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209화
가야 할 길은 멀었고 적은 많았다. 제아무리 소수의 최정예 인원으로만 파티를 꾸렸대도 그 많은 눈의 감시를 완전히 피할 길은 없었다.
수십, 수백만의 마수와 천사 모두가 적이었다. 마수들이야 따로 말할 필요도 없지만 천사들의 싸움 방식은 인간에게 있어서 진절머리 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말이 천사지 전투 상황에서 그들은 마수와 다를 바가 없었다.
천사들의 싸움 방법. 그것은 바로 ‘자신들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무신경함’이다.
그저 지나가는 인간도 길을 막는다면 무참히 베어 버리고 지나가는 탓에 군중들의 심리에 천사는 마수보다 아주 조금 나은 존재뿐이 되지 않았다. 천사는 적어도 인간들을 사냥하러 나서진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전쟁터였다.
피가 넘치고 이성이 마비되는 혼돈의 도가니 속!
그 속에서 발견되는 약자는 지체 없이 사냥될 뿐이었다.
그나마 유은혜를 포함한 파티가 각성자 중 최상위 레벨이었던 덕에 근근이 버티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중 하이 프리스트 김유라와 김민지의 활약은 대단했다.
“봉합.”
“재생.”
둘의 콤비네이션은 경악을 넘어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잘려 나간 팔다리조차 단번에 원상 복구시켜 버리는 기적을 각성자들은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프리스트 계열 중 세계적으로 이름난 각성자들도 해내지 못한 ‘기적’이었다.
그녀들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봉합하라 명하면 그 즉시 상처가 봉합되었으며 재생이라 말한 순간 상처는 말끔히 치유되었다.
부작용은 없었다.
흔히 말하는 등가 교환…… 각성자들이 스킬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도 어느 정도는 통용되는 말이다. 높은 랭크의 스킬일수록 피로함이 심하다거나 상당한 마력을 잡아먹는다.
한데…… 지치지 않는다.
‘진짜 사람 맞아?’
유은혜가 내심 고개를 저었다.
이제 중반쯤이나 왔을까.
벌써 마수, 천사들과 십여 차례 부딪혔고 사상자도 나왔다. 허나 그들의 공통점은 ‘즉사’했다는 것이다. 김유라와 김민지도 다행히 죽은 이를 살릴 수는 없었다.
다행이라 말한 건 만약 죽은 자마저 살린다면 생명의 무게가 너무나 보잘것없어 보일 것 같아서다. 얼마나 많은 죽음을 보아 왔던가. 그때 그녀들이 있어 주었다면…… 이런 마음에 정신이 짓눌릴 것 같아서였다.
어쨌거나 중증의 상태는 즉각 치료해 주었고, 덕분에 여기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절반의 파티원을 희생해 목표 지점 절반에 도달했다. 이런 단순한 계산이라면 모두 죽어야 도착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도착해야 돼.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그녀들을 지켜야 하고.’
유은혜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치료 계열의 스킬을 가진 각성자는 숱하게 봤지만 저 정도의 이능을 발휘하는 이들은 처음이다. 그녀들은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인재였다.
그녀들과 목적을 수행할 1인만 남으면 된다. 그 1인이 유은혜 본인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보단 차라리…….
유은혜가 에드워드 윈저를 바라봤다.
“누나, 긴장했어요?”
에드워드 윈저가 씩 웃었다.
처음 발견했을 때와 비교하면 어느덧 훌쩍 커 버린 아이.
때로는 엄마처럼, 때로는 애인처럼 자신을 여겨 주길 바라지만 유은혜는 그 기대에 보답할 수 없었다. 진짜가 아닌 탓이다.
허나 에드워드 윈저는 젊다. 뿐만인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유은혜가 최강자 중 한 명이라 칭송받을 정도라면 에드워드 윈저는 당당히 ‘최강자’가 될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벌써 자신을 거의 따라잡을 수준이니, 그 속도는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만약 한 명만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건 에드워드 윈저여야 할 터였다. 그것이 세계를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올바른 선택이리라고 유은혜는 생각했다.
