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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221화 (221/242)

던전 사냥꾼 221화

박쥐의 날개를 단 그것들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 저녁, 보름달이 뜬 날 더욱 강화되는 게 서큐버스의 특징이다. 울프 종류의 마수와 비슷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거기다가 서큐버스 퀸의 가호까지 서려…… 일반적인 서큐버스로 보고 상대했다간 큰코다칠 듯했다.

‘요컨대 가장 먼저 서큐버스 퀸을 제압하면 된다는 소리.’

분노, 황제의 검을 꺼냈다.

서큐버스 퀸은 굉장히 아름다운 외관을 하고 있었다. 보랏빛의 머리와 매혹적인 눈동자, 붉은 입술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 있었다. 착 달라붙는 가죽옷, 매끈한 허리와 튀어나온 둔부, 남자라면 절로 덮치고 싶게 만드는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심안이 ‘본능의 유혹(Epic)’을 간파했습니다.]

[높은 지능 보정(111)으로 100% 방어에 성공합니다.]

은연중 스킬을 발동시키고 있었던 모양. 그러나 저런 같잖은 수가 통할 리 없다. 매혹 계열의 스킬 따위에 당할 만큼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서큐버스 퀸은 처음 보는군.’

약간의 신기함은 있었다. 서큐버스 퀸. 책으로만 봤을 뿐 실제 접하는 건 처음이었다. 미칠 듯한 아름다움, 보는 것만으로도 남녀 구분 없이 끌어당기는 마력 탓에 많은 이들이 퀸을 노렸고, 더 이상은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고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로기는 대단한 녀석이었다. 서큐버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극하면 퀸마저 소환했겠는가. 아니, 어쩌면 직접 탄생시킨 것일 수도 있겠다.

‘최상급의 마수.’

나는 심안을 다시금 열었다.

이름: 서큐버스 퀸, 돌라

능력치 :

힘 99 지능 91

민첩 97 체력 82 마력 105

잠재력(474/474)

특이 사항: 서큐버스의 여왕. 그중에서도 전설적인 서큐버스 퀸, 돌라의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강력한 가호가 함께 합니다. 주변의 모든 서큐버스가 그녀의 영향을 받습니다.

스킬: 돌라의 가호(Epic), 본능의 유혹(Epic), 여왕의 분노(Ex Epic), 채찍의 축제(Epic)

과연…… 이 정도면 최상급 마수 중에서도 상당히 강한 편이었다. 레벨로 따지면 최상급 3과 4레벨 사이에 있었다. 이만한 마수를 거머쥐었으니 우파의 인식이 좋아졌을 법도 했다. 이런 넓은 공간을 혼자서 맡게 한 것도 그러한 이유인 듯싶었다.

내가 막 자세를 잡았을 때였다. 메시지 하나가 더 떠올랐다.

[돌라의 가호(Epic)와 지배의 권능(Ex Epic)이 부딪힙니다.]

[지배의 권능이 돌라의 가호를 64.4% 상쇄시켰습니다.]

[돌라의 가호가 매우 약해집니다.]

한쪽 입꼬리를 말았다. 내가 가진 지배의 권능은 여러 가지 효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영역에 관한 스킬에 있어선 이런 능력도 발휘하는 모양이었다.

나쁠 건 없었다. 안 그래도 돌라의 가호가 살짝 부담스럽던 참이다. 때문에 속전속결로 끝내려고 했다.

그런데 무리할 필요가 없어졌다.

가호가 약해지면 서큐버스들은 조금 센 중급 마수뿐이 되지 않는다. 숫자가 그렇게 많이 차이 나는 것도 아니었으니 형세 역전의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그를 느꼈는지 그로기의 표정이 굳었다.

허나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럼 한 수 배우겠소, 마족 양반.”

오스웬이 여섯 개의 손으로 여섯 개의 검을 쥐었다.

한 자루, 한 자루가 명검이다. 모두 오스웬이 직접 만든 것이었다. 그는 7대 죄악 세트 아이템을 만들어 낼 정도로 실력 좋은 대장장이였으니.

어중간한 물건은 절대로 만들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무구만큼은 필사적으로 만든다. 그것이 오스웬의 자부심이었다.

서큐버스 퀸 돌라가 채찍을 잡았다.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내심 읊조렸다.

