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232화
카마엘은 열 장의 날개를 가진 거구의 천족이었다. 114만이라는 어마어마한 군세를 지휘하며 주변의 생명을 모조리 말살시키고 있었다.
그의 권능은 조건부 무적! 114만의 군세가 죽지 않는 한 그는 불멸하다. 천족들의 생명을 양분 삼아 꺼지지 않는 태양처럼 무수의 힘을 발휘하는 게 카마엘이었다.
하지만 카마엘은 지금 강렬한 파괴 욕구에 사로잡혀 있었다. 치천사는 본래 자아가 거의 거세되어 있다. 위대한 의지에 따라서 철저하게 움직이는 존재가 치천사인 탓이다. 그리고 카마엘은 소환의 여파로 위대한 의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었다.
그 원인을 카마엘은 주변의 이상 생명체로 몰았다. 평범한 인간들이지만 몇몇에게서 이질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오염이고, 저주라고 판단해 말끔히 지우자 결정한 것이다. 모두 지운다면 다시금 닫힌 문이 열리고 위대한 의지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이었다.
실제로 그게 가능할 만큼 그는 강했다. 벌써 지구의 3분지 1 정도가 멸망했고, 풀 한 포기 남지 않은 절망의 대지로 바뀌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멸망은 피할 수 없을 듯했다.
나와 나의 군세들이 그를 치기 전까지는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 * *
인간들은 좌절했다. 천족의 공격이 시작된 이후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본래 천족은 능동적으로 인간을 사냥하지 않았다. 완전한 무시.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는 게 더욱 정확하리라. 오로지 마족과 마수만이 인간을 사냥감으로 인식하고 무차별하게 죽여 왔다.
그런데 천족의 태도가 돌연히 변했다. 그들이 가는 길에는 무수한 시체만 남았다. 서쪽에서 시작되어 동쪽으로 빠르게 진격 중인 천족의 부대. 인간들도 그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 빠르게 동쪽으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 한 곳이 한국이다. 남은 국가 중 그나마 건재하며 빠르게 힘을 회복 중인 곳. 최강의 각성자들이 있고, 평균적인 레벨도 높았다. 던전을 통해 안전하게 자원을 습득하고 있다고 알려졌으니 피난민이 생기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중에는 국가 정상급의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나라를 잃고 흘러, 흘러 한국에 도달한 것이다.
덕분에 수많은 문제가 생겼지만 그만큼 많은 지원 또한 얻을 수 있었다. 방어벽은 두터워졌고, 철옹성을 지키는 강한 각성자들도 많았다.
한국에 기거하는 모든 각성자는 합심하여 천족과의 전쟁을 준비했다.
돌연 세상이 어둠에 물들며 잇따른 ‘징조’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징조 이후 던전에서 마수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각자의 선택이 조금씩 갈리기 시작했다.
“공격해야 합니다. 던전의 주인이 나온 지금이 절호의 기회입니다.”
“안 됩니다. 긁어 부스럼입니다. 그가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 한, 우리는 지켜만 봐야 합니다.”
두 파로 나뉘어 격렬하게 싸웠다. 하지만 좀처럼 결론은 나지 않았다. 던전에선 하루가 다르게 마수들이 출격했고, 외부에서도 끊임없이 마수들이 유입되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희망적인 관측이라면 마수들이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점 정도였다.
사람들은 궁금했다.
한국의 던전은 조용한 편이었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지도 않았고, 던전의 주인이 직접 나서서 커다란 피해를 준 적도 별로 없었다. 던전이 생성된 직후를 제외하면 말이다.
한데 지금, 한국의 던전은 유례없이 떠들썩했다. 하루가 다르게 마수들이 생겨나고, 던전을 빠져나와 어딘가로 향했다.
세계 각국의 통신이 끊겨져 마수들을 따라가지 않는 한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한데…… 중국의 기자 한 명이 한국으로 유입되며 마수들이 무엇을 하는지 밝혀냈다.
“마수들은 천족과 싸우고 있어요. 끔찍할 정도로 처절하게요. 천족들은 벌써 중국 란저우까지 들어왔죠. 그 이상으로 밀고 오지 못하는 건 모두 마수들 덕분이에요. 마지막 방어선이라도 되는 양 마수들이 싸움을 벌이고 있어요.”
중국 란저우면 바로 지척이다. 결코 멀다고는 할 수 없는 거리다.
