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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187화 (187/242)

던전 사냥꾼 187화

눈썹을 찌푸렸다. 치천사. 상급 위계 중에서도 가장 위에 있는 강력한 천사를 일컫는 단어다. 전생에서도 단 한 차례 본 적 있는 치천사급의 천사가 지상으로 강림한다?

하물며 그것을 타쉬말이 알고 있는 것도 이상했다. 지구에 강림하거든 모든 마족을 쓸어버리기 전까지 천계로 돌아가는 게 불가능한 것이 천사다. 천계와의 통신도 두절되며 연락할 방법이 아예 사라지는 게 정상일진대, 어떻게 알고 준비를 한다는 걸까?

“확실한가?”

“‘계시’를 받았다.”

“타락한 천사인 네가?”

하! 헛웃음을 흘렸다. 천계의 율법은 매우 엄격하다. 타락한 천사는 같은 천사로서 간주하지 않는다. 하물며 마족으로 인해 타락했으니 같은 취급을 받아도 이상할 게 없건만.

계시라니!

신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행위인데, 천계의 신이 그토록 대범한 신이었던가? 그랬다면 전생에서 숱하게 많은 천사들이 죽어 나갈 때 진즉 개입을 했어야 옳다.

타쉬말도 내 심정을 이해는 했는지 어렵게 말을 이어 나갔다.

“계시는 진짜다. 태양이 달을 삼키는 그날, 카마엘 님께서 강림할 것이란 계시를 받았다.”

나는 유심히 타쉬말을 살폈다. 던전 마스터인 내게 거짓을 고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진짜라면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카마엘. 카마엘이라.’

치천사의 위계를 가진 천사는 천계에 일곱 명이 있다고 들었다. 전생에서, 최후의 전쟁이 들어갈 막바지에 자드키엘을 본 적이 있었다. 공작 세 명과 여러 마족을 불태우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 천사였다. 한데 그와 비슷한 힘을 가진 천사가 지금 시기에 강림한다고?

‘균형이 무너지겠군.’

아직 마족들은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이제야 달리기를 시작할 무렵이다. 카마엘이 강림하면 대공들도 무사하진 못할 것이었다.

“태양이 달을 삼킨다는 게 무슨 뜻이지?”

“모르겠다. 계시는 항상 추상적이니라. 허나…… 내가 본 것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세계가 멸망하는 정도의…….”

타쉬말이 말을 삼켰다. 살짝 긴장한 게 느껴졌다.

“정확한 시기는 알지 못한다는 거로군.”

그 부분이 제일 중요했는데 아쉬웠다.

나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시가 진짜일 경우 카마엘이 강림한다. 그러니 먼저 강림할 장소를 봐놓는 건 나쁜 선택은 아니다. 무작위로 소환되면 더욱 골치가 아파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내 시야에 닿는 곳에 놔두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신성 지대가 선포되면 먼저 천사들이 결집한다는 것이다.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도 한 번쯤 따져 볼 사안이었다. 아무리 현명한 선택일지라도 내가 감당 못해선 주객이 전도된다.

“카마엘은 강한가?”

자드키엘은 강했다. 지금의 나보다도. 놈은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했다. 일반적인 천사의 형태도 아니었다. 둥그런 행성과 같은 모습으로 끊임없이 광선을 쏘아 댔는데, 그 하나하나가 섬 하나를 없애 버릴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은 불사다. 114만의 부하 천사들을 없애지 않으면 죽어도 죽지 않는다.”

“114만……?”

단위가 다르다. 지금 내가 가진 휘하 마수들을 다 합쳐도 100만은 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십수만이나 될까.

그런데 114만에 달하는 부하 천사들을 먼저 죽여야 한단다. 아득함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말인즉, 114만의 천사와 함께 강림한다는 거냐?”

타쉬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달을 삼킨 태양을 단죄하고자…….”

“잠깐, 목적이 마족이 아니었던가?”

태양이 달을 삼킬 때 카마엘이 강림한다고 했다. 한데 타쉬말의 말을 들어 보면 카마엘이 강림하는 이유가 꼭 그 태양 때문인 듯했다.

“안타깝게도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다. 이 이상은 답해 주고 싶어도 해 줄 수가 없다.”

쯧. 작게 혀를 찼다.

어중간하기 짝이 없는 정보다.