‘책 속의 존재여, 네가 있을 곳은 이곳이 아니다.’

처음 보는 신기함. 단지 그뿐이었다.

몇천.

어쩌면 몇만 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서큐버스 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큐버스 퀸은 다시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하게 될 것이었다.

* * *

우파가 만든 벽은 의외로 허술했다.

신경 쓸 게 많아서일까?

아니면 그만큼 아리엘 디아블로에게 집중했기 때문일까.

내가 잠깐 참가한 것만으로 눈에 보이는 구멍이 생겨났다.

기습적인 측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원래부터 우리는 적. 적에게 예의를 운운할 만큼 나는 신사가 아니다.’

다른 마족보다는 조금 낫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 말은 어지간하면 지키려고 하니까. 하여간 이번 전장은 대공 한 명을 별다른 위험 없이 쳐 낼 절호의 기회였다. 내 손이 아니라 아리엘 디아블로의 손을 빌리는 것이니 내가 크게 조명될 이유도 없었다.

그렇기에 우파의 사각에서 활동을 한 대도 한 점 찔리는 점이 없었다.

사각.

나는 지금 분명히 사각에 위치해 있었다.

우파의 모든 신경은 아리엘 디아블로에게 집중되었고, 소식을 들었대도 쉽게 발을 빼지 아니할 것이다.

이를 갈긴 하겠지만 발을 빼기엔 애매한 타이밍이기도 했다. 뺀다고 그대로 넘어갈 아리엘 디아블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승패가 갈리기 전까지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우파의 숙명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나는 우파 휘하의 마족 셋을 죽였다. 나 역시 피해가 없진 않았다. 대동한 마수 대다수를 잃은 것이다.

이쯤 하면 되었다. 틈은 생겼고, 이 틈을 찾는 건 오로지 아리엘 디아블로의 몫이었다. 내가 그것까지 신경 써 줄 이유는 없었다.

“후! 이제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황제 폐하?”

오스웬이 이마를 훔치며 말했다. 실제로 땀도 안 나는 죽은 자이기에 흉내를 내는 것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나는 분노와 황제의 검을 집어넣고 몸을 돌렸다.

“열심히 신경이 쓰이게 만들어야겠지. 데스 나이트로 변신한 도플갱어들이 전장을 누비게 만들어라. 싸우지 않고 그저 돌아다니는 걸로도 충분할 것이다.”

“우파가 똥줄 좀 타겠군요.”

“나는 성으로 돌아가겠다.”

“황제 폐하, 괜찮겠습니까? 이제 성에는 폐하의 충직한 부하들이 없습니다.”

오스웬이 던지는 농담이었다. 나도 적당히 받아쳐 주었다.

“쓸데없는 참견이로군. 나는 돌아가서 전황을 살피겠다. 필요한 일이 생기거든 그때 찾아오도록.”

확정하여 말하자 오스웬도 고개를 주억였다.

“예, 저는 나머지 마수들을 지휘하겠습니다.”

이로써 서로의 할 일이 정해졌다.

나는 걸음을 뗐다. 곧 바람과 동화되어 순식간에 자리를 벗어났다.

굳이 성으로 돌아가는 이유.

조각을 맞춰 보기 위함이다. 그리고 ‘희망’을 발사할 타이밍을 재기 위해서였다.

내가 지시하지 않으면 희망은 터지지 않는다. 그 타이밍을 재려면 전장에서보다 살짝 떨어진 성에서가 더욱 정확했다.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해야 최상의 타이밍을 잡을 수 있었다.

성의 지하, 그곳엔 숨겨진 비밀의 방 하나가 있었다. 성의 모든 장소를 살피며 조작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곳엔 수많은 수정구와 수천 갈래로 나뉜 선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성 내의 마력을 순식간에 증폭시키는 장치이지. 판데모니엄도 이곳은 찾아내지 못했다.’

나락 군주의 보물 창고에 있었던 아이템 중 하나였다. 괴랄할 정도의 마력 증폭을 일으켜 폭주하도록 만드는 마법진. 마도의 정수라 일컬어지는 판데모니엄도 과연 나락 군주의 변칙적인 마법진을 찾아내진 못한 듯싶었다.

그리고 수십 개의 수정구에선 성 주변의 상황을 속속들이 비추고 있었다.

