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사냥꾼-176화 (176/242)

던전 사냥꾼 176화

호문쿨루스.

인공 생명체!

들어 보기는 했으나 이곳에 모인 일곱의 길드 마스터는 그 실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단지 피부로 느껴지는 본능적인 공포가 대신 자리할 따름이었다.

길드 마스터라는 자리는 무조건 최강자가 되는 게 아니다. 같은 길드 내에서도 길드 마스터보다 강한 길드원은 많았다. 하지만 그들을 키우고 선별한 존재가 길드 마스터다. 가장 많은 던전 탐사와 마수를 마주한 것 역시 그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상대의 강함을 측정하는 게 자연스럽다. 지금 그들이 알고 있는 최강자는 구세주라 불리는 남자와 눈앞의 기린이었지만 그다음으로 이 호문쿨루스를 넣어도 될 듯싶었다. 다크 엘프 로제가 사용하는 인공 골렘도 강하긴 했지만 이만한 압박감을 가져다주진 못했다.

“히이이…….”

호문쿨루스는 괴기한 소리를 내며 길드 마스터들을 둘러보았다. 이윽고 가까이 다가가 기다란 혓바닥을 날름대며 그들의 뺨을 한 차례씩 핥았다.

꿀꺽! 누군가가 침을 삼켰다.

누군가는 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것을 본 로이가 말했다.

“이 아이는 시력이 없어요. 대신 후각과 촉각이 무척 뛰어나죠. 지금은 아군이 될 자들을 인식하고 있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혀, 혀로 뺨을 핥는 게 말입니까?”

김용우는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나름 강심장이라 자부하지만 호문쿨루스의 혓바닥이 뺨을 넘어 목덜미를 잡았을 땐 ‘이제 끝이구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예, 그리고 이 아이는 경비대에 편입될 거예요. 믿을 만한 각성자들로 파티를 짜고 그들을 인식시켜 주세요. 다소 난폭한 편이라고 주인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그 과정이 없으면 아군을 공격할지도 몰라요.”

“로이 님께선 함께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로이가 고개를 저었다.

“저와 로제는 이곳에 ‘씨앗’을 심고 의식을 치러야 해요. 멀리 나갈 수 없어요.”

“씨앗이라니요?”

김용우가 눈을 깜빡이자 로이는 품속에서 두 개의 씨앗을 꺼냈다.

파란색과 붉은색의 대조되는 색깔을 지닌 씨앗은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생명과 죽음의 나무. 근원의 나무에서 파생된 지고한 생명체들. 정상적으로 자라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겠지만 아마도 이 두 나무를 심으면 마수들이 움직일지도 모른다고 하는군요.”

로이의 말은 엄숙하기 그지없었다. 예전 겁쟁이의 모습에서 완전히 달라졌고, 이제는 제법 의연한 모습이다. 그러나 말을 하는 로이도 이번만큼은 다소 긴장한 것 같았다.

그 분위기를 다른 길드 마스터들이 모를 리가 없다.

담비 길드의 마스터 아린이 그들을 대표하여 물었다.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는 건가요?”

“굳이 따지자면 저의 주인님께선 한국의 모든 마수를 처리한 건 아니에요. 아직 잔류하고 있는 이 근처의 마수들이 노리고 올 가능성이 있어요.”

주인을 잃고 방랑하는 마수들이 많았다. 그들에겐 각인된 귀소 본능도 없어서 한국 내에서 사람들을 습격하며 지내고 있을 뿐이었다.

생명과 죽음의 나무는 자라는 과정에서 특정 마수들에게 아주 치명적인 냄새를 풍긴다. 본능적으로 나무를 얻고자 이곳으로 쳐들어올 것이었다.

아린은 당황함을 감추고 차분하게 물었다.

“그런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이유는요?”

“자라 나는 과정에선 마수를 끌어모으지만 다 자란 다음에는 마수들을 물리치거든요.”

“그렇다면 굳이 지금 심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모든 게 안정화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요.”

“아니, 지금이 적기예요. 앞으로 3일 이내에 심지 않으면 12년을 기다려야 해요.”

