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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237화 (237/242)

던전 사냥꾼 237화

혼령 기병은 적과의 전면전을 펼치지 않았다. 숫자의 차이가 넘을 수 없는 벽 정도로 나는데 정면에서 달려드는 건 미련한 짓이다. 치고 빠지며 꾸준히 시간을 끌었다.

일반적인 마족이나 마수는 혼령 기병이 휘두르는 검을 버티지 못했다. 강한 적일 경우 내가 나서서 피해를 최소화시켰다.

‘적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왜일까?

간단하다.

나락 군주도 혼령 기병의 존재를 깨달은 것이다.

자신이 만들고 사용하려던 병사들이 지금 적으로 나타나니 피가 머리끝까지 돌아 버린 게 분명하였다.

‘직접 나서진 않는군.’

그 점이 조금 아쉬웠다.

나락 군주가 혼령 기병의 토벌을 위해 직접 나선다면 공격할 기회는 얼마든지 생긴다. 한데 300만의 군세 뒤에 숨은 채 움직이지 않는다면 조건이 까다로워진다.

시간을 끄는 게 최선인가 싶었다.

‘허무의 그림자 콘테고놈은 내가 타락을 사용해서 겨우 이길 수 있었다.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해졌다고 하나 로구잔과 나락 군주는 허무의 가장 깊숙한 곳에 존재하던 이들이다. 역시 격의 차이가 많이 나는군.’

같은 허무에 속해 있대도 수준까지 비슷한 건 아닌 듯싶었다. 신의 눈으로 본 로구잔은 당시 콘테고놈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했다.

‘능력치 총합 721…….’

과연 마왕 살해자답다. 마수의 기준을 한참이나 뛰어넘어 있었다. 마왕들이 견제할 만큼 발록이란 마수 자체도 그런 면이 없잖아 있지만 놈은 그중에서도 특출하다. 저 정도쯤 되어야 의식에서 망령의 힘을 흡수한 마왕을 죽일 수 있는 것이다.

단순한 수치의 비교에서 내가 밀리진 않는다. 100이 넘는 차이. 혼령 기병이 시간을 끄는 사이 놈과 맞붙으면 크게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을 버는 건 포기해야 한다. 순식간에 수백만의 적에게 둘러싸이고 10만의 혼령 기병이 증발할 것이다.

나 혼자 저 대군을 막아서며 4일을 못 버틸 건 없지만 최후가 문제다.

‘나락 군주만이 내 적이 아니지.’

어둠의 정령이 무슨 수작을 부려 올지도 모른다. 마신 데스브링어도 신경 써야 함이었다. 최후의 최후까지 힘을 비축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게 현명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이라면 로구잔이 권능을 소유한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순수한 무력의 측면에서 강할 따름이었다.

‘로구잔만 따로 제거할 방법이 필요한데.’

나는 혼령 기병을 지휘하며 로구잔을 바라봤다. 잔잔하게 허공에 뜬 로구잔은 혼령 기병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움쩍달싹하지 않았다.

‘발록은 전투적인 종족이다.’

보통 전투가 벌어지면 흥분하는 게 발록의 특성이라고 들었다.

적이 없다고 여겨서일까? 혼령 기병 따위로는 자극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저 거대한 덩치의 마수가 신경에 거슬렸다. 저만한 덩치와 힘이라면 단번에 마법적 처리가 된 성을 박살 내 버릴 것이다.

‘내가 자극할 방법밖엔 없겠군.’

고개를 끄덕였다. 움직이지 않겠다면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하면 된다.

그리고 힘을 비축한다고 했지 싸우지 않으리란 생각은 추호도 한 적이 없었다.

슬슬 전면적으로 내가 나설 시기였다.

“30분 내에 돌아오겠다. 최대한 둘러싸이지 않게 방비하라.”

혼령 기병에게 명을 내렸다.

30분. 그 시간이면 로구잔을 제거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표면에 나온 적을 처리하고 혼자 나오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초월자에게도 어느 정도 먹혀드는 진·언령이 있기 때문이다. 나락 군주가 초월자의 격에 이른 마족, 마수들과 함께 막아서지 않는 이상 혼자서 빠져나오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혼령 기병만 무사하면 계속해서 시간을 벌 수 있으리라.