“긴장은 무슨? 빨리 움직이자. 약간 길을 우회해야겠어.”
“길을 우회해요?”
“아무래도 이 주변에서 접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돌아가는 편이 나아.”
“그럼 그렇게 해요.”
푸욱!
어깨를 으쓱하며 에드워드가 오우거의 목에 대검을 꼽았다. 시체지만 확인 삼아 다시 한번 내리꽂은 것이었다.
대장은 유은혜였다.
대원은 대장의 말을 군말 없이 따르는 법이다.
에드워드는 아직 무리를 이끌기엔 너무 어렸고, 경험도 적었다.
허나 앞으로 1, 2년만 있으면 당당히 지금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 김용우가 있는 자리, 그 이상까지도 순식간에 치고 올라갈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마음의 짐이 약간은 가벼워졌다.
‘이번 임무…… 어차피 전부 살아 나갈 순 없어.’
유은혜가 강해지려고 노력한 것, 부조리한 모든 상황에 맞서 싸우려 한 것, 그것은 자신이 최강자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강자는 약자를 보호하고 불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를 아무도 행하지 않는다면 종국에는 부패한 자들뿐이 남지 않는다.
그리된다면 세계는 멸망하고 말리라!
구세주의 아이들에게 잠시나마 반기를 든 것도, 그동안 다소 과격한 행동을 보인 모두가 그러한 무게감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번 임무 또한 자신이 아니면 따로 성공할 것 같지가 않아서 지원했다. 성군이 되는 게 최종 목표였으나 그 후보로 에드워드도 있으니 이제는 상관없었다.
싸우면 싸울수록,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수록…… 생존율은 희박할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이런 직감은 보통 틀리지 않는다.
“내가 죽으면 파티는 네가 지휘해, 에드워드.”
“그런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아요.”
에드워드가 입술을 쭉 내밀었다. 수련의 방에 들어가고 제법 긴 시간을 보냈음에도 에드워드는 여전히 아이와 같은 구석이 있었다.
“약속해.”
허나 유은혜는 진지했다. 만약 위기 상황이 들이닥치면 유은혜는 자기 몸을 날려서라도 에드워드를 지켜 낼 셈이었다.
단순히 미래를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간 깊은 정이라도 들어서일까?
철부지 동생 같기도 하고, 아이는 가져 본 적이 없는데 왠지 자신의 아이처럼 정감이 가는 게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 진지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보고 에드워드가 홱 고개를 돌렸다.
“약속은 하는데, 그런 일 안 일어날 거예요.”
“그럼 됐어. 이동하자.”
“공대장님, 당장 이동하긴 힘들겠네요.”
때마침 마지막 환자를 치료한 김유라가 유은혜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이동하기 힘들다니요?”
“마수들과 천사들이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어요. 제 정령 레이가 감지했으니 확실할 겁니다.”
불의 정령!
지금은 수많은 각성자가 계약했지만 이 프리스트 자매가 가진 것에 비하면 한참 작다. 그리고 크기만큼이나 불의 정령들은 막강했다. 솔직히 웬만한 각성자보다 나았다.
“거리는요?”
해서, 유은혜는 김유라의 말을 믿었다.
자신보다 먼저 감지해 냈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여기에 오기까지 몇 차례나 비슷한 상황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제 의문은 없었다.
“앞으로…… 잠깐, 레이, 뭐라고?”
김유라의 표정이 굳었다. 불의 정령 레이가 김유라를 향해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 내용이 심상치 않은 모양이었다.
이윽고 이야기를 전부 전해 들은 김유라가 급히 말했다.
“도망쳐요, 당장.”
“감당하지 못할 적이 나타난 건가요?”
“이럴 때가 아니에요. 우리는…… 감당할 수 없어요!”
