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178화
서쪽을 분담했던 천명회와 담비 길드가 중앙에 거의 도착했다. 멀리서 폭발 소리를 듣고 부리나케 달려왔지만 막상 가까이 다가가자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끝난 건가?
그렇다면 좋지 않은 쪽으로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고작 200여 명의 각성자로 그만한 마수를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늦은 걸까요?”
“젠장, 조금 더 속도를 높입시다.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 합니다.”
김용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본래 사리사욕 많고 으스대길 좋아했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지난 몇 년간 조금은 달라진 그다. 진심으로 사람들의 무사함을 빌며 빠르게 치고 나갔다.
이윽고 중앙에 완전히 도달한 김용우와 기타 길드원들 모두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우선 마수들의 시체가 주변에 즐비했다. 동료 각성자들도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지만 그 숫자에 비해 마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체 어찌 된 일인가.
늦었다고 생각했다. 막지 못해야 정상이었다. 희망을 품고 있었다지만 현실은 그처럼 간단하지 않은 법이었다.
“천명회 길드 마스터 김용우다. 중앙은 응답하라.”
―…….
혹시 몰라 무전을 넣어 봤지만 조용했다.
아린은 마수의 시체가 잘린 단면을 살피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부분의 마수는 두 명에게 당했어요. 대체…… 누가?”
마수의 자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있었다. 말인즉, 두 명이 거의 대부분의 마수를 처리했다는 뜻이었다.
김용우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가 멀지 않습니다. 가 보면 알겠죠.”
민간인이 모여 있는 장소는 이곳에서 더욱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무거운 분위기.
그 안에서 김용우와 아린이 빠르게 발을 놀렸다.
민간인들이 모여 있는 쉘터에 근접하면 할수록 시체가 줄었다. 간혹 절단되어 쓰러져 있는 마수들을 보아 오히려 도망을 가다가 사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수가 도망을?
그야 없지는 않다. 마수들도 본능이 존재하고, 죽음의 위기를 느끼면 발을 빼는 편이다. 한데…… 그것도 하급 마수까지다. 중급을 넘어가면 대체로 죽는 한이 있은들 물러나지 않는다. 아주 막강한 힘의 차이를 보여 주지 않는 이상 말이다.
구세주가 그랬다. 처음에는 먹이로 착각하고 달려들었지만 이내 부리나케 마수들이 도망가곤 했다. 그럼에도 눈에 보이는 마수는 한 마리조차 살려 두지 않아 사람들은 그 남자를 ‘구세주’라 부른 것이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널린 시체 중에는 중급 마수가 많았다. 상급의 마수도 간혹 포함되어 있었다.
‘그만한 강자가 인간 중에 있던가?’
구세주는 아니다. 그의 싸움은 화끈하고 간결하다. 굉장한 폭력이 가미되어 있으나 보는 입장에선 ‘시원하다.’ 할 정도의 무력을 선보인다.
반면 이 두 명은 그 정도는 되지 않았다. 약간 질척이는 싸움의 현장과 같았다. 그럼에도 엄청난 강자라는 점은 명확했다.
김용우는 고개를 갸웃하며 쉘터에 다다랐다.
이윽고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어……? 길드 마스터.”
사람들의 중심에는 두 명의 익숙한 인영이 있었다.
유은혜와 에드워드!
그중 유은혜가 김용우를 발견하곤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수련을 하고 오겠다.’는 편지 한 장만 달랑 남겨 놓고 떠났던 둘이 대략 2주 만에 돌아왔다.
“이제라도 돌아와서 다행이다.”
김용우는 긴장을 풀고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시민들의 안전에 큰 문제가 생겼다면 어깨가 굉장히 무거웠을 것이다. 다행히 둘이 처리를 했기에 별다른 피해 없이 막을 수 있었다.
정작 둘의 출현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가장 먼저 김용우가 둘을 구석진 장소에 끌고 갔다.
“그나저나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던 거냐?”
