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사냥꾼-183화 (183/242)

던전 사냥꾼 183화

드디어!

입가에 냉소가 지어졌다.

드디어 마르틴을 끄집어낼 결정적인 카드가 손에 쥐어진 것이다.

“확보했나?”

―아직입니다. 약간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라니?”

―인간들이 성녀의 정보 공개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움직이는 걸 약간이나마 눈치를 챈 듯하여…….

고개를 갸웃했다. 인간들이 어찌 성녀에 대한 정보를 얻었단 말인가. 그에 대한 보고는 받은 적이 없는지라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공작 마르틴의 휘하 마수 중 뱀파이어 한 마리를 생포한 듯싶습니다.

“뱀파이어는 자존심이 강한 족속들이다. 하물며 던전 마스터와 관련된 정보를 쉽게 불지도 않을 터인데?”

―약물과 각종 스킬을 이용한 게 아닐는지요. 인간 각성자들은 저희도 모르는 스킬을 많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인간은 많다.

그리고 각기 다른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살짝 획일화된 느낌이 있는 마수들과는 전혀 달랐다.

“갑자기 움직인 건 아닐 터. 이끄는 우두머리가 있을 것이다.”

―예, 나의 던전 마스터시여. 천명회와 유은혜가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탁. 이마를 짚었다.

세상사가 내 마음대로 돌아가리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지만 하필 그 둘일 줄이야.

그리고 그 둘이 나섰다면 크리슬리가 쉽사리 움직이지 못한 것도 이해가 된다.

‘어찌한다.’

잠시 고민했다. 성녀에 대한 사안은 인간들에겐 아직 극비였다. 나조차 성녀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알지 못하고, 지금은 그 성녀로 말미암아 마르틴을 낚아야 했기 때문이다.

인간들에게 성녀를 쥐여 줬다간 자칫 계획이 틀어질 우려가 있었다.

‘마르틴도 눈치챘을 가능성이 있다.’

더욱 골치가 아픈 건 마르틴이었다.

마르틴의 경우 인간들의 사이에서도 눈과 귀를 열고 있었다. 지금은 조용하지만 대대적으로 나섰다가 마르틴의 귀에 성녀에 대한 사실이 들어가면…… 필시 로이와 로제를 노릴 것이고, 크리슬리 혼자서는 역부족일 수도 있었다.

“성녀는 각성을 했던가?”

―각성은 안 했습니다. 허나 미약하지만 순수한 신성력을 확인했습니다. 타쉬말이 인정할 정도였으니 확실하지 않을는지요.

신성력을 보는 눈에 관해선 현재 나를 포함한 휘하 마수 중 타쉬말을 따를 자가 없었다. 그 타쉬말이 인정했다면 성녀의 기질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눈을 돌릴 확실한 방법이 필요하겠군.’

특히 인간 각성자들.

힘이 생기자 내 계산을 벗어나려는 경향이 생겼다.

자율적인 판단은 좋지만 적어도 내 울타리 안에서 그들은 존재해야만 했다.

울타리 바깥으로 나가려고 한다면 굳이 내가 그들을 돌보는 이유가 없어진다.

“크리슬리, 로이와 로제에게 전해라. 대규모 마수가 진격할 것이니…… 먼저 ‘예언’하라고 말이다.”

―예언……이라니요?

“가짜지만 진짜 예언을 하는 예언가. 인간들을 움직일 존재로는 적합하지 않은가.”

더불어서 마르틴도 움찔하게 만들 방법이 있었다.

‘인간들이여, 한국에도 던전이 있다는 걸 너무 간과하고 있군.’

여태껏 조용히 있었기 때문일까?

바로 옆에 항거할 수 없는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체감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마르틴의 속을 더욱 타들어 가게 할 작정이었다.

던전의 구조 조정은 필요했다. 구조가 바뀌며 마수들의 생태계에도 변화가 생긴 탓이다. 한 번쯤 물갈이를 해야 했는데 마침 시기가 적절했다.

그사이 로이는 ‘예언가’로서 인간들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큰 달이 떠오를 때 지옥의 입구가 열리며 사자들이 튀어나올 것입니다. 사자들은 앞을 막아서는 모든 존재를 갈가리 찢고 집어삼키는 악한 자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죽음과 삶을 동시에 짊어진 나무를 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들이여! 모두 두 나무의 근처로 모이십시오. 우리는 그곳에서 악이 지나가길 기다려야 합니다.”

구세주의 아이가 예언을 한다?

처음이었다. 하지만 로이의 표정은 비장했고, 적어도 인간들에게 있어서 로이의 말은 구세주나 기린 다음으로 영향력이 컸다.

로이의 말은 서울특별시 전역에 빠르게 퍼져 나갔고, 생명과 죽음의 나무 곁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름달이 뜬 저녁.

무려 5만에 달하는 마수가 던전을 빠져나왔다.

* * *

한국의 던전을 대표하는 마수는 무엇이 있을까?

일단 샤벨 타이거가 있다. 가장 많은 숫자를 가졌고 그 성향도 지극히 공격적이다. 어지간한 마수는 기다란 송곳니에 그대로 꿰뚫려 죽는다.

