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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199화 (199/242)

던전 사냥꾼 199화

그로부터 3일 뒤, 나는 0001의 인사를 받으며 돌아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아주 특이했고 ‘신’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규율과 규칙, 지금 지구의 상황이 얼마나 이질적인지도 말이다.

그렇다고 내 마음가짐이 변하지는 않았다. 내 목적은 마왕이었으며 내 앞을 가로막는 모든 적을 배제할 따름이다.

내가 달의 마법사라 칭한 놈의 이름은 구스타르테.

신위를 가진 신이었으나 지금은 마족에게 몰락한 인형이었다.

만약 달의 화살이 효과가 없거든 구스타르테를 없애는 길밖에 방법이 없었다. 최저한의 약속을 지킨 뒤 주저하지 않고 구스타르테를 죽일 작정이었다.

신을 죽인다. 나로선 여태껏 생각도 못해 본 발상이다.

‘신을 죽인 마족이라.’

재밌는 이야기다. 입으로, 혹은 서적에만 존재하던 신화적인 업적들. 그곳에 내 이름이 들어가는 건가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

더불어서 몇 가지 계획도 세워 두었다. 구스타르테는 자신이 가진 힘을 온전히 사용하지 못한다. 명령에만 따르게 설계되어 명령과 상반된 내용이 나오면 극심한 혼란을 느낀다. 잠시나마 아예 움직임을 멈춰 버린 걸 보면 알 수 있다.

치천사의 강림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고, 지금 눈앞에 들이닥친 강력한 적이 내 두 눈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구스타르테. 죽기 싫거든 얌전히 인형에서 탈피해야 할 것이었다.

다시 지상에 도달했을 때 세상은 깜깜했다. 완연한 저녁. 마지막으로 격돌한 장소에 정확하게 떨어질 수 있었다.

주변은 엉망진창이었다. 모든 구조물이 스러졌으며 폭격이라도 맞은 듯 지상에 구멍이 수없이 많았다. 지상에서 보면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의 어지러움이었다.

‘이 마력은…….’

다수의 마수와 마족의 기척이 포착됐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는 게 급선무일 듯했다.

‘막시움을 찾아봐야겠군.’

어두운 밤. 쏜살같은 빠르기로 주변을 벗어났다.

미리 접견 장소를 정해 둔 탓에 막시움을 찾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브라질 헤시피 근처의 이름 없는 작은 섬이 바로 그 장소였고, 그곳에 본 드래곤과 카오스 솔져, 그리고 막시움이 몸을 숨긴 채 대기하는 중이었다.

“오오, 황제 폐하!”

마력을 펼치며 내 존재감을 드러내자 즉시 막시움이 나타났다. 그는 매우 기쁘고 반가운 모습으로 빠르게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막시움의 갑주가 많이 상해 있었다. 그 싸움이 얼마나 강렬했는지를 보여 주는 모습이다. 허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칭찬보단 묻고자 하는 것을 말했다.

“아르엔투는 처리했나?”

“죄송합니다. 다른 마족들의 충원이 있어서 시간을 버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 재수 없는 입을 뭉개 버리긴 했습니다만…….”

고개를 끄덕였다. 막시움 딴에는 아르엔투의 입을 막으면 더 이상 명령을 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충분히 높이 살 만한 공로였다.

“달의 마법사는 그럼 아르엔투와 함께 있겠군.”

“그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

막시움이 얼굴을 살짝 들어 나를 바라봤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폭발이 일었습니다. 폐하와 달의 마법사가 일으킨 폭발이었지요. 그 직후 제가 찾아갔을 땐 폐하와 달의 마법사 모두 자취를 감춘 뒤였습니다. 혹시 몰라서 아르엔투의 주변을 감시했지만 역시 달의 마법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막시움은 일 처리를 허투루 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확신하며 말하고 있으니 진짜일 가능성이 높았다.

달의 마법사가 사라졌다…….

잠시 턱을 쓸었다.

“계획을 수정하겠다. 아르엔투를 정리하지.”

“아르엔투를 말입니까? 그렇다면 제가 직접…….”

“아니, 이번엔 내가 나서겠다.”

