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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190화 (190/242)

던전 사냥꾼 190화

누가 누구의 분신인가.

이제는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섞이고 뒤엉켰다.

나는 점점 완성되어 갔으며 놈은 반대로 불완전해져 갔다.

그리고…… 나는 점점 무감정해져 가고 있었다.

메마른다고 해야 할까?

대신 냉철한 눈이 생겼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움직임을 선보였다.

기계처럼.

그럴수록 놈과의 대결은 막상막하로 치달았다.

놈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고, 반대로 나는 강해지는 중이었다.

허나, 공허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피마저 차게 식어 버리리란 확신이 들 무렵, 문득 ‘이런 식의 완성은 내가 바라는 완성이 아니다.’란 생각이 머리끝을 스쳤다.

강해지고는 했으나 내가 나 자신이 아닌 채로 완성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왕의 좌에 올라 한바탕 크게 웃는 것.’

그게 내 바람이다. 꿈이다. 그저 앉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곳에 앉아 크게 웃음을 터트리는 것이 나의 소망이었다.

그 웃음은 단순한 조소의 차원에서 벗어나 나의 모든 게 담길 예정이었다. 한데…… 무감정해진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나는 마왕의 자리에서 크게 웃을 수 있을 것인가.

‘못하겠지.’

완전해지기 위해선 불완전한 부분을 버려야 한다고?

그렇다면 나는 완성되지 않겠다. 불완전했기에 나는 회귀했으며 이후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여기까지 왔다. 한데…… 갑자기 변한다면 지금까지의 노력을 비웃는 것과 같다.

내 꿈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나는 나 자신이 오만함을 알며 높은 자존감을 갖추고 있다는 것에 매우 만족해하고 있다. 한데, 놈은 그것마저 나의 약점으로 치부했다.

받아들이라니.

웃기지도 않다.

‘마음에 안 드는군.’

작은 변화.

나는 태엽을 거꾸로 돌렸다.

말 그대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놈이 가져간 부분을 알아차리고 억지로 채워 넣는 작업은 엄청난 심력을 소비했다.

[민첩이 1 하락했습니다.]

버리고 얻은 능력치다. 버린 부분을 다시 채우자 능력치도 원래의 상태로 돌아갔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런 식의 완성은 내가 바라는 방향이 아니었기에.

작업은 느렸지만 나는 처음으로 돌아가는 데 성공했고…….

그러자 항상 나를 내리 보던 놈의 눈이 달라졌다.

“멍청한 놈, 버리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 기껏 완성의 길에 올랐거늘 그것을 스스로 걷어찬단 말이냐?”

말은 거칠지만 눈은 달랐다.

놀라움. 놈은 분명히 내게 놀라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그 눈이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상당 부분 놈과 동화되었기에 알 수 있었다.

“버리고 있지 않나?”

비웃음을 흘렸다. 완성되어 가며 얻은 것들. 나는 그것들을 지금 버리고 있었다.

그러자 놈이 이를 갈았다.

“스스로 불완전해지기를 자처하다니! 미련하고 어리석다!”

“웃기는군. 이 미련함과 어리석음을 가지고 싶던 것은 네놈이 아니었나?”

웃음기를 지우며 나는 놈을 노려봤다.

싸울 때마다 놈은 달라졌고, 조금씩 변화해 갔다. 그리고 그 변화는 항상 눈에 익었다. 바로 내게서, 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나를 이루는 요소 하나하나를 가져간 탓이다.

처음에는 별 게 없었으나 수십 가지를 가져가자 완전히 달라졌다.

다채로운 표정들만 봐도 알 수가 있다.

“너는 완성되기를 바라지 않았나? 완전함이란 불완전한 것을 버리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강해지고 싶지 않느냐?”

조금은 다급해진 얼굴로 놈이 말했다.

“강해지고 싶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이 불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놈이 내게서 갈취한 것. 내 스스로가 약점이라 생각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었다. 놈이 나의 분신이라면 하지 않을 판단이건만…… 이러니 놈과 내가 다르다고 할 수밖에.

그러자 놈은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불완전하다! 날 이기지도 못하는 놈이!”

“물론 완전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아.”

이제야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놈이 흥분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는 모양이었다.

