에선 장족의 성장일 것이었다.
이히는 헤실헤실 웃으며 나름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빛이 나올 때만 하더라도 당황했지만 그 속에서 무언가를 깨달은 모습이었다.
“뭐가 바뀌었는지 알 것 같나?”
손가락으로 입술을 만지작대던 이히가 내 물음에 입을 열었다.
“조금은요. 근원의 마법 몇 가지가 이히한테 흘러왔어요. 하나하나가 어~엄청 대단해서 많이 쓸 수는 없지만 앞으로 이히가 더욱 도움이 될 것 같애요. 그리고 근원의 나무가 말해 줬어요. 잘하면…… ‘최초의 왕’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대요.”
“왕?”
근원의 마법이 무엇인지 전혀 감이 안 잡혔지만 그보다 더욱 궁금한 건 바로 왕이라는 말이었다. 업적처럼 ‘최초’라는 타이틀은 달콤한 법이었다. 하물며 그 뒤에 왕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으니 절로 궁금증이 도졌다.
그러자 이히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아무 왕이나 만들 수는 없대요. 마스터가 결정하래요. 마계나 천계, 그곳의 마족과 천사처럼 독립된 개체의 왕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고……. 그럼 이 던전이 하나의 또 다른 세상으로 바뀔 거래요.”
“…….”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히가 내게 건넨 말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던전이 그저 던전에서 끝나지 않고 아예 독립적인 세계가 된다는 의미였다. 천계와 마계, 이곳 지구마냥 하나의 확고한 ‘존재’로써 납득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내가 신이 된다는 건가?”
이히가 실소했다.
“에이~ 그건 아니고요. 마스터, 왕 하나만 있는 세계에 신이 무슨 소용이겠어요? 물론 마스터가 던전 안에서 ‘내가 신이다!’ 하고 다니면 그걸 아니라 할 마수는 없겠지만요. 음…… 안 그래도 이히가 다~ 물어봤어요. 마스터가 신이 되려면 아직 부족한 게 있대요. 일단 신의 자격은 초월자를 초월해야 얻는다고 해요. ‘데미갓’이라 표현하는데, 단순 능력치만 높으면 되는 게 아니라 그러한 업적을 쌓아야 한대요. 그런데 그 부분에서 마스터는 이미 상당한 업적을 쌓았거든요? 그러니까 강해지기만 하면 자격을 얻는 거예요! 이히히!”
신의 자격을 얻기엔 아직 내가 약하다는 말이었다.
듣기에 따라선 충격적이지만 어느 정도 납득은 되었다.
당장 나보다 강한 이를 손에 꼽자면 그림자 황제와 진마룡 아오진, 불의 정령왕 가랏쉬가 있었다. 그 외에 내가 모르거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강자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도 신의 자격은 얻지 못했다. 그림자 황제는 반신에 준했지만 결국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도박조차 패했다.
지금은 마계에 있다고 추정되나…… 여태껏 신이 되지 못한 건 사실이다.
허나 이러다 보니 목표가 조금 불투명해졌다.
내 진정한 목표는 어디까지나 마왕이 되는 것이었다. 마계의 주인이 되어 그곳을 다스리는 것만을 목표로 삼아 왔다.
한데 나만의 세계가 구축된다면 굳이 거기에 목을 맬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아니, 내 목표는 변하지 않는다.’
침음을 삼켰다. 나는 생각보다 집착이 강하다. 한 번 되겠다고 다짐했고,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되고 말 것이었다.
어쨌거나 던전의 등급이 오르며 상상 이상으로 큰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로운 왕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 거지?”
“그게요, 이히가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 주더라고요. 태초의 씨앗이 될 ‘도안’을 찾으라는데 이거 참 알쏭달쏭한 거 있죠?”
“도안이라…….”
무언가를 만들 때의 형상, 틀 따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천사와 마족, 인간처럼 ‘주’가 될 생명체의 도안 같은 것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정말 신들만 알고 있을 터였다.
‘이 역시 자연스럽게 알게 되리라.’
그러나 조급해하지 않았다.
힌트를 얻은 것으로도 족했다.
모른다면 그냥 넘어가겠으나 태초의 씨앗이 될 도안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 언젠가 자연스럽게 접하게 될 것이었다.
마치 퍼즐을 맞춰 가듯이.
“이히히히. 마스터, 이히가 마법 하나 보여 줄까요?”
“근원의 마법이라 한 것 말인가?”
“예! 이히가 잘 조절해서 한번 해 볼게요.”
이히에 대한 상태창은 심안을 열어도 개방이 되지 않았다. 하여 나도 이히가 무슨 스킬을 얻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근원의 마법 몇 개를 얻었다고 하는데, 그 이름처럼 거창할지는 두고 볼일이었다.
‘혹시 모르니 주의해야겠군.’
내가 가만히 고개를 주억이자 이히가 손을 번쩍 들었다.
“얍!”
당찬 외침 소리와 함께 이히의 손에서 작은 빛줄기가 쏘아졌다. 이윽고 그 빛줄기가 던전의 천장에 닿았고, 근원의 뿌리로 추정되는 것이 동시다발적으로 천장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뿌리로 공격이라도 할 생각인가?
