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182화
* * *
뱀파이어, 밤의 지배자. 상급 4Lv의 마수로 랭크된, 일반 마수 중에서도 격이 높은 이들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스스로를 고귀하다고 여기는 종족이지만 던전 마스터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이들은 인간들을 습격하고 피를 주입하여 좀비로 만들었다.
진짜 혈청을 주입하면 ‘데미 뱀파이어’가 되지만 인간에게 그만한 적성이 있어야 했고 쉽게 만들지도 않았다.
급조된 좀비는 28일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소멸하나 인간들에게 공포를 심어 주기엔 더할 나위 없었다. 최하급의 마수일지라도 오랫동안 알았던 사람이 좀비가 되어 자신을 습격한다는 공포는 처절할 정도로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 좀비를 직접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도 말이다.
또한 뱀파이어는 악질적인 장난을 좋아했다.
좀비가 된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을 습격하도록 명했다.
“승미야, 이, 이러지 말자. 오빠 못 알아보겠어? 승미야! 제발!”
“크아아악!”
허름하기 그지없는 판잣집. 그곳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서로 없이는 못 살던 남매가, 가족이, 친구가…… 일파만파 빠른 속도로 좀비가 확산되며 각성자들마저 해결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빠르게 긴급회의가 소집되었지만 마땅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최대한 사람들을 모아 두고 어두운 장소에 발을 디디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전부였다. 각성자들이 순찰을 도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시민들은 지쳐 있었다. 스트레스가 나날이 늘어서 폭발 직전이었다. 억지로 가둬 두는 모양새가 취해지자 반발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진퇴양난. 그러나 더는 피해를 늘릴 수 없었다.
모든 길드가 연합하며 사람들을 습격하는 존재에 대한 추격을 시작했고, 머지않아 작은 결실을 맺었다.
“상대는 뱀파이어.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닙니다.”
길드 마스터와 길드의 주요 인원들이 모인 회장 안.
유은혜가 나서서 브리핑을 시작했다.
현재 각성자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게 그녀였고, 이번 작전에서도 가장 큰 역할을 해낸 게 유은혜였다.
선이 곱고 발랄한 외모로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았지만 그와 별개로 ‘번개의 마검사’로서 제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평소 말투나 생긴 것과는 다르게 철벽녀로도 유명했으나 그만큼 공과 사를 잘 따지는 성격 때문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자리에 서는 게 익숙하지 않음에도 전혀 긴장하지 않은 듯 여유롭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중이었다.
“우선…… 생포한 놈을 보시죠.”
탁! 유은혜가 손뼉을 치자 김용우와 이지혜가 직접 바퀴가 달린 철창 하나를 끌고 왔다. 길드 마스터인 김용우가 이런 잡일을 자처할 수준이니 그 정도로 사안이 급하다는 방증이었다. 당연히 다른 길드원들의 집중력도 높아졌다.
그리고 철창 안에 시체처럼 늘어진 마수의 정체에도 많은 사람이 놀라고 말았다.
“저건…….”
“뱀파이어가 아닌가?”
유은혜가 고개를 주억였다.
“맞습니다. 이번에 생포한 뱀파이어이지요. 워낙 강한 마수인지라 총공격을 가한 끝에 겨우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많은 피해 끝에요. 여러분을 은밀히 부른 것도 이 뱀파이어 때문입니다.”
유은혜는 작게 이를 갈았다. 뱀파이어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잡는 데 수십의 각성자가 죽어 나갔다.
뱀파이어를 공개하는 일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각 길드의 주요 멤버들만 알고 참석할 수 있게 손을 쓴 것이다.
“허!”
“대단하군.”
그러나 사람들은 결과만을 가지고 크게 놀랐다.
뱀파이어가 출현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여러 나라에서 이미 발견된 마수이며 그 강함 역시 인증이 되어 있었다. 비록 반시체라고 하지만 생포했다는 사실이 놀랍기 그지없었다.
“우리는 뱀파이어가 한국을 습격하고 좀비를 만든 목적을 알아보려고 뱀파이어를 심문했습니다. 육신을 쇠약하게 만든 뒤 각종 약물과 몽환 계열, 최면 계열 스킬의 도움을 받아서 성공했지요.”
