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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240화 (240/242)

던전 사냥꾼 240화

아도니스는 7대 죄악을 경매대에 올려놓고 경쟁을 시켰다. 나타난 모든 건 나에게 낙찰되었으며 그러지 못한 것들을 대상으로 아도니스가 거래를 청했고, 나는 거절한 적이 있었다.

이후 7대 죄악을 구할 길이 없었으나…… 지금은 온전히 나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하나가 비는군.’

오만, 탐욕, 색정, 분노, 질투, 나태.

모든 게 있었지만 딱 하나.

식탐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식탐은 없어도 되는 것이었다. 인피니티 아머가 그 역할을 대신 수행하고 있는 덕이다.

분노는 검.

오만은 장갑.

나태는 망토.

식탐은 갑옷이며.

교만은 귀걸이였다.

색정은 허리띠였고, 마지막 질투는 신발이었다.

7대 죄악을 모두 착용하자 묘한 힘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7대 죄악을 모두 착용했습니다. 스킬 ‘권능 파괴(God)’가 생성되었습니다.]

[오로지 신격을 죽이고자 만들어진 무구가 7대 죄악입니다. 신의 권능을 파괴시킬 정도의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권능 파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개인적으로 나락 군주가 신을 어떤 식으로 죽일지가 궁금했다. 이제 보니 아예 신이 가진 권능을 없앰으로써 동등한 위치에서 싸울 셈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권능 파괴를 주시했다. 곧 그에 따른 설명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름: 권능 파괴(God)

설명- 신격을 가진 상대의 권능 하나를 영구적으로 파괴시킨다. 같은 대상에게 중복 사용 불가. 오로지 신의 타락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스킬. 한 번 사용할 때마다 7대 죄악 중 하나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 (7/7)

과연. 일곱 번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사실 이쯤은 단점조차 되지 않는다. 내가 상대할 신은 데스브링어뿐이었다. 요컨대 데스브링어의 가장 귀찮은 권능 하나를 아예 삭제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이건…… 사용하기에 따라 싸움을 굉장히 유리하게 이끌 수 있을 듯싶었다. 나락 군주도 신격이 가진 권능이라는 게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고서 이러한 무구를 만든 게 분명했다.

‘온전히 부활하는 데 성공했다면.’

만약 나락 군주가 온전히 부활했다면 그는 정말 수많은 신들을 죽이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7대 죄악을 모아 보니 나락 군주가 가진 신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강한지 알 것 같았다.

나는 한차례 고개를 저으며 날개를 펼쳤다.

목표한 바를 하나 이뤘고, 이제 마무리 단계에 들어갈 때였다.

빠르게 하늘로 올라 거대한 문 앞에 섰다.

‘시스템이 이 안에 있다.’

문 위에 양손을 얹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밀었다.

쿠우우우우웅-

하지만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열쇠가 되는 게 있는 건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열쇠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열쇠가 있다는 건, 누군가가 관리하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고, 이는 곧 시스템을 조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누구도 아예 손댈 수 없다면 열쇠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마신 데스브링어가 만든 시스템인데 누군가가 몰래 들어오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다.

들어갈 수 있는 표식 같은 게 있을 것이다.

“열려라.”

언어의 권능. 내가 의식하며 담은 모든 말은 무엇이든지 간에 영향을 끼친다. 살아 있는 대상에게 국한되지 않았다. 무생물에게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신격 확인. 권능 확인. 시스템 출입 허가.]

문득 그런 메시지가 떠올랐다.

내가 물음표를 띄우며 고개를 갸웃한 그 순간이었다.

쿠우우우우웅-

거대한 광음과 함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 * *

문 안은 환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공백의 세계.

‘여기가 시스템의 내부인가?’

신, 혹은 신에게 허락받은 이만 들어올 수 있도록 설계가 된 건 알겠다. 그러나 이 텅 빈 곳에서 무엇을 할지가 의문이었다.

구스타르테는 대답하지 않았다. 디아블로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시스템의 내부에 관해선 문외한인 탓이다.

[시스템- 필요한 기능을 실현하기 위하여 관련 요소를 어떤 법칙에 따라 조합한 집합체. 사전적 의미, 긍정.]

그런데…… 내가 생각한 찰나 눈앞에 답이 나타났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이 안이 무엇을 하는 공간인지 알 것 같았다.

말하자면 ‘답’을 내려 주는 곳이었다. 모든 정보가 안에 있고, 모든 것을 관리하는 장소가 여기였다.

이곳으로 말미암아 게임의 시스템을 만들고, 아도니스는 스킬을 구했다.

나는 궁금한 것들을 떠올려 보았다.

‘랜달프 브뤼시엘.’

