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227화
진짜 신위란 육체가 죽고 영혼의 격이 상승하며 얻는 것이었다.
구스타르테.
허나 녀석은 육체를 구성하고 있었다. 육체 자체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느끼지 못한 건 필멸자들에게 이용당하며 타락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럼에도 육체를 구성하는 그것이 신성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흡수라.’
나는 근원의 나무에서 멀어졌다. 구스타르테를 흡수해서 진짜 신위를 얻는 것. 하지만 그리되면 현재의 삶을 포기해야만 한다.
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내가 만난 최초의 신은 마신 데스브링어였다. 데스브링어는 나를 게임의 참가자로서 인정하고 지구로 보냈다. 덕분에 72명의 마족 중 하나가 되어 지금은 대공의 위치까지 올랐다.
그리고 지구의 신들이다. 데스브링어에 비하면 격은 조금 떨어지지만 72명의 신들이 힘을 합쳐 시간의 축을 되돌렸다. 나는 보다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으며 남들보다 방대한 정보력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하지만 나 자신이 신이 되겠다는 발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일 따위에 흔들릴 내가 아니다.
태어난 그날부터 나의 꿈은 마왕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신과 비교가 되느냐고 묻는 이가 있을 수 있지만 각자가 둔 가치는 모두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내게 있어서 마왕의 자리라는 게 그랬다. 그 자리에 앉아 크게 웃어 보는 것이 진정으로 내가 바라는 꿈이었다. 오로지 그 하나를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다. 이제 와서 목표가 달라질 리 만무하다.
죽으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신이 되어 전능을 손에 넣는데도 마왕의 자리에 앉을 수는 없다. 신들은 시간의 개념 자체가 다르고, 어지간한 필멸자들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근원의 관리자는 나를 신의 차기 후보로 보았지만, 아서라.
‘구스타르테의 의지를 깨운다.’
나는 근원의 관리자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길을 잃은 신이 어디로 향하겠느냐 물었지만 이면 세계에서 만난 0001과는 전혀 다른 의견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사자를 깨울 생각이었다.
구스타르테가 가진 육체에 대하여 연구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었지만 지지부진했다. 그 정도로 정보는 방대했고 1년, 2년 수준으로 끝나지 않을 듯싶었다.
하지만 시간은 유한하다. 1년 내로 결착이 지어진다면 그다음 내 적으로 나타날 이는 그림자 황제, 혹은 그림자 황제를 사칭하는 강대한 적이었다. 마계를 집어삼킨 그 녀석과의 대결을 준비해야 함이다.
그 시간까지 구스타르테의 육체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이히.”
“네, 마스터. 부르셨어요?”
내가 던전에 들어온 이후 이히는 항상 근접한 거리에서 대기하는 중이었다. 일전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내가 쓰러진 뒤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언제든지 시야 안에 나를 놔두려는 셈인 것 같았다.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가파람에게 전해라. 그간의 연구 성과와 달의 화살을 준비해 놓으라고.”
“이히히, 연구에 빠져서 말도 잘못 듣던데요. 그러면 엉덩이를 걷어차도 되나요?”
“마음대로 해라.”
“이히히히!
이히가 즐겁다는 듯 경쾌히 웃으며 날개를 펄럭댔다.
가파람은 긴장하며 내 앞에 섰다. 어려 보이는 아이의 얼굴 가죽을 쓰곤 한 손에는 연구 자료를, 다른 한 손에는 달의 화살을 들고 있었다.
“연구 성과는 잘 봤다. 훌륭하더군.”
성과라 함은 호문쿨루스를 뜻함이다. 실제 전장에서 호문쿨루스의 위용은 대단했다. 공작 베일라의 목을 꺾어 버린 것도 호문쿨루스였다.
“아닙니다. 이런 훌륭한 성과를 내도록 도와주신 마스터의 은혜이지요.”
가파람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그가 나를 존대하듯 말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구스타르테의 육체를 보인 다음부터 가파람은 나를 극진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딱히 말투를 신경 쓰는 편은 아닌지라 개의치 않았지만 가파람 나름으로 나를 받드는 것이다.
“연구에 다른 진전이 있었나?”
“호문쿨루스의 생명이 짧은 이유를 알아냈습니다. 배양에서부터 아예 설계 자체를 다르게 다가가야 했던 것이지요. 이 신의 육체가 활동하는 걸 보면…….”
“전문적인 이야기는 되었다.”
“일지에 알아보기 쉽게 적어 놨습니다.”
가파람이 연구 자료를 건넸다.
