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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238화 (238/242)

던전 사냥꾼 238화

구스타르테와 디아블로가 해 준 말은 간단했다.

시스템.

마신이 만든 최고의 걸작.

그것을 파괴하거나 또는 오류를 일으키면 된다는 것이다.

시스템은 다른 신들을 죽일 만큼 완벽하고 강력했다. 마신은 최상급의 신. 그가 노리는 신 역시도 그 이상의 존재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만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마신이 자신의 신격을 담지 않았을 리 없었다.

말인즉, 시스템에는 마신의 신격 상당 부분이, 어쩌면 신격의 정수 자체가 들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당연히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그의 신격에도 지장이 간다.

신의 격만 떨어트릴 수 있다면 충분히 이기는 것도 가능한 일이었다. 구스타르테를 상대했던 것처럼 말이다.

‘어디에?’

문제는 시스템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

적어도 마계에는 없었다. 신계에 있다면 손을 쓸 방법이 없다.

하지만…… 머리가 빠르게 돌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어둠의 정령이다. 그들이 균열을 공부했대도, 이만큼 빠른 시기에 허무를 열고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가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었다. 균열이 많아졌다손 치더라도 너무 빨랐다. 표본이 있어도 일은 급진적으로 진행해야 함이었다. 그런데 다짜고짜 제일 난이도가 높은 허무의 가장 깊숙한 곳에 균열을 여는 데 성공했다니.

마신 데스브링어의 도움이 있었겠지만…… 혹시, 다른 원인이 있었던 건 아닐는지.

나는 구스타르테와 디아블로에게 의견을 구했다.

그러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걸어 볼 만한 도박이었다.

‘정령계로 간다.’

나는 나락 군주의 탈을 쓴 데스브링어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는 전혀 성급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모습. 나 따위는 언제든지 없앨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나 역시도 그리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강해졌대도 최상급 신인 마신에 비하겠나. 나락 군주쯤은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지만 상대가 데스브링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도 내가 나락 군주의 진짜 정체를 알아차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터였다.

‘신의 눈.’

그럼에도 나는 신의 눈을 발동했다.

확인하기 위해서다.

시스템의 완벽함을, 마신조차도 시스템에 손을 못 댄다는 증거를 말이다.

만약 상태창이 나타난다면 마신도 시스템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의미했다.

아니었을 경우 자신의 상태창이 뜨지 않도록 진즉 보안을 올렸을 것이니.

그리고 내 희망에 따라 곧 긴 창이 하나 나타났다.

[중첩된 권능의 힘에 의해 ‘신의 눈(Demigod)’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이름: 나락 군주(데스브링어)

직업: 마신

칭호 :

* 마신(God, ???)

* 최상위의 신(God, ???)

* 지고의 존재(God, ???)

* 죽음의 지배자(God, ???)

* 더럽혀진 수호자(God, ???)

능력치 :

힘 ??? 지능 ???

민첩 ??? 체력 ??? 마력 ???

잠재력(???/???)

특이 사항: 빙의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빙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스킬: ???

모든 게 물음표였다.

하지만 그가 마신이라는 확신은 주었다.

저만한 칭호를 가지고 있는 이가 마신 외에 있을 리 없으니까.

수많은 권능으로 말미암아 상태창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상태창이 뜬다는 사실 하나는 알게 되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그리고 모든 게 물음표였지만 특이 사항의 한 줄만큼은 나타나 있었다.

나는 황제의 검을 들었다.

달빛에 반사시키자 그 찬란한 자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본래는 나락 군주가 가졌어야 할 검.

그의 가장 충직한 부하 막시움이 맡고 있었던 황제의 증표.

“막시움은 나를 황제로 인정했다. 그가 내게 준 검은 바로 그 증명이다. 그림자에 불과한 가짜여.”

데스브링어는 코웃음을 치며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나는 말을 끊지 않았다.

“심장 소리가 들리느냐? 본래는 너의 것이었으나 지금은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지저 세계, 10만에 달하는 혼령 기병, 7대 죄악……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불쌍한, 가짜조차 제대로 되지 못한 자가 너다.”