거기까지 천족들이 밀고 들어왔을 줄이야……!
상상 이상으로 빠른 진격 속도였다.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건 마수들의 태도였다. 물론 던전에 오기 전에 저지하겠다는 것이겠지만 덕분에 한국의 위험 부담이 많이 줄어든 것이다.
그래도 희망은 별로 없었다.
천족의 부대가 얼마나 많고 강력한지 사람들은 알았다.
천족과 싸운 마족들도 많았지만 지금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모두가 죽은 것이다. 마족들도 어떻게 하지 못할 만큼 강한 군세였다.
고작 한국의 던전 하나로 천족을 모두 막을 수 있을는지…….
“막을 수 있어요. 우리가 그를 도와야 해요. 싫겠지만 해야 합니다.”
“이보세요, 한국은 지금 철옹성입니다. 여기를 버리고 나가서 그동안 우리를 죽여 온 마수를 돕자?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하지만 기자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마수가 아니라! 한국 던전의 주인을 말하는 거예요. 본래 한국 던전의 마족은 다크 엘프로 알려졌지만 아니에요. 그는…… 마족의 왕, 마왕입니다. 홀로 수만의 천족을 몰살시키는 괴물이라구요! 우리가 여태껏 보아 온 어떤 마족들보다 강력한 존재! 그를 거부해선 안 됩니다. 지금이라도 그를 따라 천족을 공격해야 해요.”
기자는 회상을 하듯 눈을 감더니 이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족에게 왕이 있다고? 그렇다면 그놈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적이 아닌가?”
대부분의 각성자는 반대했다. 목소리를 높이고 욕했다.
하지만 기자의 편을 드는 이들도 없지는 않았다.
“필요악이라고 했어. 천족은 인간을 몰살시키려고 작정을 했지만 그 마족의 왕은 적어도 인간을 몰살시킬 생각은 없지. 이 기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언제든지 한국 정도는 쓸어버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우리는 선택해야 해. 살기 위해 차악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최후를 맞이할 것인가를.”
사실 모두의 의문이었다.
한국 던전의 주인, 그는 다른 마족들과 조금 달랐다. 적어도 인간을 수탈하거나 무작정 전멸시키려 들지는 않았다. 적당한 위협만 한 번씩 던져 줬을 따름이다.
반면 천족은 아무런 이야기도 통하지 않았다. 무조건적인 배척! 개미 밟듯이 인간을 무차별하게 학살하고 있었다.
결국 모두의 선택은 한 사람에게 미뤄졌다.
에드워드 윈저, 그리고 유은혜.
에드워드는 성군이지만 실질적으로 한국은 관리하는 건 유은혜였다. 에드워드는 너무 어렸고, 반면 유은혜는 수많은 경험을 한 베테랑이었으므로.
실질적인 선택권은 유은혜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그리고 모두의 기대를 받으며 유은혜가 입을 열었다.
“별동대를 구성해 천족을 공격합니다. 그들이 이곳까지 도달하면 피해는 실시간으로 막대하게 불어나겠지만 바깥에서 막을 수만 있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마족을 돕겠다는 겁니까?”
“아니요,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살고 싶어서 그럽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남아 많은 힘을 비축하고 희망을 쌓았습니다. 그래도 부족합니다.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죽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인류는 끝입니다.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살고 싶다. 그 한마디가 주는 파급력은 굉장했다.
이곳에는 힘없는 자들도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미래의 희망이었다. 이곳에서 싸우면 그들이 짓밟힐 위험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니 그 전에 힘 있는 자들이 적들을 막아내야 했다.
유은혜는 어느 정도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였다고 보고, 한 가지 더 첨언했다.
“아직 천족의 공격을 받지 않고 정부가 남아 있는 나라들에 메시지를 보내겠습니다. 아니, 그들이 참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겠습니다. 이 싸움은…… 인류 최대의 고비이자 최후의 싸움이니까요. 이 싸움에서 모든 게 결정 날 겁니다.”
유은혜의 표정이 잔뜩 굳었다.
희망을 피울지, 피우기 전에 져 버릴지.
이 싸움에서 모든 게 판가름 날 것이다.
* * *
모든 포인트, 업적 점수를 때려 박았다. 최대한 효율 좋은 마수들을 소환해 천족 사냥에 열을 올렸다. 나를 감당할 천족이 없대도 상대가 너무 많았다. 나 혼자 114만에 이르는 천족 전체를 사냥할 순 없는 노릇이다.
