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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230화 (230/242)

던전 사냥꾼 230화

병장기의 달인, 모든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자. 특히 검술에 관해선 따라올 자가 없다고 전해지는 최강의 검사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웬만한 검술 전부를 터득했다고 전해지니, 순수한 무력 싸움으로 돌입하면 아리엘을 당할 자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하이엔달의 검술을 깨우치며 많은 발전을 이룩했다고 하더라도 아리엘 디아블로의 순수한 실력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두 수 내지 세 수는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말이 세 수이지 그 정도면 어른과 어린아이의 차이였다.

하지만 나는 순수한 육체적 싸움을 하려고 이 자리에 선 게 아니다. 가진 바 모든 것을 활용하며 전면전을 벌일 셈이었다. 아리엘에게 검술이 있다면 그 외의 모든 부분에 있어선 내가 훨씬 앞서고 있었다.

콰드득!

땅이 파였다. 지진이라도 난 듯이 대지가 출렁였다. 시작부터 아리엘은 자신의 검에 혼돈을 덧씌웠다. 그녀의 전매특허 ‘어비스 소드’다.

이에 대항하고자 다크 소드를 펼쳤다. 어비스 소드의 열화판 같은 스킬이지만 우월하기 짝이 없는 마력 수치가 더해지자 본래의 몇 배에 달하는 강력함을 발휘했다.

‘보인다.’

아리엘 디아블로의 현란한 움직임이, 사소한 살의 떨림까지도 모두 보였다. 느껴졌다. 다음 동작마저 예상되었다. 그리고 나는 모든 상황을 지배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전이었다면 그녀의 움직임 전부를 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아리엘 디아블로의 움직임은 기교가 넘쳤고 미세한 부분에서 아주 정교하기 짝이 없었다.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으며 최적의 루트로 공격을 가해 왔다.

촤악! 촤악! 채에에에엥!

검과 검이 부딪혔다. 아리엘 디아블로는 파죽지세로 밀어붙였다. 나는 쌍검술을 사용함에도 그녀의 공격 빈도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초반에 모든 것을 건, ‘쏟아붓는’ 식의 검술이었다.

한 번 삐끗하면 그대로 패배와 직결될 정도로 고난이도의 움직임을 무작정 내보이고 있었다. 공격은 방어라는 말을 그대로 실현한 것이지만…….

화르륵!

나는 오만의 불길을 피웠다. 태우지 못하는 것이 없는 영겁의 불길. 한참이나 상승한 마력으로 말미암아 오만의 불은 진짜 지옥불이 되었다. 수십 미터를 치솟아 주변의 모든 것을 잡아 삼켰다. 땅이 녹았고, 그녀의 움직임도 봉인되었다.

쿠아아아아앙!

하지만 아리엘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멈추면 자신의 패배라는 듯이 움직였다. 검을 높이 들고 바닥에 찍자 대지가 파도처럼 넘실댔다.

‘용오름.’

이 역시 아리엘의 스킬 중 하나다. 대지가 뒤집히며 이내 거센 해일이 되었고, 무차별적으로 나를 덮쳤다.

쾅! 쾅! 콰아아아앙!

해일은 십수 차례나 계속해서 반복됐다. 그로도 모자랐는지 아리엘은 검을 다시금 세워 공격형 스킬을 발동했다.

솨아악! 솨아악!

상아검이 늘어났다. 똑같은 검, 복사품이 아닌 진짜다. 저 하나하나가 놀라울 정도의 파괴력을 담고 있었다. 총합 512개의 검이 허공에 차례대로 떠올랐다.

‘웨폰 치트(Ex Epic)’다. 본래는 손에 쥔 적이 있는 병장기 하나를 복사하는 스킬이지만 등급이 오르며 같은 무기를 수백 개 만들어 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상아검은 발록의 뼈로 만든, 최강의 검 중 하나이지만 만약 그녀가 그보다 높은 등급의 검을 사용할 줄 알았다면 엄청난 폭풍을 일으켰을 것이다.

총합 512개의 검이, 용오름으로 진탕이 된 대지 위에 수도 없이 꽂혔다. 그야말로 비의 검이었다.

“거인의 늪.”

그조차도 끝이 아니었다.

아리엘은 검을 쥐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대지에 꽂힌 검들이 일제히 빛을 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마치 결계처럼 512개의 검이 이어졌다.

쿠웅! 쿠웅! 쿠웅!

