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사냥꾼-205화 (205/242)

던전 사냥꾼 205화

김용우의 인상은 펴질 줄을 몰랐다.

랜달프 브뤼시엘.

자신의 주인이며 영웅이며 어쩌면 구세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니, 아주 높은 확률로 구세주라 불리던 남자는 랜달프 브뤼시엘이 맞을 것이다. 적어도 김용우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무언가 사정이 있어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행한 업적에 얼굴이 드러나고 말고는 그다지 상관없었다.

한데, 그 위대한 업적에 똥칠을 하려는 작자들이 나타났다. 누명을 씌우고 마녀사냥을 하려 한다. 김용우로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설령…….’

만에 하나.

그가 진짜 마족이라 해도, 김용우는 사실 상관이 없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한국은 진즉 끝장이 났을 터다. 천명회의 우두머리 자리를 지키지도 못했을 것이며 일찍이 땅에 묻혀 백골이 되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가진 권한에 비해 자신의 힘이 부족했으므로. 그 권한을 노리고 달려드는 하이에나들이 사방천지에 깔려 있었던 탓이다.

허나, 천명회는 김용우의 모든 것이다. 각성자가 되고 천명회를 만듦으로써 김용우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대로 공부조차 못하고 특기마저 하나 없었던 자신이,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를 가진 남자가 되었으니 이런 인생 역전도 더 없다.

그리고 그 역전을 행하는 데 크나큰 도움을 준 게 랜달프 브뤼시엘이다. 어찌 그 이름이 먹칠을 당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아주 먼 과거라면 몰라도 지금의 김용우는 신의가 무엇인지, 믿음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두 가지를 가진 자만이 혼란한 현세에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분이 진짜로 나타났다고 한들, 그것은 우리 인류에게 경고하기 위함이지 위협이 절대 아니오.”

“그럼 그가 마족이었음을 시인하는 것인가?”

템플 기사단의 단장이 기계와 같은 차가운 눈을 하고서 김용우를 바라봤다. 확실히 소름 끼치는 눈이지만 고작 저딴 걸로 자신에게 위협을 가할 순 없었다.

“아니! 마족이 무엇 때문에 인간을 도우려 하겠소? 랜달프 브뤼시엘이라는 이름은…… 한국에선 말 그대로 영웅을 뜻하는 바! 하지만 굳이 대공이라 밝힌 건 경각심을 심어 주기 위해서이겠지. 그분의 행동은 다소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으나 결과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곤 했으니 함부로 그 행동을 판단해선 안 될 것이오!”

“인간이 내 스킬을 피해 갈 순 없다. 그리고…… 너에게서 보이는 과거의 편린 중에 보이지 않는 장면이 매우 많다.”

과거를 읽히고 있다는 말에도 김용우는 코웃음만 쳤다.

“그는 처음부터 완성된 존재였소. 마치 하늘이 이 시련을 해결하라고 보내 준 사람 같았지. 누구보다 강했으며 그럼에도 앞에 나서지 않았소. 무언가의 준비를 하는 것만 같은…… 미래를 알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마저 들었으니. 그리고 그 준비에 맞게 하나하나 커다란 일들이 터지기 시작했소.”

“미래를 안다?”

“바로 그렇소. 미래를 아는 자! 과거를 읽는다 했소? 읽힐 리가 없지. 그는 과거에 없었던 존재,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하늘이 보낸 신의 사자이니까!”

이제는 되는 대로 지껄이고 있었다.

하지만 김용우의 속마음을 100% 투영한 말이었다.

예전부터 김용우는 랜달프 브뤼시엘이라는 이름의 남자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작정 따른 것이다. 그가 틀린 적은 없었고, 자주 사라지긴 했으나 필요한 순간에는 반드시, 시기라도 알고 있는 듯이 나타났다.

한 번은 뒷조사를 해 본 적도 있다.