다소 자극적인 내용이다. 하지만 나중에 말이 나올 바에는 지금 다 털어놓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부 오픈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굳이 뒤를 잡힐 염려도 없으니 말이다.
“이걸 봐주세요. 뱀파이어는 이 하얀 약물이 든 병을 다수 가지고 있더군요.”
유은혜가 품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냈다. 하얗고 묽은 약물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그게 뭔가?”
플래티넘 길드의 마스터가 묻자 유은혜는 순순히 답했다.
“무언가를 판별하는 약물입니다. 인간이 그냥 섭취하면 이지를 상실하게 만드는 극독이기도 합니다.”
“판별?”
“그 전에…… 마수들의 습격이 시작된 이후 많은 각성자들이 실종된 일을 아십니까?”
“마수와의 싸움은 격했으니까.”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시체를 찾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유은혜는 잠시 숨을 들이마신 뒤 말을 이었다.
“성녀를 찾고 있다고 합니다. 이 약물은 그 성녀를 판별해 줄 도구라고 하더군요. 아쉽게도 저희가 알아낸 건 거기까지였습니다만…… 이들의 뒤에 어떠한 마족이 있음은 분명합니다.”
“마족……!”
“미친! 사라진 게 아니었나?”
사람들이 웅성댔다. 무리도 아니다. 마족들의 공격이 얼마나 끔찍한지 몸소 겪은 이들이었다. ‘구세주’의 등장으로 겨우 끝을 맺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금 마족이 나타난 것이다.
몸을 꽉 껴안고 떠는 이들마저 있었다. 이곳에 모인 각성자는 모두 정예임에도 당시의 공포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성녀입니다. 예상컨대, 마족은 성녀의 출현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저지하고자 미리 수를 쓰는 겁니다.”
“그럼 우리가 먼저 성녀를 찾으면 되겠군.”
“예, 이 약물을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하겠지요.”
“하지만 그 약물은 이지를 상실하게 만든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일반적인 사람에 한합니다. 성녀에게는 그런 효과가 없다고 하더군요.”
유은혜의 말에는 분명히 빈틈이 있었다.
그것을 이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깨달았다.
“성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건가? 아니지 그러면 굳이 약물을 사용할 필요조차 없겠지.”
“이런 중요한 회의에 구세주의 아이님들과 기린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몇몇 길드도 빠져 있지요.”
“……? 그분들은 워낙 바쁘신 분들이 아닌가. 길드 모두가 참석하는 일도 좀처럼 없고.”
그다지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없었다. 로이와 로제, 기린이 회의를 빠지는 건 일상다반사였다.
“저는…… 저와 천명회 길드는,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이들의 움직임에 의아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로이와 로제 님, 기린 님은 최근 들어 믿을 만한 사람들을 시켜서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 같더군요.”
“자네, 위험한 소리를 하는군. 그분들을 의심하는 건가?”
적어도 한국에서 그들은 신적인 존재다. 실제로 기린의 경우엔 신처럼 숭배받았고, 로이와 로제도 구세주의 아이들이라 하여서 그만한 접대를 받고 있었다.
한국에서 그들을 의심한다는 건 신성 모독과도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유은혜는 고개를 끄덕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저는 그분들이 찾는 사람이 ‘성녀’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저희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 역시. 어떠한 확신을 가지고 움직이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우리를 모아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 거지?”
“협조를 해 주셔야겠습니다. 저와 천명회의 힘만으로는 그분들을 압박하기가 힘들거든요. 공적인 일로 만들어 정보를 공개토록 하는 게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입니다.”
“미쳤군.”
한 단어로 요약됐다.
이건 미친 짓이다.
태평성대도 아니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런 행태를 취하는 건 결코 옳지 않다.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국에 굳이 분열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해서 조금 부족하거나 미심쩍은 일이 있어도 눈을 감아 주는 게 의례였다.
설령 유은혜의 말이 진실이라 할지라도 덮어 주는 게 맞다.
“나는 저 미친 짓에 동의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네. 더는 못 들어 주겠어.”
플래티넘 길드의 길드 마스터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의 길드원들도 함께 무릎을 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회장의 문이 열리며 다수의 각성자들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천명회, 혹은 천명회와 긴밀한 관계에 놓인 각성자들이었다.
