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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222화 (222/242)

던전 사냥꾼 222화

나와 똑같이 생긴 쉐도우 헌터들이 양손을 움직였다. 단순한 외견이 아니라 무구들도 복제하는 데 성공한 것 같았다. 과연 진짜와 모방된 무구의 대결에서 어느 쪽이 승리하게 될지 약간의 호기심이 일었다.

일단, 쉐도우 헌터의 움직임은 좋았다. 그러나 역시 나와는 다르다. 깊이의 차이가 너무나도 많이 났다. 그리고 초월자의 영역에 든 나를 고작 마수 따위가 완벽히 흉내 낼 순 없는 노릇이다.

저 쉐도우 헌터라는 마수가 초월자의 영역에 든 마수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숫자가 좀 많군.’

챙!

검과 검이 부딪혔다.

쩌정!

쉐도우 헌터가 가진 황제의 검에 균열이 갔다.

역시나, 오리지널을 당할 수는 없다. 본래 황제의 검은 ‘부서지지 않는다’는 불멸성을 가지고 있건만 복제품이라 그런지 두어 번 부딪치면 가루가 날 듯싶었다.

모방의 한계다. 깊이가 없었다. 겉을 조금 잘 복제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스킬의 사용도 비슷했지만 단지 그뿐이다. 이건…… 보고 있으면 너무 엉성해서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상대는 무려 1만에 달하는 숫자였다. 못해도 상급 1Lv의 무력은 지닌 마수들이 1만! 나로서도 조금은 벅차다.

그저 그런 하급의 마수도 아니고, 상급쯤 되면 나름의 격이 생긴다. 작은 타격에는 죽지 않는다. 하나하나를 상대할 때 나름의 의지를 가지고 힘을 가해야만 했다.

초월자임에도 마찬가지다. 만약 진정으로 일인 군단이 가능했다면 전생에서 마족들은 천족에게 모두 패배했을 것이다. 치천사 카마엘, 그 작은 행성과도 같은 놈에게 말이다.

‘쯧.’

허나 작게 혀를 찼다.

전장에서 우파의 휘하 마족들을 상대하며 마력을 상당히 소모했다. 마족 셋을 시간 차 없이 죽였으니 아무런 타격이 없는 게 이상하다. 이 상태로 싸움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 자못 걸렸다.

원군을 부를까?

부르려면 못할 것도 없었다. 이히에게 지시하면 그만인 일.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자칫 휘하의 중요한 마수들을 불렀다간 제때 탈출하지 못할 가능성이 생긴다. 나의 목숨보다 중요하진 않겠지만 약간의 오기도 있었다.

판데모니엄이 준비한 덫.

아마도 이 하나는 아닐 터인데…….

홀로 깨부순다면 어찌나 통쾌할지 말이다.

‘해 보자.’

화르륵!

오만의 불길을 사방에 태웠다. 절대로 꺼지지 않는 화염이 어둠을 밝혔고, 곧 나의 모습을 한 그림자를 삼켰다.

화륵!

이에 쉐도우 헌터들도 오만의 불길을 태웠지만 역시나 원본을 이길 수는 없다. 오만은 7대 죄악 중 하나.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지고의 불이다.

쿠르르릉!

뇌신도 나왔다. 거대한 포효와 함께 순식간에 주변을 쓸어버렸다.

나는 아예 뇌신을 자유자재로 풀어놓았다. 일일이 움직이기엔 신경 쓸 게 너무 많았다.

‘지배의 권능이 잘 발동하길 바라야겠군.’

그리고 내게는 훌륭한 무기가 하나 더 있었다.

지배의 권능!

아주 낮은 확률로 상대방을 굴종시키는 스킬.

과연 그림자에 불과한 것들에게도 통할지는 의문이나 그렇다고 통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제대로 발동하기만 한다면 혼자이되 다수로써 싸움에 임할 수 있게 된다.

그리되면 일 대 만이라도 충분히 할 만한 것이다.

“다크 소드.”

지이잉-!

황제의 검과 분노가 검게 물들었다.

그와 동시에 쉐도우 헌터들도 자신의 검을 붉게 물들였다.

* * *

희망의 설치를 끝냈다. 이제는 빠르게 후퇴만 하면 된다.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생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올라간다.

하지만…… 돌연 유은혜는 멈춰 섰다.

“누나?”

