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4화 (4/175)

#4화

검찰청을 빠져나오는 김철민의 기분이 당장은 나쁘지 않았다.

겪지 않았어야 할 일을 겪었지만, 그 대가로 재밌는 광경과 즐거운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요즘엔 보기 드물어 지난 추억 속에서나 찾을 수 있는 희귀한 광경.

옳은 일을 하겠다며 굴하지 않는 당찬 모습을 떠올리니, 피식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의도치 않게도 이러한 태도가 옆에 앉은 누군가에게는 좋지 못한 징조로 보이는 것 같지만.

“죄송합니다, 저희가 모자라서……”

이 사태를 촉발한 근본 원인인 국정원장이 옆에서 연신 고개를 숙이고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사과를 했지만, 이 순간 김철민은 정말로 불쾌하지 않았다.

그냥 넘어가겠다는 건 아니지만 당장의 기분이 그랬다.

고집 있는 사람을 만났던 게 새삼 너무도 아득한 시간이 지난 것 같아 반가운 마음마저 드는 게 사실인 것이다.

그가 아는 정의의 검사는, 도리를 아는 올바른 이들은 대체로 죽은 지 오래다. 이것이 과거 그렇게 느꼈던 자들이 생물학적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소리는 아니다.

사람은 남았으되 그 안에서 정의만 쏙 빠져나왔다는 표현이 옳으리라. 남은 건 껍데기이고 알맹이는 텅 비어 버린 것처럼, 한때 찬란히 빛나던 아름다운 사람들이 이젠 흔적도 없는 걸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대관절 뭐가 잘못된 건지 굴하지 않고 신념을 지키는 사람, 요즘 시대에 참 보기 힘들더라고.

“만약 마교도들이 개입한 줄 알았더라면 절대로…….”

하긴, 이게 어디 검사라는 직업에만 국한된 일일까?

의리와 협의를 아는 이들은 세월과 욕망에 무너지곤 했다.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상관없이, 대부분이 그렇게 된다.

찬란히 빛나던 신념이 지금의 오욕에 뒤덮이는 일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지.

변화라는 면에서 보자면 김철민, 본인만 하더라도 그렇다. 그 또한 예전에 비하면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가?

인생에 놀라운 성취와 자랑할 만한 업적을 여럿 이룬 김철민은 그만큼이나 많은 배신과 좌절을 겪으며 많은 면이 바뀌었다.

공전절후의 내력과 무학에 대한 깊은 깨달음으로 육신은 여전히 젊어 맥동하건만, 세상사 온갖 일을 다 겪은 영혼만은 새하얀 재처럼 스러져 흩날리는 게 전부.

가끔은 웃고, 그보단 많이 슬펐던 김철민의 인생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여러 번 반복했고 최근 십여 년은 확실하게 내리막길에 속해 있었다.

이 표현은 정확하다. 인생에 재밌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어 강호인답지 않은 희미한 우울감으로 살아 내는 것이 김철민의 요즘이니까.

하나 오늘은 아니다. 여기, 이 나라에 정의로운 누군가가 남았음에 흐뭇했다.

하지만 여기까진 당사자의 생각이고, 조수석에 앉은 남자의 기분은 조금 다르다.

“…원장님, 일단 조용히 가시죠.”

김철민을 오랫동안 모셔 온 사람들은 이 사태로 화가 많이 나 있다. 김철민의 정체가 노출된 이 초유의 사태에 얽힌 전후 사정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을 느낀다.

분노는 활화산처럼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다.

“지금 변명 따위를 차 안에서 늘어놓을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국정원장조차 조수석 남자의 날 선 말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주억거리는 게 전부.

삭힌 분노 속에서, 침묵을 안은 자동차가 국정원을 향해 달려간다.

20세기에 접어들며 전통적인 의미의 강호는 무너졌다.

완전히 몰락한 지도 오래다. 구름 위를 노니는 구파의 신선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정사마로 나뉘어 천하 패권을 다투던, 관과 무림이 소 닭 보듯 하던 옛 호시절은 애진작에 사라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다른 설명을 할 필요도 없이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자명한 결과다. 무수한 강호세력 중에서도 유별나기 짝이 없던 천마신교마저 격동하는 역사의 파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소비에트의 일원이 되는 걸 선택했는데, 무림의 다른 이들이라고 별 수 있었겠는가?

태풍이 몰아쳐 비바람을 흩뿌리는 데야 고고한 한 마리 학처럼 살 수는 없는 노릇.