로이가 꽉 막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 너머의 무언가를 직시하는 듯한 눈빛으로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아린은 고개를 돌려 다른 여섯 길드 마스터를 바라봤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묻고자 눈빛을 교환한 것이다. 다들 반신반의였지만 그래도 한 번쯤 걸어 볼 만한 도박이라고 여겼는지 무겁게 고개를 주억였다.

의견이 하나로 모이자 아린이 다시금 말했다.

“최대한 빨리…… 정리를 해야겠군요.”

구정부군.

기타 테러를 자행하는 자들.

그들과의 전쟁을 하루빨리 끝내야 했다. 최대로 잡아야 3일. 그 이내에 끝내는 게 최선일 것이었다.

질질 끌다간 마수와 정부군의 공격을 동시에 받을 수도 있었다.

관건은 호문쿨루스였다. 지금 정부군과 이곳의 경비대는 그 힘에 크게 우열이 나 있지 않다. 총력을 기울이면 6.5:3.5 정도이나 그들은 뭉치지 않고 흩어져서 전술을 펼치는 까닭에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그때였다.

로이와 로제가 눈을 크게 뜨며 뒤쪽을 바라봤다.

뒤에 있는 것이라곤 그림자뿐일진대 둘은 마치 그곳에 누가 있다는 양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 그, 그럼 의식은요?”

“맞아요, 로이는 믿음직하지 못해요. 저희 둘이서 의식은…….”

로제가 말을 끊고는 귀를 쫑긋 세웠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 모양이다. 정작 길드 마스터들은 의아해하며 고개만 갸웃거릴 따름이었다.

“할 수 있을까요? 그, 그보다, 이런 일에 나서지 않으셔도 돼요. 지금처럼 조언만 해 주세요. 음, 저희가 할 수 있어요.”

“아니, 차라리 로제가 가는 편이 나아요. 여왕님은 편히 계세요.”

여왕님?

구세주를 뜻하는 건 아닐 테다.

그 외의, 저 두 다크 엘프가 따르는 존재가 있다는 뜻이었다.

10초. 그쯤 정적이 찾아왔다. 이후 로이와 로제는 어깨를 푹 수그렸다.

“……알겠어요.”

“……한번 해 볼게요.”

둘의 의견이 통일된 직후 그림자에서 작은 윤곽이 생겨났다.

윤곽은 조금씩 뚜렷해지며 한 형상을 만들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길드 마스터들은 숨이 턱 막히는 걸 느꼈다.

실크 재질의 하늘하늘한 로브를 착용한 여인이었다. 귀가 쫑긋하고 피부가 다른 걸 보아 로이, 로제와 같은 다크 엘프 같았다. 얼굴은 눈을 제외한 모든 곳이 가려져 있었지만 단순히 등장했을 뿐인데도 압도적인 존재감이 여실히 느껴졌다.

풍기는 분위기는 쉽게 범접할 수가 없었다. 눈만 보이는 데도 그 미모가 익히 짐작이 갈 수준이다. 남자들의 경우 절로 손이 뻗치려는 걸 겨우 억제시켰다. 저 얼굴을 가린 천을 뜯어내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반가워요.”

“아…….”

김용우를 비롯한 남성 길드 마스터 전원이 탄성을 내뱉었다. 여자들도 아린을 제외하면 모두 놀라고 말았다. 목소리 또한 어찌나 매혹적인지!

그러거나 말거나 다크 엘프 여인은 개의치 않고 다음 말을 내뱉었다.

“이번 작전, 함께하죠.”

주어진 시간은 3일.

솔직히 빠듯했다. 흩어진 잔당을 모두 잡으려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대단한 존재가 합류해도 속도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당연한 상식이었으므로.

하지만 상식은 깨졌다. 판이 뒤집혔다.

호문쿨루스는 적을 찾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초월적인 후각과 촉각은 은신 스킬을 사용한 채 숨어 있는 자들의 위치도 정확하게 짚어 냈다.

뿐만인가?

