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231화
* * *
하늘이 어둡게 물들었다. 달빛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빛을 좀먹으며 자라난 어둠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동시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죽은 자들…… 망령이다. 수백만, 수천만, 어쩌면 그 이상의 숫자로 이루어진 망령들이 내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오로지 내 눈에만 보이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였다.
마왕은 다른 것을 본다.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그저 뜬소문에 불과할 줄 알았는데 진실이었을 줄이야.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 뜬 천계의 문과 마계의 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둘 다 닫혀 있었지만 그렇다고 열리지도 않았다. 카마엘을 죽여야만 천계의 문이 사라지고, 마계의 문을 열 수 있는 것이다.
―원통하다.
망령들은 내게 속삭였다. 자신의 억울함을, 분노를. 극에 이른 음의 마력이다. 정신력이 부족하다면 즉시 동화되어 움직일 정도로 강력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나는 얇게 웃고 말았다.
이 망령들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전대 마왕들이 죽인 자들. 그들이 남긴 힘들.’
많은 마왕이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파괴적인 욕구를 참지 않는 자들이었다. 무자비한 살상을 자행했으며 그중에는 미쳐 버린 자들도 있었다. 그들이 죽인 생명을 손으로 세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세상을 가득 채울 정도로 수많은 절망이 지금 내 귓가에 들어오고 있었다.
마왕의 업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그래 왔다. 고대의 서적에서도, 마족에 비해 마왕은 비교도 안 되는 힘을 지녔다고. 마왕의 자리를 인정받으면 그 힘이 인계되어 순식간에 마계를 평정할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이 역시 말도 안 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대공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그토록 마왕의 자리에 목을 맨 것이었다.
‘보아하니 이 음의 마력을 얼마나 흡수하느냐가 마왕의 자질에 영향을 주겠군.’
음의 마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흡수해도, 흡수해도 끝나지 않을 양이다. 아무리 많이 흡수해야 그 양은 5%도 되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내 정신은 고작 망령들 따위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나는 망령들을 치웠다. 초월자를 넘어서 신격을 얻은 나다. 순식간에 망령들의 정체를 간파했고, 그 속에 있는 것마저 깨우칠 수 있었다.
‘비켜라.’
나는 명했다. 곧 망령들의 중심이 갈라지며 긴 길이 생겼다.
길의 끝. 전대 마왕들의 힘이 보관된 장소!
나는 가슴팍을 내려다보았다.
구스타르테가 균형을 맞추고자 내게 열쇠를 주었다. 이 열쇠 덕에 신격이 넘치지 않고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든지 신이 될 위험성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지금 그 신성을 더럽히려고 한다.
가슴팍에 손을 가져갔다.
투둑. 투두둑.
그리고 열쇠를 끌어냈다.
크와아아아아앙!
문을 연 즉시 블랙홀처럼 내 신체는 주변의 망령들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수많은 망령 따위가 아니다. 망령 중의 망령, 전대 마왕의 힘들을 가지려고 한다.
손을 뻗었다. 마왕의 령들은 코웃음을 쳤다. 그들 역시도 항상 역대 최강이란 수식어를 달고 다니던 이들이었다. 내가 초월자에 발을 담고 신격을 얻었대도 그들 역시 만만찮은 힘으로 마계를 지배한 절대자들인 것이다.
하지만…… 한 명, 내 부름에 응하는 자가 있었다.
거대한 덩치, 거대한 날개와 산양의 뿔, 용의 껍질을 가진 자.
마왕 디아블로!
마왕의 혈족 중에서도 가장 긴 세월 간 마계를 통치했으며 그의 가문은 항상 대공 이상의 지위를 보장받았다. 귀족 중 귀족이라 할 수 있는 가문의 원류가 그였다. 아주 아득한 세월, 어쩌면 마계가 막 생겨났을 무렵 존재하던 진짜 원류의 마왕이다.
나는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그는 충분히 인사를 받을 가치가 있는 자였다.
―너를 지켜보고 있었다. 너와 같은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정한 마족의 힘을 가진 아이여! 자신이 창조한 아이들이 두려워 그 본모습조차 없애 버린 겁쟁이 마신 데스브링어의 신격을 끌어내릴 아이여!