이름을 입에 담는 시간조차 아깝다는 건가?
유은혜는 선택해야 했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김유라의 말을 믿고 뒤로 후퇴할 것이냐, 이대로 전진할 것이냐.
시간은 없었다. 후퇴하고 돌아와서 목적을 달성하려면 난이도가 더욱 상승할 테다.
허나 결단은 빨랐다.
“후퇴…….”
“늦었어요! 피해요! 최대한 멀리……!”
유은혜가 막 입을 열려는 찰나.
쿠르르릉!
바닥이 들썩였다.
수우우우우우!
이어 하늘이 검게 물들었다.
솨아아아아!
하늘의 중심부에 뜬 검은 구, 마치 검은 태양 같이 생긴 무언가.
수아아아아아앙!
그를 중심으로 주변의 모든 것들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검은 태양은 모든 것을 아주 강렬하고, 빠르고, 무차별적으로 집어삼켰다.
마치 블랙홀처럼.
―진정한 왕의 힘을 보여 주마, 하피 떼들.
저 멀리서, 놀랍도록 깊은 목소리의 주인이 풍만한 몸을 들고 걸었다. 그의 움직임을 따라 검은 태양이 조금씩 이동했다. 어둠도 함께 동화되었다.
꺄아아아악!
그리고…… 천사들은 저항하지 못했다.
하피 떼란 저 천사들을 의미하는 듯했다.
날개가 찢기고 괴성을 지르는 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블랙홀의 반경에서 벗어난 천사들도 있었으나 채 얼마 가지 못해 죽었다.
왕의 힘이란, 단순한 왕 본인의 힘만을 국한하는 게 아니다.
왕의 군세!
그 역시 왕의 힘이라 할 수 있으리라.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마수들이 그 풍만한 왕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특히 검은 날개를 단 정체불명의 마수들이 가장 압권이었다. 켈베로스의 머리를 달고 이족 보행을 하는 검은 천사! 신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모습이었으니 어찌 압권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러한 존재들도 단 하나의 왕에 미치지 못했다.
나른한 얼굴, 허나 광기에 들어찬 두 눈동자!
스스로를 ‘왕’이라 칭할 수 있는 자격을 쥔 대공 중 하나.
가장 많은 인간을 학살한, 인간에게 있어서 단연코 가장 적대되는 마족이다.
극소수의 정보력을 쥔 인간들은 그를 경계했다. 가장 파괴적이며 거리낌 없이 움직이는 그는 살아 있는 핵폭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만약 대공 중 누군가가 지구를 멸망시킨다면 그중 가장 많은 공적을 차지하는 게 그일 것이라는 이야기마저 있을 지경이었다.
지금 그가 천사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후우우우웅!
그의 몸 주변으로 검은 구 수십 개가 솟아오르더니 이내 압도적인 검은 태풍을 만들어 냈다. 공간이 비틀어지고, 땅과 하늘의 경계가 사라졌다.
허나 일반적인 태풍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 거대한 현상은 대공 우파가 사용하는 무기에 지나지 않았다.
우파가 검은 태풍의 아랫부분을 움켜쥐자 그의 손길을 따라 태풍이 들썩였다. 마치 검처럼 다루며 검은 태풍에 휩쓸린 천사들은 순식간에 증발했다.
“……인간의 레벨 따윈 한참 벗어난 괴물이군요.”
유은혜가 참담한 심정으로 말했다. 그들은 표적이 아니기에 공격당하지 않았을 뿐이다. 상당한 거리가 있고, 은폐물에 숨어서 운이 좋으면 걸리지 않겠지만 그 확률은 희박했다. 그렇다고 지금 이 장소에서 발을 빼자니 걸릴 위험이 더욱 올라간다.
진퇴양난.
눈에 보이는 천사들이 모두 사라지면 그다음 공격은 이쪽으로 퍼부어질 공산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