가장 먼저 나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양이 방대했기 때문일까? 이번엔 문자로 나열되지 않았다.

대신, 눈앞에 또 다른 내가 나타났다.

랜달프 브뤼시엘.

바로 내가 태어날 때부터 시작되는 영상이었다.

‘나도 부모가 있었군.’

하기야 부모 없이 태어나는 마족이 있겠는가.

나는 처음으로 나를 낳은 자들을 보았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마족. 전쟁이 지긋지긋해서 피난한 마족들이었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그들은 웃었다. 허나 기쁨은 길지 않았다. 전쟁은 마계 전체를 좀먹고 있었다. 그들에게 피할 장소는 존재하지 않았다.

전쟁의 여파로 그들은 죽었다. 아기는 누군가의 손을 거쳐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무언가의 실험으로, 누군가의 노예로, 전쟁의 칼받이로…….

성장하며 아이는 강해졌다. 홀로서기가 진행되었고, 강자들을 꺾으며 이름을 날렸다. 이후부터는 내 기억과 같았다.

나는 다시 한번 기억을 되돌렸다. 태어난 순간부터 성장하는 짧은 시간만 무한정 반복했다. 아기 때에 불과했지만 내게도 평범했던 시절이 짧게나마 있었다는 게 신기하고 놀라웠다.

진짜로 경험하는 것처럼 영상은 재생되었다. 그들이 나를 만지는 감각도 공유됐다. 잠시나마 그들의 품에 안긴 아기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다섯 번가량을 반복하곤 고개를 저었다. 부모의 얼굴은 머릿속에 각인되었으나 이제는 못 볼 이들이다. 과거를 붙잡을 순 없었다. 설령 과거로 돌아간대도 이제 막 태어난 아기가 무엇을 할 수 있겠나.

‘기억의 저장소.’

그렇다. 이곳은 모든 기억을 저장하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 없는 것조차 끄집어내는 것을 보면 정보의 보고라고 불러도 이상할 게 없을 듯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겠다.’

이 시스템을 부수는 게 나의 역할이었다.

나는 품에서 씨앗 하나를 꺼냈다.

인간의 태아와 비슷한, 하지만 굉장히 작은.

창조의 씨앗이다.

창조의 씨앗은 미지수였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무언가를 낳기는 할 것이었다.

답을 낼 수 없는 것을 이 안에 심음으로써 시스템의 파괴, 혹은 거대한 오류를 불러올 생각이었다.

나는 바닥에 창조의 씨앗을 놓았다.

씨앗은 놓인 즉시 바닥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알 수 없음.]

[오류.]

[위험.]

[오류.]

순간 주변의 세상이 까맣게 물들었다. 모두 글자였다. 오류, 위험이란 단어가 숱하게 반복되며 주변에 깔렸다.

나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시간이 많았다면 세상의 진리라는 것에 대해서 알아볼 수도 있었겠지만 한시가 급했다.

* * *

콰르릉!

쾅! 콰아아앙!

거대한 문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즉시 어둠의 정령들이 쌓아 둔 성들을 덮치며 모든 게 사라져 갔다.

시스템이 무너져 내렸다. 뭉쳐 있던 신격이 대지에 퍼졌다. 그 양은 혀가 내둘러질 수준이었다. 데스브링어의 신격이었고, 내가 흡수할 수는 없는 성질이었다. 신격은 해체된 즉시 천천히 움직이며 데스브링어에게 돌아가고자 했다.

‘이런 식이었군.’

데스브링어의 신격이 상당 부분 소진된 건 확실하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언젠가는 대지의 신격이 모두 그에게 돌아가 힘을 회복할 것이었다.

이 또한 시간 싸움이었다.

아무래도 빠르게 돌아갈 필요가 있어 보였다.

나는 어둠의 정령들이 보물을 쌓아 둔 창고를 털었다.

이후 열려 있는 균열을 통해 불의 정령계로 향했다.

가랏쉬는 아예 입구 앞에 있었다. 그도 어둠의 정령계에 문제가 생긴 걸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튀어나오자 황당하기 짝이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전부 그쪽이 한 건가?”

“어렵진 않더군.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5일밖에 안 흘렀다.”

5일!

고작 아도니스 따위를 잡는 데 그만한 시간이 들어갈 리는 없었다.

시스템의 내부는 바깥의 세상과 시간의 흐름이 다른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지금쯤 마계에선 전쟁이 벌어졌을 것이다.

마음이 더 급해졌다.

“약속을 지켜라, 가랏쉬.”

“……약속은 약속이지. 좋다. 창고를 개방하마. 원하는 건 전부 가져가도 된다.”

기가 질렸다는 듯 가랏쉬가 말했다. 어둠의 정령을 순식간에 정리해 버린 내 공로를 그래도 높이 사는 것 같기는 했다.

