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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192화 (192/242)

던전 사냥꾼 192화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은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린 년한테 굽실거리기도 귀찮았는데 잘됐어. 다리 좀 잘려도 치유 능력은 그대로겠지?”

“잘라도 붙이지 않을까?”

“멍청아, 당연히 지져야지. 세포가 다 죽었을 텐데 무슨 수로 붙여?”

“어린 게 묘한 색기가 있어 가지구…… 흐흐흐. 그동안 참기 힘들어 죽는 줄 알았네. 저 정도 얼굴이면 어지간한 연예인보다 낫지 않냐?”

“처음은 나다. 연장자 우대는 해 줘야지.”

진저리가 쳐지는 대화였다. 그들은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듯 유유자적 다가오고 있었다.

김유라는 품에서 작은 비도를 꺼냈다. 별다른 능력도 없고, 호신용으로 챙겨 온 것이었지만 아예 없는 것보단 나을 터였다.

각성하며 전신이 강화되었다. 제아무리 저들이 각성자라 할지라도 쉽게 당하진 않는다. 문제라면 실전 경험이 없다는 점인데…… 홀로 죽을지언정 동생을 휘말리게 할 순 없었다.

“다가오면 찌르겠어요.”

“다가오면 찌른다는데?”

“아이고~ 무서워라!”

저들의 시선에서 김유라는 현재 장난감 이상이 아니었다.

‘당하고만 있으면 안 돼.’

그래도 김유라는 최대한 자신을 차분하게 타일렀다. 살아오며 험한 꼴을 많이 봐 온 탓에 패닉에 빠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당하기를 기다리는 것보단 먼저 선수를 치는 게 유리하는 것도 알았다.

훅!

살짝 몸을 낮추고 가장 선두에 오던 남자의 면상을 긁었다. 치명상을 입히진 못했지만 비도가 뺨을 긁어 피가 터졌다.

“씨발! 이년이 미쳤나!”

얼굴을 긁힌 남자가 와락 인상을 구겼다. 기습을 들어오리라곤 상상도 못한 모습.

김유라로선 안타까운 일이었다. 상처를 냈으나 활동을 하는 데 지장이 없다. 결국 여덟 명을 그대로 상대해야 하는 상황인 건 같았다.

‘신성 갑옷.’

신성력을 몸에 두르는 게 전부인 스킬. 사실 성녀로서 각성하긴 했지만 김유라는 공격 스킬을 가지지 못했다. 치료나 방어가 주였다.

신성 갑옷은 벽을 두르고 피해를 최소화시켜 준다. 유니크 등급의 스킬. 어지간한 각성자는 흠집도 못 낸다.

김유라는 신성 갑옷을 두른 채로 몸을 날렸다.

“어어? 뭐야, 이건?”

“칼이 안 들어가잖아!”

칼이 피부를 스치지 못하고 막히자 남자들도 당황했다. 그사이 김유라가 비도를 날려 앞선 남자의 허벅지를 찔렀다.

“끄악!”

허벅지를 찔린 남자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목숨을 빼앗는 일도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김유라는 전투 불능만 되면 충분하다고 판단하며 한 발자국 물러났다.

‘통한다.’

꿀꺽!

크게 침을 삼켰다. 사람을 해하는 건 처음이지만 감수해야 했다. 자신의 목숨만이 아니라 동생도 함께 있었다. 도망가긴 힘들고,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는 게 동생을 위한 일이었다.

“저, 개 같은 년이…….”

이쯤 되자 남자들도 쉽사리 달려들진 못했다. 순한 사슴인 줄 알았으나 궁지에 몰린 생쥐쯤은 된 탓이다.

“여자 하나에 뭐 하는 거야! 뭉쳐서 쳐, 병신들아!”

허벅지를 찔린 남자가 크게 외쳤다. 그래도 아주 오합지졸은 아니었는지 즉각 태세를 바꿨다. 어리바리했다면 마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여태껏 살아남았을 리가 없었다.

김유라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저들이 주변을 감싸는 순간 자신에게 승기는 없으리란 걸 깨닫곤 저들보다 한발 먼저 움직였다.

“하아, 하아……!”

김유라가 거친 숨을 토해 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남자 각성자들의 수준이 평균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그러니 민간인이나 사냥하고 있는 거겠지만……. 성녀로 각성한 김유라는 저들과 격이 달랐다.

실전 경험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도 이처럼 몰리진 않았을 것이었다.

