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연화존자와 운하신권에 대한 암살 시도는 대한민국의 재벌 그룹 중 하나인 한율에서 기획한 일이었다.
정확히는 현 한율 그룹 회장의 둘째 자식이 독단적으로 벌인 일로, 그룹에 속한 무림 문파 전반을 관리하는 일을 맡은 그가 휘하 무림인과 불법 사업체를 이용해 실행했다.
남 부러울 것 없는 재벌집 자제의 살인 교사가 언뜻 보기엔 이해 못할 일이었지만, 그 안에 숨은 이유는 사실 분명하다.
한율의 둘째는 그룹의 음지에서 서울상공인모임회와 함께 해 왔다. 차기 회장직을 쟁취하고자 사사로운 이익을 나누는 것은 부당한 거래의 주된 목적이었고, 오래된 관계는 공고하여 돈독했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 절대 무너질 리 없이 승승장구할 거라 여겼던 범죄 조직이 완전히 무너졌다.
조직의 위와 아래를 가리지 않고 거의 전원이 체포된 상황에서, 심지어 숨겨 둔 비밀 장부까지 모조리 수거 당했다는 섬뜩한 소문이 도는 상황에서 겁먹은 재벌가 자제는 불안감과 공포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일.
그러니 운하신권과 연화존자에 대한 테러는 뒷일은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급한 마음에 시도한 무모한 짓이었다 하겠다.
두려움에서 비롯된 이 행위가 어쩌면 다가올 운명을 정확히 캐치하고 선제적 행동에 나선 현명함일지도 모르겠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인 처지가 된 셈 아닌가?
그것도 성공했을 경우의 말이지만.
목표 중 하나라도 죽었더라면 용감했었다는 평가라도 받았을 터이건만, 실패한 암살은 아무런 소용이 없어 상황만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으로 사건의 중요한 증인이 될 운전수가 살아남았다.
저 당당하며 교활하던 혈야쾌조 방무열이 조각나 속이 파인 늙은 호박꼴로 잡혀 가는 걸 본 뒤 내내 신경쇠약으로 히스테리를 부리던 한울 그룹의 둘째는, 이제 대상을 바꿔 운전수를 죽여야 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된다.
끝내 참지 못하고 다시금 사람을 보낸다.
의료인으로 위장한 암살자가 독극물이 든 주사기를 들고 운전수 이현수 씨의 병실에 몰래 잡입한 건 그래서였다.
그곳에 누가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흡!”
한율 그룹 소속 청형문, 대외적으로 그곳의 1대 제자 신분인 암살자는 방 안에 들어오자마자 무력하게 제압되어 끌려간다.
그곳에 기척을 죽이고 대기 중이던 연화존자의 부하가 있었음이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귀국하자마자 잠복 중이던.
연화존자가 지휘하며 그를 섬기는, 칠익회(七翼會) 소속 중 가장 먼저 부름에 응한 건 남미 쪽 인원들.
남아메리카 전역을 주무대로 삼아 활동하던 다섯 개 팀 중 제1팀이 가장 먼저 한국으로 들어온 것인데, 이 사실이 이들의 실력이 처진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반대에 가깝다. 맡고 있던 프로젝트를 단숨에 끝낸 뒤, 주인의 호출에 지체없이 응했다는 건 되레 유능함을 증명하는 바.
대한민국으로의 입국이 평소 같은 막간의 머무름일 줄 알고 소규모로 들어와 격무에 시달리던 기존 인원들에게 이들의 입국은 큰 도움이 되었다.
누구보다도 김철민, 본인에게 그랬다. 만약 이 친구들이 없었다면 이미 바쁜 다른 수하들을 대신해 한율 그룹을 뒤집어 엎는 일에 또 한번 직접 나섰어야 했을 테니까.
막는 자들을 전부 때리고, 패고, 부수고, 소란을 떠는 과정을 다시금 겪고야 말았을 테지.
비견할 데 없이 막강한 고수인 연화존자였지만, 은밀한 납치와 필요한 정보 획득의 솜씨 같은 경우엔 그의 부하들이 오히려 더 전문가였기에, 그는 안도했다.
그리고 청형문의 암살자는 남미 팀의 심문을 한 시간도 채 버티지 못했다.
그에 더해 재벌가 자제이자 계열사 여러 곳을 손에 넣은 기업인의 동선을 파악하고, 호위의 수준과 규모를 알아낸 뒤 아무런 잡음 없이 조용히 잡아 오는 데에 고작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던 바.
그것은 총성 하나 없는 완벽에 가까운 납치여서, 당한 자들조차 자신들이 어떤 상황인지 채 깨닫지 못할 정도였다.