쭉 훑어본 결과 대부분이 나도 알고 있는 정보들이었다. 육체에 관한 시험이나 탐욕에 약한 이유 등을 서술해 놨지만 가설일 뿐 확실하지는 않았다.
“달의 화살에 관해서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군.”
자료를 전부 훑고는 말했다. 그러자 가파람이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반적인 아이템이 아닙니다. 이 육신보다 달의 화살의 베일을 벗겨 내는 게 더욱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수많은 베일 중에 하나인지라……. 달의 화살이 ‘균형’을 위해 존재한다는 건 알아냈습니다만, 그뿐입니다.”
균형. 어쩌면 원점을 나타내기도 하는 것.
그렇다면 구스타르테의 신위도 본래의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가능성이 없진 않아 보였다.
나는 작게 읊조렸다.
“실행에 옮겨 봐야 알겠군.”
“그 말씀은?”
“달의 화살을 구스타르테의 몸에 박아 보겠다.”
“……!”
가파람이 화들짝 놀랐다.
“무, 무슨 일이 벌어질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폭주라도 하는 날엔.”
“7대 죄악 자체가 신을 겨냥하고 만들어진 물건이다. 그것을 네놈이 알아내지 않았나? 그리고 탐식은 훌륭히 구스타르테의 힘을 봉인했지.”
그렇다. 가파람이 알아낸 연구 중에는 7대 죄악에 관련된 것도 있었다. 탐식이 구스타르테의 힘을 억제하는 원인을 찾다가 우연찮게 7대 죄악에 다다랐을 따름이지만 7대 죄악 자체가 신들을 겨냥하고 만들어진 무구라는 걸 알아낼 수 있었다.
나락 군주, 놈은 생각하면 할수록 음흉하기 그지없는 존재였다. 얼마나 원한이 사무치면 그 많은 걸 준비했는지.
“……알겠습니다.”
가파람도 내게 달의 화살을 넘기곤 조용히 물러났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구스타르테는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가슴의 기복조차 없어서 누군가가 봤다면 진짜로 죽었다고 생각할 정도다.
나는 화살을 수직으로 잡았다. 그리고 주저 없이 구스타르테의 가슴에 꽂았다.
푸욱!
달의 화살은 구스타르테의 가슴에 꽂힌 즉시 푸른빛을 띠었다. 빛은 가열되듯 늘어났다. 달의 화살은 조금씩 모습을 바꾸어 커다란 열쇠처럼 변했다. 구스타르테의 가슴 부근에 그 열쇠가 들어갈 구멍이 생겨나며 구멍 주변으로 핏줄이 도드라졌다.
이윽고 구스타르테의 육체가 떠올랐다. 열쇠가 정확히 들어간 뒤 돌아갔고, 그러자 구스타르테의 육체는 수십, 수백, 수천만 갈래로 나뉘며 다시 합쳐지기 시작했다.
육체가 재구성되고 있었다. 뱀이 허물을 벗는 것처럼 필요 없는 부분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 과정이 수십 분 간 반복되었다.
이윽고 모든 재구성이 끝났을 때 구스타르테는 눈을 떴다. 자아를 잃고 무작정 움직이던 당시와는 분명히 다른, 깊은 눈동자가 나를 마주했다.
“랜달프 브뤼시엘. 여기는 지구로군. 내가 오작동하고 상당한 시간이 흘렀는가.”
그는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당황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왠지 모르게 허무해 보였을 따름이다.
“구스타르테, 이면 세계의 신이 맞나?”
“맞다. 나는 본래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신이지. 그리고…… 비록 돌아왔으나 남은 시간이 많지 않군. 머지않아 데스브링어가 눈치채고 나를 지우려 들 것이다.”
“……마신 데스브링어를 말하는 건가?”
“긍정한다. 지금 나는 신위를 되찾았고, 데스브링어의 목적을 아는 유일한 신이 되었다. 중급 계급의 신조차 무력화시키는 시스템이라니…… 다른 신들이 알기 전에 나를 제거하려 들 터.”
저 이야기는 필시 필멸자에게 조종당한 원인에 관한 것이었다. 어찌하여 우파가 구스타르테를 조종할 수 있었는지 알아낼 수만 있다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사용하게 될 날이 올 터. 순수한 의미에서 궁금증이 일기도 하였다.
“자세히 알고 싶군.”
“랜달프 브뤼시엘, 너는 마신 데스브링어가 만든 시스템의 실험에 참여하지 않았는가? 본래는 불가능한 것들이 이 시스템으로 말미암아 생성되었지. 어둠의 정령들은 그 틈을 잘 파고들어 내 정신에 막강한 균을 심었다.”
