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사냥꾼-233화 (233/242)

던전 사냥꾼 233화

카마엘 주변에는 많은 천족이 있었다. 그 숫자만 3만에 달했다. 그들이 일제히 공격하면 까다롭기 그지없는 일이 되겠지만 해결 방법은 쉬웠다.

“끼어들지 마라.”

진·언령. 압도적인 언어의 힘이 내게 깃들어 있었다. 단순히 말로만 통하는 게 아니라 손짓, 발짓, 내 모든 표현에서 묻어났다. 천족들은 달려들던 와중 날갯짓을 멈춘 채 마치 벽이 생긴 것처럼 다가오질 못했다.

3만의 천족이 내가 하는 행동을 보고만 있었다. 슬쩍 카마엘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투명한 방어막이 깊게 울릴 뿐 통하진 않았다.

‘저 권능이 문제로군.’

내 언령의 힘은 가히 권능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카마엘이 가진 저 보호막 역시 권능이라 할 수 있었다. 같은 등급의 권능과 권능은 약간의 방해는 할 수 있을지언정 서로 그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는 듯싶었다.

말인즉, 저 보호막만 거둬 내면 카마엘은 더 이상 내 적수가 아니라는 뜻이다.

‘천족이 모두 제거되길 기다려야겠군.’

때마침 카마엘의 주변으로 수많은 천족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카마엘을 상대하며 동시에 저 구경꾼들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화아아아악!

오만의 불꽃이 하늘 전체를 좀먹었다.

검으로 하나하나 죽이는 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수웅!

나는 다크 소드를 길게 늘어트렸다. 대략 200미터 길이까지 늘어난 다크 소드를 장난감처럼 휘두르자 검에 닿은 천족은 즉시 잘게 분해되어 소멸되었다.

카마엘이 나를 막아서고자 수천 개의 창을 던져댔지만 내 일방적인 학살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천족들은 언령에 따라 공격을 하지 못했고, 가만히 있는 적을 처리하는 것만큼이나 간단한 일은 없었다.

‘그래도 숫자를 줄이기는 했구나, 카마엘.’

일전에 찾아왔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카마엘 주변으로는 10만의 대군이 와글와글 모여 있었다. 나는 옳다구나 하고 10만의 천족을 제거했다. 내가 카마엘을 어찌할 수 없는 것처럼, 카마엘도 나를 막지 못했다.

이후 카마엘은 자신의 주변에 많은 천족을 두지 않았다. 내 움직임을 관찰하며 최저의 천족만 배치해 두었다. 아예 혼자 움직일 때도 많았다. 모여 있어 봤자 내 사냥감이 된다는 걸 카마엘도 깨달은 듯싶었다.

서로가 가진 방패는 감히 건들 수 없을 정도로 견고했다. 하지만 카마엘의 방패는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천족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내 휘하의 마수들도 많이는 남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3만을 제거한대도 나머지 천족들이 마수들과 자웅을 겨루는 중이었다.

그들의 순수한 싸움이 될 듯싶었다.

나는 여기서 카마엘의 발을 무한정으로 묶어 둘 셈이었으므로.

그때였다.

파파팟!

카마엘도 내 의도를 알아차렸다. 어차피 그의 힘으로는 나를 막지 못한다는 것 역시 안다. 하여 카마엘은 천족들을 버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필시 나의 휘하 마족과 마수들을 사냥하기 위함이다.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콰아아앙!

뇌신이 앞섰다. 아예 카마엘의 전신을 통째로 삼켜 버렸다. 별다른 타격은 주지 못했지만 움직임에 영향을 끼쳤다.

그 찰나와 같은 사이에 내가 카마엘 앞에 당도했다.

“어디를 가느냐.”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속도 역시 내가 위다. 놈은 내 허락 없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

그쯤 되자 카마엘의 눈썹이 살짝 찡그려졌다.

“인형은 아니었나 보군.”

입가의 호선이 더욱 짙어졌다.

놈과 마주친 이후 처음으로 보는 감정의 표현이었다.

* * *

싸움은 3일간 이어졌다. 아직 끝나지 않았고, 언제 끝난다고 확신을 할 수 없는 단계까지 왔다. 천족이 줄어드는 속도가 많이 느려진 탓이다.

[남은 천족 숫자- 153,229]

한 마리도 남김없이 모두 죽이는 게 가능할까 싶지만 탐지 능력이 뛰어난 마수들도 많았다. 그보다 1시간에 천 이하로 숫자가 줄어드는 게 문제였다. 이대로 속도가 계속해서 느려지면 기약 없는 싸움이 될 수도 있었다.

지루한 소모전. 나는 쉴 수 없었고, 반면 카마엘은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보호막은 따로 신성력이 들어가지 않는 고유의 권능이었으니.