동시에 막시움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건 시기가 빠르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혹시 신의 능력이 부족하다 여기셨다면 부디 마지막 기회를 주십시오!”

쿵! 쿵!

막시움이 수차례 머리를 박았다.

전혀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막시움에게는 그렇게 들렸을 수도 있겠다.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어부지리였다. 우파와 아리엘이 서로 상잔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선 구스타르테를 처리할 필요가 있었고.

아르엔투를 처리하다 보면 구스타르테도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때 구스타르테도 한 번에 해결할 셈이었다.

문제는 여전히 우파다. 해서 내가 나설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직접적으로 아르엔투의 던전을 치는 데 모습을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우파의 시선을 돌려놓기만 하면 되었다. 아르엔투의 던전 따위에 신경을 쓸 수 없도록!

그러기 위해 나는 강수를 둘 작정이었다.

‘사자 대면.’

대공들의 회합을 가진다.

초대장을 날리고, 중립 지역에 모여서 서로 대화나 한 번 해 보자는 식으로 도발을 한다. 초대장을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한 떡밥은 던질 요량이었다.

‘궁금한 것도 제법 있다.’

우파와 판데모니엄에게 특히 궁금한 점이 있었다. 이번에 그들을 떠보며 정보를 건져 본다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낳을 수 있었다. 반대로 그들도 내게서 정보를 얻으려고 하겠지만…… 그런 싸움도 썩 나쁘진 않다.

“아르엔투의 던전 공략은 너에게 맡기마. 더불어서 달의 마법사를 견제하는 방법도 알려 주겠다.”

“……! 신 막시움, 최선을 다해 명을 받듭니다.”

그제야 조금 안심한 듯이 떨림이 멎었다.

나는 가만히 그런 막시움을 내려다보았다.

이면 세계에 있는 동안 구스타르테의 발을 묶어 둘 방법을 생각해 뒀다. 마수들을 충분히 붙여 준다면 아르엔투를 처리하고 구스타르테의 발목도 잡아 둘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자 대면이 끝났을 때 내가 처리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었다.

‘이히.’

요정의 축복!

이면 세계에선 발동되지 않았으나 이곳은 지구였다.

이히와 같은 세상에 있으니 잠시 후 맑은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네~ 마스터. 이히는 지금 열심히 일을 하고 있어요.

―시킬 일이 있다.

―네~ 마스터. 이히는 지금 열심히 일을 하고 있어요.

미간을 좁혔다. 같은 대답. 목소리가 묘하게 늘어진 것을 발견했다. 하여 무거운 목소리로 내 심상을 전했다.

―오스웬에게 네 장의 초대장을 만들도록 하라. 내가 돌아갈 즈음에는 완성이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흡! 이히, 히. 이히 안 졸았어요. 초대장 말이죠? 꼭 전할게요. 그런데 무슨 초대장이여요? 그냥 만들라고 하면 돼요?

―대공들에게 전할 것이다. 이 한마디만 하면 알아서 만들 터. 필요한 재료가 있을 경우 부담 없이 지출하라.

―넵!

이히의 우렁찬 대답을 듣곤 통신을 끊었다.

“마법사의 종적은 아예 놓쳤나?”

“예, 황제 폐하. 제가 갔을 땐 이미 자리에서 사라진 뒤였습니다.”

“흠…… 그럼 돌아가야겠군.”

“저는 바로 아르엔투의 던전 공략을 시작하겠습니다.”

의지는 인정해 줄만 했다. 그간 당한 게 많았는지 두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허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도 나와 함께 간다.”

“예?”

“장비를 새로 맞출 때도 되지 않았나?”

“아……!”

막시움이 크게 감동받았다. 지저 세계에서부터 사용한 장비들. 장비 자체가 훌륭해서 아직도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 반면 마지못해 사용한다는 느낌의 장비들도 분명히 있었다. 대표적으로 투구와 갑옷이 그랬다.

녹이 슬고 곳곳에 구멍이 뚫려서 방어력은 형편없었다. 그나마 옵션은 봐줄 만했지만 더 좋은 물건들이 던전에는 많았다.

“가지.”

본 드래곤 위에 오르자 막시움이 급히 뒤를 따랐다. 그리고 카오스 솔져를 대신하여 본 드래곤을 몰기 시작했다.

