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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185화 (185/242)

던전 사냥꾼 185화

고양된 나의 감정이 분노를 떨게 만들었다. 직접적인 나의 무력을 적나라하게 보이는 건 판데모니엄에게 좋은 정보가 될 테지만 반대로 그만한 억제력이 될 수도 있었다.

마르틴까지 잃은 판데모니엄은 행동을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여태껏 누적된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니 회복하는 데 전념할 것이다.

그사이 더욱 치고 나가는 게 나의 목표였다. 아니, 틈을 노려 판데모니엄을 집어삼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마르틴이 없으면 자신의 최후를 ‘예지’하는 건 불가능하므로!

‘나 홀로 움직이면 예지에 걸릴 확률이 낮아지지.’

나는 마르틴이 무엇을 예지할지 대략적으로나마 예지할 수 있었다. 수많은 마수가 함께 움직였으면 마르틴은 이곳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 혼자 움직였기에 마르틴은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 이곳에 왔다.

하지만 이는 나에게도 상당한 도박이었다.

오늘 마르틴을 놓치게 된다면 판데모니엄의 공격은 더욱 집요해질 것이며 대처하기 힘든 수를 사용할 것이었다. 그러니…… 반드시 마르틴을 잡아야만 했다.

후에 내가 대군을 움직이더라도 마르틴의 예지에 걸릴 수가 있으니 말이다.

“조무래기들은 꺼져라.”

쿠우우웅!

전신의 마력을 개방시키고 주변으로 발산했다. 내 영향력은 반경 수 킬로까지 퍼져 나갔다. 동시에 모든 마수와 마르틴이 전율하며 아주 찰나지간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내 마력을 견디지 못한 마수들은 알아서 떨어져 나갔다. 애당초 나와 마르틴은 같은 던전의 주인이었고, 같은 권능으로 전혀 다른 힘을 사용하자 격이 낮은 마수들은 견디지 못한 것이다.

최하급과 하급은 아예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가 뒤쫓아오는 마수들에게 밟혀 대다수가 최후를 맞이했다.

나는 그제야 발을 움직였다. 땅을 딛고 있던 다리가 움직일 때마다 마력의 파장을 낳았으며 내 주변 모습이 마치 환영처럼 일렁거렸다. 마력이 과도하게 집중되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다.

그만큼 내가 가진 마력의 밀도가 높다는 방증이었지만……. 오만의 불꽃이 점점 커져만 갔다. 불꽃으로 이루어진 날개는 이내 하나의 산처럼 커져서 한 번 펄럭일 때마다 수십의 마수를 집어삼켰다.

모든 마력을 개방한 현재의 최종 형태와 같았다. 그리고 당연히 이 마력은 뇌신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다.

콰아아아아앙!

뇌신은 말 그대로 번개의 신이 되어 있었다. 뇌신이 지나갈 때마다 그 자리엔 천둥이 휘몰아쳤다. 수십, 수백 갈래의 천둥은 단번에 적군을 태웠고, 뇌신은 하늘을 노니며 계속해서 천둥을 형성해 내는 중이었다.

하늘엔 뇌신이, 지상엔 오만의 날개가!

그 둘을 움직이는 자는 나 혼자일 따름이었다.

콰앙!

가장 먼저 내게 당도한 건 트윈 헤드 오우거였다. 초월적인 힘으로 나를 내리눌렀지만 오만의 날개가 주먹을 막았다. 도리어 트윈 헤드 오우거에게 강력한 불을 선사했다.

끄어어어억!

오만의 불꽃은 내가 명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꺼지지 않는다. 트윈 헤드 오우거의 상반신을 잠식한 오만의 불꽃이 조금씩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나는 분노를 들어, 몸부림을 치는 녀석의 심장을 찔렀다.

[‘지배의 권능’이 발동되었습니다. 두 개의 심장 중 하나를 잃은 트윈 헤드 오우거가 앞으로 ‘랜달프 브뤼시엘’을 따르게 됩니다.]

[권능은 상대의 정신을 천천히 침식합니다. 처음에는 다소 반항적일 수 있으나, 결코 그 주인 된 자에게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며 시간이 흐른 뒤엔 완전한 복종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운이 좋았다.

처음으로 손을 쓴 녀석에게 권능이 발현된 것이다.

나는 녀석의 몸에서 오만의 불꽃을 지웠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난 트윈 헤드 오우거는 매우 복잡한 눈빛을 짓고 있었다.

여전히 내게 적대적이었으나 신체는 달랐다.

“나를 공격하는 자들을 공격해라.”

명령을 주입시키자 트윈 헤드 오우거가 즉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이 마음껏 날뛰니 당황한 표정이지만 커다란 주먹은 이미 주변의 마수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쿠웅! 쿠웅!