남자들의 표정도 시간이 지날수록 변했다.

한 명, 두 명, 마침내 세 명이 쓰러지자 더는 무시할 수 없었다.

김유라는 입술을 훑으며 자세를 잡았다.

“다가오면 다가오는 놈부터 죽일 거야.”

아무리 험한 꼴을 많이 봐 왔대도, 직접 손에 피를 묻힌 건 처음이었다. 떨리지 않을 리가 없지만 억지로 손에 힘을 줘서 떨리지 않는 척을 했다.

최대한 독을 품고 남자들을 노려보았다.

강자만이 살아남는 세계다.

약자는 죽거나 도태된다. 그리고 약하더라도 강자를 알아보는 자만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성녀님, 거기까지 하지.”

그때였다. 다섯 명의 남자와 대치하고 있던 그때 바로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처음 허벅지를 찔러서 쓰러트렸던 남자가 민지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 있었다.

일반인이라면 허벅지를 깊게 찔린 상황에서 쉽사리 움직일 수 없겠지만 김유라는 그가 각성자라는 걸 간과했다. 각성자를 일반인과 그만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만 것이다.

“그 칼 내려놔. 응? 안 그러면 동생 목에 예쁜 자국이 생길 거야.”

“아…….”

마을에서 김유라가 동생을 어떻게 돌보는지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당황했던 남자들의 얼굴에도 여유가 생겨났다.

김유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여기서 칼을 놓는 순간 끝장이다. 자신도, 동생도 함께. 하지만 이대로 있다간 동생에게 해가 생길 판이었다.

“어어? 안 내려놔? 성녀님은 피가 보여야 정신을 차리는 타입인가?”

“그만! 내려놓을게요. 내려놓을 테니깐…….”

남자의 협박에 김유라는 눈을 꾹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비도를 바닥에 내려놨다.

그 순간 주변의 남자들이 달려들어 김유라의 양손을 잡고 바닥에 꿇렸다.

김유라는 자신의 미래를 직감했다. 육체를 불살라 몇몇을 데려갈 수는 있겠지만 그 뒤 동생의 거처가 문제였다.

“동생만이라도…… 동생에겐 손대지 마세요.”

“그건 성녀님이 얼마나 얌전히 우리를 따르는가에 달렸지. 안 그런가, 친구들?”

“그럼그럼.”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죽여 주지.”

동생을 인질로 잡은 남자가 어깨를 으쓱하자 다른 이들이 동의했다. 허나 그들의 눈은 여전히 정상이 아니었다.

‘아아, 신이시여.’

피 냄새를 맡았을 때 몸을 피하는 게 좋았을까?

아니면 다친 사람들을 치료한 게 죄였을까…….

착한 사람은 모두 죽었다.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이들은 모두 죄를 지은 사람들뿐이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믿었던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았건만 왜 자신과 동생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나랑 계약할래요?

그때 머리를 관통하는 작은 목소리가 있었다.

‘환청?’

―나는 레이. 아버지가 지어 주신 자랑스러운 이름이에요. 저와 계약하면 저 인간들을 모두 물리쳐 줄게요.

환청이라 여겼던 목소리가 점점 뚜렷해졌다.

소녀의 목소리. 허나 주변에 소녀는 없었다.

―빨리요. 한다고 하면 끝이에요. 어려울 거 없어요.

자신의 간절함이 만들어 낸 환청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어차피 낭떠러지였다.

“계약……할게.”

화르르륵!

말을 끝낸 순간, 허공에서 작은 불길이 일었다.

“불?”

“으아악!”

불길은 점차 커지더니 주변의 남자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어찌나 강력한지 순식간에 피부를 녹여 버렸다.

“뭐, 뭐야? 씨발! 뭐냐고!”

차례차례 불길에 의하여 죽어 나가자 김민지의 목에 칼을 들이밀던 남자도 당황했다. 이어 급히 도망치려 했지만 허벅지의 상처 탓에 빠르게 달릴 수가 없었다.

“아아아악!”

불꽃은 마지막 한 남자마저 불태워 버렸다.

이윽고 다시 김유라가 있는 곳으로 당도한 불꽃이 조금씩 변하며 한 소녀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반가워요, 급한 상황이라 먼저 손을 썼어요. 내 이름은 말했다시피 레이에요. 계약자의 이름을 알려 줄래요?”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

김유라도 정신이 없었다. 엉겁결에 답했다.