디아블로가 당찬 발걸음을 옮겼다. 곧 나와 합류하였고, 그가 주는 충격은 주변의 질 낮은 망령들을 수없이 합친 것보다 강렬했다.
이어 디아블로는 내게 짧은 기억을 하나 들려주었다.
아득한 과거의 이야기. 바로 마계가 막 창조되었을 무렵의 모습이었다.
* * *
마신 데스브링어는 마족을 창조했다. 하지만 마족의 생김새는 내가 아는 것과 많이 달랐다. 산양의 뿔이 있었고, 가죽은 거칠었으며 날개가 존재했다.
아는 것과 다르지만 알고 있는 모습이다.
내가 ‘타락’을 시전했을 때 나는 그와 같게 변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도 알고 있었다.
데스브링어는 그를 걱정했다. 마족은 너무 강력했다. 종족 자체가 가진 힘이 신을 위협할 수준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자신의 자리마저 위협받으리라 확신한 마신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종족의 퇴화.
날개와 힘의 상징인 뿔을 없애고, 인간의 유전자를 넣었다.
더욱 폭력적인 성향을 거기에 덧씌웠다.
마족은 약체화했고, 이는 곧 천계와 마계의 균형을 무너트리는 짓이었다.
이대로 있으면 마계는 천족에 의해 멸망할 것이다. 어쩌면 마족끼리의 싸움 끝에 자멸할지도 모른다. 마신은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작정이었다.
당시의 마왕 디아블로는 그 사실을 알고 분개했다.
천계의 천족 역시 마족과 비슷한 강함을 가지고 설계되었다. 하지만 천계는 질서를 지키고 공존하며 균형을 잡고 있었다. 마신이라는 자는 그럼에도 단순히, 일어날지 말지 확실하지조차 않은 일에 겁먹어 스스로 낳은 아이를 죽이려 들었다.
디아블로는 두 세상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왕의 좌에 새로운 기능을 몰래 새겼다. 마왕의 힘이 승계되도록. 그리하여 천족으로부터 마계를 지키도록!
마신 역시 알아챘지만 손을 쓰기엔 늦었다. 그리고 불멸자가 필멸자의 일에 너무 깊게 관여하면 신격이 떨어진다. 종의 퇴화를 강제로 조작하며 무리를 했기에 알고서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간신히, 마왕의 강력함으로 말미암아 마계와 천계는 균형을 지켜 갔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마계와 마족은 언제든지 멸망할 위험을 안고 있었다. 내부적으로든, 외부적으로든.
그래서 디아블로는 기다리고 있었다.
원류의 마족.
데스브링어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는 그런 마족을 말이다.
그리고 지금, 그 기다림이 드디어 끝났다.
나는 열쇠를 다시 가슴에 꽂았다. 소용돌이치던 마력이 조금씩 잠잠해졌다. 하지만 신격을 가졌을 때의 신성성은 상당히 사라져 있었다.
거울을 문 붉은 용의 형상이 검게 물들었다. 중급 신 구스타르테조차도 디아블로의 마력을 모두 막아내진 못한 모양이었다.
두 이질적인 힘이 합쳐지며 무슨 현상을 일으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합쳐지기만 한다면 전무후무한 힘이 완성될 것이었다.
쫘아악!
나는 음의 세상을 찢어발겼다.
이로써, 진실된 마왕의 의식이 끝이 났다.
* * *
“마왕의 존안을 뵙습니다.”
의식이 종결되었을 때 가장 먼저 내 발치에 무릎 꿇은 건 아리엘 디아블로였다. 의식 전까지만 하더라도 반말을 고수하던 그녀가 의식이 끝나기 무섭게 태세를 전환시킨 것이다.
“마왕의 존안을 뵙습니다.”
그리고 아리엘을 따라 그녀의 휘하 마족들이 차례대로 무릎을 꿇었다. 덩달아 가만히 지켜보던 휘하의 마수들도 같은 자세를 취했다. 이히마저 분위기에 휩쓸려 그랬을 정도다.
