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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236화 (236/242)

던전 사냥꾼 236화

무고함이 밝혀지고 나와 나의 군세는 무사히 성안으로 발을 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늙은 마족 사순은 자신의 목을 걸었지만 다행히 잘려 나가진 않았다.

여태껏 나락 군주와 싸우며 성을 대신 통치한 그다. 우리가 모르는 정보도 많이 알고 있었고, 갑작스럽게 사령관이 바뀌어선 빠르게 대처할 수 없었다.

“나락 군주는 처음 마계에 나타났을 당시 혼자였다고 합니다.”

넓은 방. 광장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커다란 방이었다. 고급스럽기 그지없는 탁자, 샹들리에 등이 즐비해 있었고, 고급스런 음식도 함께 나열해 있었다.

사순은 조용히 무릎을 꿇고 앉아 이야기를 진행했다. 지은 죄가 있기에 그저 바닥만 바라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군세는 많아졌습니다. 그가 죽인 마족들은 모두 그의 꼭두각시가 되었으니까요. 백기사단이 먼저 발견했지만 나락 군주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고, 그대로 우리는 중요한 전력을 잃었습니다. 후에 백기사단이 적이 되어 나타나기 전까지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요.”

사순은 원통함에 바닥을 내리쳤다.

조금만 더 빨리 알았어도 전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느껴졌다.

아리엘은 자리에 앉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 연회의 방에는 마족과 주요 마수들만 들어온 상태였다.

내가 가장 상석에 앉았고, 아리엘이 그 옆에 자리한 것이다.

깊은 침묵이 계속되자 사순이 말을 이었다.

“나락 군주의 꼭두각시가 된 자들은 오로지 그의 말만 따르게 됩니다. 놀라운 건 꼭두각시들이 나름의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생전에 쓰던 마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검술을 제대로 다룰 줄 압니다. 간혹 아군인 척 들어와 기지를 쑥대밭으로 만들기도 했지요. 우리는 지독한 불신에 빠졌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가 적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웃으며 다가오는 동료가 뒤에서 검으로 등을 찌른다.

믿을 수 있는 자가 있을 리 없다.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싸움이 일어날 리도 만무했다.

이곳을 제외한 모든 대공의 세력이 전멸한 게 우연은 아니란 말이다.

“점점 불어나는 그의 군세는 아무도 대항하지 못할 만큼 커졌습니다.”

“숫자가 몇이지?”

“300만…… 최저로 잡아도 그 정도로 추정됩니다.”

허. 아리엘이 기가 막히는지 격한 숨을 토해 냈다.

300만? 대공들의 모든 휘하 병력을 다 합치면 그 정도는 될 것이다.

그렇다는 건 나락 군주에 의해 꼭두각시가 된 자들이 다른 대상을 죽여도 똑같이 변한다는 의미였다. 나락 군주 홀로 300만의 대군을 쓸어버렸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죽여도, 또 죽여도 불어만 나는 군대.

어느 누가 상대할까?

싸우면서 병사들도 의지를 잃고 말리라.

‘죽음의 장소로 초대된 것이었군.’

그리니치 천문대의 일을 떠올렸다.

그때 나를 제외한 대공들은 마계로 향하라는 특수 퀘스트를 받았다.

만약 얌전히 마계에 도달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는 뻔하다.

이길 수 없다. 당시의 군세는 지금에 비하지 못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아리엘 디아블로 님이 돌아오셔서 병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기사들도 의욕을 되찾았지요.”

“이 성의 주인은 이제 내가 아니다.”

아리엘은 엄격하게 말했다.

아마 사순도 조금은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듣고만 있던 나의 존재를. 그럼에도 눈길을 주지 않은 건 현실 도피와 비슷한 것이겠지.

“사순, 고개를 들어라.”

아리엘이 다시 한번 명했다.

그러자 사순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이후 아리엘은 나를 바라보며 당차게 말했다.

“랜달프 브뤼시엘. 우리가 모실 마왕의 이름이니라. 똑똑히 기억하도록.”

“마왕의…… 존안을 뵙습니다.”

그제야 사순이 내게 무릎을 꿇었다.

