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194화
* * *
나는 미간을 구겼다.
‘이상하군.’
출발하기 전 막시움에게 먼저 연락을 줄 셈이었는데 수정구가 빛을 잃었다. 파괴되었거나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방증이다.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 전에 먼저 보고를 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걸 보아 무언가가 급작스럽게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누군가에게 습격을 받았다면 막시움이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을진대.’
막시움의 무력, 사령관으로서의 능력은 제법 출중한 것이었다. 그가 가만히 넋 놓고 기습을 당할 리 만무하다. 만에 하나의 상황에 대비하여 몇 가지 굴은 파 뒀으리라.
한데도 의구심이 인다. 감이 좋지 않았다.
약간의 예지를 얻은 뒤 내 감은 더욱 날카로워져 있었다. 이런 느낌이라면 열 중 아홉은 맞는다고 봐도 무방했다.
두둑. 달그락.
수정구를 다 살펴 갈 무렵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몸을 돌리자 특이하게 생긴 해골 두 기가 나를 반겼다.
‘카오스 솔져.’
거미를 연상시키는 여덟 개의 다리, 두 개의 몸통!
머리도 당연히 두 개였고, 팔은 네 개였다.
모두 뼈로 이루어졌으며 기하학적이라 하기 충분한 모습이었다.
바로 이 두 기가 카오스 솔져다.
심안을 열자 즉시 두 마수의 상태창이 떠올랐다.
이름 : 카오스 솔져
능력치 :
힘 101 지능 66
민첩 88 체력 99 마력 77
잠재력(431/431)
특이 사항 : 혼돈 속에서 태어난, 강력한 해골 병사.
스킬 : 혼돈과 파괴(Epic), 초가속(Ex U)
해골류의 마수치곤 아주 훌륭한 능력치다. 스킬도 에픽 등급이 하나 있었다. 일반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마수의 한계를 뛰어넘는 훌륭한 표본이었다.
내가 앞서 나가자 두 카오스 솔져가 바짝 내 뒤를 좇았다. 이윽고 던전의 입구로 다가가니 모든 구조물이 초라해질 법한 마수가 바닥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두 마리의 본 드래곤!
예상보다 지출이 컸지만 구매해도 전혀 손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본 드래곤을 마계 옥션에서 구매한다면 경쟁 때문에 5, 600만 포인트 이상은 들어갈 것이었다.
본체만 족히 100미터에 가까운 크기. 날개는 그보다 배는 컸다. 그런 마수가 무려 두 마리다. 어찌 압도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천천히 본 드래곤의 위에 올랐다. 카오스 솔져도 본 드래곤 위에 한 기씩 서서 고삐를 잡았다. 카오스 솔져와 본 드래곤의 조합이 어떠한 파괴력을 낳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 올 수준이었다.
물론 마룡에 미치지는 않으나 그래도 용족이지 않은가!
용족은 고고하고 자존심이 매우 강하다. 그들을 따르게 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여 용족을 끌고 다니는 마족을 나는 상당히 부러워했었다.
이제는 내가 직접 본 드래곤을 조종할 수 있었다. 마룡보다 살짝 못 미친다 뿐이지 본 드래곤은 언데드나 해골류의 마수 중 최고봉의 자리에 올라 있었다.
“마스터~ 어디 가세요?”
막 낮잠을 잤는지 이히가 눈을 비비며 자리에 나타났다.
“막시움을 만나러 간다. 급한 일이 생기거든 보고하도록.”
“이히가 제일 잘하는 게 보고여요. 이히히.”
크게 믿음은 안 갔지만 그래도 그간 많은 사고를 치며 조금은 성숙해진 이히다. 급한 일이 생긴다면 먼저 보고부터 하기는 할 것이었다. 물론 그 ‘급한 일’의 관점이 이히에게 조금 달리 적용할 수도 있었지만 크리슬리와 타쉬말 모두가 바쁘니 어쩔 수가 없었다.
“작은 일은 줄리엄과 상의하라.”
다크 엘프의 장로 줄리엄이라면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었다. 거듭된 내 말에 이히도 마음이 상했는지 볼을 작게 부풀렸다.
“이히를 믿으셔요, 마스터. 문제 안 생기게 이히가 눈 부릅뜨고 감시할게요.”