나는 날개를 펄럭이며 발록의 정면을 노렸다.

분노와 황제의 검이 검게 물들었다. 이어 뇌신과 오만의 불길을 때려 박았다. 내 우월한 마력이 더해지자 아리엘의 전매특허인 어비스 소드 못지않은 스킬이 완성되었다.

[반복한 행동의 결과, 연계 스킬을 익혔습니다. ‘카오틱 블레이드(Legend)’가 스킬창에 추가됩니다.]

행동을 반복해서 스킬을 얻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희박한 확률이었고 수천, 수만 번 반복해도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설령 나온다고 하더라도 높은 등급을 기대하긴 어렵다.

한데 레전드 등급이 나왔다.

‘높은 지능 덕이겠지.’

지능은 여러 가지의 역할을 한다. 마법 저항력, 스킬의 숙련도, 스킬을 사용할 때의 반작용을 없애 주고 정신력을 향상시킨다. 그리고 이와 같이, 빠른 속도로 스킬을 창조할 가능성을 높여 준다. 내게 있어선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썩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그제야 발록의 시선에 내게 향했다.

후웅!

자신의 몸집보다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순식간에 내 앞에 당도했다.

강자를 알아본 거다. 내 검에 깃든 마력의 파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눈치챈 것이다.

몸집의 차이는 확연했다.

하지만 싸움은 몸집으로 하는 게 아니다.

“기회를 주마. 원래의 장소로 돌아가라.”

무려 마왕 살해자다. 역사적으로도 유명한 전설적 마수다. 약간의 대우는 해 줘도 괜찮을 터.

후우웅!

발록이 오른쪽 두 날개를 강하게 펄럭였다.

콰르르릉!

번개가 몰아치며 내게 직격했다.

허나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마법 저항력이 사기 수준으로 높다.

그리고…… 발록은 마법을 사용하는 종족이었다.

최악의 상성. 내가 빠른 승리를 장담한 이유다.

“인사는 잘 받았다, 로구잔.”

카오틱 블레이드가 길게 늘어났다. 발록은 마법의 종족이고, 당연히 그에 따른 저항력도 높다. 육체적인 방어력도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그 육체가 얼마나 내 공격을 버티게 해 줄지 의문이었다.

“이제 내 인사를 받아 줬으면 좋겠군.”

촤악!

검이 몰아치는 번개의 태풍을 꿰뚫었다.

로구잔의 신체를 정확히 둘로 나눠 버린 순간.

공작급의 마족 수십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멈춰라.”

의식하여 언령을 발휘했다. 내가 가진 말의 힘은 권능과 같았다. 제아무리 초월자라도 이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지속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내가 가진 말의 권능은 절대다수를 상대할 때 유리하다.

그리고 공작들은 내 말에 따라 행동을 멈췄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극히 짧았다.

고작해야 소수점 아래의 시간에 불과했다.

‘권능의 중첩.’

이런 경우를 나는 겪은 적이 있었다. 카마엘을 상대할 때다. 카마엘과의 권능이 중첩되며 큰 효과를 주지 못한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나락 군주에 의해 지배당하는 마족과 마수들은 그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보호받고 있었다. 특히 공작급에겐 더욱 큰 가호가 내려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신의 눈을 발동시켰다.

[‘신의 눈(Demigod)’보다 높은 보안의 등급으로 방어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높은 마력(168)으로 말미암아 77%의 해석을 완료했습니다.]

[수호의 권능(God), 파멸의 인도(God), 절대적 지배(God), 죽음(God), 죽은 자의 노래(Legend), 그림자의 저주(Legend), 산의 저주(Legend)…….]

중첩된 권능이 무려 네 개였다. 이러니 내 언령의 힘이 거의 먹히지 않을 수밖에.

게다가 걸려 있는 저주의 종류는 어떠한가.

이미 놈은 신과 같은 힘을 소유하고 있었다.

하물며 이게 전부가 아니라니…….

‘신들이 경계할 만하군.’

나락 군주는 인간이었다. 수호자의 멍울을 쓰고 지상을 지켰다. 그가 있는 한 외세의 침범은 불가능했다.