자신의 집과 같은 장소.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변함이 없던 장소다. 아리엘은 영원한 주인이었고, 진정한 귀감이었다. 그 충직함에는 변함이 없지만 장소의 지배자가 바뀌었다. 그리고 주인이 모신다면 가신으로선 당연히 그를 따라야 함이었다.

마왕 쟁탈전에서 패배한 것이라고, 사순은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성 내에 배치된 병력의 숫자는 30만.

여기에 내 마수들이 더해져 45만에 달했다.

충분한 대군이다. 용케나 이 정도의 병력을 비축했다고 할 수 있었다. 오로지 사순의 뛰어난 능력 덕이었다.

하지만 고민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마수와 마족이 많아 봤자 오히려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황제 폐하, 그 문제는 제게 맡겨 주십시오.”

또다시 오스웬이 나섰다.

오스웬은 눈을 빛내며 품에서 작은 거울을 꺼냈다.

“죽은 자를 움직이게 하는 것도 나락 군주가 가진 저주 중 하나입니다. 이 ‘진실의 거울’만 있으면 전염되듯 퍼지는 저주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엔 크기가 너무 작지 않나?”

혹시나 하여서 물었다. 고작 저런 손거울과 같은 크기로 모든 저주를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동의한다는 듯 오스웬도 고개를 끄덕였다.

“크게 만들면 됩니다. 재료와 시간만 주어진다면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아리엘이 끼어들었다.

“어지간한 마법 재료는 모두 구비되어 있다. 하지만 시간이 문제로군. 나락 군주의 군세가 코앞에 다가와 있노라.”

“일주일, 그 시간만 버텨 주십시오. 물론 거울을 완성한대도 끝이 아닙니다. 거울을 지켜야 합니다. 부서지면 다시 저주가 발동하여 저주가 전염될 겁니다.”

“이미 걸린 저주를 풀지는 못하는 건가?”

“가능은 하지만 효율의 문제지요. 그건 일주일 가지곤 턱도 없습니다. 저만한 수준의 기술자 10명이 있어도 3개월은 걸릴 겁니다.”

“거울을 만들어야겠군.”

아리엘도 현실을 깨달았다. 오스웬이 대단한 대장장이라는 것쯤은 그녀도 알고 있는 듯했다.

오스웬, 황혼의 대장장이. 신들마저 그 기술을 탐내고 부러워했건만 오스웬과 비슷한 실력자가 동시대에 또 있을 리 없었다.

“진행하라. 일주일의 시간을 버는 건 내가 하겠다.”

내 생각이 정확하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제가 따라가겠습니다.”

“저도…….”

아리엘과 크리슬리가 가장 먼저 나섰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 혼자 간다. 너희는 너희 나름대로 할 일이 있지 않나?”

한 명의 손이 아쉬운 판국이었다. 아리엘은 성 내부에서 병사들의 안정을 꾀해야 했고, 크리슬리는 두뇌로서 계획을 수립해야만 했다. 마법적인 조치도 함께해야 한다.

무엇 하나 양보할 수 없는 자리다. 그녀들만 가능한 일이었다.

“혼자서…… 괜찮으시겠습니까?”

“생각이 있다. 일주일은 충분히 벌 수 있을 것이다.”

자신 있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실수가 있대도 나 하나의 몸을 빼는 것쯤은 간단한 일이었다. 수많은 마족이, 그중에서도 고위 마족들이 나락 군주를 지키고 있는 지라 노리는 건 힘들겠지만 시간 벌이쯤은 충분히 가능했다.

‘고위 마족은 대부분이 초월자의 격을 갖췄지.’

공작 이상 급이라면 거의 그렇다고 보면 된다. 대공들을 포함한 72마족 모두는 지구로 향하며 능력치에 제한을 받았기에 그러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 아리엘은 전성기의 힘을 거의 다 찾은 상태였다.

‘나락 군주. 너 자신을 증명할 모든 걸 내가 가지고 있다.’

얇게 미소 지었다.

본래 그가 가졌어야 할 대부분의 것을 내가 가지고 있었다.

보면 배가 아프겠지만 어쩌겠는가. 공허에서 돌아온 자신을 탓할 수밖에.

