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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203화 (203/242)

던전 사냥꾼 203화

눈치채지 못했다. 이곳에 있는 어느 누구도!

칼스 중장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각성자 중에서도 최강자라 칭송받는 이. 영국에 있으나 그의 명성은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어지간한 상급 마수는 홀로 처리할 수 있고, 최상급 마수가 나타나도 기척을 느끼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데…… 그럴진대.

모르겠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불길했다.

백사자 부대가 빠르게 남자를 에워쌌다. 스킬의 캐스팅을 하고 말살할 준비를 했다. 도합 50명의 백사자 부대원, 그리고 칼스 중장이라면 최상급 마수의 처리도 불가능하진 않다. 마족조차도 홀로 있으면 처리가 가능하다고 자신한다. 설령 저 남자가 무슨 존재인들 이곳을 몸 성히 빠져나갈 순 없었다.

“명심하라. 공격하는 자, 죽는다.”

남자는 희미하게 웃었다. 거짓 없는 냉소. 그 안엔 무한한 자신감이 있었다. 아니, 안중에도 없다는 표정이다.

백사자 부대가 이런 무시를 받다니!

발족한 지는 몇 년 되지 않았으나 백사자 부대는 칼스 중장이 고르고 고른 정예다. 매일 생사를 넘나드는 정도의 훈련을 시켰으며 그 과정에서 낙오되거나 죽은 자만 백을 넘는다.

그야말로 세계 최고.

어느 부대도 견줄 수 없는, 최강의 각성자 부대였다.

‘내가 겁을 먹었다고?’

본래라면 발견한 즉시 목을 쳤을 것이다. 신성한 버킹엄 궁전에서 소란을 일으켰을 수준의 행동력이 칼스 중장에겐 있었다.

한데 미적이고 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공격하는 자, 죽을 거라는 저 말이 왜인지 너무나 와닿았던 탓이다.

“인간치고는 제법 강한 축에 들겠다만…….”

남자는 품평하듯 백사자 부대원들의 얼굴을 훑었다. 그러곤 피식 웃었다. 방금 전과의 냉소와는 전혀 다른, 보이는 그대로의 비웃음이다.

“부족하군. 이 정도로 3일 안에 그리니치 천문대의 마수들을 멸하겠다니. 장담하건대 3분이면 너희는 다 죽을 것이다.”

“미친놈!”

아직 교정되지 않은 20인의 백사자들. 그들은 실력이 좋지만 태도에 문제가 아직 남아 있어서 후방에 배치하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백사자 부대에 속해 있다는 걸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지금 그 긍지가 웬 듣도 보도 못한 남자에게 무시받은 것이다.

남은 30명은 철저히 칼스 중장의 명령 없이는 움직이지 않지만…… 남은 20명이 반발하고 나섰다.

수우욱!

남자의 바로 뒷공간에 작은 빛의 균열이 생겨났다. 어느새 부대원 하나가 공간을 열고 그 안으로 도약한 것이다. 빛의 균열 안에서 검을 든 부대원 한 명이 나타나 정체불명 남자의 등을 찌르려 할 그때였다.

콰르르릉!

천둥이 쳤다. 그렇게밖에 안 보였다. 검을 뻗던 대원 하나가 숯덩이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남자는 거들떠도 안 봤다.

화르륵!

대신 남자의 등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불길은 이내 방 전체를 감쌌다.

그제야 느껴졌다. 이 압도적인 마력의 향! 무시무시한 존재감! 칼스 중장은 아득한 심연 속에 떨어지는 기분을 느끼며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척! 척!

백사자 대원들이 급히 태세를 갖추며 공격할 준비를 했다. 명령이 내려오지 않고 계속해서 이대로 있다간 큰일이 생길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 모두가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끄아아아악!”

대원들이 발을 뻗었다. 그중 검을 들고 달려든 대원 셋이 불에 휩싸였다. 회복 스킬, 물 계열 스킬을 사용해 봤지만 불길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았다.

대상의 목숨을 완전히 소진시킬 때까지 타올랐다.

뚜벅. 뚜벅.

남자는 걸었다. 대원들 몇몇이 더 달려들었으나, 부나방에 지나지 않았다. 불길에 뛰어든 부나방의 최후는 한결같은 법.

차이가 너무 컸다. 남자는 그저 불길하고 무심했다. 이런 ‘격’의 차이는 여태껏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마족이라 일컬어지던 마수들의 종주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거늘.

칼스 중장이 입을 열었다.

“멈춰라!”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등은 이미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대장님, 저놈이 우리 대원들을…….”

냉정함을 잃은 대원들은 아직도 싸울 기세가 가득했지만 칼스 중장은 고개를 저었다.

“너희가 어찌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확신했다.

저놈은 괴물이다.

일반적인 마수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세상이 변하게 된 원인!

마족. 마수들을 부리며 지구를 침략해 온 침략자.

거대한 던전은 그들의 전진기지와도 같았다.

죽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만용이다. 칼스 중장은 나서야 할 때와 들어가야 할 때를 정확히 구분할 줄 알았다.

만용은 화를 부른다. 특히 장소가 장소였다.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메리 여왕만큼은 지켜야 했다.

그녀는 영국의 상징적인 존재다. 모든 시민의 정신적 지주며 버팀목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죽으면 영국이 무너진다. 영국의 모든 시민이 희망을 잃는다. 희망이 없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꿀꺽!

칼스 중장이 침을 삼키며 말했다.

“당신은…… 누구지? 어째서 이곳을 찾아왔는가.”