그런데 티끌만큼도 나타난 게 없었다.

천문학적인 액수를 들였으니 신뢰도는 완벽하다. 그런 이는 땅에서 솟은 존재 외엔 없다. 마족, 마수란 생각을 아예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그것도 과거의 일이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일절 하지 않고 있었다.

“인간이 아니라면 마족이라는 쪽이 더 수긍이 되는군.”

템플 기사단의 단장이 단정을 짓자 김용우는 혀를 찼다.

“마족이 인간을 돕는 걸 봤소? 아니, 그대들은 대체 마족의 무엇을 알고 있소? 우리 한국은 여러 마족에게 유린당했소. 그들은 어느 날 마수들을 끌고 공격을 감행했지. 사람을 철창 안에 가둬 두고 양식처럼 이용했소. 어떨 때는 장난감처럼 신체를 짓이기고, 실험을 했지. 지켜볼 수밖에 없던 그 굴욕의 날들……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 세계 어느 사람보다 한국의 전사들이 마족을 더 잘 알 것이오. 마족에게 있어서 인간이란 조롱을 위한 존재일 뿐이오.”

그 사실을 김용우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최강의 길드를 가진 수장답게 마족들을 가장 근접해서 경험한 이가 바로 김용우였다.

랜달프 브뤼시엘이 마족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건 경험 덕이다.

마족이라면 절대로, 절대로 인간을 도울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의 확신에 찬 어투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납득을 주었다.

템플 기사단의 단장은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메리 여왕도 흥미롭게 지켜만 보는 중이었다. 하여 김용우가 쐐기를 박았다.

“그분이 하신 경고라면 반드시 행해야 하오. 우리 천명회 길드는 이번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소.”

* * *

특공대가 조직되었다.

각국의 정상들, 주요 집단들이 최강의 멤버로 구성된 각성자들을 영국에 보내온 것이다.

더불어서 미국은 비밀리에 제조 중이던 ‘코발트탄’을 이번 일에 동원했다. 핵폭탄에 코발트 물질을 씌워 방사선 유출을 극대화시킨 무기로써, 그 위험성 때문에 금지된 무기 중 하나였다.

개발되고 있다는 보고도 없고, 인류에 너무 치명적이라 누구도 코발트탄을 개발할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미국이 비밀리에 해낸 것이다.

물론 코발트탄은 최후의 보루로 사용될 예정이었다. 인류의 명운이 걸린 일이니만큼 이번에 투입될 과학의 정수와 각성자들은 각각 규모가 상상을 초월했다.

“인류가 자폭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작전의 일부를 알고 있는 김용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작전에 천명회의 간부급 인원 20명을 투입했지만 뒤늦은 후회가 찾아온 것이다.

“길마, 쫀 거 아니죠?”

유은혜가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쫄긴 누가, 뭐에?”

“주변에 모인 각성자들 말이에요. 다 한가락 하잖아요.”

김용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봐야 너보다 강한 사람 별로 없을걸. 위험하면 너랑 에드워드가 지켜 줄 텐데 내가 왜 쪼냐?”

유은혜가 피식 웃었다.

그의 말 대로였다.

지하의 너른 공간. 천이 넘는 각성자들이 모여 있었고, 그들은 각국이나 길드에서 최강이란 소리를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법한 강자였다.

하지만 유은혜나 에드워드도 그에 못지않았다. 아니…… 한두 단계는 더 강했다. 한국의 다른 각성자들도 모두 레벨이 높았다. 김용우가 쫄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하여간 능청스럽긴.”

“닥치고, 3일 뒤에 시작한다니까 서로 안면이나 터 놔. 병아리 눈물만큼이라도 그놈의 전우애인지 뭔지를 키워 놓으라고. 혹시 아냐, 너 죽기 전에 몸 던져 살려 줄지.”

“그런 건 길마가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누구랑 다르게 바빠서.”