에드워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희망을 끌고 왔던 수레에 환자들을 태우고 이동하는 중이었는데, 실상 제대로 서 있는 인원은 유은혜와 에드워드, 그리고 김유라와 김민지뿐이었다.

입을 꾹 다물던 유은혜가 힘겨이 말했다.

“난 돌아가야겠어.”

“어디를요? 설마…….”

“그래,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아.”

“미쳤어요? 거기가 어디라고 다시 돌아가요? 누나가 가 봐야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요. 나중에는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에드워드가 마지막 말을 삼켰다.

그렇다. 유은혜의 실력 정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후에 몇 년, 혹은 몇십 년이 지난 다음에는 모르겠다. 그러나 당장은 개죽음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다.

“정말 그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을까? 데빌 헌터에 있었을 때, 그가 우리를 이끌었을 때 매번 냉정했지만 그 속에 조금의 온정이 있는 걸 난 분명히 봤어. 정말…… 그가 그냥 마족인지 확인해 봐야겠어.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가 마지막 희망이라면 유은혜는 그의 진면목을 확인할 의무가 있었다. 만약 랜달프 브뤼시엘이 다른 마족과 비슷하다면 최악의 선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극구 반대했다.

“누나, 가면 안 돼요. 그 사람은, 아니 그 마족은 우리를 이용했을 뿐이에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난 원래 화장실이나 청소하는 구제 불능이었어. 너도 죽기 직전의 연약한 아이에 불과했지. 천명회는 몇 번이나 위험을 겪었고, 한국은 몇 번이나 멸망할 뻔했어. 하지만 결국 결과는 어때?”

“누나! 누나답지 않게 왜 그래요? 들었잖아요. 언젠가 강해져서 마족의 목을 칠 것이라 생각했다고! 그는 단지 우리의 가능성을 봤을 뿐이에요. 만약 누나나 내가 일말의 가능성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그래도 그가 우리를 구했을 것 같아요?”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거야. 인류가 어떠한 위험을 맞이할지! 그래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을 모을 필요가 있었던 거고. 만약 그가 그냥 다른 마족과 같았다면, 아니면 아예 움직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 거 같니? 구세주가 되어 우리를 돕지 않았다면? 기린님을 소환해 흩어진 사람을 모으게 한 건?”

“그래서 지금 그 마족이 착하단 거예요? 아니잖아요. 대원들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죽였어요. 단지 자신에게 검을 들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문화의 차이야. 다른 마족을 우리는 겪어 봤잖니? 그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악랄한지. 그럼에도 그는 다른 마족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분명히…… 표현을 잘 못할 뿐이라고…….”

“후우.”

에드워드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중증이다. 무슨 말을 하던 통하지 않을 것이었다.

유은혜의 발언은 그저 하릴없이 믿고 싶은 자들의 궤변일 따름이었다. 결과가 좋다고 모든 게 허락되진 않는다.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분명히 존재하는 법이었다.

에드워드는 대검을 뽑았다. 사랑하는 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무력을 사용할 때였다. 돌아가 봐야 죽으리란 사실이 너무나도 뻔했기 때문이다.

“정 가고 싶으면 저를 밟고 가세요. 아니면 죽을 장소로는 못 보내드려요.”

“에드워드.”

“저도 이러기 싫어요. 하지만…… 희망은 이미 저희의 손을 떠났어요. 그가 설령 마족들을 제거하는 데 희망을 쓰더라도 우리는 그 후의 일을 논의해야 돼요. 누나가 죽으면 인류는 아주 큰 손실을 입는 거라고요.”

에드워드는 논리 정연했다. 마냥 어린아이는 아니라는 소리다.

하지만 유은혜의 표정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그럼에도, 고집은 꺾지 않았다.

스으.

유은혜도 조용히 검을 뽑았다. 곧 매끈한 검신이 자태를 드러냈다.

둘의 실력은 비슷하다. 아직까진 유은혜가 반수 정도 위였다. 그러나 유은혜는 현재 제정신이라 하기는 어려운 상태였으니 어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둘의 대치를 바라보는 김유라와 김민지의 표정은 한없이 어두웠다. 그러나 사실을 밝힐 수도 없었다.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무사히 이 싸움이 종결되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 * *

“음…….”

한 차례 고개를 흔들었다. 마력이 역류하기 시작한 덕이다. 잠시 시점이 어지러워졌다. 다량의 마력을 아낌없이 사용해서인지 온몸이 텅 비어 버린 느낌이었다.

‘그래도 성공했군.’