그만큼 20세기는 강호 무림에 잔혹한 시대였다. 어떤 시대와도 비교를 불허할만큼, 무림의 정기는 쇠했다.

아편전쟁으로 대표되는 열강의 침탈은 시작일 뿐이었으니, 중원의 무인들은 군벌이 되거나 국민당 또는 공산당으로 편이 갈려 싸우거나 협력했고, 결과는 중원 무림 전체의 돌이킬 수 없는 파멸로 수렴되었다.

우선 공산당에 협조하여 본토에 남을 수 있었던 대부분의 사파 무인들은 공산당의 주구로 전락한 지 오래.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재난에 가까운 여러 사태를 무림이라고 한들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인민의 군대가 들이미는 총과 탱크 앞에 다른 답이란 있을 수 없어, 철저한 굴종만이 남더라.

문화대혁명은 빈사 상태로 죽어 가던 중원 무림에 최후의 일격을 가했으니, 소비에트의 마교도들이 괜히 사파가 대다수인 중원 무림을 손가락질하며 비웃었던 것이 아니다.

인민의 삶은 비참하건만 마교의 비웃음에 자존심이 상한다며 소비에트-마교에 비견할, 전 세계에 자랑할 절대 고수를 키우겠다며 허공에 뿌린 돈이 대체 얼마였던지.

참람할 뿐이다.

반면 대만에 갇힌 대다수의 정파 고수들은 복고를 부르짖다 고사했다.

고사 중이기도 하다. 섬나라에 고립된 그들은 중원에서 쫓겨났다는 자격지심으로 시대의 변화와 타협하는 법이 없었고, 스스로 만들어 낸 완고함의 틀에 갇혀 먼지처럼 부스러지고 있다.

그럼에도 장제스와 함께 넘어갈 수 있었던 이들은 차라리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 테지만.

중원에 남은 자 중 소림과 무당은 관광객을 상대로 펼치는 금강권과 삼재검법을, 그나마도 홍위병의 패악에 정수가 실전된 반쪽짜리 무공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무공인 게 현실이고, 그런 기회조차 얻지 못한 무수한 강호의 명문거파들은 이름마저 잊혀져 한자로는 검색조차 할 수 없다.

이 같은 혹독함이 어디 중원만의 일이었겠는가?

내공을 쓰는 자들은 진보라는 이름의 새로운 질서 앞에 잊혀지고, 부숴지고, 조각났다.

유럽의 기사단은 무수히 이어지던 전쟁 끝에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역사의 종지부를 찍었다. 근대 유럽에서 수백 년간 끝없이 이어진 분쟁의 결과로 1차 세계대전 즈음에 이미 거의 남지 않았던 기사단은 나치와 싸우거나 협력한 결과로 완전히 증발했다.

이름으로 남은 이들이 있긴 하다만 비전 절예는 모두 잃었다 봐도 무방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금까지도 옛 기사단의 위용을 되찾지 못하는 걸 보면 확실한 일.

반면 2차 세계대전 이후 맹위를 떨치던 마교는 소비에트가 무너진 후 북한으로 피한 자들을 제외하면 명맥이 끊겼다고 봐도 거짓이 아닌 바.

수백 년 전, 정마 대전에서 패하고도 살아남은 마교의 여섯 지파 중 하나는 멸문했고, 두 개는 간 곳을 모르며, 세 개는 북한으로 도망갔다.

적백 내전 시절부터 살아남은 백 년을 넘게 산 노괴물이자 천하제일인으로 손 꼽히던 홍혈천마가 마교주 전용 시베리아 특급열차에서 의문의 암살을 당한 결과다.

역사에 기록된 이 사건의 이름은 ‘천마격살’.

천마격살 이후 교의 권력을 잡기 위해 일어난 파괴적인 내전에서 살아남은 마교의 후신들이 정체불명의 암살자를 향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다는 뜬소문만이 떠돌 따름이다.

한편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패전 후 미군정의 내공심법 공여 요구에 반발하여 집단 할복하며 소멸했다.

당시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을 전폭적으로 지원했음에도 제대로 된 내공심법을 얻어 내지 못한 미국은 조바심이 컸고, 이는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관 맥아더의 개인적인 성향과 맞물려 극단으로 치달았다.

그리하여 패전국인 일본과 미 군정의 협상 과정은 거칠고 고압적이었으며, 많은 반발을 샀다.

