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2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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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엘 디아블로의 군세는 의외로 보잘것없었다. 은빛의 기사들. 일전에도 한 번 보고를 받은 적 있던 순백의 기사들이 일렬로 무리 지어 완공되어 가는 성에 나타난 것이다. 아리엘 디아블로가 나타나고 정확히 하루가 지난 뒤였다.
나는 그리니치 천문대의 꼭대기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사들의 숫자는 정확히 250. 친위대일까? 평범한 마수와는 조금 다른 듯싶었다.
‘보고 대로군.’
크리슬리와 오스웬이 내게 보고한 것과 크게 다를 건 없었다. 나는 둘을 시켜 대공들에게 초대장을 건넨 적이 있었는데, 둘은 대공들을 차례대로 반복하며 본 그대로의 보고를 내게 올려 온 것이다. 한 치의 과장 없는 그대로 말이다.
‘저게 전부인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렇다면 대단한 자신감이다. 아리엘 디아블로의 성격이라면 따로 뒷공작을 행하진 않았을 터. 만에 하나를 대비한다고 하더라도 부족한 감이 있었다.
‘자신감…….’
그렇다. 아리엘 디아블로는 자신감 하나 빼면 시체와 다름없다. 저만하면 충분하다고 스스로 판단한 것이겠지. 그러니…… 조금 더 세심하게 볼 필요가 있었다.
250에 달하는 은빛의 기사들이 성문을 통과해 들어왔다. 크기는 제각각이었고, 성별은 모두 여자로 이루어졌다. 나이대도 모두 달랐다.
조금 더 숨을 깊게 쉬어 본다.
마수와는 조금 다른 마력의 향.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함도 함께 느껴지니, 그야말로 정체불명이었다. 데스 나이트는 아니었고, 다크 워리어도 아니었다.
‘합성된 새로운 종.’
고개를 작게 끄덕여 보았다.
아예 새로운 종은 아니었다. 은빛의 기사에게서 몇몇 익숙한 기척들이 느껴진 탓이다. 나이트 종류의 모든 마수와 보다 높은 상위의 ‘격’도 함께 존재했다.
하물며 인간의 기색조차 있었으니.
무슨 의도를 가지고 저만한 숫자를 합쳐 놓은 것인지 모르겠다.
심지어 그게 가능한지조차 의문이다.
‘내가 모르는 마수도 있었던가? 흥미롭군.’
마수의 숫자는 족히 수천 가지다. 단순한 종으로서 나열하면 축약되긴 하겠지만 내가 모르는 마수가 있어도 크게 이상할 건 없었다.
허나 지금 내게 걸리는 건 그게 아니다. 마수를 합성해서 만든 마수. 새로운 종이라고는 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보통 키메라라고 부른다. 문제는 저만한 숫자의 마수들을 하나로 융합하고 형체를 일정하게 유지시킬 수 있느냐인데.
‘불가능하지.’
적어도 내가 아는 한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키메라에 관해 깊은 지식을 가진 건 아니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했다.
일반적인 키메라도 셋 이상의 마수는 합성하지 않는 법이었다.
그 이상의 숫자가 되면 신체가 불안정해지고 스스로 자폭하기 때문이다.
일순 은빛 기사 중 가장 앞서가는 여기사와 눈이 마주쳤다.
“흠…….”
그 눈!
혀를 차며 고개를 주억였다.
눈을 본 순간 한 가지, 진실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상위 용종이 섞여 있군.’
그리고 납득했다.
다른 마수 수천, 수만보다 저 250명의 기사들이 훨씬 낫고, 아리엘 디아블로를 대변하는 데 충분하다는 사실을!
‘과연.’
자신감의 출처를 알아내자 무시할 수가 없었다.
초대장에 적힌 날자.
솔직히 아리엘 디아블로를 제외하면 지킬 대공이 없으리라 여겼다.
그들은 오만하고, 직선적이며 남을 깔보는 게 일상이기에.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아리엘 디아블로의 은빛 기사들이 들어오고 정확히 다음 날. 같은 시각에 동쪽에서, 서쪽에서, 북쪽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공들이 자신의 군세와 함께 나타난 것이다.