“완전하지도, 불완전하지도 않다면 뭐냐? 그런 어중간함으로 마왕이 되겠다는 건가!”

“꽉 막힌 놈이로군. 너와 나의 기준은 다르다.”

분노와 황제의 검을 겨눴다.

놈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절대로! 완전해지지 않는다면 절대로 나를 이길 수 없다!”

“네놈이 내 약점이었군.”

분신 같지도 않은 분신으로 말미암아 확신이 생겼다.

나는 천천히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분노와 황제의 검을 내려놓았다.

“뭘 하는 거냐?”

“나 스스로 강해질지언정 그 때문에 혼을 팔진 않겠다. 그리고…….”

이후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내 어딘가에 존재하는 편협함이여. 돌아오라.”

놈과 나는 다르다. 결코 같지 않다. 그러나 비슷했다. 나는 그 이유를 찾았고, 마침내 깨달았다. 놈은 내게서 떨어져 나간 부분에 지나지 않다고.

마음속 깊숙이, 내가 ‘약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홀로 독립해 버린 것이다. 나 스스로도 알지 못하던 그런, 편협하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마음이 말이다.

나와 똑같은 얼굴을 지닌 녀석의 눈이 격하게 흔들렸다.

“버려라. 그것이 완전해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너 스스로도 알고 있지 않았느냐? 신들을 마주하고 회귀하며 가장 크게 깨달은 진리가 아니던가? 너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들이 들려준 진리 속에 분명히 그런 내용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왜 그러지 않았느냐는 말이로군.”

“그래. 왜! 이제야 마음을 정리한 듯 보여 너의 이면인 내가 직접 가져가 주었거늘.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건가?”

나의 이면. 놈은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다. 이실직고를 한 셈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신들이 완전했다면 내게 부탁하지도 않았겠지. 결국 그들은 스스로를 불완전하다고 인정한 꼴이다. 물론 이런 복잡한 내용이 없어도 누군가가 정해 준 길만 따라갈 생각은 터럭만큼도 없다.”

나의 길은 내가 개척한다.

전생의 기억은 토대가 되어 주었을 뿐이지 내가 걸어온 길은 대부분이 새로웠다. 항상 맞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이어지며 끝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었다.

어쩌면 내 길이 틀렸다면 지금도 망설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반드시 후회할 거다. 겨우 분리되어 완전해질 수 있었는데…… 나를 인정하는 순간 더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네가 그간 신경 쓰지 못한 내 일부분이라면 너를 인정함으로써 나는 더욱 완전해지겠지.”

“궤변! 궤변이다.”

“누가 그러더군. 나는 너무 어리고, 내 오만함이 내 목을 조일 것이라고. 그러나 그 말을 한 놈은 내 손에 죽었다.”

금기에 손댄 오쿨루스의 최후는 내가 가져다주었다.

승리한 자가 정의고, 오쿨루스는 패배했다. 고로 놈의 말은 개소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좋다. 두고 보마. 어디 마음껏 좌절해 보라.”

분신은 반쯤 포기한 듯 터덜터덜 걸어왔다.

나는 여유롭게 웃으며 양팔을 벌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놈이 내게로 들어왔다.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보인 건 작은 요정이었다.

“이, 일어나셨어요, 마스터?”

“이히로군.”

미간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은 목조 건물 안이었는데, 아무래도 다크 엘프의 마을인 듯싶었다.

“3일 만에 깨어나셨어요. 이히는 정말, 정말 걱정했답니다.”

이히가 손가락으로 눈물을 콕 찍었다.

“3일…… 그간 아무런 일도 없었나?”

“크리슬리가 다녀갔어요. 생명과 죽음의 나무가 무사히 자랐고, 성군 후보가 일곱 명 뽑혔대요. 이히가 물어보니까 그중 두 명은 마스터도 알고 있는 인간인가 봐요.”

“그건 수십 일도 전에 크리슬리가 내게 전한 이야기다.”

이히가 큰 눈을 깜빡였다.

“네? 이상하다. 이히한테는 며칠 전에 정해진 일이랬는데…….”

서로 대화가 맞지를 않았다. 이에 의아함을 느끼고 물었다.

“이히, 오늘 날짜가 어찌 되지?”