나는 불의 정령의 안내를 받아 창고로 향했다.

그리고 마법 주머니를 열고, 쓸 만해 보이는 모든 무구를 쓸어 담았다.

레전드 등급의 무기도 몇 개 있었다.

‘도움이 되겠군.’

고개를 주억였다. 이 정도면 전쟁을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휘하 마족이나 마수에게 착용시키면 몇 배는 전력이 증가될 듯싶었다.

‘내가 쓸 만한 건 없군.’

조금은 아쉬웠다. 그러나 이내 털어 버렸다.

7대 죄악은 무려 일곱 개로 이루어진 세트 아이템이다. 딱히 다른 아이템이 필요할 것도 없었다.

거대한 창고의 절반을 쓸어버린 다음 나는 바깥으로 나왔다.

“신을 죽이러 가는 건가?”

어둠의 정령계로 가기 전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한 모양이었다. 나는 가볍게 긍정했다.

“그렇다.”

“하긴, 신이라도 죽이지 못할 건 없어 보이는군.”

가랏쉬는 단번에 납득했다. 고작 5일 만에 어둠의 정령들을 정리한 게 그에겐 퍽이나 위대해 보인 모양이었다. 실제로 가랏쉬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일이 끝나면 다시 한번 찾아와라. 너와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니.”

다시 찾아올 일이 있을까?

물론 나중 일은 모르는 것이었다.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돌렸다.

도박은 성공했다.

어둠의 정령계에 시스템이 있었고, 파괴시킬 수 있었다.

시스템이 파괴되며 데스브링어가 심어 놓은 신격이 대지에 흩어졌다. 저만한 양이라면 데스브링어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닐 터.

회복하기 전에 끝내야만 한다.

오래전.

그는 게임을 제시했다.

나는 기꺼이 참가했지만 처음부터 데스브링어는 참가한 모든 마족을 소모품으로 보았다. 그저 자신의 실험을 위해 사용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신이라지만 나는 그의 꼭두각시가 아니다. 독립적인 존재이고, 나를 대체할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 사실을 뼛속 깊이 깨닫도록 해 줘야 할 것 같았다.

‘최후의 승자는 나다.’

판은 뒤집혔다.

이제 마지막 싸움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 * *

전쟁이 시작됐다.

나락 군주가 지휘하는 군세는 500만에 가까웠다.

반면 수성하는 숫자는 50만이 채 되질 않았다.

10배의 숫자는 쉽게 뒤집을 수가 없다. 게다가 마족들의 싸움에서 수성이란 개념은 매우 희박하기 그지없었다.

강력한 존재들이 우글댔고, 고작 성벽 따위는 눈 깜빡할 사이에 무너지기 때문이다.

“마족의 수치들, 자신이 모실 왕도 잊어버린 망자들아. 나 아리엘 디아블로가 오늘 너희를 지우겠다.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죽어라.”

발록의 뼈로 만든 상아검과 갑옷.

아리엘의 뒤를 따라 수백의 은색 기사들이 도열했다.

쿵! 콰르릉!

아수라장.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수백만의 마족과 마수가 뒤엉켰다. 비명과 피가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데스브링어의 군세는 강력하기 짝이 없었다. 단순히 숫자만 많은 게 아니다. 대공을 제외한 거의 모든, 귀족 직위를 가진 마족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마족의 계급은 보통 힘으로 정해진다. 그들이 약할 리 만무했다.

“황제 폐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버텨라!”

오스웬도 전쟁에 참여했다.

저 대군을 이끄는 게 나락 군주임을 확인하곤 어느 때보다 열성적으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콰득!

그는 가파람이 만든 호문쿨루스 50여 마리를 대동한 채 적을 맞이했다.

호문쿨루스는 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적의 목을 잡고 그대로 뽑아 버렸다.

다른 곳도 고군분투하긴 마찬가지였다. 해일처럼 밀려드는 적을 상대로 중요 요충지를 지키며 한 치도 뚫리지 않는 싸움을 계속했다.

성 위에 걸린 거대하기 짝이 없는 거울은 저주를 끊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 거울을 지키고자 10만에 다다르는 병사들이 그 주변을 철통같이 지켰다.

적들도 그를 알았다. 집중적으로 거울을 공략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는 무사히 막아냈으나…… 쉴 틈이 없었다. 아군은 빠르게 줄어 갔고, 적은 줄어드는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는 패배할 뿐이라는 걸 모두 알았다.

게다가 적의 전신이라 부를 수 있는 나락 군주가 참여하지 않았다.

모두가 이를 악물었다. 알아도 내어 줄 순 없었다.

그리고 이틀째.

하늘에 태양이 걸쳤을 때 나락 군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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