비슷했지만 달랐다. 뿌리가 내려오고 서로 얽히며 거인의 형상을 만들었다. 히드라에 버금가는 크기의 거인이 무려 세 구나 빈자리에 생겨났다.
“헥~헥~ 아유, 힘들어. 이거예요, 마스터. 이히가 근원의 거인을 소환했어요.”
이름: 근원의 거인
능력치
힘 100 지 90
민 95 체 100 마 80
잠재력 (465/???)
특이 사항- 근원의 나무가 일시적으로 만들어 낸 거인입니다. 근원의 요정이 가진 힘의 역량에 따라 능력치와 소환 시간이 결정됩니다.
최상급 마수였다. 그것도 3Lv에 버금가는 수준의 마수가 무려 셋이었다. 근원의 뿌리가 존재해야 가능한 마법이긴 하지만 이만한 힘이라면 적어도 던전 내에선 요긴 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소환 시간이었다.
“헥! 헥! 헤헥! 아, 갈증 나. 안 되겠어요, 마스터. 이히한테는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봐요.”
고작 1, 2분 남짓의 시간이 지나자 이히는 목마른 개 마냥 숨을 헐떡였다. 세 마리를 동시에 소환해서 그런지 그만큼 무리가 따른 듯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짧다.
‘이래선 다른 마법도 비슷하겠군.’
위력은 있으나 이히가 제대로 컨트롤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하여튼 근원의 마법은 꽤 매력적이었다. 이히의 존재력이 더 커지고 제대로 활용할 줄만 알게 된다면 다른 최상급 마수 모두를 합친 것보다 이히 하나의 가치가 더 올라갈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지금은 무리지만 가능성만큼은 열어 두었다.
“수고했다.”
“이히히히히.”
이히가 몸을 배배 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상당히 오랜만에 듣는 칭찬이라 그런지 반응이 더욱 격했다.
나는 그런 이히를 뒤로 한 채 던전 코어를 바라보았다.
‘내정 모드.’
그리고 유니크 던전으로 등급이 상향되며 바뀐 점을 보고자 내정 모드에 들어갔다.
동시에 수많은 문자가 나열되며 눈을 어지럽혔다.
나는 그중 바뀐 것들만을 빠르게 잡아냈다.
[던전의 등급- 유니크(U)]
[던전의 배리어 총량- 20,000,000]
[던전의 마력 상태- 순수(던전 내 마수의 모든 능력치+2)]
…….
[근원의 뿌리가 던전 전체에 퍼짐(모든 층, 모든 마수의 번식률 대폭 증가)]
[던전의 외견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해짐. 높이와 폭 상한선- 200킬로]
[종족의 한계를 넘어선 마수가 탄생할 확률 소폭 증가]
…….
[층의 통폐합 가능]
[마스터 가디언의 잠재력 한계치 50 증가]
많다. 추려 내도 이 정도였다. 일단 배리어의 총량이 눈에 띄게 늘었고…… 모든 마수의 능력치마저 올라갔다. 총합 10의 능력치가 올라간 셈이니 이 수치는 결코 적지 않다.
게다가 한계를 넘어선 마수라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킹이나 로드 같은 존재가 아니라 더 상위의 존재.
‘네임드.’
이름을 가지고 널리 떨칠 수준의 마수가 탄생할 가능성이 생겼다는 뜻이다. 모든 것을 초월해 이름을 남기는 건 쉽지 않은 일. 예컨대 진마룡 아오진과 같이 초월자의 벽마저 뛰어넘을 마수가 등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존재를 간단하게 추려서 ‘네임드’라고 불렀다. 전생에서 인간들이 사용한 언어이긴 했지만 이 이상으로 그를 표현할 단어는 거의 없었다.
‘마스터 가디언이라면 크리슬리겠군.’
게다가 크리슬리의 잠재력 한계치가 50이나 상승했다고 한다. 본래도 484의 우월한 한계치를 지니고 있었는데 지금은 534가 됐다. 그야말로 초월자가 될 자격을 획득한 것이었다.
‘내 명령을 듣는 초월자. 썩 괜찮겠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상상만으로도 주먹이 꽉 쥐어졌다. 크리슬리가 초월자의 벽을 넘어서게 된다면 나는 더도 없이 막강한 전력을 손에 쥐는 셈이다.
이히의 마법도 있으니 기대치가 매우 높았다.
머릿속을 정리한 후 나는 아직도 웃는 이히에게 말했다.
“이히.”
“크흠! 크흠! 네?”
애써 웃는 얼굴을 지우며 이히가 나를 돌아봤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벌써부터 궁금증이 넘치는 얼굴이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 하려고 하는 일은 간단했다.
“층을 두 개로 줄이겠다.”
33개의 층을 두 개의 층으로 만드는 것!
최상층과 아래의 모든 층을 분리하여 보다 땅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나눠진 채로는 불편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합쳐서 한 번에 관리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변할 터.
말인즉, 32개의 층을 합친다는 것이고, 그로써 나타날 면적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었다.
그리된다면 던전이 아니라 하나의 작은 세계라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