연달아 직격된 주먹질에 앞서 나오던 오크들이 묵사발이 되었다. 같은 편이 공격을 하니 마수들도 바로 대처하지 못했다.

‘재미있군.’

이런 식이었던가.

사용하기에 따라서 더 재밌는 일을 많이 만들 수 있을 듯하다.

그러려면 더욱 많은 마수를 내 권능으로 말미암아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공짜로 마수를 얻는 셈이니 더욱 즐기는 맛이 있을 것 같았다.

분노와 황제의 검이 한 번에 움직였다. 하이엔달의 검술이 매끄럽게 펼쳐졌다. 달을 품고자 하였던 하이엔달과 다르게, 비슷한 움직임이나 내 검술은 조금 더 포악했다.

마치 달을 쪼갤 듯이 움직였다.

하이엔달의 검술 본연의 모습에 내 의지를 담을 만큼 솜씨가 좋아진 덕이다.

콰릉!

사방에서 덤벼드는 마수들이 오합지졸처럼 썰려 나갔다.

그러나 역시 귀찮다. 하여 나는 전각을 밟았다. 발을 강하게 대지에 꽂아 넣자 그 힘의 여파로 땅이 들렸다.

이어 하나의 벽처럼 땅이 솟았고, 마수들이 나뉘었다. 그런 행위를 두 번 정도 반복하자 크게 두 갈래의 길이 생겨났다. 그 길을 따라 마수들이 공격하니 훨씬 질서정연해 보였다.

나는 냉소를 지었다. 하지만 평소의 웃음보다 훨씬 쾌활했다.

해방감!

그렇다. 나는 지금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처럼 전신의 힘을 개방하여 싸운 건 오쿨루스를 상대할 때 이후 처음이다.

특히 초월자가 된 다음에는 그럴 기회가 아예 없었다.

어느 정도일까. 내가 가진 모든 걸 해방시키면 얼마나 파괴력이 있을까.

매일 상상만 했다. 그리고 지금 그 상상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내게 불가능이란 없다.’

모든 것을 이루고 행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실제로 나는 그만한 힘이 있었다.

상상은 도리어 축소되었으며 현실에서 나는 훨씬 강했다.

이것이 초월자의 힘인가.

나 스스로가 전율이 일었다.

정작 나를 지켜보는 마르틴은 어떠한 기분일지 조금은 상상이 되었다.

암담하겠지. 가슴이 울렁이며 눈앞이 하얘질 것이다.

전생에서 나 또한 그런 적이 몇 번 있었다. 주로 대공들을 상대할 때였다.

‘내가 이겼노라.’

시작하기 전에는 반신반의였다.

하지만 이제는 확실해졌다.

이 싸움은 내 승리로 끝날 것이라고!

검을 놀릴 때마다 권능도 함께 발현되었다. 그럴수록 같은 편을 죽이는 마수의 숫자가 늘어났다.

대혼란이 중첩되며 나는 어느새 마르틴의 지척까지 다다른 상황이었다.

“이놈…… 랜달프 브뤼시엘!!”

마르틴이 경악에 찬 외침을 토했다.

* * *

믿기지가 않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정도의 마력. 이 정도의 존재감…….

마계에 있을 당시 대공들에게서나 느꼈던 압도적인 힘!

지구에 온 이후 그들은 약해졌다. 빠르게 힘을 회복해 나가고는 있었다. 그러나 아직 그 누구도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한데, 넘었다. 벽을 넘고 한참은 더 갔다.

왜 예지가 안 되었는가.

‘나의 예지는 어디까지나 현실을 테두리에 놓고 진행된다. 초월자란 비현실적 존재. 예지할 수 있을 리가…….’

놈이 다수의 마수와 움직였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신의 예지를 간파하기라도 한 듯이 놈은 혼자서 움직였다.

랜달프 브뤼시엘.

어째서 오쿨루스가 지목하고, 아리엘 디아블로가 신경을 썼는지 솔직히 이해가 제대로 되지 않았었다. 심지어 판데모니엄마저 곱씹고 있을 수준이었다.

누구보다 많은 포인트를 지니긴 했으나 마계는 힘이 곧 율법이다. 정작 본인의 힘은 크지 않다고 여겼건만.

아니다. 잘못 봤다. 예지가 가능하다며 모든 걸 바로 볼 수 있다며 자만했던 이 눈을, 파내 버리고 싶었다.

놈은 이미 일인 군단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놈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그에 맞은 마수들이 같은 편이 되어 움직인다.