“수련하고 온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진짜 제가 편지 남기고 사라진 게 2주일밖에 안 지났어요?”
유은혜는 살짝 피곤한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김용우는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2주일밖에? 밖에라니!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하루에 3시간이나 자면 많이 자는 것이었다. 아예 잠 못 이루는 밤도 부지기수였다. 에드워드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지만 유은혜가 있었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 터.
그게 못내 아쉬워 열변을 토했지만 유은혜는 반성하는 기색이 없었다.
도리어 당황스럽다는 듯 약간은 슬픈 얼굴로 말했다.
“시간 개념이 엄청 다르구나…….”
“누나, 그래도 강해졌잖아요. 슬퍼 말아요.”
에드워드의 외견은 변화가 없었지만 왜인지 정신적으로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유은혜의 어깨를 토닥이며 에드워드가 위로했다. 예전이었다면 꿈도 못 꿨을 구조에 김용우는 재차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어디에 있다가 온 거고?”
“수련의 방이라는 곳에 있었어요. 사람들이 ‘구세주’라고 부르는 남자…… 그가 강해지고 싶으면 가라고 해서요.”
“뭐?”
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인가.
하지만 에드워드가 잠자코 있는 걸 보아선 거짓 같지는 않았다.
이어진 유은혜의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저는 그곳에서 1,000일이 넘도록 수련만 했어요. 방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나갈 수 없다고 해서…… 필사적으로요.”
“1,000일? 그게 말이…….”
“저와 에드워드 둘이서 그 많던 마수를 처리한 건 말이 되고요?”
김용우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야기를 따라갈 수가 없어서다.
하지만 유은혜의 말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이번 일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 두 사람이 강하다고 해도 기존에 보인 한계가 있었으니.
지금은 그 수련의 방이라는 곳을 통해 한계를 깼다는 것이다.
“이걸 사람들한테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고, 각색을 해야겠구만. 휴우~”
어쨌거나 이번 일로 인해 두 사람은 한국의 모든 사람에게 집중 조명을 받게 될 터였다.
유은혜가 고개를 갸웃하곤 물었다.
“그냥 그대로 말하면 되지 않나요?”
“뭐, 말이 안 되는 이야기도 구세주가 엮이면 말이 되게 만들어지겠지. 알아서 양념이랑 소금 쳐지고 그렇게 될 거야. 그러면 나도 간편해서 좋긴 한데, 젠장. 엄연히 너희의 공인데 구세주라는 작자가 더 조명을 받게 된다고. 나는 그게 싫다.”
김용우는 구세주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듯싶었다. 유은혜는 이에 대해 가타부타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신념은 모두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련히 알아서 잘하시겠죠. 그럼 저 좀 쉬러 들어가도 되나요? 오랜만에 침대에서 자고 싶은데…….”
“그래. 일단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바빠질 거야.”
에드워드가 슬쩍 끼어들었다.
“제 것도 누나 옆에 마련해 주세요.”
“미쳤냐? 남녀가 유별한데 어딜! 각 방 써, 짜샤. 설령 방이 없더라도 만들어 주마.”
툭!
뒤통수를 후려친 김용우가 몸을 돌렸다. 대충 사정은 들었고, 이제 이걸 각색해야 할 차례였다. 그러다가 잠시 자리에 멈춰 선 김용우가 유은혜에게 말했다.
“근데 그럼 지금 네 나이가 몇인 거냐? 설마 나보다 많지는 않겠지?”
“닥쳐욧.”
그로부터 7일.
마수들의 공격이 멈췄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가장 큰 공헌을 한 천명회의 이름을 널리 부르며.
특히 유은혜와 에드워드는 일약 대스타가 되었다. 안 그래도 유명했지만 이제는 한국에서 유명세로 따라올 이가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각성자 중에서도 최강자의 반열에 들었다. 상급의 레벨이 상당한 마수마저 홀로 사냥하는 모습에 각성자들도 둘을 따르게 되었다.