나 역시 그를 깨닫고 수비적은 태세를 취하고만 있었다. 카마엘이 무리하여 내 움직임을 피해 가려고 할 때만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그런 행위가 자주 반복될수록 마력은 착실히 소모되는 중이었다.

이대로 계속하면 기껏해야 보름을 버티고 말 것이다. 타격이 통하지 않는 놈과 상대하며 들어가는 마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아무리 수비적인 태세를 취한대도 한계가 있었다.

‘마수들이 많이 줄었다.’

나는 계속해서 이히를 통해 보고를 받는 중이었다.

전체적인 숫자 자체는 천족보다 많다.

하지만 카마엘이 이끄는 천족은,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상대한 천족보다 훨씬 강했다. 숫자가 조금 많다고 승리를 확신할 순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희망적인 관측이라면…….

‘인간들.’

바로 인간들의 참전이었다.

솔직히 생각진 못했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인간 군집이라 해 봤자 한국이 한계다. 그런데 지금, 남아 있는 각성자들 대부분이 모여 천족에 대항하고 있다고 한다.

인간들은 뭉칠수록 강하다. 전생에서 숱하게 경험한 진리였다. 그리고 모일수록 빠르게 강해진다. 영웅이 출현하고, 끝내 대공과 공작들도 상대한 게 인간이었다.

텅텅 비어 버린 던전을 공격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할 텐데 도리어 마수들을 도와 천족을 상대하고 있다고 했다.

‘크리슬리의 계획이 먹혀 들어갔군.’

이히는 이 모든 게 크리슬리의 머리에서 이뤄진 작전이라고 했다. 크리슬리가 유은혜를 움직였고, 유은혜가 인간들을 선동했다. 덕분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고 있었다.

예컨대…… 외곽 쪽에서 움직이는 천족들을 죽이긴 어렵다. 그런 자잘한 부분을 인간들이 처리해 주면 나로선 만족스러울 따름이었다.

특히 한국 각성자들의 활약이 눈이 부셨다. 다른 각성자들보다 높은 수준의 강함으로 천족을 상대하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조금은 키운 보람이 있었다.

“너와 내가 싸울수록 이곳은 마계화해 가는 것 같지 않나?”

황폐화된 대지. 시선이 닿는 지평선 끝까지 모든 환경이 이러했다. 나와 카마엘이 싸우며 생겨난 흔적들이 대지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카마엘은 신경질적으로 창을 휘둘렀다.

가볍게 받아 내곤 어깨를 으쓱했다. 나보다 더 심심한 녀석이란 생각이 들었다.

7일 차.

슬슬 이 지루한 소모전을 벗어나고 싶었는지 카마엘도 행동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아예 나를 무시하며 이동하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보내 줄 내가 아니다. 타격이 먹히지 않다 뿐이지 공격을 가하면 멈칫하기는 했다. 나는 오만의 불로 벽을 세우고 지배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공간을 내 손바닥 아래에 놓았다. 게다가 내 언령이 아예 먹히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멈춰라.”

공격형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지속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움직이는 녀석의 발을 묶기엔 충분했다. 권능끼리 충돌할 때 저마다 특화된 부분을 잘만 공략한다면 부딪치지 않고 원하는 바를 이룰 수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카마엘의 저 보호막은 오로지 방어가 목적이다. 그러니 공격할 의도가 없다면 완전히 막아내진 못한다.

내가 말을 꺼낸 것과 동시에 카마엘이 거짓말처럼 우뚝 섰다. 카마엘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하기야 속이 타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었다.

움직이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하고, 그렇다고 전투로 나를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천족들은 속도가 느려졌을 뿐 지금도 쉴 새 없이 쓰러지는 중이었고, 그들과 이어진 카마엘은 당연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카마엘이 다시 이동했다.

“멈춰라.”

그리고 멈춰 섰다.

물론 항상 먹히진 않았다.

간혹 언령이 방어될 때가 있었다. 확률의 싸움인 듯싶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직접 나서서 놈의 움직임을 막아야 했다.

‘10만가량이 남았군.’

이 소모전이 언제까지 계속될 지가 관건이었다.

쯧, 작게 혀를 찼다. 카마엘을 상대하며 유독 혀를 차는 횟수가 많아진 것 같았다.

15일 차.

슬슬 내 몸에도 부담이 찾아왔다. 마냥 전처럼 카마엘의 움직임을 잡아낼 수 없었다. 간혹 놓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상당수의 마수가 죽어 나갔다.

이를 갈았다. 벌어들이는 포인트로 족족 마수를 사들였지만 잃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그 많던 마수들도 고작 4만 남짓이 남았을 뿐이었다.