나는 도발했다.

빙의가 제대로 이루어진 상태가 아니라면.

나락 군주의 정신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극심한 혼란을 주리라고.

“너는 나락 군주가 아니다. 내가 바로 나락 군주다!”

그런 내 생각은 곧 적중했다.

“큭……!”

데스브링어가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 빌어먹을 놈이……!”

고통에 찬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지금 공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은 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조금씩 안정을 되찾는 모습을 보며 포기했다.

나락 군주는 데스브링어와의 힘겨루기에서 이길 수 없었다. 그저 작은 저항을 하는 게 전부였다.

‘얼마 못 가겠군.’

저래선 곧 모든 정신이 잡아먹힐 것이다. 육체를 고스란히 데스브링어에게 넘긴 채 사라지리라.

나는 불쌍한 왕을 기리며 카오틱 블레이드를 전개했다.

콰콰콰쾅!

내가 노린 건 데스브링어가 아니다.

그가 타고 있던 마룡!

마룡이 비명을 내질렀고, 균형을 잃은 데스브링어가 지상으로 낙하했다.

이어 나는 검을 집어넣었다.

데스브링어가 나락 군주의 정신을 모두 집어삼키면 일이 더 힘들어진다. 지금 내 행위는 기껏해야 며칠을 번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사이 정령계로 가 시스템을 망가트려야 했다.

데스브링어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니 적들의 진격에도 문제가 생길 터.

나는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 * *

마계에 올 당시 나는 던전의 모든 것을 가지고 왔다. 그중에는 과거 정령계로 향할 때 사용하던 물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즉시 오스웬을 호출했다. 거울을 만드느라 정신없이 바쁠 오스웬이 내 호출에 즉시 반응했다.

“오스웬, 정령계로 향하는 장치를 사용할 수 있겠나?”

“가능은 합니다만…….”

“최대한 빠르게 작동시켜라. 어둠의 정령계로 향해야 한다.”

균열을 여는 장치다. 재료도 충분했고, 오스웬이 실력이 있으면 금세 작동시킬 수 있으리라 믿었다. 다시 만드는 것도 아니고, 이미 만들어진 것을 활용하는 데 불과했으니.

“알겠습니다.”

따로 이유를 묻지 않았다.

오스웬이 장치를 준비하러 자리를 비웠고, 바로 그때 모기가 웽웽 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스터!!”

다름 아닌 이히였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건 다 옮겼지만 던전 코어는 옮기지 않았다. 전혀 다른 세상일진대 어떻게 이히가 따라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히는 던전 코어에 귀속된 정령이었다.

아니, 아니다. 나는 마왕으로서 자격을 획득했다.

이히는 요정왕이 되어 구속을 벗어던지고 다른 곳으로 향해야 옳았다.

한데 이히는 여전히 던전 코어에 귀속되어 있는 상태였다. 스스로 왕의 자격을 거부한 건가? 아니면 왕의 자격만 취한 채 그대로 있는 것인가.

“마계는 어떻게 따라온 거지?”

“이히히. 사랑의 힘이지요.”

“……네 할 일은 모두 끝났다. 너에겐 요정계를 만들어 낼 의무가 있을 것이다.”

정령들과 다르게 요정들은 자신만의 세계가 없었다. 있었지만 사라졌다고 하는 게 더 옳으리라. 그래서 요정들은 왕이 나타나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주길 바라고 있었다.

요정왕은 그만한 힘이 있는 존재였다. 실제로 지금도 상당한 격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제야 이히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곳에 와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이히는 불안해요.”

“요정왕이 되면서 생긴 권능이 미래 예지는 아니겠지.”

“그런 건 아닌데요. 그냥 이히가 여기 있으면 안 될까요?”

턱을 쓸었다. 이히는 이제 온전히 요정왕으로서의 격을 갖췄다.

요정왕이 이곳에 있다고 해를 입을 건 없었다. 오히려 전쟁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계산을 끝마친 뒤 입을 열었다.

“다른 마수와 마족들을 돕도록.”