적어도 속도 면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속도! 파괴력은 속도에 비해 다소 약한 듯싶었으나 인간들의 기준에선 여전히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하지만 강한 자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다면 진즉에 했을 것이다. 기린은 인간들과 싸우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로제가 끌고 온 골렘도 굉장히 강한 편이었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숫자다. 약한 스킬도 수백, 수천 개가 중첩되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실제로 로제의 골렘은 혼자 날뛰다가 구정부군이 준비한 덫에 걸려 2천 발이 넘는 스킬을 직격당하고 겨우 회수된 일이 있었다.

여러 가지 조건이 더 겹치기도 했지만 마냥 무시할 수도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 강한 존재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면.

그것도 그중 하나가 비교도 안 될 강한 존재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파삭!

푹!

다크 엘프 여인.

그녀는 몇 수 앞을 내다보며 움직였다.

적진 한가운데. 적들이 설치한 함정을 모두 읽고 적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며 신속하게 생명을 앗아 갔다. 현란한 몸놀림, 절제된 깔끔한 동작. 군더더기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억! 하는 순간 반대쪽의 다른 한 명도 비명을 내지른다.

곁가지를 쳐 내고 3일째. 마침내 구정부군의 본진을 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전쟁을 그녀와 호문쿨루스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구정부군의 본진이었고, 천에 달하는 각성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일곱의 길드 마스터는 모든 길드원을 총동원에 이곳을 소탕하는 중이었다.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

“우리에겐 승리의 여신이 함께하신다!”

아군의 사기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반대로 적군의 사기는 하염없이 낮아졌다.

그냥 싸움이었다면 이처럼 극명하게 나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강력한 두 존재가 합류하며 상황이 반전되었다.

특히 ‘승리의 여신’이라 칭한 다크 엘프 여인의 활약은 눈이 부셨다.

기세 싸움에서 완전히 밀렸으니 결과는 정해진 것과 같았다.

* * *

생명과 죽음의 나무.

근원의 나무가 격상하며 우연찮게 얻은 산물이다.

이히가 내게 보고하지 않고, 그 특유의 빛깔 때문에 숨겨 두었다가 불의 정령들로 말미암아 걸리고 말았다.

이히의 폭정을 견디다 못한 불일, 불이, 불삼이 반항을 꿈꾸며 레이와 세라에게 말했고, 그것을 내가 전해 들었다.

결국 이히는 대성통곡을 하며 두 씨앗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격이 상승했다지만…… 이런 면에 있어서 이히는 여전히 이히였다. 평생을 가도 쉽게 고쳐질 것 같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던전에 심기에는 무리가 있었지.’

생명과 죽음의 나무는 성장하며 마수들을 끌어모은다. 공격적인 성향을 극대화시키고 흥분하게 만든다.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되는데, 그때는 던전 마스터의 명령이 일부 무시된다.

하여 던전에 심기엔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도리어 인간들의 성장을 촉진시키기에 더할 나위 없다.’

던전 코어 앞에 앉아 미간을 쥐었다.

사실 두 나무는 성장 조건이 있었다.

생명의 나무는 근처에서 생명이 태어날 때마다 조금씩 성장하고, 죽음의 나무는 근처에서 생명체가 죽을 때마다 성장한다.

그리고 두 나무가 모두 성장했을 때 주변의 생명체를 조금씩 ‘각성’시킨다. 예컨대 인간들의 경우 각성자의 비율이 더욱 높아지는 것이다.

마수들도 이에 적용하면 되지 않느냐?

……하고 물을 수 있겠지만.

‘마수와 인간의 차이.’

마수는 그런 식으로 각성을 해도 크게 나아지질 않는다. 반대로 인간들은 거대한 ‘가능성’을 품게 된다. 이 차이가 가장 컸다.

게다가 두 나무를 던전 안에서 키웠다간 던전 안이 엉망이 될 가능성도 높았다.

차라리 인간들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역할로 배정하는 게 낫다고 여겼다.

‘각성자의 비율이 높아지면 나로서도 여러모로 이득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인간들은 하루빨리 성장해 줄 필요가 있었다.

‘태동. 새롭게 변해야 할 때.’

내가 가진 전력으로 하나의 파벌을 상대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만약에 다른 수를 부린다면 한계가 생긴다. 그때 인간들은 도움이 될 것이다.

도움이 되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니까.

‘인간들이여, 나를 실망시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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