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193화
해골류의 마수는 총 네 가지였다. 특히 워록, 가디언은 전생에서 몇 차례 본 적이 있기에 익숙한 이름이었다.
마도에 정통한 판데모니엄이 직접 대량으로 생산한 종류인데, 개체 하나는 아주 강하다고 하지는 못하지만 모이면 모일수록 감당하지 못할 만큼 강해지던 기억이 있었다.
한데…… 카오스 솔져는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다음 항목은 나를 놀랍게 하기 충분했다.
‘본 드래곤.’
최상급 2Lv의 마수! 최대 두 마리까지 구매할 수 있다는 표시가 있었다.
‘나락 군주는 최상급의 마수를 상당 숫자 보유하고 있었군.’
하기야 신이 되려고 한 인간이 나락 군주였다. 인간으로선 절대로 범접하지 못할 경지에 도달했고, 마족들에게도 공포를 안겨 준 절대자가 그다. 지저 세계까지 만들어 놓고 준비를 할 지경이니 최상급의 마수를 다수 보유한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어쩌면 다른 봉인된 창고에도 이와 비슷한 최상급의 마수가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양보단 질이다.’
잠시 턱을 쓸었다. 워록이나 가디언으로 숫자를 채울 수도 있겠지만 차라리 확실한 마수 하나를 맡기는 게 전략적인 측면에선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어차피 막시움이 우파를 괴롭히는 과정은 정면 승부보다 게릴라전에 있기 때문이다.
결집된 소수는 다수를 압박할 수 있다. 막시움만큼 효율적인 싸움을 하는 노장도 드물었다. 적어도 전략적인 측면에선 나보다 막시움이 나았다.
‘그럼…….’
구매할 것을 결정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상당한 지출이 되겠지만 충분히 투자할 가치는 있었다.
* * *
남아메리카 브라질 벨렘.
과거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였던 항구 도시.
본래는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였으나 지금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황폐화된 장소.
그곳에 막시움이 터를 잡았다.
5천에 달하는 해골 병사를 이끌고 분전했으나 적은 강대했고, 시간을 지연시키는 정도의 성과밖에 거두지 못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대단하긴 했다. 천하의 우파가 뒤를 잡힐까 봐 쉽사리 전군을 진격시키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않았다. 5천의 숫자가 지금은 반도 안 되는 2천뿐이었다. 해골 병사들의 질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라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흐음, 보급은 필요 없다지만 병력의 충원은 아쉽구나.”
바닷가 근처에서 자신의 말은 탄 채 막시움이 중얼거렸다.
시체를 이용해 만든 병사다. 먹을 거나 생활용품 같은 건 필요 없었다. 문제는 병원의 충원 속도가 원체 느리다는 것이다.
고개를 돌리자 조금 떨어진 장소에 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 근처에서 두 리치가 병사들을 지휘하며 뼈들을 조합하는 중이었다.
인간의 것도 있고, 마수의 것도 있고, 동물의 것도 있지만 저 모두를 활용해서 병사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때 기습만 없었어도…… 끄응.”
오지에 떨어져서 잘 알지도 못하는 적을 방해하는 일이다. 걸리는 장애물이 없는 건 말이 안 되지만 전진 기지를 확보함에 있어서 실수를 하고 말았다. 덕분에 우파 휘하의 공작에게 걸렸고 늦은 저녁, 기습을 당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모든 병사를 다 잃을 뻔했다. 이만큼 보존한 것도 막시움의 기량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충원을 하려거든 지금이 적기일진대.’
우파가 진격을 멈췄다. 남아프리카에 주둔하며 몸을 움츠린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곳이 발각되어 먼저 쓸어버리려는 심산인 줄 알고 긴장했으나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나중에야 신성 지대인지 뭔지가 나타나며 마족들이 대대적으로 활동을 축소시켰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어쨌든 아무 방해 없이 병력을 늘리려면 지금밖에 없다.
그간은 한 장소에 5일 이상을 머무른 적이 없어서 가뜩이나 느린 생산 속도가 극악이 되었다.
“작업은 잘되어 가고 있나?”
막시움이 두 리치에게 다가가 물었다.
“여기 인간, 너무 약하다. 좋은 뼈, 별로 없다.”
“그래도 속도를 올려 주게. 지금의 두 배는 되어야 해.”
“손이, 적다! 둘이선 이 정도가, 한계다.”
리치의 음성은 단호했다.
무덤이나 죽어 있는 시체들을 모아서 뼈를 빼내었으니 그야 좋은 재질이 나올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하루에 30기가 한계이니 너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해골 병사들이 움직이며 뼈를 모으는 작업을 계속하는 중이었다. 달그락대는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웠지만 막시움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황제 폐하가 나를 믿고 맡기신 일이다. 고작 여기서 멈춘다면 무슨 수로 얼굴을 들고 다닌단 말이냐.’
지저 세계. 공활하고 공허한 곳. 거기서 막시움은 잔혹한 사령관으로 이름을 날렸다. 다른 사령관들과 달리 그만이 중립을 유지하며 보물 창고를 노리는 사령관들의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저 방관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언젠가 돌아오실 그분을 위해 최소한의 병력이라도 온전하게 남겨 두고자 한 것이었다.
진정으로 보물 창고를 겨냥하는 이가 있다면 그때는 움직였겠지만…… 하지만 반쯤 지쳐 있기도 하였다.
그러던 찰나 이상한 세계에 강제로 소환되고 그분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발견했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때야 비로소 확신하게 되었다.
지저 세계로 돌아온 직후 즉시 사령관들의 싸움을 멈추고자 바쁘게 움직였다. 이후 그분이 직접 지저 세계에 찾아왔을 땐 얼마나 놀랐는가.