던전 마스터의 권한으로 마수들에게 명했으나 이미 한 번 놈의 편이 된 마수들은 전혀 명령을 듣지 않았다.

‘믿을 수 없다.’

마스터의 권한을 넘어선 권능이라니!

이만한 힘과 권능을 한 마족이 지니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허나…… 눈앞에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현실이었다.

화가 났다. 배도 아팠다. 완전한 예지 그 하나를 얻고자 자신은 온갖 위험과 도박을 일삼고 있건만 놈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마족들 모두를 비웃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무언가를 하나씩 얻어 갔다.

대체 어떻게?

짐작도 되지 않았다.

강해진다는 건, 무언가를 얻는다는 건,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특히 같은 시간을 사용해서 달리면 아무리 빠르더라도 시야 안에 있기 마련이었다.

놈은 시야 바깥을, 심지어 도착점마저 아득히 뛰어넘은 상태였다.

그러니 어찌 쉬이 믿기겠는가.

“이놈…… 랜달프 브뤼시엘!!”

절망을 쏟아 냈다.

그제야 예지 하나가 발동되었다.

‘이곳에서 죽으리라.’는 불변의 예지!

이를 갈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죽어 줄 수도 없었다.

“시간의 축을 변경한다. 너와 나의 흐름은 다르게 가리라.”

마르틴이 소유한 최강의 스킬, ‘시간의 축(Epic)’이 발동됐다.

반경 3킬로 이내의 모든 시간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스킬. 누구는 빨라지고, 누구는 느려지며 누구는 움직이지 않게 된다. 오로지 자신만 본연의 시간 속에 있는 게 가능한 스킬로써 대상을 지정할 수는 없고, 도박과 같은 스킬이었지만 반대로 자신이 살아날 가능성도 높아진다.

한데…….

[‘시간의 축(Epic)’이 ‘심안’에 의해 간파되었습니다.]

[방어율 50%!]

[방어율 13%. 상대의 높은 지능과 마력의 보정으로 ‘시간의 축’이 전체 무효화됩니다.]

“뭐……?”

아예 무효화를 시켜 버렸다.

이미 발동되기 시작한 스킬을 없던 걸로 되돌리다니, 스펠 브레이커가 아닌 이상에야 가능한 일인가?

하지만 놈은 웃었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오로지 직선으로 검을 휘두르며 다가왔다.

피할 것인가?

이미 늦었다.

마르틴은 들고 있던 지팡이를 휘둘렀다. 실체를 가진 환영들이 소환되며 놈의 앞을 막아섰다.

[‘환영술(Epic)’이 ‘심안’에 의해 간파되었습니다.]

“미친…….”

모든 게 간파되었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성.

거기다가 힘마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니…….

“완전한 예지를 얻기 전까지 죽을 순 없단 말이다!”

마르틴이 이를 갈았다.

* * *

분노와 황제의 검을 털어 냈다.

마르틴을 잡았다. 동시에 마수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나는 마르틴의 양쪽 눈을 도려냈다.

‘가파람에게 주면 좋아하겠군.’

예지가 가능하게 해 주는 눈이다. 죽어서 효력이 거의 사라졌다지만 다시금 정제하면 상당한 능력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 터. 호문쿨루스의 재료로 사용하게 한다면 상당히 좋아할 듯싶었다.

눈을 마법 주머니에 넣은 뒤 오만의 불을 껐다. 뇌신도 얌전히 내 품에 돌아왔다.

‘이제 성녀를 봐야겠다.’

변화의 도중 갑작스럽게 뛰쳐나왔다. 결과가 어찌 되었을지 슬슬 확인을 해야 했다.

나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이후 성녀가 있는 장소를 향해 빠르게 달려 나갔다.

김유라는 쓰러져 있었다.

몸은 모두 회복되어 있었고, 마력과 신성력이 뒤섞여 어느새 안정을 되찾은 모습이다.

불안한 모습일 줄 알았건만 오히려 상당히 조화가 되어 있었다.

‘조화의 성녀라니.’

심안을 열어 상태창을 확인하곤 피식 웃었다.

직업란에 적힌 ‘조화의 성녀’라는 것이 상당히 거슬렸다.

타락이나 그런 것을 반쯤 기대했으나 전혀 다른 게 나온 것이다.

내 마력이 그만큼 순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계약은 끝났다. 넌 이제 나의 것이다.’

어쨌거나 성녀를 얻었다. 나쁘지 않은 수확이다.

나는 김유라와 김민지를 양어깨에 얹었다. 그리고…… 던전으로 돌아갔다. 처음으로 전신의 힘을 개방했더니 살짝 피로감이 있었던 탓이다.

‘뒤처리는 이히에게 맡겨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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