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그 어떤 무림인도 자기 위에 누군가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머리로는 어떨지 몰라도 심정적으로는 도통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것이니, 직업이 다양해진 요즘 시대에도 강함과 서열에 대한 한 무림인의 집착을 능가하는 계통을 찾기란 쉽지 않다.
민주 시민 사회가 도래했음에도 사라지지 않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림의 성향이란 것이 강호인을 경원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었을 정도.
사소한 시비만으로도 주먹과 무기가 먼저 나가는 집단을 좋아하기는 힘든 법이었고, 그렇기에 마음 깊이 무림인인 두 사람은 지금의 이 시도를 거부감 없이 이해한다.
자신들이 죽이려는 의도가 명백한 저 행위를 그럴 수도 있는 것이라 인정한다.
“제가 사람을 맡겠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을 막겠다고 백주 대낮에 암살을 기획한 걸 보며 이거야말로 강호의 무뢰배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그저 당황하지 않고 제 할 일을 하는 게 전부.
고작 암살 따위에 머뭇거리기엔 두 사람의 살아온 세월이 얕지 않다. 이런 일이 어디 오늘 한 번뿐이었을까?
다만 여태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시도일 따름이다.
“그러시게나.”
차문을 박차고 먼저 나서는 건 연화존자다. 그는 열린 차문을 뛰어넘어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는 트럭을 향해 겁 없이 마주 뛰어간다.
도로 위의 차들은 방해물이 되지 못한다. 표홀한 신법으로 마치 풀 위를 밟고 뛰는 산들바람처럼 움직여 트럭의 옆구리에 붙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의 일.
도착한 뒤엔 조금 감탄한다.
‘아주 작정을 하고 왔네.’
김철민의 예민한 감각과 이와 같은 종류의 일에 대한 풍부한 경험은 짧은 사이 많은 사실을 도출해 낸다.
우선 머리를 운전대에 묻고 엑셀을 힘껏 밟으며 떨고 있는 남자는 술에 취한 걸로 보인다. 심적인 괴로움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하게 하는 광경이었고, 운전자가 이 상황을 바라지 않았을 거라는 정황 증거가 된다.
하긴. 안에서 열지 못하게 바깥에서부터 용접되어 있는 차문을 보면 자의로 저 안에 들어가 있는 거라 상상하기는 어렵지.
어떤 인간이 죽음으로도 멈출 수 없는 질주를 바라겠나? 브레이크도 아예 뽑혀 있고 말이야.
김철민은 어떤 놈들이 이렇게까지 철두철미한지, 숨길 생각마저 없는지 매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한편 트레일러 안에서는 차르륵거리며 요동치는 소리가 들리는 게 전부다. 인공적인 냄새 따위가 나지 않는 걸 보면, 저 안에 든 건 고작해야 철근 따위가 아닐까 싶다.
우려했던 것처럼 폭탄은 아니니 다행이라 생각한다. 전부 그의 조국이 장난감처럼 폭발물을 살 수 있는 그런 나라가 아닌 덕일 터.
운전수만 구하면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리하여 손에 강기가 맺힌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기에 폭발하듯 한껏 끌어올린 내공에도 육신의 저항과 고통은 없다.
부드럽지만 막강하게도 칠색홍예수의 파도는 순식간에 타오른다.
수강(手罡)이 맺힌 손에 날을 세워 용접한 틈을 헤집어 잘라 내니, 여기까지 긴 시간은 필요하지 않다.
이 광경을 본 누군가가 있다면 경악으로 눈을 떼지 못할 일이었고, 무림인이라면 특히 그러리라. 요즘 시대에 강기(罡氣)라니. 넋을 놓고 볼 수밖에 없도록 하는 귀한 재주 아닌가?
그런 재주를 펼치면서도 연화존자는 여상하여 묵묵하다. 맨손으로 차문을 잘라 내 길 밖으로 집어던지고 그 안의 사람을 꺼내 안아 들곤 몸을 날리니, 그것으로 몫을 다한다.
남은 건 운하신권의 일.
“잘 보거라.”
운하신권은 차를 멈춘 운전석의 제자에게 이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선다. 느긋한 동작이었지만 걸음의 속도마저 느린 건 아니어서, 덮칠 듯 코앞으로 다가온 트럭 앞에 어느새 그는 서 있다.
펄럭이는 도포 자락을 휘날린 채였다. 한껏 끌어올린 사문의 독문심법, 명옥심공(明玉心功)이 바람을 부른다.
뒤에서 그걸 보는 현천문의 차기 장문인은 눈을 떼지 못한다. 무릇 높은 산은 하늘이 무너지는 우뢰에도 흔들리지 않는 법일지니.