운명이라는 말은 싫어하지만 자신은 땅에 묻히는 그날까지 그분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몇 번이나 맹세한 뒤였다.
그 맹세에 보답이라도 하듯 이처럼 중요한 일을 직접 맡기셨건만 여기서 멈춰 설 수는 없었다.
‘약소 던전을 치고 차지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지.’
약간 극단적이긴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다. 우파 휘하 마족들의 던전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는 대략적으로 파악한 상태였다. 그중 가장 약한 곳을 뚫고 차지하면 단번에 전력을 충원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뒤다. 우파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의 대군이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보았기에 섣불리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화아아악!
쿠우우웅!
막시움이 다른 방법은 없는지 한참을 모색하고 있을 순간이었다.
거대한 돌들이 사방에 떨어지기 시작했고, 대지가 찢어지며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이 기색은…… 백작 아르엔투!’
마력에서 느껴지는 고유의 기색. 일전 기습을 받았을 때 싸운 적이 있었던 백작 아르엔투의 것이 분명했다.
아무래도 어디선가 뒤를 잡힌 듯싶었다.
시선을 돌려 바다를 바라보자 크라켄 몇 마리와 거대한 배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이만한 부대가 움직일 때까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실책이라면 실책이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최대한 방비를 해 놨건만…… 대체 어떻게?’
리치를 통해 마법진을 곳곳에 설치하고, 병사들을 대거 망을 보는 데 투입했다. 그런데 어떠한 소식도 들려온 게 없었다. 지척까지 도달하고 공격을 시작한 뒤에야 눈치를 챘을 정도다.
‘엄청난 실력의 마법사가 있구나.’
리치와는 비교도 안 될 수양을 쌓은 마법사가 있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막시움이 급히 검을 뽑았다.
“대열을 유지하고 응전하라!”
적은 작심을 했다.
아무래도…… 쉽지 않을 싸움이 될 것 같았다.
* * *
우파 휘하의 백작인 아르엔투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후후, 놈의 표정이 가관이군. 바로 뒤를 잡을 때까지 눈치를 못 챘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아르엔투는 막시움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놈은 가까이만 다가가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곤 도망가기 일쑤였다. 어찌나 일사불란한지 좀처럼 잡을 수가 없었다.
혹은 막시움 본인이 직접 시간을 끌기도 했다. 최소한 최상급 3Lv로 측정되는 무력의 소유자라서 1:1로는 녀석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써 끝이었다.
아르엔투가 음흉하게 웃고는 뒤를 돌아봤다.
기다란 목줄이 채어진 채 개처럼 네발로 앉아 있는, 너무나 긴 머리카락 때문에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구분이 안 되는 자가 그곳에 있었다.
바로 우파가 직접 아르엔투에게 하사한 물건이었다. 능히 최상급의 마수도 속일 수준의 대단한 마법사. 약간의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매우 쓸 만했다.
‘우파 님께서 기회를 주셨다. 이번에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
막시움!
죽음의 기사.
어디서 나타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놈이었으나 이번에 잡아서 반드시 진실을 듣고 말 테다. 천사들처럼 이벤트 마수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노리고 놈을 풀어놨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도망칠 곳은 없다. 육지도, 바다도, 땅 밑마저 너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으니.”
아르엔투가 손을 들었다. 동시에 그의 스킬 중 하나인 ‘대지 폭발’이 발현되었다.
콰아앙!
대지에서 솟구친 불이 사방을 에워쌌다. 뼈조차 녹이는 뜨거운 불꽃이 해골 병사들을 집어삼켰다.
* * *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움직이는 게 노련한 노장의 덕목이다.
막시움은 이 비슷한 상황이 올 때를 대비해 이동 마법진을 미리 설치해 뒀다. 막대한 재료가 들어가고 마법진을 옮길 수 없다는 제약이 있지만 이곳을 거점으로 삼은 이상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여긴 것이다.
‘리치들과 주요 병사들이 빠져 갈 시간을 벌어야 한다.’
이동 마법진이 발현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들어간다. 그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리고 만약의 상황 속에서도 자신만은 살아남아야 했다.
설령 병력 모두를 잃는 한이 있어도. 막시움 자신이 그 이상의 값어치가 있기 때문이다.
허나 처음부터 실패를 상정하고 혼자 후퇴할 순 없었다.
아슬아슬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 볼 작정으로 막시움이 나섰다.
그의 검이 황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며 주변을 마구 휩쓸었다.
켈베로스를 비롯한 수많은 마수가 그의 근처에서 산화되었다.
‘아르엔투!’
그러나 막시움의 눈은 오로지 한 지점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백작 아르엔투, 그리고 그 바로 옆에 있는 정체불명의 생명체다.
‘저놈이로군.’
아아. 본 즉시 깨달았다.
대단한 마법사라고 생각한 녀석이 바로 저거였다. 녀석의 주변에 흐르는 마력은 매우 이질적이었다.
‘저놈만큼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만한 규모의 기습이 있었으니 어떻게든 붙어 올 게 분명했다.
쫓기는 상황에서 저 마법사는 위험하다. 아주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살아 있거든 황제 폐하에게도 걸림돌이 될 터.’
적어도, 빠져나가기 전에 아르엔투보다 저 마법사를 없애는 게 급했다.
마법, 흑마법에 있어선 견줄 자가 거의 없다는 리치들마저 아예 무력화를 시킨 장본인이다. 아무리 황제 폐하께서 전지전능하다고 한들 귀찮아질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 신하 된 자로서 싹을 끊는 게 최선일 것이다.
“검이여!”
후우우웅!
검이 잘게 떨며 황금의 빛을 더욱 넓게 확산시켰다.
그 직후 막시움이 말의 등을 차곤 모든 마수를 무시한 채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