백치호는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마족과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했다. 하지만 그 뒤를 흑치호가 잇고 있었다.

게다가 흑치호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무려 일곱 마리나 되는 흑치호가 그사이 태어난 것이다. 백치호는 없어도 상급 4Lv의 마수인 흑치호 일곱 마리라면 그 공백을 채우고도 남는다.

상급 3Lv 마수인 적치호도 무려 20마리나 있었다. 단순 샤벨 타이거의 숫자만 해도 3천에 달했다.

그다음으로 많은 개체 수를 유지하고 있는 건 미노타우르스였다. 2,200! 특이체는 없었으나 적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존재로서는 더없이 적합했다.

물론 이 수치는 최하급과 하급 마수를 제외한 것이었다. 오크나 고블린의 번식률은 상상을 초월하니 말이다.

다크 베어, 메머돈 등의 짐승류 마수가 유독 많았는데, 그만큼 던전의 특성과 맞다는 뜻일 테다.

하여간…… 나는 이번 출전에 최하급과 하급의 마수는 아예 빼 버렸다.

오로지 중급 이상의 마수로 5만을 채웠다.

던전 하나에서 나온 숫자치곤 압도적인 물량!

마수들은 즉시 숲의 근처로 진격했다. 이후 숲 주변과 서울특별시 주변을 맴돌며 극적인 상황을 연출시켰다.

* * *

김유라는 눈물을 흘렸다.

마수들로 인해 가족을 잃고 ‘자신’도 잃은 그녀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너무나도 힘들었다. 화상으로 인해 얼굴은 흉측했으며 허리를 다쳐서 하반신에도 마비가 왔다. 시력도 극히 안 좋아서 바로 앞에 있지 않는 이상 거의 분간하지 못할 정도다.

뿐만인가.

머리칼 또한 전부 잃었다.

그야말로 죽지 못해서 살고 있는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살아 있는 이유는 가족 중 유일하게 살아 있는 여동생 때문이다.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이 죽으면 따라서 죽겠다는 여동생 때문에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었다.

자신보다 두 살 어린 여동생은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세계가 이 모양이 된 뒤로 제대로 된 일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아침에는 막노동을, 저녁에는 김유라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몰래 빠져나가 각성자들을 상대로 ‘밤일’을 하였다.

정작 동생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김유라는 알고 있었다. 아니라면 할 줄 아는 게 없는 동생이 자신의 몫까지 하루 세끼를 차릴 수가 없으니 말이다.

하물며 외곽이라지만 제법 그럴싸한 판잣집도 구했다. 유명 길드의 각성자가 여동생의 편의를 봐줘서 가능했다는 것쯤은 주변에서 들리는 말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어, 어그이…… 왜 그에……?”

김유라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잇몸이 녹은 뒤로 말조차 제대로 나가질 않았다. 지옥이 있다면 이곳이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보다 눈앞의 동생에게 더욱 신경이 갔다.

여동생, 김민지는 만신창이였다. 얼굴이 붓고 눈에는 멍이 있었다. 머리칼도 헝클어졌으며 입가에 묻은 피가 적나라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언니, 그보다 빨리 여길 빠져나가야 돼.”

“에?”

“구세주의 아이께서 예언하셨대. 이 주변은 곧 마수들이 들이닥칠 거야. 빨리 두 그루 나무가 있는 곳으로 피신해야 돼. 다른 사람들은 벌써 떠났어.”

김유라를 휠체어에 태운 후 김민지는 억지로 끌고 나가기 시작했다.

판잣집을 빠져나오자 김민지의 말마따나 주변 사람들이 짐을 하나씩 이고 움직이는 중이었다.

반면 자신들이 가진 거라곤 몸뿐이 없었다. 어떻게든 사람들과 합류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뿐이었다.

행렬은 끝도 없이 길었고, 속도는 느렸다. 게다가 김민지는 다친 상태였다. 빨리 치료를 받아도 부족한 판국에 억지로 휠체어를 끄는 중이니 입에서 연신 단내가 나왔다.

김유라는 자신을 버리라고, 그대로 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런 말이 여동생을 더욱 힘들게 하리라는 걸 알았다. 그저 조용히 있어 주는 게 김유라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고 저녁이 찾아왔다.

행렬은 잠시 멈췄고, 지쳤는지 김민지는 곧장 휠체어에 기댄 채 잠들었다.

“개……새끼들…… 어떻게 모은…… 돈인데……. 언니…… 내가 꼭 고쳐 줄게…….”

김민지의 잠꼬대를 들은 김유라는 와락 눈물을 흘렸다. 힘겹게 손을 옮겨 여동생의 뺨을 쓸며 김유라는 기도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제발 동생만큼은 편히 살 수 있기를.

하지만 그게 꿈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장 다음 날부터가 문제였다.

목이 탔다. 배가 고프고 머리는 어지러웠다.

하지만 맨몸으로 나왔으니 먹고 마실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김유라는 참았다.

꼬르륵!

그러나 비정상인 몸 중에서 가장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게 하필 위장이었다.