어쩐지 알 것 같은 말이었다. 시스템. 마신 데스브링어가 만든, 눈앞에서 뜨는 메시지 같은 걸 말하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궁금하긴 했다. 이런 시스템을 만든 이유가.
데스브링어는 말했다.
자신이 만든 게임의 플레이어가 되어 세계를 멸망으로 몰아넣어야 한다고!
말하건대, 시스템이란 데스브링어가 만든 게임 자체를 뜻하는 듯싶었다.
그리고 우파가 구스타르테를 조종한 배후에 어둠의 정령이 있다는 새로운 정보도 얻었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구스타르테가 이어서 말했다.
“어둠의 정령들은 균열을 다루는 법을 익혔다. 공허에도, 근원에도 균열을 뚫어 놓은 것이다. 마침 공허에 아주 잠시 연결된 내 세계에 어둠의 정령들이 침범했다. 본래라면 가당찮은 일이나, 그 시스템의 힘을 빌리니 나로서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시스템은 완전한 것. 신위조차 옭아매는 힘을 가졌지. 데스브링어는 이 시스템으로 말미암아 다른 신들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마디로 마족들은 실험 대상이 되었다는 뜻이군.”
“바로 그러하다. 데스브링어는 마왕의 자리 따위에 관심을 가질 녀석이 아니다. 신이 그런 일에 개입해서도 안 되지. 어둠의 정령이 균열을 이용하는 방법을 완전히 익혔으니 자연스럽게 다른 신들을 노리려고 들리라. 아니면 공허나 근원에 속한 존재들을 깨우려 들겠지. 이미 없어진 고대의 존재들도…… 어둠의 정령들은 모르겠지만 데스브링어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수족이 된 것이다.”
이야기가 광범위했다. 쉽게 따라갈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둠의 정령들이 일을 벌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전생에선 이런 일이 없었다. 어둠의 정령들은 다른 정령들에 의하여 수세에 몰렸다. 신에게 균을 심거나 균열로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
“이 모든 게 너로 인해 가능해졌다, 랜달프 브뤼시엘. 시간의 축을 뒤로 옮김으로써 생겨난 부작용인 것이다. 그로 인해 세상의 균형이 약간 엇나갔고, 그 자리를 채우고자 많은 균열이 벌어졌다. 수많은 균열은 어둠의 정령에게 좋은 표본이 되었겠지. 어쩌면 이조차 데스브링어가 의도했을지도 모른다. 지구의 신들을 유도해 이 모든 걸 계획했다면…… 참으로 두려운 녀석이다.”
“내가 원인이라는 건가? 내가 돌아왔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그러니 바로잡아라. 데스브링어가 만든 시스템은 너무나도 완벽하여 그조차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 그 사실을 잘만 이용한다면 그의 계획을 수포로 돌리고 너의 바람 역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단박에 고개를 저었다.
“신들의 아귀다툼에 끼어들 생각은 없다.”
“아귀다툼이라 했느냐? 데스브링어는 이미 어둠의 정령들을 통해 성과를 내고 있다. 마족들에 의해 충분한 데이터도 얻었다.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감이 잡히지 않는가? 데스브링어는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르고 있고, 지구의 마족들은 그 단초가 되노라.”
“……증거를 지우려고 들겠군.”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이미 진행 중이겠지.”
나는 미간을 좁혔다. 구스타르테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데스브링어에 관한 이야기 중 절반만 맞다고 하여도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구스타르테여, 나락 군주가 마계에서 되살아난 것도 어둠의 정령과 관계가 있나?”
나락 군주는 죽었다. 심장 역시 내게 있었다. 그런데 나락 군주가 마계에 있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했다. 하여 그 이유를 구스타르테에게 물었다.
“나락 군주…… 공허,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있을 녀석이 다시 현세에 나타나는 건 본래 불가능한 일이다. 신은 공허에 근접할 수 없으니 데스브링어가 저지른 일은 아닐 터. 어둠의 정령들이 일을 계획하고 실행한 것이겠지.”
“허나 나는 나락 군주가 소멸되었다는 메시지를 보았다. 소멸의 의미는 완전한 사라짐이 아니었나?”
“공허의 아주 깊숙한 곳은 데스브링어조차 들어가는 게 허락되지 않은 장소다. 그가 만든 시스템이니 감지할 수 없는 곳에 들어가거든 ‘소멸’이라 단정 짓는 것도 이상하진 않은 일이다.”
가장 궁금했던 사실 하나가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