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사냥꾼-211화 (211/242)

던전 사냥꾼 211화

* * *

달의 마법사, 구스타르테는 강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는 신이니까.

신.

유일무이한 존재, 불멸자, 신성 등등으로 불리는 자.

필멸자는 볼 기회도 없고, 싸워도 이길 수 없는 게 당연시 된다.

하지만 구스타르테는 필멸자에게 조종당하고 있었다. 지극히 불안정하지만 자아를 반쯤 잃었다. 말인즉, 완전한 신에서 반쯤 동떨어지게 되었다는 뜻이다.

신은 유일무이하기에 신이다. 그 정신 또한 온전해야 함이었다.

필멸자와 불멸자의 중간 지점에 놓였다고 한다면 말이 쉽다.

그러니 필멸자라도 상대하지 못하란 법은 없었다. 방법의 문제다.

위치는 파악됐고, 크리슬리는 강력한 마수들과 함께 움직였다. 모든 최상급 마수와 기동력이 좋은 상급의 마수를 긁어모았다.

그리고 그리니치 천문대에 모든 대공이 모인 순간, 행동을 개시했다.

구스타르테는 마족 하나와 함께 있었다.

백작 라키칸!

우파의 듬직한 부하 마족 중 하나이며 그가 거느리는 마수 군단도 제법 상위의 것이었다.

“외부로 통하는 모든 마력을 차단하겠습니다.”

크리슬리가 말했다. 그녀는 작은 병 하나를 품에서 꺼냈다. 그 뒤 병의 마개를 열고 가루를 지상에 흩뿌렸다.

허공에 흩어진 가루들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이내 이어지더니 보이지 않는 얇은 벽을 만들었다. 그 길이가 수십 킬로에 달했다.

“제 마력을 사용하면 지속 시간은 3시간. 그 안에 구스타르테를 유인해야 합니다.”

“한다. 이긴다!”

가장 먼저 답한 건 티탄이었다. 그 주변으로 백여 마리의 마수가 알아들었다는 듯 발을 굴렀다. 히드라 역시 뒤에 있었다.

이어 크리슬리가 지팡이를 들었다.

지금과 같은 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외부로의 통신을 막기 위함이다. 혹여나 일이 벌어졌을 때 우파에게 백작 라키칸이 수정구로 통신을 보내면 일이 틀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조차 염두하고 움직여야 했다.

신중하게,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하는 임무다.

이 가루의 가격도 어마어마했다. 던전 마스터조차 상당히 큰 출혈을 감수했다고 스스로 말할 수준이었다.

당연히 실패하면…… 리스크가 너무 크다.

당장 그리니치 천문대가 위험했다. 그곳은 현재 던전 마스터를 보필할 마수의 숫자가 현저히 부족했다. 거의 모든 최상급 마수가 이곳에 있는 탓이다.

자신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던전 마스터는 이번 일이 성공하는 게 자신을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반드시 성공시킨다.

“척살 대상 1순위는 마족 라키칸입니다. 명심하세요.”

크리슬리의 눈에 불이 들어왔다.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

“그럼, 시작하죠.”

쿠오오오오!

히드라의 머리 아홉 개가 일제히 포효했다.

쿵! 쿵!

다른 마수들 또한 전진하였다.

백작 라키칸.

놈의 군단이 제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곳에 모인 백 마리만 못했다.

달의 마법사라는 변수가 있기는 하지만 라키칸만 빠르게 없앨 수 있다면 통제를 잃고 놈은 날뛸 것이다. 적아의 구분이 사라지고, 그 뒤는 유인만 잘하면 되었다.

‘모든 것은 나의 던전 마스터를 위해서.’

크리슬리가 든 ‘죽음 지팡이’가 주인의 뜻에 동하듯 요동쳤다.

백작 라키칸.

우파의 휘하 마족이며 서열 5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거의 공작 다음으로 총애받는 자리에 있다는 뜻.

하지만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 달의 마법사 구스타르테를 조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혼자 놔뒀다간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기에 감시자가 꼭 필요했다.

서운하긴 했지만 이것도 회의에 참석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임을 라키칸은 인지하고 있었다.

“아쉬운 건 어쩔 수 없군. 꽤 재미난 상황이 되고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작은 성에 앉아 라키칸은 포도주를 홀짝였다. 무료하기 그지없었다. 어차피 대부분 마족이 그곳에 모일 건 자명했고, 이곳의 위치를 아는 적대 마족도 없어서 그가 할 것이라곤 이렇게 포도주나 홀짝대는 게 전부였다.

“조금만 상황을 보고 올까……? 끄응, 이런 일은 하위 마족 놈들에게 맡기면 되었을 것을.”

본심은 그와 같았다.

어차피 적이 쳐들어올 가능성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구스타르테를 제어하기 위한 안전장치만 필요할 뿐이다.

굳이 이런 일에 자신 같은 고위 마족을 쓴다는 게 자못 이해는 안 됐다.

“우파 님의 깊은 속뜻을 내가 알 리는 없지만 따분한 건 어쩔 수가 없으니.”

남아 있는 포도주를 단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그의 앞에선 무투회가 열리고 있었다.

취익!

크르르륵!

오크 로드와 버그베어의 사투!

레벨로만 따지면 버그베어가 상급 3Lv로써 1레벨 더 앞서지만 성 내부는 공간의 활용이 더욱 중요했다. 그리고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오크 로드가 살짝 앞서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 수많은 마수가 모여 둘의 싸움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이것도 여흥이다. 어차피 할 것도 없으니 이런 거로라도 시간을 때울 셈이었다.

“이기는 놈은 바라는 것 한 가지를 이뤄 줄 것이다. 암컷이든, 무기이든, 던전의 더욱 넓은 장소이든 말이다.”