그는 멍울을 집어던지고 싶었다. 하여 신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신들은 그가 신이 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신들이 힘을 합쳐 그를 공허에 처박은 것이다.

그도 가만히 당할 생각은 없었는지라 계략을 짰지만 실패했다.

어둠의 정령이 다시 그를 끄집어 올리기 전까진 그랬다.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나는 확신했다.

놈은 과거 그림자 황제였을 시절보다 강하다.

어둠의 정령들이 도움을 줬겠지.

아니,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권능의 숫자다. 아무리 신과 비슷한 인간이더라도 저만한 권능을 소유하고 있을 순 없었다.

저주 계열 마법을 익히는 데 열중했지만 그게 권능으로 이어지려면 무수한 시간이 필요하다. 저주와 관련된, 신에 가까운 격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오히려 뒤에 나열된 레전드 등급의 저주들이 그가 익힌 것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수호의 권능은 그가 수호자의 운명을 안았으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나머지 세 개는 확실히 이상한 것이었다.

어쩌면 더 있을 수도 있었다. 내가 신의 눈으로 해석한 부분은 77%밖에 되지 않았다.

‘놈은 진짜 나락 군주가 맞단 말인가?’

의아했다.

하여, 나는 진상을 확인해 보고자 했다.

“꺼져라.”

오만의 불꽃이 폭발적으로 주변을 감쌌다.

주변의 마족들이 잠시 멈칫한 사이 순식간에 허공을 달려 나갔다.

나락 군주의 군세는 대단했다. 수백만이란 숫자가 수십 킬로에 달하는 길이로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가장 뒤에.

마룡의 등에 올라탄 채 유유자적, 산책이라도 하는 듯이 천천히 날아오는 인물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발견한 즉시 알았다.

마룡의 등에 탄 인물이 바로 나락 군주임을 말이다.

심장이 격하게 뛰며 말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은 나락 군주에게 향해 있지 않았다.

그에게서 솟아나는 기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찔한 느낌. 정신이 번쩍 들며 전신이 발가벗겨지는 기분. 마치 레비아탄의 몸에 전신을 꽁꽁 묶인 것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다.

한 번 경험한 적이 있다.

지구로 향하기 전 내게 제안을 건넨 이가 저런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아주 미약하게 느꼈을 뿐이나 이제는 확실히 안다.

‘데스브링어……!’

마신 데스브링어가 나락 군주의 안에 있었다.

그렇다.

놈은 나락 군주이되 나락 군주가 아니었다.

나락 군주의 탈을 쓴 데스브링어였다.

데스브링어의 눈이 내게로 향했다.

얇은 미소. 이제야 도착했느냔 비웃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상하다 싶었다. 나락 군주가 네 개 이상의 권능을 가지고 있는 게 말이다.

하지만 데스브링어라면 그럴 수 있었다. 그는 마신. 최상급의 신위를 가진 신이었다. 신 중에서도 강력하기 짝이 없는 존재인 것이다. 중급의 구스타르테 수십이 있어도 데스브링어 하나를 어찌할 수 없다.

‘빙의라고 봐야겠군.’

불멸자인 그가 마계에 이 정도로 난입하여 정복전을 벌이는 건 불가능하다. 누군가에게 빙의를 했다손 쳤더라도 마찬가지다. 신격이 낮아진다. 심하면 신의 자격을 박탈당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게 가능했던 건, 빙의한 대상이 나락 군주여서가 아닐까?

나도 자세히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나락 군주 자체의 격이 이미 신과 같았기 때문에 그의 육체로 벌이는 일은 나락 군주의 신격만 배제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그러나 확실하진 않았다.

심장이 격하게 떨렸다.

그리고 내 안의 존재들도 일제히 일어났다.

구스타르테와 원류의 마왕 디아블로!

둘은 마신 데스브링어에게 심각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분노의 감정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성은 냉철했다.

정면으로 붙어도 승률은 높지 않았다.

게다가 이곳은 적진이었다. 내 권능의 힘이 거의 먹히지 않는 장소이니 싸움이 시작되면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이 내게 속삭였다.

‘방법이 있노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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