잠이나 안 자면 다행이다.
나는 본 드래곤 위에 올라 발을 한 차례 굴렸다.
구아아아아아!
그러자 본 드래곤이 포효하며 날개를 펼쳤다.
카오스 솔져가 잡은 고삐를 더욱 강하게 쥐자 본 드래곤 두 마리가 비상하며 던전의 입구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다녀오세요~”
이히가 그 뒤에서 최대한 정성스럽게 배꼽 인사를 했다.
마지막으로 연락이 닿은 곳은 브라질이었다. 벨렘이라는 작은 도시에 몸을 숨긴 채 병력의 점검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거리가 조금 있었지만 본 드래곤의 비행 속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반나절 만에 목표한 장소에 도달할 수 있었다.
바다에 인접했으나 이미 폐허가 된 도시.
온갖 마수의 사체와 뼈들이 즐비했다.
나는 본 드래곤에서 내려 가만히 주변을 살피다가 결론을 내렸다.
“습격을 당했군. 바로 근처에서.”
말 그대로 습격이다.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막시움이 크게 당한 것이다.
다행히 막시움으로 보이는 시체는 없었다.
범인은 보나 마나 우파거나 놈의 휘하 마족 중 하나이겠지만…… 싸움의 흔적이 격렬한 것으로 보아 고전을 면치 못한 듯싶다.
‘마수만 건네주고 한 발 빼려 했거늘.’
그동안은 굳이 내가 전면에 나설 필요가 없었다. 우파를 방해하면 아리엘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고, 나는 그곳에 낚싯대만 들이밀면 되었다.
한데 방해를 해야 할 막시움이 당했다. 아직 완전히 당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비슷하게까진 되었을 것이다.
‘찾아야 한다.’
막시움은 사용할 데가 많았다. 이런 곳에서 잃기는 아까웠다.
“주변을 뒤져라. 이상한 흔적이 보이면 바로 내게 알려라.”
쉬이이이.
백여 마리의 쉐이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락이 끊긴 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쉐이드를 대동하길 잘했다.
30분 정도가 지나자 쉐이드가 하나둘 돌아와 나를 안내하였다. 대부분이 별거 없는 흔적이었으나 의미심장한 표식 하나를 발견했다.
‘이동 마법진.’
허름한 폐가 안.
반쯤 지워지긴 했으나 틀림없는 이동 마법진의 흔적이었다.
이동 마법진을 설치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재료가 들어간다. 다른 마족이 했을 리는 없고, 이곳에 머물던 막시움을 제외하면 따로 설치할 이가 없었다. 눈치채지 못하고 습격받았을 때를 대비하여 설치해 둔 것이다.
‘마력의 흐름은 끊겨 있군.’
아쉽게도 이동 마법진의 형태만 발견했을 뿐 마력 회로는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이래선 마력의 흐름을 따라서 쫓을 수가 없었다.
‘막시움을 따르는 누군가가 마력의 흐름을 고의적으로 차단해 뒀어.’
관자놀이를 한 차례 눌렀다. 습격을 당했고, 빠르게 대피했다면 마력 회로를 차단할 겨를이 막시움에게 있을 리 없었다.
필시 막시움을 습격한 쪽에서 지웠으리라.
왜? 라는 의문이 생기지만 놈들은 막시움에게 조력자가 있다고 믿는 게 분명했다.
‘나라고 확정 짓진 못했으나 의심은 하고 있는 단계.’
생각보다 미련하진 않은 모양이다. 어쨌든 현명한 판단이었다. 덕분에 여기서 나도 막혀 버렸으니 말이다. 흔적도 없이 아예 지워져 버린 걸 복구할 능력은 내게도 없었다.
“흠……?”
주변을 살피던 도중 어지럽혀진 폐허 안에서 허름한 검 하나를 발견했다.
“이건…… 막시움의 검이로군.”
별 볼일 없이 평범해 보이는 검을 손에 쥐었다.
막시움이 사용하던 검이 분명했다. 싸울 땐 황금빛의 찬란한 색을 내뿜으며 적을 양단하지만 평상시엔 이러한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이 검을 적들이 발견하지 못한 이유는 그래서일 것이다. 그들이 보아 온 막시움의 검은 항상 빛나고 있었을 테니까.