간만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내가 도착하자 오스웬과 이히가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초대장을 완성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는지요?”

오스웬이 건넨 초대장을 받으며 한 번 살펴보았다.

가장 인상적인 건 오리하르콘 가루가 살짝 묻어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별빛처럼 꾸며져 있었고, 분노와 황제의 검을 본떠 초대장의 양옆에 그려 놓았다. 내용을 적는 공간이 빨갛고 무척이나 도발적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그 외에도 흠잡을 곳 없이 화려하고 웅장한 초대장이었다.

“훌륭하군.”

“감사합니다.”

“이히, 크리슬리와 줄리엄을 불러라. 나는 던전 코어 옆에 있을 것이다.”

“알겠사와요, 이히히! 이히가 바로 부르러 갈게요 그럼!”

이히가 날갯짓을 하며 던전을 빠져나갔다. 아무래도 직접 전할 생각인 듯했다.

‘이제…… 내용만 정하면 되겠군.’

크리슬리와 줄리엄을 부르는 이유가 그 것이다.

초대장의 내용!

나는 초대장 자체를 쓸 줄 모르니 그나마 지식인인 둘의 협력을 받아 볼 셈이었다.

대공들이 참여할 수밖에 없는 초대장이 완성될지는 그 둘에게 달려 있었다.

크리슬리와 줄리엄, 그리고 나는 던전 코어의 옆에 앉아 최대한 편지의 내용을 구상했다.

“우선 목적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줄리엄이 말했다.

나는 주저 없이 답했다.

“겉으로는 천사들에 대한 정보 교환. 그러나…… 오쿨루스의 일 이후로 모든 대공은 하나같이 모종의 수작을 부리고 있다. 우파가 그랬고, 판데모니엄이 그랬지. 아리엘도 마냥 청렴하지만은 않을 터. 그를 암시하는 문구를 넣어라.”

판데모니엄은 오쿨루스의 휘하 마족들을 데려갔다. 우파는 구스타르테를 인형으로 만들었다. 아리엘도 분명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종의 일을 꾸미고 있을 것이다. 제아무리 깨끗해도 그녀는 마족이었기에.

“다소 도발적인 내용이 되겠군요.”

“시를 사용하는 건 어떨지요?”

크리슬리가 의견을 냈다.

나는 작게 웃고 말았다.

“대공들이 그런 고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군.”

시 읽는 마족이라니. 못 들어 본 건 아니지만 내가 본 적은 없다. 아리엘이라면 기초 소양 정도는 있을 것 같았다.

“나의 던전 마스터시여, 그래서 더욱 시처럼 꾸미는 게 괜찮을 것 같습니다. 선의로 보내는 초대장은 아니지 않습니까?”

“바로 그렇다.”

선의는커녕 악의만 가득하다.

게다가…… 그들에게 묘한 위협도 함께 줄 것이었다.

내가 너희 대공들의 던전 위치를 모두 알고 있다는.

던전의 위치를 모르고선 초대장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자체가 1차적인 도발이 될 수 있었다.

줄리엄이 슬쩍 말했다.

“그들이 꼭 참가하기를 바란다면 슬쩍 그들의 약점 같은 것을 언급하는 것도 좋습니다.”

“약점이라.”

“나는 너를 알고 있고, 참여하지 않으면 그 정보가 다른 이들에게 새어 나갈 수도 있다는 걸 강조하는 거지요. 굳이 큰 일일 필요는 없습니다.”

나도 대공 하나하나를 자세히는 모른다. 그나마 전생에서 밝혀진 몇 가지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 사실 중 몇 가지만 던져도 되겠군.’

굳이 큰 먹이일 필요는 없다고 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주억였다.

“그리하지.”

“저와 크리슬리가 내용을 상의해 보겠습니다. 바로 앞에서 할 것이니 그때그때 조언을 해 주십시오.”

“알겠다.”

시는 나도 문외한이다. 읽어 본 적이 손에 꼽는다. 그런 고상한 취미를 가진 마족은 거의 없었다.

이윽고 줄리엄과 크리슬리가 머리를 맞대고 초대장의 내용을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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