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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242화 (완결) (242/242)

던전 사냥꾼 242화

데스브링어를 약탈하자 그의 권능이 고스란히 내게 넘어왔다. 한창 전쟁을 벌이던, 죽은 자들이 모래처럼 스러지자 남은 이들은 승리의 환호를 내질렀다.

우리는 승리했다.

마신을 상대로 대승을 거뒀다.

시체를 치우고 그들의 장례를 치렀다. 이후 거대한 규모의 파티가 열렸으며 모두가 승리를 자축했다. 승리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마신을 죽인 마왕.

나락 군주라고 알려졌으나 아는 이들은 모두가 알았다.

신조차 죽였으니 마계에선 나를 막을 이가 없었다. 나는 절대자. 마계의 왕이었다.

왕의 이름으로 마계의 복구에 온 힘을 기울일 것을 천명했다.

동시에 새로운 마왕의 탄생을 알리는 결행식을 마왕성에서 열었다.

마계에 살아남은, 숨어 있던 마족들이 하나둘 튀어나왔다.

마왕성 앞에 천만에 다다르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제 마계의 모든 마족은 알게 되었다. 새로운 마왕이 누구인지. 오랜 시간 자신들을 통치할 지배자가 랜달프 브뤼시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든 연회가 끝난 자리.

나는 홀로 마왕의 방에 들어왔다.

주변은 적막만이 가득했다.

툭. 툭.

발걸음 소리가 방을 울렸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발을 옮기며 계단을 올랐다.

수십 개의 계단 위에 커다란 의자가 하나 있었다.

용과 발록의 뼈로 만들어진, 오로지 마왕만이 앉는 게 허락되는 자리.

나는 그 자리에 앉았다.

의자 끝까지 허리를 밀어 넣고, 살짝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이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긴 여정이었다. 나는 내가 바라던 마왕이 되었고, 마침내 이 의자에 앉았다.

“…….”

천천히 눈을 감았다.

곧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오랜만에 가지는, 편안한 잠이었다.

* * *

지구의 생존자들은 빠르게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 갔다. 더 이상 인류를 위협하는 마족은 없었다. 던전과 마수들만 남았을 따름이다.

하지만 변화는 있었다.

우선 하늘이 변했다. 거대하고 검은 문이 하늘에 위치해 있었다. 비행기나 제트기 따위로는 다가가지 못하는 장소. 누구도 닿지 못하는 제3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저 문이 마족의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여 누구도 억지로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던전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좀 더 거대해졌다는 뜻이다.

그중 몇몇 던전은 하늘까지 닿았다. 정확히는, 하늘에 생겨난 검은 문과 닿아 있었다. 마치 문과 연결된 장소라도 되는 것처럼.

살아남은 마수들은 변형하여 던전에서 빠르게 숫자를 늘려 갔다.

마수가 늘어나자 다시금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됐다. 각성자들은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 위기를 잘 견뎌 냈다. 던전에서 뛰쳐나오는 마수들은 그다지 강한 부류가 아니었던 탓에 버티기는 수월했다.

시간이 흐르며 각성자들은 크게 두 무리로 나뉘었다.

인류를 지키는 수호자.

그리고 던전을 올라가는 사냥꾼.

바로 던전 사냥꾼이었다.

“누나! 조심해요!”

에드워드가 외쳤다.

즉시 검을 휘두르며 유은혜를 덮치던 마수의 등을 베었다.

그아아아악!

마수의 몸이 두 쪽으로 나뉘었다. 마수가 비명을 내질렀다.

위험이 사라진 걸 인지한 에드워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휴! 정말, 마지막까지……. 덜렁대지 말라니까요?”

에드워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유은혜는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내 등은 네가 지켜 준다며?”

“그것도 정도껏 해야죠. 제가 무슨 만능인가.”

“지상 최강의 각성자면 만능 아니야?”

“말을 말죠.”

에드워드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는 사이 김유라와 김민지가 치료를 개시했다.

“봉합.”

“치유.”

다친 각성자들의 상처가 순식간에 나았다. 이능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능력! 유은혜는 몇 번이나 봤음에도 혀를 내둘렀다.

“진짜 둘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했을 거예요. 고마워요.”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걸요.”

김유라가 씽긋 웃었다.

과거, 3년 전만 하더라도 그녀의 표정은 항상 어두웠다. 하지만 던전이 변형을 일으키고 3년이 지난 지금은 과거의 밝은 모습을 상당 부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건 대체 몇 층까지 있는 거람? 벌써 54층까지 올라왔는데…….”

유은혜가 바닥을 툭툭 차며 입술을 쭉 내밀었다. 유은혜는 던전을 사냥하는 각성자였다. 벌써 여러 개의 던전을 정복했고, 오랜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가장 높은 한국의 던전을 정복하고자 이 자리에 선 것이다.

하지만 녹록지 않았다.

“누나한테 걸리면 어떤 던전이 무사하겠어요? 마음 편히 가져요. 뭐, 곧 끝나겠죠.”

에드워드가 별거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은혜는 자기 말만 하였다.

“뭐가 있을까? 그냥 빛 잃은 던전 코어만 있으면 심심할 거 같은데.”

“한국 던전이잖아요. 마왕의 던전! 이번이 벌써 여덟 번째 도전이니…… 분명히 하늘의 문과 이어져 있지 않겠어요?”

“문 건너편엔 마족들이 사는 세상이 있다고 했지?”

“예, 그렇다고 들어갈 생각은 말아요. 우리는 위험을 확인하러 가는 거니까요. 언제고 다시 마족들이 돌아올 수 있으니 그 가능성을 ‘확인’만 하는 게 우리 일이라고요.”

말하자면 던전 사냥꾼은 정찰대의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확인만 말이지…….”