어느덧 대한민국 무림의 원로이자, 살아 있는 전설이 된 스승이 주먹을 들어 직접 나서는 건 보기 힘든 일이 되었기에, 이 기회는 소중하다.
단 하나도 놓칠 수 없어 똑똑히 눈에 담으려 노력했으며, 이 노력은 보상받는다.
운전자를 잃고 닥치는 대로 밀고 들어오는 트럭으로 인한 걱정은 없다. 그의 스승이 누구이던가?
“흡!”
기합은 짧건만 여운은 길더라. 단단히 다리에 발을 붙인 운하신권의 정권이 트럭의 정가운데를 때렸고, 충격파가 도로 위 모든 것들을 헤집으며 퍼져 나간다.
트레일러 트럭의 막대한 운동 에너지는 운하신권의 한 수를 이겨 내지 못했다. 물리법칙은 사람의 맨주먹 앞에 잠시 잊혀진다. 운전자를 잃었음에도 멈추지 않고 달려오던 트럭은 운하신권의 주먹에 구겨져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운반 수단뿐 아니라 운반되던 것들도 말이다. 트럭을 멈추고도 남은 막대한 경력이 트레일러 안 쇳덩이를 모조리 고물로 만든 게 한순간.
명옥심공의 공능과 긴 세월의 적공, 나이가 들었음에도 여전히 강인한 육신의 힘과 감각이 이뤄 낸 기적 같은 솜씨다.
이 놀라운 일을 해낸 운하신권은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옷자락을 휘날리며 희미한 미소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차 안의 제자는 목격한다, 그것이 오랜만에 힘을 쓴 무인의 만족감임을, 도전과 응전에서 승리한 자만이 보일 수 있는 여유임을.
소동 뒤에 찾아오는 경찰과 구조대의 소리가 요란하니, 실패한 암살은 그로써 다만 부끄러워 잦아든다.
사라져 가는 먼지만 남긴 채로.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죽은 사람은 없었고, 다친 사람만 십여 명 정도 나왔다. 대부분 민간인이었지만 트럭을 막기 위해 차를 끌고 돌진했던 현천문의 제자 두어 명이 부상자 목록에 포함되었다.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
재산 피해는 적지 않다. 부숴진 차와 도로의 구조물이 여럿이고, 출동한 경찰과 소방관도 다수여서 뒷처리에 시간이 걸렸다. 뜻밖의 테러 사태에 도로가 꽉 막혀 생긴 무형의 피해도 제법이다.
그럼에도 대통령과의 오찬은 그대로 진행되었다.
약속의 당사자들에겐 문제가 없던 덕이다. 약속을 취소해야 한다거나, 늦어야 될 이유가 그들에게는 전혀 없지 않나?
심지어 시간조차 엄수했음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을 경공을 펼쳐 가볍게 달림으로써.
꽉 막힌 서울의 도심을 두 고수는 오직 두 발로 내달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담소를 나누는 여유마저 부렸고, 이 광경을 담아 인터넷에 올린 사람들이 이번에도 여럿.
방금 막 폭주하는 트럭을 부순 사람들이라곤 믿기 힘들게 깔끔한 모습으로 도착한 그들을 청와대는 환대했다.
어쩌면 그래서 결론이 쉽게 난 걸 수도 있겠다. 대한민국 정부에 무림의 일을 담당할 새로운 조직이 탄생하게 되는 건.
대통령과 청와대 실무진은 운하신권과 연화존자가 말로만 떠드는 허풍선이들이 아니란 걸 확인한 참이다.
당연한 일이다. 한 손으로 달리는 트럭을 멈춰 세우는 모습을 보았는데, 문짝을 뜯고 사람을 구해 내는 모습을 목격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서울상공인모임회를 박살 낸 게 단순히 운이 아니란 걸 증명하기엔 충분한 일.
아울러 대한민국의 무림인 전력을 양지화하여 전격적으로 국가 역량으로 흡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되기까지 했다.
이것이 비단 북한의 마교 때문만인 것도 아닌 얘기다. 제대로 된 무공, 진짜 내공심법에 대한 수요는 공급에 비해 넘쳐 난다.
그리고 연화존자는 이 분야에 자신이 있다. 경쟁력은 충분하다.
국정원에서 조직을 뜯어 내는 건 운하신권이 맡았다.
김철민에겐 고민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자네 부하들을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세.”
연화존자의 부하들이 대거 포진된 해외 조직을 그대로 들고 오는 건 깊이 생각해 볼 문제였다.
공식적인 조직이 된다는 건 분명 장점도 있지만, 그만큼의 단점 역시 가지고 있다. 연화존자의 사람 중에는 외부로 모습을 보이기 쉽지 않은 자들이 여럿 있기에, 이 부분은 면밀히 고려하기로 한다.