유은혜는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동의를 하는 분만 나갈 수 있습니다. 동의를 못하시는 분들은…… 이번 일이 해결될 때까지 이곳에서 잠시 대기를 해 주셔야겠습니다.”
“우리를 강제하려는 셈인가! 정녕 천명회 길드가 미쳐 돌아가는구나! 최고의 길드라고 주변에서 떠받들어 주니 눈까지 멀어 버린 거냐! 전쟁이 벌어질 거다!”
“전쟁은 두렵지 않습니다. 진짜로 두려운 것은…….”
잠깐의 침묵 끝에 유은혜가 마저 말했다.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 채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죠.”
* * *
나는 마르틴과 줄타기를 하는 중이었다.
숲을 공격하려는 모양새를 취하고 공격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마르틴은 벌써 두 번이나 숲을 침략했다.
‘모두 실패했지만.’
그레이트 웜으로 땅굴을 파고 기습하는 작전을 좋았다. 단번에 성검의 근처까지 다다라 천사들에게 위협을 가했다.
그러나 천사들이 땅굴을 억지로 무너트려 피해를 최소화했다. 반대로 마르틴은 투입한 마수 대부분을 잃었다.
두 번째 공중이었다. 와이번 무리에 마수들을 태우고 이동했다. 천사들은 날지 않고 울창한 숲 안에 숨어서 원거리로 요격을 가했다. 마르틴의 딴에는 천사들은 날개가 있으니 공중에서 상대를 해 줄 것이라고 기대한 듯했다.
‘재미있군.’
모두 내가 지시한 사안이었다.
나는 현재 숲 안에 있었다. 성검의 주변에서 은신한 채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천사들도 진정으로 내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는 발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꺄아~
하쉬.
녀석은 달랐다.
단박에 내가 자리한 위치를 알아내고 다가왔다.
태어난 지 몇 주가 채 지나지 않은 아기 천사가 내 어깨 위에 올랐다. 음의 마력과 신성력이 부딪치며 강한 반발이 생겨났지만 둘 다 큰 피해는 없었다.
둘 다 지극히 순수하고 강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다.
“특이한 녀석이군.”
보통 천사는 마족을 싫어하는 게 본능이다. 나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단지 다른 마족들보다 수비 범위가 넓을 뿐이었다.
나는 짧게 혀를 차며 심안을 열었다.
이름: 하쉬
직업: 상위 천사(지천사)
칭호 :
* 지천사의 권위(Legend, 모든 능력치+7)
능력치 :
힘 12(+7) 지능 35(+7)
민첩 20(+7) 체력 12(+7) 마력 44(+7)
잠재력(123+35/548)
특이 사항: 타락한 천사의 보살핌으로 태어난 천사입니다. 천왕의 축복, 근원의 축복과 여러 특이점의 조합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
스킬: 작은 빛의 화살(U)
마족은 한계 돌파를 해야만 넘을 수 있는 잠재력 수치를 태어나자마자 지니고 있었다. 상위 계급의 천사라서 그런 걸까? 천계에도 몇 없는 존재이니 그만한 강함을 지니고 있는 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허나…… 이런 걸 보면 천사에 비해 마족이 약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마족의 ‘본질’, 내가 타락 스킬을 사용할 때 변한 모습이 진정한 마족이었다면 그 모습을 잃어서 마족들이 전체적으로 약해진 것 같았다.
‘오쿨루스는 그것을 느낌으로나마 알고 있었던가.’
그토록 진화를 울부짖던 마족은 오쿨루스를 제외하면 없었다.
알고 있었다면 그는 시대를 앞서 나간 마족일 따름이었다는 재평가가 가능해진다. 이미 죽어 사라진 녀석이지만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꺄아~
하쉬는 아직 어렸다. 그러나 마냥 어리지만도 않았다. 녀석은 주변의 영향을 받아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유독 겁이 없었지만 나를 적대하는 것보단 나았다. 아무래도 던전 마스터로서의 영향력이 지천사에게도 영향을 끼치는 듯했다.
내가 막 하쉬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밀어내고 있을 때였다.
―나의 던전 마스터시여.
품속에서 크리슬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지?”
작은 수정구를 꺼내 들며 말하자 크리슬리가 다소 흥분한 듯이 답했다.
―성녀를 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