“유……라. 김유라.”

“김유라! 앞으로 잘해 봐요.”

머릿결이 불꽃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소녀가 미소 지었다.

* * *

나는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중급 이하의 정령은 계약을 해야 계약자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나와 계약이 되어 있기에 마음 내킬 때 굳이 계약자 앞이 아니더라도 실체화를 시킬 수가 있었다.

‘김유라로 말미암아 정령과의 계약이 두드러지겠지.’

김유라는 성녀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게 되어 있었다. 거기서 레이가 등장하면 정령과의 계약이 인간들 사이에 퍼져 나갈 것이었다.

내가 개입하면 부자연스러워지니 레이에게 전권을 맡겼다.

불의 정령들이 인간들 속에 개입하면 할수록 나의 힘은 강해진다.

‘다른 속성의 정령들도 구할 길이 있으면 좋겠군.’

그러기 위해선 불의 정령들을 제대로 키워서 실적을 쌓아야 했다. 정령계로 들어가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으니 다른 정령왕들이 혹할 정도로 이점이 있음을 어필하는 것이다.

겸사겸사 불의 정령왕에게 성장한 정령들을 돌려주고 추가 보상도 받을 터.

단시간에는 안 돼도 멀리 내다보면 득이 될 것들이 많았다.

‘이제 막시움을 보러 가야겠군. 우파와 아리엘의 전쟁이 잠깐 휴전을 맺었으니 도와주려면 지금밖에 없지.’

우파와 아리엘.

전력 자체는 우파가 유리했고, 균형을 맞추고자 나는 막시움을 투입했다.

그리고 막시움은 우파를 방해하며 전력을 많이 잃었다.

잠시 휴전하고 있을 이때 병력을 충원하지 않으면 더 이상 기회는 없다.

‘500만 포인트 정도면 충분하겠지.’

막시움의 추가 병력을 구매하는 데 들어갈 포인트를 계산하며 나는 다시 던전으로 발길을 옮겼다.

업적 상점에서도 병졸들을 구매할 수 있었다.

나락 군주의 보물 창고에 있었던 것들도 추가되어 상당히 많은 종류가 존재했는데, 그중에는 아직 열리지 않은 요소도 있었다.

‘창고도 세부적으로는 나뉘어져 있고, 창고 안의 창고를 열려면 업적 점수나 다량의 포인트가 필요하다.’

가볍게 턱을 쓸었다.

나락 군주의 창고. 그 안에는 또 다른 여러 개의 창고가 위치하고 있었다. 당장 개봉된 게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창고를 열려거든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해서 그간 보류하고 있었다.

‘당분간은 포인트를 쓸 기회가 없었으니 한 번 열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테지.’

눈길을 옮기자 기다란 목록이 떠올랐다.

[봉인된 창고 목록]

봉인된 창고를 포함하여, 그 안에 있는 것들은 포인트로 대체하여 구매할 수 있습니다.

신기한 무기 창고- 1,500점 or 2,500,000PT

알 수 없는 비밀 창고- 2,000점 or 3,200,000PT

스크롤 창고- 1,000점 or 2,000,000PT

해골 병사의 창고- 2,500점 or 4,000,000PT

…….

내가 가진 업적 점수는 1만 점가량. 포인트는 1,500만 정도가 있었다. 마구 열 수는 없지만 그렇게 부담되지도 않을 수준이었다.

‘막시움에게 필요한 건 병사다. 해골류면 더할 나위 없지.’

공개되어 있는 해골 병사는 종류가 적었다. 대부분의 마법사가 자신만의 제조법 공개를 꺼려 한 탓이다.

하지만 저 창고 안에는 일반적이지 않은 해골 병사 류의 마수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해골 병사의 창고를 열어야겠군.’

[4,000,000PT를 이용해 ‘해골 병사의 창고’의 봉인을 풀었습니다.]

[앞으로 업적 상점에 해골 병사의 창고에 존재하는 병사들의 종류가 나열됩니다.]

고개를 주억였다. 업적 점수는 어지간하면 모을 셈이었고, 포인트를 사용해 봉인을 푼 것이다.

머지않아 또 다른 목록이 눈앞에 나열되었다.

[해골 병사의 창고]

스켈레톤 워록- 100 or 100,000PT

스켈레톤 가디언- 300 or 400,000PT

카오스 솔져- 1,000 or 1,300,000PT

본 드래곤(2)- 3,000 or 4,000,000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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