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217화
해골 가면을 쓴 남자였다. 천명회 길드의 핵심적인 인물이었으나 어느새 사라진, 필요할 때는 항상 돌아왔지만 그것조차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끊겨 버린 사람.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고 말했다. 그는 홀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했으니 던전을 탐사하다가 끝내 사망했다는 것이다.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 게 원인이라는 이들도 있었다. 하여간 대다수의 사람이 그의 죽음을 논했다.
이후 한국은 마족들의 침략을 당했고, 반파되었다. 셀 수 없는 인파가 죽어 나갔으며 지금도 제대로 집계되지 않을 수준이었다. 그럴 때마다, 유은혜를 비롯한 각성자들은 항상 그가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나처럼 위험이 닥칠 때 나타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마족들은 대량의 마수를 풀고 한국을 유린했다.
그렇게 그의 존재는 서서히 잊혀 갔다.
“오랜만이로군. 유은혜, 에드워드 윈저.”
남자가 가면을 벗었다.
순간 유은혜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아……!’
저 얼굴, 틀림없었다.
착각할 리도 없었다.
몇 번이고 외우고 각인시킨 얼굴이니까.
유은혜를 발견하고 기초를 잡아 준 인물이 그였다.
앞에서, 뒤에서 이끌어 준 이 또한 바로 저 남자였다.
에드워드를 살려 주고 그의 재능을 개화시킨 것 역시.
“살아…… 계셨군요.”
유은혜가 최대한 침착한 척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녀는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철없고, 장난기 많던 유은혜는 어느덧 어른이 되었다. 현실과 타협하고 냉정하게 싸울 줄 아는 여전사. 지금은 파티를 이끄는 수장의 역할이었다.
“많은 일이 있었지.”
목소리도 달라지지 않았다.
묵직한 중저음. 차갑기 그지없는 표정.
모든 걸 내려다보는 저 오만한 시선도 그대로다.
반갑지만 무너지면 안 된다. 그녀의 속에서 랜달프 브뤼시엘이라는 이름은 우상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혹시나, 마족들의 수작에 의하여 되살아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의 모습을 한 다른 이거나.
이제는 의심이 먼저 드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공대장님?”
대원 하나가 흔들리는 유은혜의 모습에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섰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둘의 관계를 모르는 이들, 로제의 정체를 모르는 대원들은 하나같이 혼란의 도가니 속에 던져져 있었다.
그러나 유은혜의 귓가에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미친 듯이 쿵쾅대는 심장 소리를 감추는 것만으로도 진땀이 빠지는 탓이다.
“왜, 이곳에 계신 거죠? 로제 님과는 어떻게……?”
“왜일 것 같나?”
되려 물었다. 유은혜는 당황했다.
로제는 구세주의 아이 중 하나다. 구세주는 한국을 구했고, 곧 모습을 감췄다. 오로지 로이와 로제만 남았을 뿐이다. 사람들은 두 아이를 추대했으며 왕처럼 떠받들었다. 하여 두 다크 엘프의 영향력은, 적어도 한국에선 절대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럴 리가 없어.’
만에 하나의 가정에 유은혜의 몸이 흠칫 떨렸다.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처량하게.
한 번쯤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구세주는 얼굴을 감췄다. 아무도 그의 얼굴을 아는 이는 없었다. 한데도 유은혜는 구세주가 ‘그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끔 했다. 랜달프 브뤼시엘, 그가 일부러 모습을 감추고 나타난 게 아닐까.
하지만 아무리 긍정적으로 여겨도 무리였다.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었다. 단순히 외견적인 부분을 말하는 게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구세주라 칭한 자는 굉장히 무거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공포. 원초적인 본능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간혹 무차별하게 마수들을 학살하는 모습을 보면 소름이 끼치기도 하였다.
자신이 아는 랜달프 브뤼시엘은 그런 분위기와는 조금 달랐다.
그리고 그가 사용하는 힘 역시, 같은 인간이라 할 수준이 아니었다. 비록 데빌 헌터 공격대의 공대장이 인간 중에선 최강이라 할 정도로 강하긴 했지만 구세주 정도는 아니었다.
다크 엘프를 데리고 다니는…… 마족, 혹은 마수.
유은혜를 비롯한 깨어 있는 각성자들은 구세주가 그러한 존재이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말을 하지 못한 건 오로지 사람들을 위해서다. 힘이 없는 민간인들. 그들에게 믿음, 희망이 있어야 한국을 재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일어설 수 있게만 만들 수 있다면 구세주의 정체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원히 입 닫아야 할 비밀인 것이다.
허나 데빌 헌터 공격대의 공대장은 인간이었다. 인간이라고 믿는다.
그는 상당히 과격했지만 유은혜가 아는 마족과는 자못 달랐다. 지금까지 경험한 마족과 마수는 인간과 타협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한국의 던전이 유일했는데, 그마저도 외부의 마족이 침입하며 바뀌었다. 층이 사라지고 통합된 것도 한몫했다.
그러니 공대장이 구세주일 리는 없었다. 그런 억지가 어디 있겠는가.
‘마스터, 구세주…….’
유은혜는 로제가 했던 말을 곱씹었다.
한데…… 도무지 지금은 모르겠다.