“언니, 배고파? 기다려. 내가 마실 거라도 구해 볼게.”

김민지는 마른 입술을 핥으며 사람들 사이를 오갔다. 그러나 돌아온 건 싸늘한 시선뿐이었다. 이 행렬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이상 자신의 식량을 함부로 나눠 주는 사람은 없었다.

착한 사람은 이미 전부 죽었다…… 그런 말이 오가는 현세다. 이해는 되었다. 저들도 자기 목숨이 중요하고, 가족이 있는 사람도 있으니까.

결국 그날 저녁까지 구한 것이라곤 먹다 남은 풀죽 조금이 전부였다.

“미안해, 언니. 내일은 꼭 먹을 만한 걸 구해 볼게.”

김유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릇을 내밀며 권했지만 김민지도 마다했다.

“나는 구해 올 때 조금 먹었어. 언니가 안 먹으면 그냥 버릴 거야.”

동생인 김민지는 한다면 진짜로 하는 아이였다. 김유라는 하는 수 없이 풀죽을 먹고 배가 부르다는 듯 한 수저를 남겼다.

그리고 눈을 감자 얼마 안 있어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슬쩍 눈을 뜨니 여동생은 언제 챙겼는지 화장 도구로 화장을 하고 있었다.

‘아…….’

김유라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이 세상은 정말 지옥이라 생각하며.

다음 날 아침은 무사히 먹을 걸 먹을 수 있었다. 고구마 하나와 생수 한 통이 전부였으나 달콤하기 이를 데 없었다.

“조금만 더 가면 돼. 언니, 기린님 본 적 없지? 세상에서 그보다 아름다운 분은 없을 거야. 언니도 보면 한눈에 반할걸? 구세주의 아이들께서도 얼마나 깜찍한데. 난 먼발치에서 한 번씩 본 적 있다.”

휠체어를 끄는 김민지가 신이 나선 계속 떠들었다.

중앙이 가까워질수록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진짜 구세주님은 본 적이 없어서 아쉬워. 듣기로는 되게 무뚝뚝한 사람이라던데. 대신 엄청나게 멋있대.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말이야. 히히, 백마 탄 왕자님 같을까?”

구세주라.

여동생은 그 구세주라 불리는 남자에게 관심이 특히 많았다.

이 시대의 백마 탄 왕자라며 언젠가 자신을 이 지옥 같은 곳에서 구원해 줄 구원자 정도로 여겼다.

반대로 김유라는 회의적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남아 있을 리가 없다.

착한 사람은 모두 죽었다. 자신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착한 사람은 여동생 하나뿐이었다.

“뱀파이어다!”

“아아아악!”

그때였다. 선두에서 비명이 울려 퍼지며 사람들이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어, 언니!”

사람들이 부리나케 이동하자 휠체어도 위험했다.

겨우 버티고 서 있는 게 전부였다.

쾅!

쿠르릉!

그때 반쯤 무너진 건물이 무언가에 맞고 폭발을 일으켰다.

사방에 건물의 파편이 떨어졌고…….

“피해!”

김민지가 휠체어를 던지듯 밀어냈다.

그 탓에 김유라는 휠체어에서 떨어졌지만 대신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다.

“아…….”

목숨은 부지했으나 그 대신 여동생이 철조물 아래에 깔렸다.

허리가 양단이 됐으며 ‘꺼억!’ 소리만 내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아……!”

김유라는 양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으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도착한 즉시 김민지는 고개를 떨궜다.

“아아아아!”

김유라는 애써 김민지의 얼굴을 부여잡고 흔들어 보았다. 그러나 이미 숨을 멈춘 자가 다시 고개를 들 리가 없었다.

순간 여동생과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자신을 위해 헌신하던…… 빛 하나 보질 못하고 이처럼 쓰러질 아이가 아니었는데.

밉다. 모든 게 밉다. 왜 착한 사람은 모두 죽어야 하는 건가. 왜 신은 나쁜 사람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는가.

동시에 김유라의 주변으로 빛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이내 그 빛은 주변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 * *

“이런 식으로 각성을 하는군.”

막대한 신성력.

피부가 저릿하다.

나는 지난 며칠간 성녀가 맞는지 확인하고자 김유라를 몰래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각성한 것이다.

각성할 때 주변의 모든 마수는 이 빛을 견디지 못하고 소멸하기 일쑤였다. 실제로 뱀파이어 세 마리 정도가 빛에 휩쓸려 사라졌다.

초월의 영역에 이른 나조차 피부가 따가웠으니 가공할 만하다.

‘하지만 절반의 각성이다.’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성녀일진대 흉측한 모습은 그대로였다. 세상에 대한 미움으로 각성했기 때문일까?

도리어 신성력의 폭주로 전신에 기포가 올라오고 있었다.

이대로면 머지않아 자폭하리라.

그래서 절반의 각성이라 칭한 것이다.

이 폭주를 멈추려면 극한 감정의 상태를 지울 필요가 있었다.

하여…… 나는 가만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살리고 싶나?”

이후 반토막 난 김유라의 여동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