패배한 제국주의자들은 휘두르지도 못하고 녹슬어 가느니 차라리 부러져 버리겠다 부르짖었고, 기꺼이 실천한다. 이는 일본 헌법 제9조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

그 결과 섬나라의 기예는 패전 후 완전히 사라진다. 어딘가 남아 있을지도 모르지만, 만화나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그 자취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 자는 아무도 없다.

결론적으로 무수히 많은 강호의 협객과 무뢰배들이 사라져 현재에 이르렀다. 말 그대로 신공은 간 곳을 찾을 수 없고, 협객은 태어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시대.

그렇다고 하여 무공이, 무림이 세상에서 없어졌다는 말은 아니다.

무림은 존재한다. 다만 예전과 같은 방식이 아닌, 다분히 자본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방식일 뿐.

현대사회에서 무림인, 일명 내공 사용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중이다.

정부의 통제를 받으며 치안, 소방, 국방 등에 종사하는 자들부터 민간의 기업체와 사회조직, 심지어 범죄자 집단에서 삶을 영위하는 자들까지.

내공이라는 유용한 도구를 인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는 이렇듯 온갖 사건들로 혼란스러운 현대 무림계에서 손꼽히는 세력 중 하나.

우울한 현대사의 비극을 여럿 거쳤음에도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이고, 안정적인 공권력의 체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한 대한민국 무림 능력의 핵심 부처인 국정원 수장이 고작 삼십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자에게 존대말을 해 가며 비굴한 태도로 싹싹 잘못을 비는 건, 그렇기에 누군가에겐 충격일지도 모르겠다.

“연화존자께 저희가, 저희가 정말로 죄송한 일을 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부디,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하지만 진실을 아는, 국가 보안으로 엄중히 보호되는 국정원 내부 사정에 정통한 이라면, 이 광경이 이해 되다 못해 소름이 쫙 돋았으리라.

기실 국정원장에게 연화존자라 불리는 저자, 김철민이야말로 국정원이 가진 무림인 세력의 대다수나 다름없으니까.

대한민국이 보유한 무림인 전력, 그 기원이자 현재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다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온몸을 적시는 국정원장의 마음은 굴욕적이거나 분할 리 없다. 오히려 초조하고, 두렵다.

이 변명조차 힘든 실책에 저 두렵기 그지없는 자가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가늠할 수 없어서.

대한민국 정부를 떠났음에도 김철민은 여전히 이 나라 최중요 인사 중 하나다.

한때 대한민국을 다스렸던 군인 출신 독재자가 부하였던 무림인 손에 암살당한 초유의 사태 직후, 김철민은 북한과의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 막강한 능력을 발휘했다.

이때 말하는 능력이란 단순히 북한과 싸우고, 격퇴하는 수준이 아니었던 바.

국가 주도하에 돌아가는 무공 체계를 홀로 세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북한이라는 리스크를 안고 있음에도 동아시아에서 당당할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로 김철민을 뽑아도 될 만큼, 엄청난 수준으로.

이 말인즉슨 난립하던 민간 무림인들을 제어하고, 마교에서 발원한 북한의 도발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일은 연화존자 김철민 없이 불가능한 이야기였을 거라는 소리.

연화존자의 옛 동료가 세운 문파가 관리하는 그 무공의 이름은 현천공(玄天功).

국정원의 현 수장은 알고 있다.

연화존자의 영향력이 비단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걸. 본인부터 말도 안 되는 고수인 연화존자 김철민에게는 그를 위해 목숨조차 기꺼이 버릴 수하와 친구들이 여전히 많다는 걸.

설령 국가의 적이 되는 길을 선택하더라도 기꺼이 따를 이가 많다는 걸 국정원장은 안다. 절대적인 상명하복에 길들여진 옛 무림인, 그 자체와 같이.

“설명해 보세요.”

이것이 김철민의 조용한 물음에 국정원장이 부리나케 대답하는 이유다.

이어 최선을 다해 지금껏 파악한 사태의 전모를 설명하는 국정원장의 중언부언은 연화존자로 하여금 한 가지 감상에 젖어 들게 만들었다.

그것은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새삼스러운 자각이었다.

국정원 내부에 쥐새끼들이 여럿 있었고, 국회의원을 사촌으로 둔 사업가가 그걸 가지고 거래를, 심지어 마교와 했음에도 미리 파악하지 못했다는 건, 결국 이런 결론으로밖에 나질 않는다.

이런 꼴을 보려고 대한민국에 헌신을 했던가? 오직 대의라는 것만을 생각했던 대가가 고작 이따위란 말인가?

죽은 것처럼 식어 있던 가슴이 뒤늦게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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