하여튼 카마엘이 114만의 천사와 함께 강림한다면, 하물며 그 114만에 달하는 천사를 먼저 죽여야만 본체를 죽일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퍼지면 곤란하지. 필히 신성 지대로 지정해 줘야겠군.’

114만이다. 저번 천사들이 내려올 때처럼 무작위로 선정되면 다 찾을 도리가 없다.

물론 아무런 생각 없이 내주진 않을 것이다. 몇 가지 조치를 취하고 강림하는 순간 바로 알 수 있게끔 만들 셈이었다.

더불어…….

‘카마엘은 내가 잡는다. 마왕이 되기 전의 업적으로는 아주 좋지 않은가.’

강림을 한다고 하더라도 당장은 아닐 테다. 시간은 분명히 있었고, 그사이 더욱 강해져서 카마엘을 잡는다. 그리되면 지금 있는 대공 중에선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정통적인 업적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내가 마왕이 되더라도 마계의 누구도 감히 반론을 펼치지 못하리라.

7대 천사 중 하나를 잡았으니 마왕의 자격으론 충분했다.

그리고…… 궁금하기도 하였다. 초월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내가 치천사와 맞붙으면 이길 수 있을지 말이다. 전생에서 본 파괴력과 비슷하다면 살 떨리는 전투가 될 터였다.

“좋다. 신성 지대로 선포하게 해 주마. 허나, 그 안에 내 휘하의 천사를 집어넣고 싶은데…… 가능하겠나?”

“다른 천사들은 이미 던전의 마력에 의해 때를 탔거나 반쯤 타락하였다. 그게 가능한 천사는 오로지 하쉬뿐이다. 하쉬라면 천사들도 우대하며 감히 의심하지 않을 터.”

“하쉬? 아직 너무 어리지 않은가.”

고작 반년도 안 됐다. 이제 겨우 단어 하나를 뗄까 말까 한 어린 천사가 하쉬였다. 잠입을 시킨다고 해도 제대로 된 임무 수행 능력은 기대할 수 없었다.

“나머지 천사 중에는 없다. 천사들의 눈썰미를 무시하지 말라. 그리고 한 번 크게 의심을 당하면 그대에게 집중적인 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천사를 사육한다는 명분 아래 말이다.”

과연…….

믿음은 좀체 안 갔지만 하쉬밖에 없다니 별수가 없었다.

“흠, 하쉬를 최대한 훈련을 시키도록. 신성 지대의 선포가 끝나는 즉시 들어갈 수 있게 만들라.”

길어야 수개월. 그 안에 최소한의 행동력이라도 가지게 하려면 고단한 훈련밖에는 답이 없었다.

“노력해 보겠다.”

타쉬말도 반신반의하는 태도였다.

아무리 던전 안에서의 성장이 빠르다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기 마련이었다.

어디까지 성장하고 가르칠 수 있을는지는, 오로지 타쉬말의 몫이었다.

나는 몸을 돌렸다. 그러자 타쉬말이 짧게 읍을 하곤 물러났다. 당장 하쉬의 훈련을 시작할 심산인 모양이었다.

‘신성 지대, 카마엘, 달을 삼킨 태양.’

일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끔 흘러간다. 어디까지나 계시가 확실하다는 가정 아래, 나를 포함한 모든 마족이 급격한 변화를 맞이할 것 같았다.

그나마 나는 정보를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마족들은 카마엘이 강림했을 때 무슨 선택을 할 것인가. 그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으음…….”

돌연 미약한 신음 소리가 들렸다.

멀지 않은 장소.

김유라가 깨어난 것이다.

* * *

“민지야!”

잠에서 깨어난 김유라가 상반신을 강하게 들어 올렸다. 자신을 대신해 희생한 동생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눈을 뜨자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긴……?”

어둡다. 촛불 하나가 켜져 있긴 했지만 미약하기 그지없다. 습하고 눅눅한 장소. 언뜻 바위 같은 것들이 보이기도 하였다.

‘잠깐, 목소리가…….’

김유라는 눈을 크게 떴다.

맙소사!

목소리가 정상적으로 나왔다. 잇몸이 녹아서 정상적인 발음이 불가능했는데, 방금 전 자신이 내뱉은 목소리는 정확했다.

“아…….”

심지어 다리도 움직인다.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 신세를 져야 했다. 근육을 사용하지 않아서 앙상했을 다리에 왜인지 근육이 붙어 있었다.

김유라는 급히 양손으로 얼굴을 매만졌다.