하여 현천문이 양지에서 활약하는 사이, 김철민과 그 수하들은 음지의 조직이 누릴 수 있는 장점을 누리기로 결정했다.
일단 맞은 거부터 돌려줘야지.
그는 자신이 구해 낸 트럭 운전사, 이현민 씨와 대화를 나눴다. 여러가지 이유로 병원에 입원한 그와 꼬박 이틀에 걸쳐 속 깊은 대화를 주고받는다.
무모한 암살을 감행하도록 종용받은 운전수, 42살 이혼남인 이현민 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혼한 아내에게 외동딸의 양육비를 보내고 있었다.
그가 딸아이를 키운다는 선택지는 없었다고 한다.
‘제 잘못으로 이혼한 건데, 어떻게 아이를 데려오겠습니까? 다른 가족이라도 살려면 이혼밖에 없었습니다.’
성인이 되자마자 요식업에 발을 들이며 사회 경력을 시작한 이현민의 솜씨는 꽤 괜찮았다. 이 자평이 자만은 아니다. 실제로 삼십대 초반, 드디어 자신의 가게를 열었을 때 SNS에 화제가 되어 성업을 이룰 정도였으니까.
한 번도 꺾이는 일 없이 삼 년 동안 우상향을 그릴 정도로 매출과 성장세는 안정적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결혼을 하여 애를 낳는다는 선택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가게는 나날이 커져 매장을 늘렸고, 예식조차 없이 시작한 신혼 생활이 미안해 뒤늦은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치를 계획마저 이현민은 가지고 있었다.
좋은 일들만, 행복한 일들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기도 했다.
그래. 우한 폐렴만 아니었다면.
좋은 일은 천천히 왔지만 나쁜 일은 한꺼번에 왔다. 손님이 끊기고, 식당에는 영업 제한이 걸렸다. 이에 대한 대책과 보상을 이현민은 느끼지 못했다.
절박하여 시작한 익숙지 않은 배달은 되레 독이 되었다. 그는 리뷰에 졌다. 그건 애초에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늘렸던 매장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고, 대출은 만기가 되었고, 모아 놓은 돈은 버티는 데 전부 썼다.
사채를 쓴 건 그래서였다, 살고 싶어서, 살아남고 싶어서.
그렇지만 살지 못했다.
금방 끝날 거라 여겼던 질병 사태가 길어지며 갚을 수 없게 되었다. 할 수 있는 건 그 짐을 홀로 온전히 짊어지는 것밖에 없던 날들.
장사를 완전히 접고, 이혼남이 된 뒤 택배업에 뛰어들어 착실히 빚을 갚아 가던 그가 작금의 사태에 연루된 건, 아내와 아이가 음주 운전 차량에 교통사고를 당하면서다.
불행은 도둑처럼 온다던가. 유치원을 가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일어난 사고로 전처는 즉사했고, 딸은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딸을 살리려면 이번에도 돈이, 아주 많은 돈이 필요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못난 놈이라서 죽을 죄를,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미안합니다.’
김철민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죄송하다 말하는 이현민의 어깨를 말없이 두드렸다.
전처가 죽고, 딸아이가 혼수 상태인 남자에게 네가 감히 나를 죽이려 했냐며 따질 수는 없었다. 시대의 희생자에게 소리쳐 몰아세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란 걸 그는 알았다.
아울러 여유와 동정은 오로지 강자의 것이며, 연화존자는 충분하게 강하다. 이유 있는 관용은 그렇기에 김철민에게 있어 얼마든지 부릴 수 있는 사치.
이현민 씨에 대한 용서는 그래서 어렵지 않았다.
‘걱정 말고 쉬세요, 아무 걱정 마시고.’
원치 않는 짐을 짊어진 남자에게 할 수 있는 말의 전부다.
아, 그래. 물론 칼을 잡은 놈에게는 다르지. 칼자루 쥔 놈은 아주 달라.
여기 타인의 고난을 이용하는 자들이 있다. 혐오스러운 족속들, 빌어먹을 돈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도 인간이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껄쩍지근한 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잡아 족치는 게 맞지 않겠냐고, 타인의 불운을 이용하는 개자식들은 혼내 주는 게 맞는 거라고 그는 생각한다.
무림인이라면 응당 복수를 해야지, 은원의 굴레, 그 진짜 복수를. 암, 그렇고 말고.
이것이 새로이 태어날 정부 기관, 국가무공원의 창설 직전 연화존자가 부하들을 풀어 자신의 암살을 사주한 놈을 찾아 나선 전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