라키칸이 작게 미소 지었다.

마수들을 사들이면 그다음부턴 무보수로 일하지만 그렇다고 마수들이 바라는 게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중에는 암컷, 혹은 던전 내 더욱 높은 층의 땅을 바라는 경우가 제일 많았다. 아무래도 최상층과 가까울수록 마력의 함량이 많고 순하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 안전하기도 하고, 번식에 힘을 쓸 수도 있다. 더불어서 자신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뜻과 일맥상통했다.

마왕의 좌에는 대공 우파가 앉을 테지만 그 왕을 보좌하는 최측근의 존재로서 라키칸 자신이 선택받는다면 지금 이 던전 내의 마수들도 앞길이 활짝 열리는 것과 같았다.

부족을 중시하는 종족은 마계의 더욱 넓은 땅을 하사받을 것이고, 그만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저 종족 번식에만 눈이 먼 놈이라면 평생 그 짓만 하고 살게 해 줄 수도 있었다.

여러모로 마수들도 꿈이 있다는 뜻이다.

촤악!

그어어어어!

사투 끝에 오크 로드가 버그베어의 눈을 베어 냈다. 즉시 상체를 차고 올라타 오크 로드가 버그베어의 목을 베어 냈다.

촤륵!

툭!

버그베어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고, 곧 거대한 몸체가 땅에 떨어졌다.

“이름이 무엇이냐? 머릿속에 박아 댈 생각밖에 없는 버그베어와 달리 이름 정도는 있을 테지.”

“철을 먹는 사자입니다.”

오크 로드는 꽤 지능이 높은 축에 속한다. 말도 곧잘 할 수 있었다.

“철을 먹는 사자야. 내가 연 작은 연회에서 넌 몇 번이나 승리했고, 이제는 바람을 이룰 시간이다. 무엇을 바라느냐?”

“빨간 늑대, 부족을, 떨어뜨려, 주십시오.”

“빨간 늑대 부족?”

“저희, 철의 사자 부족과 대치하는 오크 부족입니다.”

라키칸이 턱을 쓸었다.

이런 경우도 없지 않아 있기는 했다.

솔직히 라키칸의 입장에서 부족이 뭐든 오크는 오크였다. 서로 대치하는 걸 바라지는 않지만 이런 식으로 떨어뜨려 놓는 것도 애매한 일이었다. 철저한 약육강식의 세계인 던전에서 이런 식으로 부탁하는 건 다소 명예 없어 보이는 행위이기도 하였다.

그만큼 서로 가진 힘이 비슷하고 결판이 쉽게 나지 않는다는 의미겠지.

‘안 들어줄 수도 없군.’

그러나 이미 내뱉은 말이다. 마족답게 모른 척할 수도 있지만 이 심심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준 상으로써 저 정도는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족을 몰살시키는 것도 아니니.

“좋다, 빨간 늑대 오크 부족의 자리는 앞으로 6층이 될 것이다. 반대로 너희 철의 사자 부족은 14층에 배치해 주마.”

“감사……합니다!”

라키칸이 가진 던전은 총 20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중 14층이라 함은, 상당한 고급 마수가 아니면 발을 들일 수 없는 장소였다.

대단한 보상이었고, 이에 오크 로드는 감격한 듯싶었다.

‘마계로 돌아가면 따로 던전을 만들어 봐야겠군.’

라키칸은 얇게 웃었다. 던전을 운영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던 것이다. 마계에 있을 당시에는 왜 몰랐을까 싶다.

쿠웅!

던전이 흔들렸다.

“……무슨 일이냐?”

누군가의 공격임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비상 장치가 하나도 작동하지 않았다.

이곳에 모인 모든 마수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킁킁!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인상을 쓰며 라키칸은 요정을 불렀다.

킁킁이라 불린 요정이 허공에서 나타나 코에 손을 댄 채 말했다.

“킁! 저, 적이 쳐들어, 킁! 왔어요!”

“적이? 상황을 보여 주어라.”

“킁킁! 잠깐만요!”

요정 킁킁이가 묵직한 수정구를 가지고 왔다. 잠시 후 수정구가 밝혀지며 침입자의 영상이 그곳에 비쳐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라키칸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대공께 연락해야겠다.”

“그, 그게, 외부로 마력이 흘러나가지 않아요, 킁!”

“뭐?”

“킁!”

킁킁이가 안절부절못하며 몸을 틀어 댔다.

더는 할 말이 없는 게 사실이었다.

라키칸은 이마를 짚었다.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는 몰라도 외부로 마력이 새는 걸 방해하고 있는 모양이다. 수정구로의 연락이 불가능해졌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마계 옥션에서 이럴 때 필요한 아이템 몇 가지를 팔았던 것 같지만 구매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모든 마수를 모아라. 따로 각개격파 당하면 답이 없다.”

라키칸이 결단했다.

지금 쳐들어온 적은, 간간이 들어오는 인간들 따위와는 격이 달랐다.

모든 마수를 모은대도 막을 자신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라키칸의 시선이 한 곳을 향했다.

‘구스타르테의 봉인을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어.’

자신의 던전 내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간 그 여파가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당장 던전을 적에게 뺏기는 것보단 나았다.

무엇보다 지금 던전을 치는 적은 결코 좌시해선 안 될 녀석이었다.

마계 옥션에서 본 적이 있는 다크 엘프. 이름이 크리슬리라 하였던가?

그리고 크리슬리를 대동한 마족은 하나뿐이었다.

‘랜달프 브뤼시엘!’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준비를 했을 줄이야.

의도적이라면 그 목적은 무엇일까?

“빨리!”

“넵! 킁.”

라키칸이 바드득 이를 갈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