“…무, 물… 물을…….”
하여 납치된 지 거의 이틀 만에 깨어난 한율 그룹의 둘째 아들, 한규성은 목구멍이 찢어지는 듯한 갈증에 자신도 모르게 물을 찾았다.
살면서 겪어 본 적 없는 극한의 스트레스 속에 연일했던 폭음 때문일까? 아니면 하나같이 무공의 고수인 연화존자의 부하들이 무자비할 정도로 배려 없이 내력을 밀어 넣어 혈도를 제압했기 때문일까?
이유가 뭐가 되었든 간에 어둠 속에 잠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물을 달라는 구걸밖에 없다.
여기가 어딘지,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로 말이다. 누군지도 모를 이들이 축축한 천쪼가리를 입에 넣어 주길래 있는 힘껏 빨아 댄 것도 그래서였고.
급하게 물을 줬다 체하는 바람에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못 할까 싶어 베푼 세심한 배려였다.
“정신이 드나?”
그리고 갈증의 고통이 조금 가시고, 시야가 돌아왔을 때.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그가 죽이려던 사람이란 걸 알아챈 한규성은 소스라치게 놀라 몸과 마음이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다, 당신은!”
“정신이 든 모양이군.”
한규성의 앞에 연화존자가 앉아 있다. 편안한 자세, 여유로운 표정이다.
하지만 눈빛만은 어두운 밤이 된 가운데서도 몰라볼 수 없게 무서우리만치 타오르고 있다.
그런 그의 주변에 두어 명의 남자들이 공손하게 서 있었는데, 그 냉막한 표정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평범한 인상이었음에도 서리가 내린 듯 차가운 표정과 눈동자다. 아무것도 없이,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음에도 느껴지는 결이 남다른 사람들.
나약한 정신과 움츠러든 육신으론 감히 입을 뗄 수 없다.
“이해는 해.”
굳어 버릴 것 같은 몸에 힘을 주고 겨우 주변을 돌아봤을 때, 한규성은 다시금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청형문의 문주와 그의 비서실장이 의자에 묶인 채 정신을 잃고 침을 줄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 다 수족 같은 사람들이었고, 저들이 이 자리에 있다는 건 전부 탄로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신이 없어 무거운 머리였음에도 올바른 추론이다.
“살다 보면 언제고 그런 순간이 오더라고. 끝장을 보기 위해 모든 걸 던져야 할 때가 말이야. 그래서 날 죽이려고 든 것 자체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어.”
그런 한규성의 앞에 앉아 혼잣말하듯 떠드는 김철민은 책을 읽으며 기다리고 있던 것 같았다. 손바닥 크기만 한 책을 휘휘 저으며 말을 하는 모습이 그렇다.
어딘지 모를 어두운 공간이어서 제목은 보이지 않는다. 설령 밝았다 한들 그런 것이 눈에 들어왔을 리는 없지만.
“사, 살려 주……”
“쉬이.”
하물며 간청조차 먹히지 않음에야.
“넌 내게 뭘 부탁할 처지가 아니야. 알잖아? 묶인 놈의 간청만큼 쓸모없는 게 없다는 걸.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연화존자는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성급함을 지적한다.
사뭇 친절한 어투로.
“난 너를 용서하려고 여기에 데려온 게 아니야.”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옆에 있던 남자에게 건넸다. 공손하게 건네받은 연화존자의 수하는 뒤로 물러나 시립했다.
“사실 조금 감탄하긴 했어, 이렇게 안전한 나라에서, 트럭에 용접까지 해서 차째로 밀어 버리려고 하는 거. 잘 없는 일이잖아? 대한민국처럼 획일화된 사회에서 발상이 참 대담하더라.”
과감한 시도였다고 말하는 김철민은 웃었지만, 한규성의 눈은 공포에 질렸고 혀는 딱딱하게 굳어 대꾸하지 못한다.
끝내 잡혀 온 자의 바지가 축축하게 젖는다.
“아무래도 본인이 떠올린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럴 수 있지. 기껏해야 양아치들이랑 어울려서 돈푼 좀 만지던 부잣집 아들이면, 그럴 수 있어.”
두려움에 쌓인 한규성에게 김철민은 불꽃과도 같았다. 타오르는, 뜨거운 이 시야와 기분이 사실 환각은 아니다.
실제로 김철민의 주변으로 옅은 무지개, 연화신공의 내력이 유형화되어 은은하게 흐르는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그 위협적인 불꽃 속에서 연화존자는 다만 속삭일 뿐이다.
“걱정하지 마, 죽이진 않을 거니까.”
파열음은 그 직후 뒤따라왔다.
“커헉!”
“크악!”
