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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181화 (181/242)

던전 사냥꾼 181화

* * *

공작 마르틴.

그는 항시 눈과 귀를 열어 두고 있었다.

은신성이 좋은 마수나 곤충 등을 이용해 인간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성녀의 힘은 나를 완전하게 해 주리라.’

예지를 한 건 오래전 일이 아니었다. 불과 한 달도 안 된 일. 그러나 이 한국이란 나라에서 성녀가 나타나리라는 건 확실했다.

문제는 정확한 시기와 장소를 알 수가 없다는 것.

심지어 성녀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몰랐다. 20대의 여인이라는 게 마르틴이 예지한 예견의 전부였다.

이처럼 그의 능력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었다. 미래를 보는 게 가능하다는 희대의 능력을 가졌지만 정작 파악할 수 있는 건 굉장히 한정되어 있었다.

항상 그게 불만이었고…… 완전한 예지를 가능하게 하려면 신의 정혈이 필요했다.

‘신의 정혈. 신에게 축복받은 성녀라면 충분히 가능할 터.’

완전한 예지라.

상상만으로도 몸이 달아오른다.

공작의 직위에 있지만 마르틴은 야심가였다.

판데모니엄의 능력에 반해 그 밑으로 들어가긴 하였지만 자신의 힘이 더욱 강해진다면 미련 없이 버릴 수도 있었다.

도리어 자신이 대공이 되는 것도 아예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예지를 한 즉시 독단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마수들의 주도권을 가져와 조종하는 것도 마르틴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깊은 땅굴 안에서 수정구를 바라보며 마르틴이 지팡이를 놀렸다.

“숲이 생기고 징조가 나타났다.”

성녀의 출현을 알리는 징조!

없던 숲이 생겨나고 그곳에 성스러운 검이 발견되었다.

인간들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지만 천사들이 지키고 있다면 분명히 ‘징조’에 가까웠다.

성녀의 출현이 임박했다는 뜻.

아직까진 발견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한데…….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군.’

무언가가 걸렸다. 그게 무엇인지를 몰라서 답답했다.

‘아직 확정되진 않았다. 내 죽음과 관련이 있다면 내가 예견하지 못할 리가 없지.’

애써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불확실한 능력이라도 스스로와 관계된다면 조금 더 앞서 나간 예지를 하는 게 가능하다. 말인즉, 적어도 자신이 죽을 일은 없다는 것.

‘인과율을 벗어난 존재라면 몰라도. 그런 존재가 이 지구에 있을 리가.’

불안함을 지우자 헛웃음이 나왔다.

인과율이란 쉽게 엎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엎을 수 있는 이들은 대부분이 ‘신’이라고 불렸다.

“성검의 위치를 확실하게 파악해라. 내가 직접 나서겠다.”

모든 마수들에게 명했다.

어차피 내친 김이었다.

마르틴은 좀 더 적극적인 공세를 다짐했다.

* * *

마수들의 움직임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곳곳에 퍼져 있던 마수들이 숲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낚였군.’

가만히 미소 지었다. 대규모 마수를 움직일 수 있는 자.

마르틴이었다.

필시 성검을 먼저 확보하려는 셈일 거다.

성스러운 무기는 성녀를 대변하므로. 당연히 성검은 성녀를 끌어들이는 힘을 지녔다.

‘진짜 성검은 아니지만…… 미끼로는 충분했어.’

업적 상점에서 2천 점을 내어 주고 구매한 무기, ‘라이팅 소드(Epic)’였다. 에픽 등급치고는 썩 좋은 옵션은 없었지만 성검의 흉내를 내기엔 더없이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바로 움직일 줄이야. 역시 인간들도 살피고 있었다는 건가?’

마르틴은 조심스러웠다. 눈과 귀가 곳곳에 깔려 있다는 건 눈치챘지만 모두 다 발견하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예상처럼 인간들도 감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들을 끌어들여 소문을 퍼트린 게 효과가 좋았다. 모두 계획한 대로다.

이제 남은 건…….

‘성검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며 성녀를 찾는 것.’