성을 빠져나간 즉시 나는 황제의 검을 들었다.

본래는 나락 군주가 사용하던, 막시움이 간직하고 있던 진정한 보물.

절대로 부서지지 아니하며 한 가지 기능을 더 가지고 있었다.

“황제의 군세.”

촤아아아아아아!

황제의 검이 황금빛 울음을 토해 냈다. 황제의 검 주변으로 커다란 균열이 생겨나며 그 안에서 말을 탄 병졸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척. 척.

지저의 보물 창고에 존재하는 기병들.

그 이름, 혼령 기병이라 하였다.

이내 10만에 이르는 기병들이 내 뒤에 도열했다.

육체는 없으나 갑주와 철로 이루어진 말이 있었다. 모두가 상급 이상의 급을 갖추고 있었다.

‘90일.’

진짜 황제의 군세다. 이 10만의 군세는 90일간 유지되며 내 명령에 따라 적을 섬멸한다. 나락 군주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게 바로 이들이었다.

이들은 육체가 없고, 그저 갑주로 만들어진 인공 마수였다. 거기다가 나의 스킬 ‘지배의 권능’의 여파로 어지간한 저주는 통하지 않을 것이었다.

‘나락 군주여, 자신이 만든 병사에게 공격당하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구나.’

나는 날개를 펼쳤다. 이후 하늘을 날며 빠르게 전진했다.

다그닥! 다그닥!

그리고 내 뒤를 따라 철로 이루어진 10만의 기병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나락 군주의 군세는 멀리 있지 않았다.

기껏해야 3일 거리.

조금만 더 늦었다면 성은 함락되었을 것이다.

‘많군.’

카마엘이 이끌고 온 114만의 천족.

114만도 많았다. 모두 전멸시키는 데 족히 한 달 이상이 걸렸다. 조금만 더 일이 늦춰졌다면 그때 황제의 군세를 사용했을 것이었다.

‘아끼길 잘했어.’

카마엘을 상대하는 데 황제의 군세를 썼으면 큰일 날 뻔했다. 고작 3일 거리에 있는 저 군세를 막을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직접 미끼가 되는 방법도 있겠지만 나락 군주의 실체를 모르고 힘을 마구 남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초월자의 격에 든 마족에게마저 저주를 걸 수준이라면 녀석도 권능 비슷한 걸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카마엘이 가진 권능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얼마나 귀찮은 건지 깨달았기에 섣불리 움직이는 건 좋지 않았다.

‘숫자가 너무 많아서 파악하기 힘들다.’

사순은 300만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 그 숫자를 한참 넘길 것 같았다. 마족 외에도 마수들이 추가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마룡과 대지룡이 섞여 있었다.

‘발록…….’

그리고, 오래전 멸종했다 알려진 발록도 있었다.

마수 중의 마수.

일반적인 등급의 책정으로 가장 급이 높은 게 바로 발록이다.

최상급 5Lv이라 일컬어져 있지만 그 이상의 레벨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진마룡 아오진과 같은 마수들이 논외로 취급받을 뿐, 정작 6Lv로 불리진 않았다.

말하자면 발록은 마계 최강의 생물이라는 것이다.

히드라와 맞먹을 정도의 크기다. 몸집 자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10미터는 훌쩍 넘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커다란 날개가 있었다.

날개가 펄럭이는 것만으로도 짙은 마력이 사방에 요동쳤다.

역대 마왕들의 이야기를 보더라도, 마왕들은 발록을 제거하는 데 힘썼다. 발록은 절대로 길들이지 못하며 그 흉포함 때문에 마족들의 희생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심지어 9대 마왕 ‘알렉스트로자’는 발록에게 죽었다.

진마룡 아오진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마수의 급을 뛰어넘은 발록이었지만 그 파장은 상상을 초월했다고 한다.

당시 마왕을 죽인 발록의 외견은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이름도 붙었다.

‘로구잔.’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보니 문헌에 서술된 로구잔의 생김새와 지금 내가 보는 발록의 생김새가 매우 비슷했다. 오른쪽 날개만 두 개인 것도 똑같았다.

‘공허에서 나온 존재.’

아무래도 나락 군주만 공허에서 나온 게 아닌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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