비명은 청형문주와 비서실장에게서 터져 나온다. 김철민의 뒤에 서 있던 자들의 손이 그들의 복부를 두드린 직후에.
비명과 함께 두 사람 다 피를 토했고, 여러 무림인과 사뭇 가까이 지냈던 한규성이었기에 저 모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너도 자주 하던 짓이지? 익숙할 거야.”
분명히 실존하는 내공이라는 힘이지만, 이것의 존재가 현대사회에서 의학적 혹은 과학적으로 완벽히 증명된 것은 아니다.
과학계와 의료계는 지금까지도 내공을 다루는 단전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에 실패했다. 내공심법 혹은 그 비슷한 무엇을 배우고 익힘으로써 인식하고, 내력을 저장하여 사용하게 된다는 단전이라는 기관은 단 한 번도 과학과 기술 앞에 제대로 된 모습을 나타난 적이 없다,
내공과 마찬가지로.
내력과 단전은 오직 육체의 강화와 검기 등과 같은 간접적인 증거에서만 그 존재를 유추할 수 있다. 도구에 의한 객관적이고 직접적인 관찰이 언제 가능할지는, 지금 시점에선 알 수 없는 일.
그렇기에 단전을 부수는 건 현 실정법상 범죄가 되기 어렵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부위를 손상시키는 걸 범죄라고 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
무공을 익힌 자들의 단전을 부순다고 곧바로 경찰에 잡혀 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단전의 폐쇄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이라면 모를까, 대한민국의 법률은 지적재산권 외의 분야에서 무공을 적극적으로 보호해 주지 않는다.
무림의 싸움에서 단전 파괴가 횡횡하는 이유다.
“무사, 내게 이러고도 무사할, 무사할 것 같아?”
그렇기에 내공 사용자에게 있어 이보다 더 확실하게 상대방에게 큰 손해를 입히는 방법은 없다, 육체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물론이지.”
그렇다면 내공을 모르는 일반인에게 비슷한 방식의 손해를 입힐 수 있는 것엔 어떤 방법이 있을까?
세상은 넓어 방책도 여럿 있겠지만, 연화존자에게는 오직 그만이 쓸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가령 본인을 제외하곤 누구도 풀 수 없는 내력의 금제, 피시술자에게 주기적으로 혈관이 산채로 불타는 고통을 부여하는 방법 같은 것들이.
하여 김철민의 손이 한규성의 정수리, 백회혈을 덮는다.
“너랑 비슷한 쓰레기들이 무슨 꼴을 당하며 따라갈지 잘 두고 보라고.”
내력을 집중한다.
“끄으으으읍!”
연화존자의 주변에 남아 있던 내력의 잔상들이 일순간 한규성의 몸속으로 흡수되고, 그것은 한규성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선사했다.
뜨겁고도 차가웠다. 무겁지만 가벼웠다. 어둡지만 밝았다.
이 모든 것들이 돌고 돌며 한규성의 몸과 영혼을 날카롭고도 둔탁하게 자르고, 찌르고, 후벼 판다.
혈관이 속에서부터 찢어지고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으며 한규성은 혼절하고도 싶었지만, 그를 내부에서부터 뒤흔드는 미증유의 힘은 그런 쉬운 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만 뒤섞었다. 위와 아래, 좌와 우, 과거와 현재가 섞이며 한규성은 절망으로 꺽꺽 댄다.
결국 한규성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그를 뒤흔들던 연화존자의 내력에서 영겁 같은 고통을 느낀 끝에 혼절한다. 실제로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당사자에게는 길었을, 찰나의 영원.
“갖다 놔.”
뒤에 서 있던 부하들이 고개를 숙여 복종을 표시하고, 말없이 세 사람을 끌고 나간다. 약간의 오물을 제외하고 방금 전까지의 고통을 짐작할 흔적은 이제 이곳에서 사라진다.
그 안에 홀로 남은 연화존자는 고뇌에 잠기니, 그것은 방식을 달리 해야 한다는 방법론적 고뇌였다.
칼 한 자루와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지구상 인구를 극단적으로 줄일 수 있는 연화존자였지만, 죽이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걸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필요하다면 망설이지 않겠지만,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면 얼마든지 그러할 테지만, 그럼에도 이 무서운 무림의 고수는 규칙과 규범이란 것을 지킬 필요성을 느낀다.
대체 언제까지 말 안 듣는 쓰레기들을 쥐어 박으며 끌고 갈 거란 말인가? 갈 수 있단 말인가?
하여 이런 결론에 이른다.
대한민국을 바꿀 새로운 기관을 설립하려는 이때, 다른 방면의 조력자가 필요하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결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