“와! 있어도 된다는 거죠? 이히히, 마스터라면 그럴 줄 알았어요! 쪽!”

시무룩한 표정을 언제 지었냐는 듯 이히가 볼에 입술을 대곤 엉덩이를 씰룩대며 자리를 벗어났다. 평소라면 더 붙잡고 있었을 테지만 이히도 성장이라는 걸 한 듯싶었다. 내가 바쁠 때 오랜 시간 잡지 않으려는 기색이 강하게 느껴진 것이다.

이히가 떠난 직후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정령계…….’

일종의 도박이었다.

만약 어둠의 정령들이 시스템, 혹은 그와 관련된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 않는다면 나는 큰 시간의 손해를 보게 된다.

당연히 전쟁은 아주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온전해진 데스브링어도 상대하게 될 것이었다.

“대령했습니다.”

머지않아 오스웬이 장치를 들고 찾아왔다.

“바로 가능한가?”

“예, 지금 바로 실행시키지요. 부디 길을 잃지 마시길.”

균열을 걷다 보면 길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계속해서 균열을 열어 놔야 하기에 최대한 빨리 일을 끝마치고 돌아와야 했다.

안 그러면 균열을 통해 길을 잃은 존재가 나타나 주변의 모든 걸 파괴하려 들 테다. 충분히 막을 전력이 성내에 있었지만 나락 군주를 상대하는 게 아닌 일로 병력을 잃고 싶진 않았다.

“최대한 빨리 다녀오지.”

곧 균열이 열렸다.

나는 발을 옮겨 균열 속으로 들어갔다.

* * *

정령계는 황폐했다. 곳곳에 균열이 뚫려 있었고, 여기저기서 무언가가 파괴되는 광음이 울려 퍼졌다.

어둠의 정령들은 수도 없이 수많은 균열에 투입되며 다른 정령들과 전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나는 수많은 균열의 안을 살펴보았다.

대부분의 정령계가 멸망했다. 모든 원소의 정령들이 죽었으며 살아남은 이들은 어둠의 정령에게 복종했다.

하지만 아직 한 곳, 한참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곳이 있었다.

“불의 왕이 명한다! 지옥불로 다 태워 죽여 주마!”

불의 정령왕 가랏쉬!

그가 불의 정령들을 이끌고 고군분투하는 중이었다.

정령계의 최강자라 일컬어지는 그도 몸 전체에 상처가 가득했다.

균열을 다루고 막강한 힘을 가진 어둠의 정령들이, 집요하게 그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어둠의 정령계 중심부로 들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게 확실하지 않은 지금의 상황에서, 정보를 손에 쥔 자는 상당히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돌아가는 정세를 물어봐야겠군.’

불의 정령왕 가랏쉬라면 누구보다 어둠의 정령들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터.

고민을 끝내고 결정을 내린 이후 나는 빠르게 불의 정령계와 연결된 균열 속으로 들어갔다.

화르르르륵!

오만이 세계를 감싸듯 거칠고 넓게 타올랐다. 불의 정령왕 가랏쉬가 가진 불에 비교하여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오히려 내 높은 마력 덕택에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이후 카오틱 블레이드를 길게 늘여 휘두르자 어둠의 정령들은 종잇장처럼 잘려 나갔다.

“어둠의 정령은 모두 멈춰라.”

그리고 진·언령을 발휘했다. 말의 권능이 발현되자 어둠의 정령들은 거짓말처럼 움쩍달싹하지 못했다. 그들은 권능에 의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뇌신, 날뛰어라.’

이어 뇌신도 자유자재로 풀어놨다.

미친 번개의 용이 포효를 내지르며 어둠의 정령들을 학살했다.

불의 정령계에 투입된 어둠의 정령을 모두 정리하는 데 들어간 시간은 기껏해야 10분 남짓.

압도적인 승리였다.

전투 중이었고, 이곳에 쳐들어온 어둠의 정령은 숫자만 많았다 뿐이지 강한 존재가 없었다. 그리고 숫자만 많은 적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이다.

모두 정리된 걸 파악한 뒤 가랏쉬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이로군.”

“……그런 것 같군.”

가랏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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