김용우는 두꺼운 수첩을 휘두르며 유은혜의 뺨을 약하게 때렸다. 작전 지휘자로서 활동할 예정이었기에 숙지해야 할 내용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걸 다 외우려면 3일이 아니라 3주라도 부족할 것이었다.

유은혜가 입술을 쭉 내밀었다.

“에드워드, 이 아저씨 재미없네. 누나랑 놀래?”

에드워드 윈저.

아직 소년 태를 못 벗었지만 눈빛만은 무거운 청년이 유은혜의 뒤에 서 있었다.

“저야 좋죠. 뭐 하고 놀까요?”

“글쎄…… 도장 깨기라고 아니?”

그 소리를 듣고 김용우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야! 너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전우애보다 더 중요한 게 뭔지 알아요, 길마? 서열이에요, 서열. 서열 정리를 제대로 안 해 놓으면 위급할 때 똥개가 주인을 문다구요~”

“하…….”

김용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맞는 말이지만 지금처럼 급박한 시기에 사고를 치면 그 뒷감당을 하는 건 자신이었다.

얼마 전에도 ‘구세주의 아이’들에게 실례되는 일을 저지르지 않았던가. 김용우가 직접 나서서 유은혜에게 징계 아닌 징계를 먹여 넘어갔지만 두 번 뒤처리를 하는 건 사양이었다.

“어차피 제가 안 움직여도 다른 성군 후보들이 움직일 걸요? 기린님께서도 이번 작전을 ‘성군의 결전’으로써 임하라고 했잖아요? 성과에 따라서 성군이 정해질 것이다. 시기도 마침 비슷하고 잘됐죠, 뭐.”

성군의 결전은 후보 일곱이 서로 치열하게 싸워 그 자리를 정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시기가 미묘하게 맞물리며 불가능하게 되었다. 대신 이번 작전의 성과를 두고 서로 겨루며 ‘성군’을 정하자고 기린이 생각을 낸 것이다.

일곱의 후보자들은 모두 동의했다.

유은혜가 거기까지 생각했다면 더 말릴 수 없었다.

유독 그녀는 ‘성군’에 집착했고, 강해지길 원했으니…….

그래서 말했다.

“조용하고 깔끔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무슨 뜻인지 알지, 말괄량이?”

“최고가 되어서 돌아옵죠. 그때는 길마가 저를 대장으로 부르셔야 할 걸요.”

“그래, 네가 짱 먹어라.”

유은혜가 입을 가리고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 * *

그 시각…….

나는 중국의 던전 근처에 있었다.

수풀이 우거진 산에서 맞은편 던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타쉬말, 하쉬는 어디에 있지?”

타쉬말이 복잡한 표정으로 한 발자국 뒤에서 답했다.

“지금 시기에 이러는 건 좋지 않다. 다른 천사들에게 인정받고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고 있단 말이다.”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천사 중 하쉬가 제일 계급이 높았다. 천사는 철저한 계급 아래 움직였고, 당연히 하쉬는 최고의 우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걸리는 건 나이뿐인데, 다행히 신성 지대 안으로 잠입하여 천사들을 잘 속여 넘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무척이나 중요할 시기.

그러나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번 일은 모든 것의 진정한 시작이 될 터. 천사들을 이 무대에 빠트릴 수는 없지. 타쉬말, 당장 하쉬를 내 앞으로 데려오라.”

“……알겠다.”

타쉬말이 움직였다.

신성 지대. 살짝 떨어진 곳에 있는 나조차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였다. 어지간한 마족이나 마수는 감히 발을 들이지도 못할 것이었다.

허나 타쉬말은 타락한 천사였고, 신성력에 상당 수준 내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어 그녀가 움직이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가 가진 모든 패를 이용한다. 대공들과 그 수족들도 상당한 패를 가져올 테지만…… 과연 누구의 패가 가장 강할지 기대되는군.’

팔짱을 낀 채 차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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