나는 수정구를 살피다가 품에서 다섯 개의 조각을 꺼냈다.

‘고급 수련의 방.’

그곳을 수료함으로써 얻은 증표와 같았다.

크리슬리와 타쉬말, 유은혜와 에드워드가 고급 수련의 방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네 개여야 정상이지만 나는 이미 다섯 개 모두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하쉬가 사용했지.’

바로 그랬다. 어린 하쉬를 빠른 시간에 조금이라도 숙성시키고자 선택한 방법이 바로 고급 수련의 방이었다.

고급 수련의 방에서 육체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허나 정신은 성장하는 게 가능했다. 육체의 성장이 더뎌서 아직 말은 못하지만 웬만한 성인 뺨치는 사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라면 내가 그저 어리기만 한 천족을 신성 지대에 집어넣을 리 있겠는가. 아무리 지천사에 해당한대도 그곳에 들어갔다가 다른 천족에 감화될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정신이 어느 정도 성장한 상태에선 그런 부담이 별로 없다.

‘나락 군주는 왜 이런 것을 준비해 둔 것일까.’

처음부터 든 의문이었다.

왜 굳이 완전체에 가까운 그가 이런 것을 준비했는지.

이미 수많은 병졸이 있으면서 굳이 자신의 보물 창고에 넣어 둔 이유가 몹시 궁금했다.

다른 전설적인 아이템도 많았지만 그 덕택에 더욱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부하를 성장시키려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고작 다섯밖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 궁금했다. 게다가 무사히 방을 나오면 주는 조각들에 의문이 서렸다. 조각이 모두 모이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란 강한 직감이 들었다.

지금에서야 그것을 확인해 보려고 한다.

나는 조각 다섯 개를 바닥에 수놓았다.

하지만 맞출 수 없었다. 다시 조각을 마법 주머니에 넣어야만 했다.

‘손님이로군.’

지척에서 수많은 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를 찾듯이 배회하고 있었다.

없었다가 갑자기 생겨났다.

결코 좋은 의도로는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한 차례 흔들곤 바깥으로 나섰다.

우선은 저 손님들부터 맞이해야 할 것 같았다.

이 장소가 들켜선 안 되었다.

바닥에서 그림자가 일어났다. 어둠밖에 없는 지하 공간이건만 그림자가 존재한다는 게 아이러니였다.

그림자는 지하 공간을 가득 채울 만큼 많았다.

얼추 1만 가까이 되는 듯했다.

이윽고 모든 그림자가 조금씩 모습을 바꿨다. 곧 나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도플갱어?’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보는 마수다. 그림자로 있다가 도플갱어처럼 상대의 모습으로 변하는 마수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심안을 열었다.

이름: 쉐도우 헌터

특이 사항: 상대의 모습으로 변하는 그림자형 마수. 판데모니엄이 창조했으며 변신했을 때의 능력치는 상대에 따라 다르다. 오로지 그것을 위해 특화된 마수. 변신한 대상의 오리지널에 강한 살의를 가진다. 반대로 변신한 상대 외의 것들에겐 무력한 모습을 보인다.

스킬: 모방(Ex Epic)

1인 지정.

말인즉, 암살에 특화된 마수다.

오로지 대상 하나를 죽이기 위해 창조된 저주와 같았다.

‘판데모니엄이 재밌는 걸 만들어 냈군.’

능력치가 보이지 않는다. 능력치에 변동 폭이 크다는 뜻.

그러나 나와 같은 기량을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진즉 판데모니엄이 이 게임에서 승리했어야 옳다.

잠시 후 나와 똑 닮은 인상의 마수가 1만여 가까이 생겨났다.

퍽 재밌는 상황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가를 씰룩이고 말았다.

“나 자신과의 싸움은 익숙하지.”

별로 당황하진 않았다. 이미 근원의 나무에서 내 그림자와의 싸움을 숱하게 해 본 덕이다. 하물며 그저 모방에 지나지 않는 것들을 상대로 긴장할 필요가 없었다.

숫자는 제법 많았지만 한 차례 어깨를 으쓱했다.

‘판데모니엄, 끝까지 나를 견제하겠다는 속셈이로군.’

과연 녹록지 않은 놈이다. 그 상황에서 나를 암살하고자 준비를 했다니.

만 대 일이라…….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해볼 만은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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