검에 마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얕은 황금빛이 검 주변을 맴돌았다.
부르르!
순간 검이 잘게 떨었다. 의아함을 느끼고 검을 꺾자 떨림이 멎었다. 다시 처음처럼 자세를 잡자 검이 부들부들 울었다.
‘검이 동남쪽에 반응한다.’
고개를 주억였다.
아무런 이유 없이 떨지는 않을 터.
거의 전례가 없는 경우지만 오랫동안 사용한 검에는 자아가 깃든다. 막시움은 수천 년 이상 이 검 하나만을 사용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완전한 에고 소드는 아닐지라도 주인이 어디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을 테지.
나는 폐허를 나왔다.
이후 본 드래곤 위에 올라타곤 말했다.
“동남쪽으로 간다.”
남아메리카는 온전한 우파의 영역이었다. 나도 마구 활개 치며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걸려도 빠져나갈 수는 있으나 그 이후가 문제 될 수 있었다.
‘누군가가 따라붙었군.’
이 근처에 자리 잡은 마족이라면…… 드룸인가? 별 볼 일 없는 녀석이나 자기의 영역에 상당한 애착을 가진 마족이다.
저 멀리서 와이번 수십 기가 맹렬히 추격을 하는 중이었다.
“속도를 높여라.”
하지만 와이번 따위가 본 드래곤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후아아앙!
본 드래곤이 날개를 더욱 활짝 펼치며 허공을 빠르게 날았다.
몇 번의 추격이 더 있었지만 별일 없이 털어 내곤 검이 강하게 반응하는 장소에 다가갔다. 산이 아주 많은 장소였는데, 이곳 어딘가에 막시움이 있는 게 분명했다.
“여기서 대기하도록.”
본 드래곤은 움직이는 순간 발각될 수밖에 없다. 하여 최대한 본체를 숨기고 나 혼자 움직였다. 카오스 솔져도 본 드래곤의 근처에 있게 하였다.
‘죽음의 냄새가 나는군.’
산기슭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미간이 찌푸려졌다. 마수의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지만 기분 나쁜 냄새가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지저 세계에서 사령관을 죽였을 때도 이와 비슷한 냄새가 사방에 퍼졌다. 아주 미약하지만 지독한. 허나 이곳은 지구였고, 지저 세계의 사령관은 막시움밖에 없었다.
막시움에게서 나오는 냄새가 분명했다.
‘확인해 보기 전까진 모른다.’
우파가 직접 나섰다면 모를까…… 막시움이 쉽게 당했으리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쯧. 혀를 차곤 움직임에 박차를 가했다.
막시움의 검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동하자 곧 동굴 하나를 발견했다.
동굴 안쪽에서 더욱 강한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기다. 막시움은 이 안에 있다.
안으로 들어가자 동굴이 제법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다른 병사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곧…… 동굴의 깊숙한 장소에서 나는 동굴 벽에 기댄 채 쓰러진 막시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말의 꼬리뼈를 부여잡곤 아예 의식을 잃은 모습이었다.
단순히 겉모습으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막시움.”
주인으로서 마력을 개방하며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수십 초를 기다렸고, 막시움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황제…… 폐하……?”
나를 알아보곤 막시움이 일어서려고 하였다. 나는 그를 막아서며 입을 열었다.
“맞다. 억지로 일어날 필요는 없으나 대체 어찌 된 일인지 경위를 설명해라.”
“달…….”
“달?”
“거대한 달의 마력을 품은…… 마법사가…….”
막시움의 이야기는 거기까지였다. 다시 정신을 잃곤 몸을 축 늘어트린 것이다.
나는 천천히 막시움을 어깨에 얹었다.
‘마족이 아닌 마법사라.’
상대가 마족이었다면 그 이름을 내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막시움은 ‘마법사’라고 말했다.
하지만 달의 마법사라 하면 딱히 떠오르는 기억이 없었다. 인간 각성자 중에서나 몇몇 비슷한 이름을 지닌 이들이 떠올랐지만 그들 수준으로 막시움을 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시기도 맞지 않았다.
‘우파가 또 무슨 짓을 저질렀나 보군.’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막시움을 치료하는 게 먼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