반면 천족은 2만이 넘게 남았다.

하루에 만씩 줄어들던 숫자가, 이제는 3, 4천 정도뿐이 줄어들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나의 패배다.

모든 마수를 잃고 던전을 잃으면 더는 나를 보충할 것들이 없어진다.

―마스터, 가파람이 호문쿨루스를 대량으로 만들었어요. 오로지 천족을 사냥하는 데 특화가 됐대요. 수명은 짧지만 구스타르테를 연구하면서 천족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고 해요. 이히히!

돌연 이히로부터 통신이 들어왔다.

아아, 가파람. 그가 있었다. 안 그래도 전투가 시작되기 전 내게 시간을 달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제야 결과가 나온 것이다.

오로지 천족을 사냥하는 데만 특화된 호문쿨루스!

이히의 언질이 있은 다음부터 천족이 줄어드는 속도가 확연하게 올라갔다.

마침내 20일째가 되었을 때 남은 천족은 고작 400에 불과했다.

하지만…… 400에서 좀처럼 줄어들질 않았다.

‘숨겨 두었군.’

한 마리도 남김없이 제거해야 한다. 카마엘이 위험을 느끼고 천족들을 세계 각지에 분산시켜 둔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 자신의 승리라 확정한 것이리라.

21일. 남은 숫자는 350이 되었고.

22일. 270에 불과했다.

마침내 25일이 되었을 때 천족의 숫자는 10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 카마엘을 쓰러트릴 마력은 남겨 둬야만 했다. 슬슬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의 싸움.

그리고 28일째.

[남은 천족 숫자- 1]

어제부터 이 한 마리가 도저히 줄어들질 않는다.

나는 카마엘을 번번이 놓쳤고, 졸지에 휘하의 마족들과 마수들은 남은 천족 한 마리를 사냥하기보다 피해 다니는 데 급급하게 되었다.

* * *

유은혜는 각성자 300여 명을 이끌고 천족을 싸우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천에 달하는 대규모 부대였지만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이것뿐이 남지 않았다. 그래도 이 숫자라도 남길 수 있었던 건 그녀의 기지가 빛이 났기 때문이다.

“천족이 보이지 않아요. 이제 전멸한 거 아닐까요?”

여자 각성자가 유은혜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유은혜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직 남아 있어요. 분명히. 다른 부대에 전하세요. 주변의 탐색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각성자들은 각자 파티를 이뤄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며칠 전부터 천족을 발견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여 의식이 상당히 느슨해져 있었다.

그러나 유은혜는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안다.

쿵! 콰르릉!

저 멀리에서 천지가 개벽하듯 거대한 소리가 들려왔다.

“끔찍하군요. 마왕의 싸움이라는 건.”

바로 최강의 천족과 마왕이 싸우는 소리였다. 거리가 엄청나게 떨어져 있음에도 바로 지척에서 싸우는 것처럼 소리는 우렁차기 그지없었다.

세상이 어둠에 잠기고, 빛이 새어 나오는 걸 수없이 반복했다.

그 싸움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저기! 마지막 천족이 있습니다!”

그때였다. 각성자 중 누군가가 크게 소리쳤다.

이곳은 판데모니엄의 던전 근처였다. 이 근처에는 수많은 마수들의 사체가 즐비했다. 카마엘이 소환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하여 누구도 이 근처에 다가가지 않았고, 다가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체가 썩어서 나는 악취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한데, 판데모니엄이라 추정되는 시체에게서 작은 빛이 흘러나왔다. 그 빛은 분명히 천족의 것이었다.

“교묘하게 잘도 숨겨 놨군요.”

마지막 천족!

카마엘이 판데모니엄을 찢어 죽일 때 놈의 시체에 몰래 숨겨 둔 게 분명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하고자 말이다.

하지만 시체가 조금씩 부패하고 없어지며 결국 빛이 새어 나오게 되었다.

역시나. 아주 작은 천사가 시체 안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며 숨어 있었다.

그것을 본 유은혜는 가차 없이 말했다.

“없애세요.”

* * *

드디어!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남은 천족의 숫자가 0을 가리켰다.

그와 동시에 보호막이 울렁대며 조금씩 증발해 나갔다.

이윽고 카마엘은 벌거숭이가 되었다.

녀석의 표정도 가관이었다. 잔뜩 붉어진 얼굴.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카마엘, 이제 끝을 내자.”

나는 비축해 둔 모든 마력을 풀었다.

오로지 놈을 잡고자 계산에 계산을 거듭해서 비축한 마력이다.

후우우웅!

거센 폭풍이 불었다. 오만의 불길이 끝도 없이 기다란 장벽을 세웠다.

그 속에 나와 카마엘만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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