미리 협약한 뒤 정해진 시간에 들이닥쳤다고 보는 것이 옳겠지만 그럴 리가 없음을 알기에 이 기막힌 우연에 코웃음이 쳐질 따름이었다.
검은 물결이 따로 없었다. 수십만…… 어쩌면 수백만에 달하는 마수들이 너른 들판을 가득 메웠다.
일대 장관!
허나 그 모습에 희열을 느끼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절망뿐인 군세들. 모든 것을 집어삼킬 기세로 도착한 이들은 성문 앞에 대군을 대기시켰다. 그리고 대공과 그 휘하 마족들이 탈것에서 내려와,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들의 면면에 긴장감 따위는 없었다.
절대적인 승리, 그에 따른 자신감뿐이었다.
자신이, 자신의 파벌이 최강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의 생각대로 판이 돌아갈 수는 없었다. 최후의 승자는 오로지 하나뿐!
그래서 약한 모습을 절대로 보이지 않으려고 했다. 애당초 마족은 태생부터가 약자 도태이긴 하지만…….
“문을 열어라.”
나는 명했다.
곧 문이 열리며 그들이 성 내에 발을 들였다.
뭐라고 할까?
묘한 분위기였다.
나는 그들을 초대하고자 이곳 그리니치 천문대를 더할 나위 없는 성으로서 만들었지만 솔직히 대공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작은 성에 지나지 않을 것이었다.
수많은 고가의 장식들도 그들의 눈을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다. 모든 만반의 준비를 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던 탓이다.
말 그대로, 보여 주기에 지나지 않았다. 구색잡기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그들이 이곳에 온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보낸 ‘초대장’이 가장 크게 기여했을 터인데, 그다지 불편해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도발적인 내용이었다만…….’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을 일부러 적어서 보냈다. 필시 어찌 알았느냐 추궁해야 옳지만 그보단 탐색의 시선이 더욱 강하다.
그럼에도 묘하게 긴장감이 없었다.
나는 즉시 휘하 마수들에게 연회의 준비를 시켰고, 라미아의 노랫소리와 함께 조용하고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들지.”
인간들의 연회복을 입고서 머리를 정돈한 내가 그들에게 정중히 잔을 건넸다. 바로 이 잔잔한 분위기…… 인간들의 ‘파티’를 흉내 낸 것이다. 마족에게 있어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익숙하지 않은 그런 공기를 자아냈다.
허나 이들은 대공이다.
별의별 경험을 다 했고, 내가 준비한 이 역시 마찬가지다.
파벌끼리 모여 잔을 들고 한 잔을 깨끗이 비워 냈다.
“술맛이 괜찮군.”
우파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는 술에 대해서도 제법 욕심이 많은 자였다.
하여 가볍게 답했다.
“가장 좋은 술이라고 하더군. 무슨 꼬냑이라던데…… 술을 즐기지 않아 이름은 모르겠고, 그래도 인간의 양조술이 제법 괜찮지 않은가?”
내 언변은 술에 대한 모독과 다름없었다. 술 애호가인 우파라면 한마디 할 것이라고 예상하며 꺼낸 것이다.
허나 반응은 전혀 달랐다.
“그 초대장의 시시한 내용보단 이게 훨씬 나은 건 분명하지.”
“글을 잘 쓰는 능력이 없어서 웃기지는 못했나 보군.”
얄궂게 받아넘겼다. 시시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장난으로라도 말이다.
‘달의 마법사는 역시 이곳에 없나.’
슬쩍 우파 주변을 탐색해 봤지만 달의 마법사 구스타르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강력한 무기래도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존재를 여기서 선보일 순 없다고 판단한 것이겠지.
이것만큼은 생각대로다.
허나 휘하 마족들의 능력이 제법 괜찮다. 그동안 가파른 진전이 있었는지, 아니면 또 무슨 꼼수를 부린 건지 다른 파벌에 비하여 마족들의 마력이 조금 더 월등했다.
‘서큐버스 퀸이라!’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그로기 인피르였다.