마르틴이 마수들을 이끌고 움직이긴 하겠지만 표면에 드러나진 않을 터였다. 뒤에서 움직이며 위험할 때 바로 발을 빼리라.

물론 그래도 내가 마르틴을 잡을 가능성은 반이었다. 일단 숨어 있는 장소에서 나온 이상 나도 마음먹기에 따라 파악하는 게 가능한 덕이다. 하지만 놓칠 가능성 역시 반이었다.

나는 보다 확실하게 마르틴을 잡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성녀라는 카드를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성검은 마르틴의 애를 태우는 용도로 사용하면 족했다.

‘한국의 성녀라…… 한 명이 있긴 했지.’

나는 전생의 기억을 되돌아보았다.

이름을 날린 성녀는 제법 있었지만 한국의 성녀는 그다지 이름을 날리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분명히 한 명이 있긴 있었고, 각성의 시기도 한참 늦었지만…….

‘김유라.’

고개를 주억였다.

시기가 다르대도 성녀의 자질이 있는 여자가 달리 또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김유라. 한국의 성녀가 될 여자의 이름이었다.

‘나이가…… 지금쯤이면 10대 중반 정도이겠군.’

대충 특색을 기억해 내곤 즉시 움직였다.

오랜만에 로이와 로제를 만날 차례였다.

늦은 저녁.

어스름한 보름달 아래에서 쏜살같이 움직였다.

바람을 타고 이동하며 미약하게 마력을 개방했다.

“나의 던전 마스터시여.”

“크리슬리, 잘 지냈나?”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

그곳에서 입꼬리를 말아 올리곤 말했다. 내 앞에 나타난 크리슬리는 얼굴을 가린 베일을 풀고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제가 맡은 일은 그다지 어려운 게 아닙니다. 로이가 믿음직해진 것과 별개로 로제가 조금 말썽꾸러기이긴 하지만요.”

크리슬리도 가벼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크라스라가 죽은 이후 서글픈 얼굴을 자주 보였으나 이제는 상당히 극복한 모습이었다.

로이와 로제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을 준 것 같았다.

“로이와 로제는?”

“자고 있습니다. 깨울까요?”

“굳이 깨울 필요는 없겠지. 너와…… 기린에게 말해 놓으면 충분한 일이니.”

슬쩍 시선을 돌렸다. 공간이 일렁이며 기린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이마에 돋은 뿔과 엉덩이 쪽에 난 아홉 개의 기다란 꼬리가 그녀의 특색이었다. 기다란 머리를 찰랑이며 기린은 무표정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이군요.”

“능력의 활용이 조금 더 능수능란해진 것 같군.”

“결계를 이용해 공간과 공간을 엮었어요.”

“호오…… 그런 게 가능한가?”

“가능했으니까 한 번에 왔겠죠. 그보다 무슨 일이죠? 처음을 제외하면 한 번 모습을 안 보이시던 분이.”

말투에 가시가 돋았다.

하기야 나는 기린에게 적의 던전이 어디에 있는지만 알려 주고 방치했다.

이후 겪었을 풍파는 제법 거셌을 것이다.

창조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으니 문제가 빗발쳤으리라.

“사람을 찾아 줘야겠다. 이름은 김유라. 10대 중반에서 후반 사이. 여자다.”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기린도 딱히 기대는 안 했다는 듯 고개만 갸웃했다.

“누구죠? 그대가 찾는다면 평범한 인간은 아니겠군요?”

“신경 쓰지 마라. 너와 인간에게 해가 되진 않을 것이다.”

“그럼 마족에게 해가 된다는 거군요. 혹시 그대를 위협할 인간인가요? 그래서 싹을 자르려고?”

“비슷하지만 아니군. 나를 위협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마족도 개인으로서 나를 위협할 존재는 극소수였다. 내가 견제하는 건 연합이지 그 하나하나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기린도 딱히 할 말은 없는 듯싶었다. 은연중 그러리라고 생각한 것이겠지.

몸을 돌렸다.

“은밀하게 움직여라. 소문이 나서는 안 된다. 찾으면 조용히 내게 끌고 오도록.”