[남은 천족 숫자- 371,332]
이것 역시 퀘스트로 인정을 받았는지 남은 숫자가 친절하게 띄워졌다.
나는 보름간 100만에 달하는 천족을 사냥했고, 그 못지않은 마수들을 잃었다. 슬슬 포인트가 고갈되고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마수들의 숫자도 피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카마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카마엘이 문제였다. 실제로 사냥이 개시된 직후 나는 놈을 노렸다. 격이 다른 나의 공격에도 무적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유지가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투명한 막이 생겨나 내 공격 모두를 막았다.
어이가 없었다. 정말 모든 공격을 무효화시키는 스킬이 존재할 줄은……. 조건부라지만 저런 권능도 다 있나 싶었다. 그다음부턴 하는 수 없이 몸을 빼곤 천족 사냥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살짝 아슬아슬하다. 시간은 유한했다. 나 혼자서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고, 저들이 던전을 몰살시키고 인류를 끝장내면 그때부턴 진정으로 싸움이 힘들어질 게 뻔했다.
그러니 그 전에 끝장내야 함이다.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수월했겠지만 아리엘과 그 휘하 마족 모두의 힘을 합쳐도 아슬아슬하게 부족했다.
‘조금의 병력이 아쉬운 판국이로군.’
게다가 천족들도 멍청하진 않았다. 나를 막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나만을 피해 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따로 본거지가 없으니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날아다닐 수 있었다. 그로 인해 내가 없는 곳은 적잖은 타격을 받았다.
특히 카마엘은 강력하기 짝이 없었다. 그를 막을 마수나 마족이 없었다. 아리엘 디아블로? 글쎄…… 내가 판단하기엔 그녀도 역부족이었다.
‘직접 나설 수밖에 없겠군.’
쯧! 혀를 찼다.
전형적인 시간 끌기다. 내가 카마엘을 상대하며 시간을 벌 동안 다른 마족과 마수들이 천족 모두를 쓸어 주길 기원해야 했다.
천족 모두가 사라지고 저 방어벽이 없어지면 카마엘을 끝장낼 수 있다.
내 마력은 언뜻 무한해 보였지만 무한하진 않았다. 그러니 시간 싸움이라 말을 붙였다.
‘어쩔 수 없지.’
분노와 황제의 검을 들었다. 이제는 이 수밖에 없는 듯했다.
카마엘은 컸다. 족히 5미터는 되어 보였다. 신장이라 할 만하다. 물론 전생에서 본 치천사보단 훨씬 작았지만 그놈은 생명체가 아니었다. 거대한 행성과 닮은 무언가였지.
반대로 카마엘은 생명체였다. 기다란 창을 들고 무심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당연히 주변에선 연기가 피어오르는 등 파괴 공작이 한창이었다.
내가 나타나자 카마엘이 시선을 돌렸다.
한 번 공격을 왔다가 빠져나간 전적이 있는 나로선 굴욕적이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피할 수 없었다. 카마엘로 인해 마수들이 몰살당하면 나 혼자 천족들 모두를 때려잡는 건 힘든 일이었다.
슬쩍 옆으로 눈을 돌리자 허공에 뜬 메시지 하나가 계속해서 눈에 밟혔다.
[남은 천족 숫자- 271,994]
지금까지의 진행 속도대로라면 일주일 안팎으로 결과가 나올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일주일간 카마엘을 붙잡고 늘어질 계획이었다.
“한번 어울려 보자꾸나, 치천사 카마엘.”
“…….”
카마엘은 말이 없었다. 대신 창을 들었다.
촤아아아악!
창을 날렸다고 생각한 순간 내 앞에 나타났다. 공간을 꿰뚫고 도약한 창이 내 이마를 꿰뚫고자 빠르게 날아왔다.
촤앙!
하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알고 있는데 맞아 줄 정도로 나는 멍청하지 않다.
다크 소드와 뇌신, 오만의 불꽃을 차례대로 두 자루 검에 씌웠다.
쿵!
나 역시 놈이 반응하기도 전에 앞으로 도약하여 면상에 검을 꽂았다.
하지만 얇은 방어막이 여전히 건실하게 막아서고 있었다.
“쯧!”
모든 부분에서 내가 우위에 있지만 단 하나, 이 방어막을 뚫질 못한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