후웅.
나는 날개를 펄럭였다. 내 모습은 변해 있었다. 거대한 뿔과 날개를 가졌다. 가만히 있어도 마력이 주변에 넘쳐흘렀으며 순식간에 모든 것을 압도했다.
그야말로 힘이 넘쳤다. 신격을 가졌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상태창을 열었다. 전과 달라진 상태창에 절로 미소가 나왔다.
이름: 랜달프 브뤼시엘
직업: 마왕(던전 마스터)
칭호 :
* 던전 사냥꾼(던전 점령, 마족 사냥 시 잔여 능력치+1)
* 불굴의 전사(Ex U, 모든 능력치+2)
* 최초로 요정의 축복은 받은 자(U, 마력+6)
* 근원의 주인(Epic, 모든 능력치+3)
* 언데드(Ex U, 지능체력+5)
* 지저 세계의 지배자(Legend, 모든 능력치+5, 에픽 미만 스킬의 등급+0.5)
* 원류의 마왕(God, 모든 능력치+10, 초월급의 언령 부여.)
능력치 :
힘 127(+30) 지능 129(+25)
민첩 121(+30) 체력 133(+32) 마력 138(+26)
잠재력(648+143/???)
잔여 능력치: 47
전력량: 742GW
특이 사항: 지저 세계의 주인. 나락 군주의 심장이 완전히 각성했습니다. 모종의 이유로 강력한 신격을 얻었습니다. 원류의 마왕 디아블로의 힘을 승계했습니다.
스킬: 만물 조합(Ex U), 심안(Epic), 다크 소드(Epic), 신검합일(Epic, Passive), 전격의 정령(Epic), 오만(Epic), 타락(Legend), 지배의 권능(Ex Epic, Passive), 정령과의 교감(Epic, Passive), 이면 세계(God), 진·언령(God, Passive)
적용 중인 스킬&아이템 효과: 분노(힘+7), 나태(민첩+7), 오만(체력+7), 신검합일(힘민첩+3)
[전후 비교]
힘 130 지 135 민 130 체 136 마 146 잠재력(585+93/???)
힘 157 지 154 민 151 체 165 마 164 잠재력(648+143/???)
원류의 마왕이라.
게다가 이면 세계에 이어 신 등급의 스킬이 하나 더 추가되어 있었다.
진·언령!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진정한 힘이 깃든다는 의미다.
타락의 등급도 올라갔다.
마음에 들었다.
나는 밑도 끝도 없이 강해지고 있었다. 능력치 총합이 800에 가까운 괴물! 이러한 능력치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더 강해질 것이다. 조금이라도 멈춰 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때 아리엘이 슬쩍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리움, 존경심, 아련함…….
그녀는 내가 가진 힘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린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아리엘 디아블로.
지금 내 안에 들어온 디아블로의 피를 잇고 있었다.
피는 강력한 끌림이 된다.
이런 경우는 생각조차 못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그녀는 충실한 나의 종이 되어 더욱 열성적으로 적을 처리할 것이었다.
마왕이 되었으나 아직 꿈을 완벽하게 이룬 건 아니다.
마계에 존재하는 마왕성에 들어가 자리에 앉지 못했다. 그곳에 앉아 한바탕 크게 웃는 것이 나의 꿈 아니었던가.
그러기 위해선 앞길을 가로막는 적을 처리해야 했다.
“들어라.”
후우우우웅!
내 목소리에 진득한 마력이 실렸다.
게다가 ‘진·언령’ 스킬이 첨가되어 있었다. 아리엘이 가진 언령과는 비교도 안 될 강력한 힘으로 주변을 사로잡았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박혔다.
“마왕이 된 이후 처음으로 내리는 명령이다. 내 충실한 부하들이여, 앞을 막는 모든 적을 죽여라. 카마엘과 그의 천족들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쓸어버려라.”
“명을 받듭니다!”
“명을 받듭니다!”
내 말은 절대적이었다.
다른 이견은 허락하지 않는다.
당연히 모두가 동의했고, 이제 남은 건 치천사 카마엘의 파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