512개의 검이 일제히 대지를 뚫고 바닥으로 꺼졌다.

쉬이이이이이이잉!

이윽고 지하에서 광음이 들려왔다. 청각을 마비시킬 정도로 커다란 소음. 소리는 점점 커졌으며 마침내 절정에 달하자 그 순간을 기점으로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하지만 이는 폭풍전야였다. 압도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장렬한 빛이, 수렁과 같이 깊게 파인 구멍 사이로 튀어나왔다. 빛은 금세 하늘까지 닿았고, 중간의 모든 것을 깡그리 지워 냈다.

연계 스킬이다. 하나만 사용하는 것보다, 연계되는 스킬에 따라서 몇 배, 몇십 배의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녀가 파 놓은 구멍은 직경이 수 킬로에 달했다. 일찍이 경고를 했기에 참관한 마족과 마수들은 그보다 훨씬 멀리에 떨어져 있었다. 아니었다면 모두 휩쓸리고 죽었을 것이다. 예외는 있을 수 없었다.

그 정도로 파괴적이었다. 거대한 빛의 기둥은 마치 신이라도 없앨 것처럼 흉포한 울음을 계속해서 내었다. 초월자의 격에 이른 아리엘 디아블로. 그녀가 모든 걸 쏟아부은 공격이었다.

만약 그리니치 천문대에 있을 때 초월자의 격에 들고 이 스킬을 완성했다면 마지막까지 남아서 승리한 자는 아리엘 디아블로가 되었을 것이다.

홀로 전장의 판도를 뒤집어 버렸겠지.

하지만…….

화륵! 화르륵!

나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빛을 타고, 구멍을 올랐다. 오만의 불은 내 전신을 감싸며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인피니티 아머 역시 내 성장과 마력의 쓰임에 따라 붉은 용과 같은 형상으로 변해 있었다.

뚜벅.

마침내 지상에 닿은 이후 대지 위에 두 발을 딛고 섰다. 아리엘 디아블로의 공격은 확실히 대단했다. 그냥 맨몸으로 맞았다면 중한 상처를 입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서로의 생명을 건 싸움이다. 가만히 저만한 공격을 맞아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크르르릉!

진격의 정령.

뇌신이 울었다. 뇌신 역시 내가 받을 타격을 줄이고자 오만의 불길과 함께 내 전신을 감싸 안고 있었다.

공격이 끝났으니 더 이상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고 태세를 변환했다.

뇌신의 크기도 부쩍 늘어 있었다. 스킬은 마력의 영향을 받으니 내가 가진 스킬 모두가 비약적으로 강해졌다 보면 옳다.

나는 손가락을 옮겼고, 그러자 뇌신이 아리엘 디아블로를 집어삼켰다.

쿠아아아앙!

뇌신이 포효했다. 아리엘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공수를 전환했다. 검에 혼돈을 씌운 채 뇌신의 공격을 막았다.

치이익! 치이이익!

아리엘의 검이 뇌신을 훑고 지나가자 뇌신이 정확히 반으로 쪼개졌다. 바닥에 떨어진 전력이 꿈틀대며 정전을 일으켰다. 잠시 후 다시금 합쳐지며 뇌신이 형상을 갖췄다.

창과 방패라면 딱 맞을 것 같았다. 뇌신은 공격했으나 아리엘의 검을 뚫을 정도는 되지 못했다. 허나 뇌신도 무한히 재생하며 끊임없이 아리엘을 괴롭혔다.

끝이 나지 않을 걸 알고서 나는 움직였다.

분노와 황제의 검 위에 다크 소드를 덧씌우고 그 위를 오만의 불길로 덮었다. 여기에…….

나는 뇌신을 불러들였다. 불러들인 즉시 오만의 불길과 뇌신을 섞었다.

연계라면 연계. 하지만 굉장히 큰 위험을 동반하는 짓이다. 나로서도 처음 행하는 도전. 그러나 실패할 것 같지가 않았다.

마력이 상승한 만큼 이해도도 대폭 올라갔다. 거기다가 135의 지능 수치는 그만큼 스킬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쿠륵. 쿠르르르르르…….

잠시의 반발이 있었지만 그뿐이다.

혼돈 이상의 혼돈이 검 위에 생겨났다.

그를 본 아리엘의 눈빛이 더욱 진중하게 변했다.

일반적인 공격의 기회는 끝났다. 이제는 맞붙을 시간이었다.