“아, 진짜. 딴생각하지 말아요. 내가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열이 뻗쳐서.”

그리니치 천문대에서의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당시를 생각하면 에드워드는 자던 잠도 깨곤 했다.

“뭐, 인마? 누나 덕분에 마족들 많이 죽인 건 생각 안 나지?”

“퍽이나~ 얼마나 위험했는지 알아요? 다시 돌아가서 마왕을 구했다? 그래서 지금 그 마왕이 어디 있는데요?”

“저기 있겠지.”

유은혜가 하늘을 가리켰다.

“그래요, 자기 사는 세상으로 돌아갔잖아요. 그러니까 잊어버려요, 그런 놈.”

“다 잊었어.”

“거짓말하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갑니다.”

“진짜!”

둘은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김유라가 피식 웃었다. 김민지의 입가도 살짝 미동했다.

“정말, 시간이 지나도 저 둘은 똑같다니까.”

김민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힘이 강해져도, 유은혜와 에드워드는 한결같았다. 결코 쓰러지지 않았으며 확고한 믿음 같은 게 있었다. 그리고 그 믿음의 발로가 어디서 시작되는지 김유라도 잘 알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천명회는 세계 최강의 길드로서, 세계 최강의 던전 사냥꾼 길드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그들은 마족이 사라진 시대의 마지막 개척자였다. 수호자라 이름 붙었지만 지상에 남아 있는 이들은 그저 마수와의 대결에 진물이 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천명회는 포기하지 않았다. 던전에 들어가 모험을 계속했다. 보물을 발견하면 어려운 이들에게 나눠 줬으며 그 와중에 얻어 낸 코어들은 모두 에너지 기술의 발전을 위해 사용했다.

덕분에 세상은 작년, 에너지 혁신을 맞이했다.

이제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면 과거의 영광을 그대로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모두가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았다.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던전의 변화, 하늘에 생긴 문……. 언제고 다시 마족들이 찾아올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그 불안감의 해소를 위해서라도 천명회는 움직여야 했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며 인류에 희망을 가져다주는 등불이 되어야만 했다.

지금까진 그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저 둘이 있는 한.’

둘은 최강의 콤비다. 인류 최강의 각성자이고, 마왕과 가장 가까운 이들이었다.

김유라와 김민지가 성녀라 불리며 칭송받았지만 솔직히 저 둘에 비하면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때 김유라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마왕, 랜달프 브뤼시엘.

그 이름은 아직도 김유라의 머릿속에서 공포로 얼룩져 있었다. 그러나 그가 보인 행동이 결과적으로 인류를 구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걸 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인류는 멸망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두 사람이 농담을 나누는 것도 듣지 못했겠지.

“그만 싸워요! 주변 마수들이 죄다 몰려왔잖아요!”

김유라가 소리쳤다.

그러자 유은혜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모이라고 그런 거거든요!”

“누나, 진짜, 에휴!”

에드워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 * *

한국의 던전 코어가 빛났다. 본래라면 모든 활용을 다하고 다시는 빛이 나지 않아야 정상이다. 특히 귀속된 요정이 사라지면 던전 코어는 영원히 빛을 잃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빛을 내었다.

이는 요정이 소멸되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크리슬리가 그 사실을 내게 고했다.

“찾아라. 세상 전부를 뒤져서라도.”

나는 명했다.

내 명령에 따라 수백만에 이르는 마족들이 움직였다.

수백만의 마족이 세계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름 없는 작은 연못.

폭이 10미터는 될까.

얕지도, 그렇다고 깊지도 않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연못이었다.

나는 그 연못 가까이에 서서 가만히 물가를 들여다봤다.

“여기 있었군.”

그리고 작게 입을 열었다.

요정의 씨앗이 있었다. 아직 개화하진 않았다. 누군가가 이름을 붙여 줘야 태어나는 게 요정이기 때문이다.

신의 눈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확신을 가지고 요정의 씨앗이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너의 이름은 이히다. 이히 하며 웃기에 이히이지. 정말 바보같이 웃는 게 중요하다.”

조심히 손을 뻗어 씨앗을 건드렸다.

“너는 요정왕이 될 것이다. 나로 인해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못한 사명을 완수해라. 네가 다스리는 요정의 세계는 꽤 재미가 있을 것이니.”

조심스레 손을 뺐다.

이 씨앗은 연못에 있었다. 연못을 빠져나오면, 혹은 연못이 사라지면 개화하지 못한다.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요정이 씨앗에서 개화를 하려면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다. 100년, 200년 수준이 아니다. 못해도 천 년 이상, 어쩌면 그조차 한참을 넘어선 긴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때까지 이 연못이 무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연못은 너무 작았다. 자생력도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내 뒤에 선 이에게 말했다.

“마왕성을 이곳으로 옮겨라. 내 의자는 연못과 가장 가까운 장소에 둬야 할 것이다.”

“명을 따릅니다, 나의 마왕님.”

바로 크리슬리였다. 그녀는 기쁜 태도로 명령을 수행하고자 자리를 옮겼다.

나는 마왕이다. 마신을 죽임으로써 내 위치를 증명했다. 내가 꺼내는 모든 말은 현실이 되어 이루어진다. 마왕성을 옮기자 하면 그대로 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필요하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나무를 베어 왔다.

나무로 대충 의자 하나를 만들었다. 언뜻 보면 마왕의 좌와 비슷하지만 원재료는 나무일 뿐이었다.

잘 손질이 되지 않아서 울퉁불퉁 잔해가 튀어나왔고, 딱 보기에도 별 볼 일 없었지만 나는 연못의 근처에 그 의자를 두고 앉았다.

“하하!”

그리고 크게 웃었다.

“하하하!”

이제야 진정으로 내 꿈을 이룬 듯했다.

(던전 사냥꾼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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