모두가 안심하며 다시 재건에 힘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두가 마음을 놓을 찰나, 대규모 공습이 재개되었다.
* * *
“공작 마르틴이라…….”
수정구를 살피며 나는 조용히 말했다.
대규모 공습으로 말미암아 수정구 안에선 선혈과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나는 일거수일투족, 로이와 로제, 크리슬리를 통해 인간들의 상황을 보고받았고, 이상함을 느끼며 조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마수들을 움직이는 자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작 마르틴!
나도 익히 아는 녀석이다.
‘판데모니엄, 끝까지 귀찮게 구는군.’
바로 판데모니엄 휘하의 마족 중 하나였다.
아마도 이 일에는 판데모니엄이 개입했을 것이다.
놈의 허락 없이 마르틴이 독자적으로 한국을 노릴 수는 없었으니.
내 던전도 아니고, 어째서 한국을 공략하는 걸까?
죽음과 생명의 나무. 눈치챌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처럼 체계적으로 공격하고 들어오는 걸 보면 사전에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보복?’
기린과 한국의 각성자들은 판데모니엄 휘하 마족들의 빈집을 턴 적이 있었다. 판데모니엄으로서는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판데모니엄은 특히 인간들을 멸시하는 대공이었다.
그에 대한 보복도 충분히 생각할 순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 내 던전이 있다는 걸 안다. 물론 내가 인간들과 관계가 있다는 건 아직 모르는 것 같지만…….
여기서 나의 선택이 중요하다.
섣불리 나섰다가 관계를 들키면 마족들에게 좋은 구실만 주는 셈이다. 일단 나를 ‘배제’시키자는 구실을 말이다.
하지만 공작 마르틴이 나섰다면 아직 인간들로서는 막는 게 역부족이다. 유은혜와 에드워드가 만족스러운 성장을 이루긴 했지만 공작급은 이야기가 다르다.
‘지금의 공격도 모든 전력을 다한 게 아니다. 마치 탐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야.’
수정구를 다시금 들여다보며 턱을 쓸었다.
각성자들은 어찌저찌 마수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쉽게 밀리지도, 밀지도 못하는 싸움이 계속되는 중이었다.
‘단순한 보복일 가능성. 허나 공격하는 모양새를 보면 그것 또한 아닌 것 같고…… 무언가를 찾고 있는 건가?’
보복이었다면 단번에 쓸었을 것이다. 적당히 전력만 파악한 후 태풍처럼 휘몰아쳤으리라. 판데모니엄의 성격이 그랬다.
그러지 않고 있다는 건, 다른 이유가 있다는 뜻일진대.
생명과 죽음의 나무는 아니었다. 시기가 맞지 않다.
‘나도 살짝 간을 봐야겠군.’
그 이유가 심히 궁금하다.
짐작이 가지 않으니 찔러볼 수밖에.
“이히. 그리핀과 기간테스, 히드라를 부르고 출전을 준비해라. 오랜만에 외유를 하겠다.”
“이히히히. 마스터, 이히도 가도 돼요?”
“……네가?”
미간을 좁혔다.
던전의 요정은 던전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게 정설이다.
여태껏 그런 의견을 내 비춘 적도 없기에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함께 가자고 말한다.
내 표정을 본 이히가 추가 설명을 했다.
“원래는 안 되는 건데 이제는 될 것 같애요. 이히도 던전 바깥을 구경하고 싶어요!”
잠시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히가 바깥에 나감으로써 생기는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
“내가 시킨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
“이히히히, 당연하죠. 이히는 마스터의 말을 잘 들어요.”
잘 듣던가?
반신반의이긴 했지만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어떻게든 바깥을 구경하겠다는 듯 눈을 불태우고 있었다.
하여튼 최상급의 마수들을 따로 움직일 자가 필요하긴 했다.
“준비하도록.”
“네에~ 이히히히히히히!”
이히가 덩실덩실 춤을 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