매끈하다. 화상으로 인해 울긋불긋한 피부가 만져지지 않았다.

‘대체?’

인상을 구겼다. 한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동시에 어느 기억들이 머릿속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뱀파이어의 습격, 동생의 희생, 그리고…… 웬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는 동생을 살리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리고, 약병에 든 약을 마셨다.

거기서 기억이 끝났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다음이 떠오르지 않았다.

“깨어 났군.”

때마침, 자신을 지옥 끝에서 건져 낸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당신은 누구죠? 내 동생은 어디에 있나요?”

나는 작게 웃었다. 처음 나를 보고 묻는 게 저것이라니. 당돌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제법 의연하다. 모르는 장소에서 상상외의 상황과 맞닥뜨렸을 것인데 상당히 당황한 모습을 잘 감추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그보다 자신의 변한 모습을 먼저 감상하는 게 어떤가?”

마법 주머니에서 손거울 하나를 꺼냈다.

이후 엄지와 중지를 스치자 던전이 환해졌다. 작은 빛무리들이 생겨나며 순식간에 던전을 환하게 비춘 것이다.

김유라도 놀랐는지 토끼 눈을 떴다. 엉겁결에 손거울을 받아 들곤 그곳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이게…… 나?”

믿기지 않는 눈초리다.

하기야 화상에 타 버린 그녀의 모습은 원체 끔찍했다.

그런데 지금은 깨끗하고 맑은 피부를 유지하고 있었다. 미의 기준은 인간이나 마족이나 크게 다르진 않았고, 단순히 미모만 따지자면 상당한 급을 갖췄다고 할 수 있었다.

하루아침에 전혀 다른 얼굴이 되었으니 놀랄 수밖에.

잠시 감상할 시간을 준 뒤 바로 본론을 말했다.

“너는 조화의 성녀로서 각성했다. 허나 힘이 폭주했고 나는 너를 살려 주었지. 고로, 너의 생명은 나의 것이다.”

“잠깐, 잠깐만요. 다시 한번 물을게요. 당신은 누구죠? 제…… 동생은 어디 있고요?”

“나는 랜달프 브뤼시엘. 누군가에게는 구세주라 불리며 누군가에게는 던전의 주인이라 불리는 이지. 너의 동생은 안전한 곳에서 회복하고 있으니 걱정 마라.”

어차피 김유라와 나의 계약은 완료되었다.

김유라는 내게서 벗어나려도 벗어날 수 없다. 하여 시원하게 정보를 밝힌 것이다.

“구, 구세주! 당신이 정말로 구세주란 말씀인가요?”

아무래도 뒤의 내용은 크게 귀에 들어오지 않은 것 같았다. 구세주보다 던전의 주인이라는 게 더욱 중요한 점이었건만 한국의 인간에게 있어서 그만큼 구세주의 영향력이 크다는 방증이었다.

그리고 인간은 보통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들었다. 딱히 부정할 것도 아니기에 고개를 주억였다.

“그리도 부르더군.”

“아아……!”

김유라가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이윽고 주먹을 꽉 쥔 상태에서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

“구세주님. 제, 제 동생을 만나게 해 주세요. 부디.”

“따라와라.”

뒷짐을 진 채 앞서 나갔다. 김민지는 현재 가파람에 의하여 여러 가지 조사를 받는 중이었다. 하반신을 새로 맞추는 일이었으니 할 일이 많다는 것 같았다.

가파람의 연구실은 코어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동하며 수많은 마수와 마주하게 된 김유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여, 여긴, 혹시…… 던전인가요?”

“그렇다.”

오크 로드 하나가 수백의 오크를 끌고 이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크 로드는 공격은커녕 가까이 다가오더니 나를 보곤 오른손으로 자신의 왼쪽 가슴을 강하게 쳤다.

쿵! 쿵! 쿵!

다른 오크들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주인 된 자에게 예를 표하는 오크들의 방식이었다.

그것을 본 김유라가 당황하여 물었다.

“그런데…… 왜 오크들이 공격을 하지 않죠? 저 모습은 마치, 인사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역시 뒤의 말은 듣지 못한 게 분명하다.

두 번 이상 말하는 걸 싫어하는 나이지만 원활한 대화를 위해선 한 번 더 설명해 줄 필요가 있겠다.

“말했지 않나? 누군가에게는 던전의 주인이라 불린다고. 나는 이 던전의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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