눈동자가 쉴 새 없이 흔들리고 몸은 위축되었다.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면…….
“김용우가 나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 같군.”
그가 말했다.
김용우?
길드 마스터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뜻인가?
알고서 일부러 숨겼다는 의미로 들렸다.
그는 예와 마찬가지로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곳에 마족들이 모일 것이라고 경고한 게 나다.”
“영국의 지도부가 어렵게 알아냈다고…….”
“인간은 자신의 치부를 감추고자 과한 포장을 하기도 하지. 그나저나…….”
유은혜의 말을 끊은 그가,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넌지시 이어서 물었다.
“괜찮게 성장한 것 같구나. 수련의 방이 상당히 도움이 된 모양이지?”
“아아…….”
털썩!
유은혜의 다리가 풀렸다.
딱 두 마디. 하지만 결정적이었다. 저 말의 의미는 오로지 구세주와 유은혜만이 알고 있었다. 구세주는 유은혜가 흡족하게 성장하면 다시 찾아온다고 했다. 지금 그의 말이 그 뜻이었다.
“당신은…… 아군인가요?”
겨우 고개만 들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공대장이든, 구세주이든, 아군이라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만.
불안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불안함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반갑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그저 모든 게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가 적으로 돌아선다면 아무도 막지 못할 것 같았다. 모든 것들이 그의 손 위에서 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당신은…… 마족인가요, 랜달프 브뤼시엘?”
구세주는 인간이 아니다.
생각이 깨어 있는 각성자는 모두 그렇게 확신했다.
개중에는 ‘천족’이니 ‘신’이라고 믿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 또한 확실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천족의 행보를 보면 구세주가 천족일 리는 절대로 없었다. 신성력은 아예 느껴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반대로 신이라 하기엔…… 유은혜의 신앙심이 완전히 죽었다. 하여 신이라는 가능성도 배제했다.
마수. 그들은 마족의 꼭두각시다. 모든 마수가 마족의 영향을 받는다.
남은 건…… 인정하기 싫지만 마족뿐이었다.
허나 구세주를 마족이라 생각하는 부류는 한국의 각성자 중에서도 극소수였다. 그들도 믿기 싫었으리라. 억지로 자기 합리화를 행한 것이다.
무엇보다, 그 사실을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인간의 믿음은 의외로 쉽게 무너지는 법이었다.
그리고 한 번 무너진 믿음은 절망으로 찾아올 가능성이 높았다.
가뜩이나 절망이 가득한 세상에서 한 층 더 절망해 버리면 일말의 희망조차 찾지 못하게 된다.
그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지금은 오로지 내일만 생각하며 희망을 가질 때라고.
덕분에 한국은 하루가 다르게 회복되는 중이었다.
‘제발.’
유은혜가 조마조마한 시선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그를 바라봤다.
인간이라면 괜찮다.
그의 행동 모든 게 정당화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마족이었다면?
처음부터 모든 관점을 달리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달리 할 자신이 유은혜에겐 없었다.
신뢰와 우상의 존재가 하루아침에 거짓된 변절자로 바뀌고 마는 것이다. 그가 행한 행동 하나하나에 무슨 의미가 있을지 되새겨 봐야 했다. 주로 안 좋은 쪽으로…….
이윽고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렇다.”
촹!
대원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았다.
둘의 대화는 마법 아이템을 통해 번역되는 중이었고, 모두가 ‘마족’이라는 의미를 알아들었다.
마족!
마수보다 먼저 처리해야 할 대상이다.
아니, 마족만 모두 없앨 수 있다면 던전과 마수는 자연스럽게 사라지리란 것이 천재들이 내놓은 추측이었다.
고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던 간에 마족은 반드시 멸해야만 했다.
“머, 멈추세요. 그를 공격해선 안 됩니다.”
유은혜가 겨우 자리를 딛고 일어나 대원들을 만류했다.
그러나 대원들은 각국에서 뽑힌 전사들이다. 처음부터 유은혜를 따르진 않았다. 가장 강하고 리더십이 있었기에 임시로 정해 놨을 따름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독자적인 움직임을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둘뿐입니다.”
“이길 수 없습니다.”
“유은혜 공대장! 싸워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안단 말입니까? 둘의 사이가 수상해 보이는데, 혹시 이쪽으로 일부러 유인을 한 것 아닙니까?”
“그런 게 아닙니다. 결코!”
의심은 의심을 낳았다. 유은혜가 부정해도 대원들의 눈초리는 서서히 험악하게 변해 갔다.
“그럼 끼어들지 마십시오. 이곳에서 마족을 마주친 이상 가만히 넘어갈 순 없습니다.”
모든 마족과 마수를 죽이기 위해 만든 게 희망이다. 상대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먼저 공격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마족과 인간은 절대로 타협할 수 없다고 여기는 듯싶었다.
“하늘의 힘!”
“전력 강화!”
“힘의 축복!”
기본 버프류의 스킬을 각자에게 사용한 대원들은 독을 가진 뱀처럼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었다.
유은혜가 손을 쓰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다.
그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듯이.
무표정하고, 냉소적인 미소만 띠고서.
“나는 내게 검을 들이댄 자를 살려 두지 않는다.”
그는 말했다.
곧, 그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