서큐버스에 환장한 마족. 던전 전체를 서큐버스로 채우다가 이르게 죽은 별종!
녀석이 서큐버스 퀸을 함께 대동하고 있었다. 전생에서도 본 적 없던 마수이다. 최상급 3레벨에 이르는 막강한 존재로서 마계 옥션에서도 등장한 적이 없었건만.
무언가 다른 이벤트를 클리어한 게 분명했다.
반면…… 판데모니엄은 어떠한가.
전과 크게 다를 모습이 없었다. 기린과 한국의 각성자들이 공격을 감행한 그때와 비슷한 전력을 유지하고 있는 듯싶었다.
오쿨루스가 죽고 그의 힘 중 상당수를 거뒀지만 그게 전부였다는 뜻이다.
하기야 그 힘은 또다시 내 던전을 공략하며 상당히 산화했다.
그리 보면 모든 대공 중 판데모니엄이 가장 힘이 부족해 보였다.
그것을 판데모니엄도 모르진 않을 터였다.
“이 연회는 마치…… 인간 같군.”
“판데모니엄, 그대는 인간의 연회도 경험해 보았겠지. 워낙 오랜 세월을 살았으니까.”
“구경은 한 적이 있지. 그나저나 이런 쓰잘 데기 없는 짓을 하려고 우리를 초대한 건 아닐 텐데, 랜달프 브뤼시엘. 대책을 논의하기 위함이 아닌가?”
아아.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고 보니 초대장에 그런 내용을 넣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솔직히 판데모니엄이 이처럼 반응할 줄은 몰랐다.
지구의 천족이래 봤자 크게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곧 카마엘이 강림할 것임을 알고 있을 리도 만무했다.
약간의 찝찝함을 안고서 입을 열었다.
“천사에 대한 대책 말인가? 그야 당연히…….”
“내가 하는 말은 그런 뜻이 아니다. 천족들 따위야 밟으면 밟히는 가련한 놈들 아닌가.”
그럼 무엇을?
최대한 의아함을 지우며 판데모니엄을 바라봤다.
그런데 웬걸…… 판데모니엄의 표정은 매우 불쾌히 일그러져 있었다.
그만이 아니다. 다른 대공들, 마족들이 그러했다.
마치 내가 알면서 모른 척하고 있다는 듯.
‘뭔가가 있다.’
문제는 그것이 뭔지 내가 알 길이 없다는 것.
하지만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했다.
저들은 내게서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었고, 그렇다면 나는 아무런 말 없이 희미하게 웃음만 지어 주면 될 따름이었다.
“특수 이벤트…… 네놈도 알 텐데?”
특수 이벤트!
그야말로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알 수 없고,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벤트를 말함이다. 하지만 나는 당장 특수 이벤트에 관해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 모두는 그 특수 이벤트란 단어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다른 마족들 모두에게 같은 특수 이벤트가 일어났다는 건가? 허나 난 받은 적이 없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특수 이벤트를 보았다면 내가 제외 될 이유가 없었다. 한데 나는 제외됐고, 이들은 내가 보낸 초대장에 반응하며 발 빨리 찾아왔다.
적어도 내가 바라고 그린 그림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저 가만히 있자 판데모니엄이 한 발자국 나서며 말했다.
“마계로 향하는 길을 열어라, 랜달프 브뤼시엘. 네놈은 그 방법을 알 터. 아니라면 이와 같은 시기에 우리를 모을 생각은 안 했겠지. 여기서 시시하게 연회 따위나 하고 있을 시간은 없노라.”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좋지 않군.’
대공들이 적대하고 견제하게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한데 모든 방향이 나로 귀결되었다.
결코 득일 수 없는 길.
그런데…… 때마침 피부가 따가울 수준의 신성력이 멀지 않은 곳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천족 놈들이 신성 지대에서 뛰쳐나왔군.”
아리엘 디아블로가 저 먼 동쪽을 바라보며 작게 말했다.
‘좋지 않아…….’
그리고 그 소식은 내게 있어서 엎친 데 덮친 격과 다를 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