어디까지나 물밑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그렇게 마르틴을 잡을 덫이 하나둘 만들어져 나가고 있었다.

아기 천사의 이름은 하쉬.

타쉬말이 직접 관리하며 얼마 전 알을 깨고 나온 상위계, 그중에서도 지천사급의 존재였다.

나는 이번 일에 하쉬를 투입했다. 천사의 성장은 굉장히 빨라서 벌써 주변을 인식할 정도는 되었고, 나는 하쉬에게 나름의 영재 교육을 시키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작은 빛의 창 몇 개를 날리는 게 전부지만 전투가 일어나는 현황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성장을 도모할 수 있었다. 물론 타쉬말은 반대했지만 하쉬를 제외하면 딱히 ‘징조’로서 사용할 천사가 한정적이어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타쉬말은 얼굴이 팔렸을 가능성이 있고, 설령 겉모습을 감춰도 그 특유의 마력을 알아볼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하쉬는 굉장히 신성한 느낌을 가져다주었고, 얼굴 또한 팔리지 않았다. 징조로서 활용되기에는 딱이었다.

그리고 그런 하쉬를 지키는 천사들도 만만치 않았다. 하쉬에게 해가 가지 않도록 선별하고 또 선별해서 들인 천사들이 지금 성검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마르틴이 작심하고 움직여도 버틸 수 있는 전력. 하지만 해 볼 법하다고 생각하게 만들 숫자였다. 이는 마르틴을 끌어들이기 위해 직접 조치한 것이었고, 어느 정도 먹혀 들어가고 있었다.

마르틴은 숲과 멀찌감치 떨어져서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흠…… 징조는 확실한 모양이군. 최상급의 마수들과 천사들이 서로 견제를 하는 걸 보아하니…….”

기간테스와 그리핀, 히드라!

세 마수는 마르틴도 쉽사리 건드릴 수가 없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잡는 게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그로 인한 피해가 더욱 막중할 게 뻔했다.

특히 저 히드라는 알려지지 않은 게 많았다. 격도 남달랐고, 그만큼 강하기도 하였다. 어쩌면 마르틴 본인이 직접 나서야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저 세 마수가 숲의 근처에서 힘 씨름을 하는 중이었다. 숲의 천사들은 세 마수가 숲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견제를 하고 있었다.

직접적인 공격이 오가지는 않았지만 당장 싸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이다.

‘랜달프 브뤼시엘, 이 한국의 던전은 놈의 것일 확률이 높다. 아니, 설령 어느 마족이라도 바로 앞에 생겨난 천사들을 방치하진 않겠지. 어쩌면 곧 마수들을 이끌고 공격을 가할 수도 있겠어.’

마르틴은 지팡이를 잠시 내리고 미간을 쥐었다.

랜달프 브뤼시엘, 혹은 다른 마족이 숲을 공격하면 필연적으로 성검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된다.

설령 성녀의 출현을 모르더라도 성검은 성녀를 끌어들이는 힘을 지녔다.

만약 성녀가 넘어간다면 찾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중간한 마족이라면 괜찮겠지만 상대가 랜달프 브뤼시엘이면 복잡해진다.

‘놈은 강하다. 게다가 특이하지. 성녀라고 그냥 죽이지는 않을 터. 어쩌면 나와 비슷한 일을 계획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급해졌다.

성검이 놈의 손에 들어가면 자신이 세운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완전한 예지도 멀어지는 것이다.

‘저 마수들이 숲을 공격하기 전에 성검을 찾아야 한다.’

마르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간테스와 그리핀, 히드라를 대동한 마수들이 움직이면 천사들이라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속절없이 밀릴 테고 성검까지 도달하리라.

“그레이트 웜, 길을 만들어라. 숲의 중심부와 이어지는 아주 긴 길을.”

그러니까 그 전에 찾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예로부터 성녀는 고비의 시기에 나타나곤 했지. 듀라한 부대와 뱀파이어들은 인간들을 공격하고 괴롭혀라. 인간들이 절망하도록 만들라.”

성검에만 목을 맬 생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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