아리엘도 알고, 나도 알았다. 그리고 우리 둘 다 싸움의 결과를 확신하고 있었다.

모든 걸 퍼부은 공격에 실패했으니, 남은 건 처분일 뿐이라고…….

촤앙!

상아검이 정확히 반으로 나뉘었다.

혼돈을 덧씌웠지만 검째 잘려 나갔다.

아리엘이 그제야 조금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괴물 같은 놈.”

툭. 아리엘 디아블로가 양손을 들었다.

“내가 졌노라.”

* * *

아리엘을 죽이고 살리는 건 순전히 나의 자유였다. 마족의 싸움이라는 게 그렇다. 패자는 모든 것을 잃고, 승자는 모든 것을 갖는다. 승자 독식의 세계에 평생을 몸담갔으니 내게 있어서도 당연한 절차였다.

머지않아 그녀의 휘하 마족들이 당도했다. 내 마수들도 함께 찾아왔다.

아리엘 디아블로의 휘하 마족들은 입술을 깨물었으며 반대로 나의 휘하 마수들은 웃음기를 머금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나는 그 중심에서 무릎 꿇은 아리엘에게 말했다.

“카마엘을 죽이는 데 앞장서라, 아리엘 디아블로여. 선봉에서 적들을 유린하고 나를 위해 적들의 목을 갖다 바쳐라.”

나는 아리엘을 죽이지 않았다. 그러한 선택도 하지 않았다.

승자는 결정되었으며 아직 싸움은 끝난 게 아니다. 가장 먼저 카마엘이 남았다. 카마엘은 나 혼자서 죽이기 굉장히 까다로운 천족이었다.

‘114만의 천족 모두를 죽여야 놈을 없앨 수 있다. 그 전까지는 불멸이라 하였지.’

타쉬말이 전해 준 사실이었다.

치천사 카마엘, 전능한 존재이며 114만의 천족과 생명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일전 아리엘이 이끌던 은색의 기사들이 사용한 스킬과 비슷한 것을 가진 듯했지만 114만의 천족을 모두 죽여야만 카마엘을 죽일 자격이 생긴다는 게 달랐다.

그러기 위해서 아리엘을 살려 둔다. 그녀가 지휘하며 천족들을 멸한다면 조금 더 일이 수월해질 터다. 카마엘은 전능에 가까운 존재지만 완벽하게 전능하진 않았다. 그의 군세를 모두 죽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킬 셈이었다.

나는 발을 내밀었다. 아리엘이 내 발에 입을 맞춰야 주종의 의식이 끝난다.

여기서 거부하면 목숨은 없다. 노예의 인장을 새기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녀에게 굉장한 호의를 베푼 것이다. 명예를 지켜 주기 위함도 있었지만 여태껏 그녀는 내게 적대적인 자세를 한 번도 취한 적이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를 감안한 결과였다.

그녀의 선택이 휘하 마족들의 선택이기도 하였다. 나는 가만히 기다렸다. 곧 아리엘이 입을 열었다.

“나 아리엘 디아블로가 패배를 시인하고 지금부터 랜달프 브뤼시엘의 종이 될 것을 맹세한다.”

아리엘은 천천히 내 발에 입을 가져갔다.

나로서도 의외였다. 별 반발 없이 순응할 줄이야.

전생에서 내가 알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때의 나는 약자의 입장이었기에 아리엘의 진면목을 파악하지 못한 건가?

쪽!

아리엘이 내 발등에 입을 맞췄다.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나뉜 순간이었다.

복잡한 마음은 변하질 않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격한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쉴 새 없이 달려왔고, 좌절했지만 끝내 손에 넣었다.

가장 밑바닥에서 누구보다 높은 곳까지 올라오는 데 성공했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믿지 않으리라. 믿고 싶어 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건 진실이었다. 나는 지금 그 진실을 손에 쥐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 있었다.

주종의 의식이 끝나자 눈앞으로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지구의 모든 마족을 제압했습니다.]

[마왕의 자격을 취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입니다. 칭호 ‘마왕’을 손에 넣었습니다.]

[직업이 ‘마계 대공’에서 ‘마왕’으로 변합니다.]

[마왕은 마계의 왕입니다. 마계를 제패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절대적인 이름입니다.]

[마계의 문을 여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카마엘의 현신으로 인해 당장은 여는 게 불가능합니다. 천계와 마계의 문은 중첩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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