1만 대 일의 대결!

나는 판데모니엄이 준비한 덫을 확실하게 깨부쉈다.

덕택에 육체가 한계 근처까지 도달했지만 아직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쉐도우 헌터는 죽는 즉시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하여 주변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정복자의 반지가 있어서 다행이야.’

마력의 회복 속도를 돕는 아이템.

지금도 빠르게 마력이 수복되는 중이었다.

하루 반나절 정도만 시간이 주어지면 상당 부분 마력을 수복할 수 있을 터.

크게 조급하진 않았다.

처음부터 강한 마수들을 대동했으면 이런 일을 겪지는 않았겠지만 모두 내 욕심에서 비롯된 일이다.

구스타르테를 잡고, 우파의 던전을 공략하려면 최저한의 병력만 대동한 채 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혼자서 쉐도우 헌터를 맞이한 건 단순한 고집이었지만…….

후회는 없다. 그만한 성과를 이뤘으니 말이다. 통쾌함도 강하게 들었다.

쉬이이. 쉬이이이이이.

그러나 머지않은 시간, 나는 미간을 구겼다. 지하 통로를 흐르던 바람 소리가 미묘하게 변했음을 눈치챘다.

“내가 혼자 있는 걸 용케도 눈치챘군.”

어찌 알아채고 찾아왔을까?

‘판데모니엄은 이 장소를 알고 있었다. 모른 척하고 있었을 뿐이야.’

입안이 씁쓸했다.

아무래도 나는 판데모니엄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듯싶었다.

그는 마도의 정수를 모두 익힌 자다. 나락 군주의 마법진이 펼쳐진 장소도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른 척했다. 내가 이곳에 언제고 혼자 올 것임을 알고서 기다린 것이었다.

‘까다롭게 됐군.’

벽을 뚫고 나갈 수도 있지만 판데모니엄이 이 장소를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다면 그럴 수도 없었다.

다름이 아니라 희망도 이 장소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판데모니엄은 이 장소에 대해 알아도 정확한 쓰임새는 모를 가능성이 농후했다. 희망에 대해선 아예 무지한 것이 당연했고.

희망을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웠다. 희망이 판데모니엄의 손에 들어가는 것도 고려해야 했다.

‘할 수 없지.’

곧이어 꼭두각시 마족들이 등장했다. 그 숫자는 열둘. 본래는 오쿨루스의 휘하 마족이었으나 현재는 자아를 잃고 판데모니엄의 수족이 된 자들이다.

스륵. 스르륵.

그 주변으로 기천의 쉐도우 헌터가 합류했다.

‘개조된 마족들…….’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까다로운 싸움이 될 것 같았다.

* * *

짙은 연기가 피어났다. 유은혜가 그리니치 천문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많은 변화가 생긴 뒤였다.

곳곳에 시체가 널려 있었고, 불타지 않는 장소가 없었다.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유은혜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찾는 이는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과거 자신을 이끌고 키워 주던 인물! 스스로를 마족이라 칭했지만 아직도 쉽사리 믿기지가 않았다.

전장을 모두 뒤져서라도 찾아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아직도 마족과 천족은 뒤엉켜 싸우는 중이었다. 마수들끼리도 싸우고 있는 판국이다. 잘못해서 휩쓸리면 뼛조각 하나 건질 수 없을 테다.

‘여긴 없어.’

그래도 유은혜는 포기하지 않았다. 전장을 최대한 넓게 둘러보며 그가 이곳에 없음을 확신했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그리니치 천문대로 잠입했다. 어쩌면 희망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희망을 설치한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것이다.

몇 번 위험한 상황이 있었지만 다행히 지하로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곧 역하기 짝이 없는 냄새가 코로 스며듦을 느꼈다.

‘이게 대체 무슨 냄새지?’

걸으면 걸을수록, 냄새는 심해졌다. 유은혜는 저도 모르게 코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하가 반쯤 무너져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

전에 왔을 땐 멀쩡했던 길이다. 그사이 무슨 일이 생겼다는 방증이었다.

아주 무너진 건 아니라서 어렵사리 들어갈 순 있었다.

꾸역꾸역 앞으로 나가며 길을 튼 결과, 마족들의 시체 몇 구를 찾을 수 있었다.

‘다른 마족……!’

전투의 흔적은 역력했다.

유은혜의 걸음이 바빠졌다.

그리고 잠시 후.

무언가를 발견한 유은혜의 눈이 커졌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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