“9월 12일이여요. 이제 조금씩 추워질 시기예요. 이히는 추운 게 싫어서 겨울이 안 왔으면 좋겠어요.”

“9월 12일?”

“왜 그러세요, 마스터?”

“아니다.”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내가 처음으로 근원의 나무에 도달하고 분신과 싸운 게 9월 9일이었다. 그로부터 3일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하물며 크리슬리와의 대화 내용도…….

‘예지인가?’

마르틴의 눈을 회수하긴 했으나 직접 이식한 기억은 없다. 그런데 놈의 능력을 조금이나마 내가 얻은 것 같았다.

무슨 현상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니면 이것도 지배의 권능의 영향인가.’

어쩌면 마르틴이 빈사 상태가 되었을 때 지배의 권능이 발동되었을 수도 있었다. 수많은 마수를 학살하다 보니 메시지가 워낙 많이 떠올랐고, 때문에 거기에 신경을 쓰지 못했으니.

‘하여간……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면 능력치도 변함은 없겠군.’

분신과 싸우며 올랐던 능력치. 억지로 깎아 내긴 했지만 그래도 상당한 수치가 올랐었다. 그것이 모두 무효가 되었다니, 시원섭섭했다.

‘상태창.’

그래도 확인 삼아 창 하나를 띄웠다.

이름: 랜달프 브뤼시엘

직업: 마계 대공(던전 마스터)

칭호 :

* 던전 사냥꾼(던전 점령, 마족 사냥 시 잔여 능력치+1)

* 불굴의 전사(Ex U, 모든 능력치+2)

* 최초로 요정의 축복은 받은 자(U, 마력+6)

* 근원의 주인(Epic, 모든 능력치+3)

* 언데드(Ex U, 지능체력+5)

* 지저 세계의 지배자(Legend, 모든 능력치+5, 에픽 미만 스킬의 등급+0.5)

능력치:

힘 89(+20) 지능 96(+15)

민첩 85(+20) 체력 90(+22) 마력 100(+16)

잠재력(456+93/570)

잔여 능력치: 14

전력량: 21GW

특이 사항: 지저 세계의 주인. 나락 군주의 심장이 완전히 각성했습니다.

스킬: 만물 조합(Ex U), 심안(Epic), 다크 소드(Epic), 신검합일(Epic, Passive), 전격의 정령(Epic), 오만(Epic), 타락(Ex Epic), 지배의 권능(Ex Epic, Passive), 정령과의 교감(Epic, Passive)

적용 중인 스킬&아이템 효과: 분노(힘+7), 나태(민첩+7), 오만(체력+7), 신검합일(힘민첩+3)

[전후 비교]

힘 105 지 107 민 100 체 107 마 113 잠재력(434+93/555)

힘 109 지 111 민 105 체 112 마 116 잠재력(456+93/570)

상태창을 확인하곤 잠시 굳었다.

‘순수 능력치가…….’

가파르게 상승한 것이다. 능력치 총합으로만 따져도 20 이상이 올랐다.

헛웃음이 나왔다.

‘기대도 안 했건만.’

그나마 현상 유지만 되어도 솔직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간 싸운 모든 게 꿈이었으니 초기화가 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한데 막상 뚜껑을 뒤집자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잠재력 한계치마저 오르다니.’

내가 한 것이라곤 별 게 없었다.

그저 내가 신경 쓰지 못한 ‘나’를 인정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깨달음이라면 깨달음일 테지만 원래 있는 것을 부각시킨 것이 전부이거늘. 시스템 메시지로도 확인이 안 된 것을 보면 지금의 능력치가 본래 내 능력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절은커녕 희망만 가득하지 않은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분신은 좌절하는 걸 바라보겠다고 말했지만 정작 확인하니 좌절은 없었다.

“마스터?”

이히가 고개를 갸웃하자 나는 말했다.

“정령들을 풀어라. 슬슬 인간들과 계약시킬 때가 되었다.”

“네, 마스터. 그런데요…… 마스터.”

“왜 그러지?”

“얼굴이 엄청 보기 좋아졌어요, 마스터. 이히히.”

“시답잖은 소리는 되었다.”

“힝, 진짠데.”

이히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내가 내린 임무를 해결하고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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