까만 눈동자는 무심하기 이를 데 없고, 그의 발걸음 소리는 천금과 같이 무겁다. 천천히 다가온 남자는 얕게 웃었다. 가소롭기 이를 데 없다는 듯.

그 누구도 칼스 중장과 메리 여왕 앞에선 보일 수 없고, 보여선 안 되는 무례한 행동이지만…….

이윽고 남자가 마저 입을 열었다.

“나는 네 명의 대공 중 하나, 랜달프. 너희에게 절망과 희망을 건네러 왔다.”

“대공.”

칼스 중장이 작게 신음을 토했다.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대공’이란 부분이다.

그는 다른 이들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마족에 관해선 어지간한 기밀 모두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72개의 던전과 그곳의 관리자인 마족들은 서로 계급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대공이라면 가장 최고위의 존재.

마족 중의 마족. 공식적으로 나타난 대공은 ‘아리엘 디아블로’뿐이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의 이름을 밝히고 대대적인 침공을 해 왔기 때문에 각국의 지도자층이라면 아리엘 디아블로란 이름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힘은 놀랍기 이를 데 없었다. 인간은 누구도 아리엘 디아블로의 앞을 막아설 수 없었다. 그 오만한 ‘템플 기사단’조차 대적하길 아예 포기했다고 전해 들었다. 비공식 각성자 최강 조직들…… 과거로부터 그 유명세를 떨쳤던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등도 두 손을 들었다고.

칼스 중장은 자신이 키운 대원들의 힘이 그들에 못지않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그래도 대공은 시기상조다.

남작급의 마족과 던전이라면 충분히 공을 들여 공략을 해 볼 법 하겠지만 대공은 아예 논외였다.

힘이, 그들을 대적할 힘이 부족한 탓이다!

“절망과 희망? 판도라의 상자라도 주겠다는 말이냐?”

하지만 숨긴다. 야생에서 야수를 만나도 등은 보이지 않는 법이었다. 눈을 부릅뜨고 마주해야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생긴다.

허나…… 상대가 좋지 않다. 남자의 눈은 뱀과 같았다. 몸을 조이고, 모든 걸 샅샅이 꿰뚫어 보는 것만 같았다.

“너희는 이길 수 없다.”

한마디. 그게 무슨 뜻인지 칼스 중장은 단박에 알아차렸다. 너희, 말하자면 인간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은 마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남자의 어조에는 확신이 가득하다. 절대적인 진리라도 되는 양.

칼스 중장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공의 존재감 때문인지, 아니면 그 자신감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은연중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기회를 주지.”

“……기회?”

“그리니치 천문대에 모든 마족들이 모인다. 나를 비롯한 나머지 세 대공, 그들이 이끄는 부하들, 강력한 마수들. 너희 인류가 승리할 길은 오직 그 기회를 살리는 것뿐이다.”

“……!”

칼스 중장과 기타 사람들이 눈을 부릅떴다.

한곳에 모인다면 일망타진도 가능하다. 마족이 까다로운 이유는 마수를 부리며 널리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한곳, 한 점에만 모여 있을 경우 현대 무기의 정수로 처리하는 것도 충분히 해 볼 법한 이야기다. 상위 레벨인 상급의 마수들도 핵으로 잡은 경우가 꽤 있지 않았는가!

“우리에게 이런 정보를 전해 주는 이유가 무엇이냐? 반대로 마족들이 함정을 파는 것일 수도 있다.”

피식!

남자가 대놓고 비웃음을 흘렸다.

“너희 인간들이 여태껏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건 오로지 하나의 이유 덕이다. 경쟁! 마족들이 서로를 견제하지 않았다면 인간들은 진즉 멸절했을 터.”

과연 그럴까?

가능성이 없다곤 못한다.

마족들의 대대적인 공세가 시작된 이후 인간들은 제대로 반격 한 번 할 수 없었다. 중요 거점들을 순식간에 빼앗기자 현대 과학이 무용지물이 된 탓이다. 수천, 수만 대의 전투기도 보급을 받지 못하면 몇 시간 날고 마는 고철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 뒤에 있을 건 무자비한 학살뿐이 없다.

칼스 중장은 아니라고, 웃기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의 눈을 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잘 생각해 보라.”

남자는 그 말만을 남기고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남자가 사라진 자리에는 대량의 무언가가 우수수 쏟아져 있었다.

빛을 내는 돌멩이.

코어다.

오로지 던전에서 마수를 사냥해야만 얻을 수 있기에 상급의 코어는 0.001% 비율도 되지 않는다.

한데…… 지금 보이는 코어는 모두가 상급, 최상급에 달했다.

이 정도 양이라면 강력한 마법이 깃든 무기를 수없이 만들어 낼 수 있다. 유니크 등급의 무기도 몇 점 뽑아낼 테다.

운이 좋으면…… 몇 없다는 에픽 등급의 무구도 탐내볼 듯했다.

“도무지 의도를 모르겠군.”

칼스 중장이 한숨을 내쉬며 인상을 찌푸렸다.

놈이 건넨 건 사과다.

그런데 독이 든 사과인지, 진짜 사과인지 반신반의했다는 게 의아하다.

마족의 농간이겠지만 진실이라면 이것은 다시없을 큰 기회였다.

‘어찌하시겠습니까?’

칼스 중장과 모든 이들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담담한 눈빛을 한 채 창가 쪽을 바라보는 여자.

영국의 지주, 희망…… 메리 여왕의 눈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래서 칼스 중장은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었다.

어차피 모든 결정 권한은 그녀에게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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