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출렁이는 파도를 딛고 달려오는 그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다.
달빛이 길을 비추는 가운데 경공을 펼친 남자가 섬에서 배를 향해 쭉쭉 뻗어 오고 있었다. 하얀 물결이 그 뒤로 긴 선을 드리우지만, 결코 그치는 법 없는 무심한 물결이 이내 감쪽같이 지워 버린다.
돌아보지 않는다, 오직 앞으로, 또 앞으로.
마침내 닿는다.
등평도수(登萍渡水), 이 경우에는 수초 따위가 아니라 파도를 밟고 달리는 격이니 등랑도수(登浪渡水)라 부르는 게 옳을 테지만, 이름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고절한 솜씨라는 건 분명한 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선미에 내려앉은 남자의 모습은 자연 속에 살던 은거 기인, 고수의 풍모 그 자체.
덥수룩한 수염과 치렁치렁 늘어뜨린 머리카락, 그에 더해 허름하여 낡은 옷을 입은 사내는 그럼에도 정갈하여 몸 어디에도 물 한 방울 허투루 튄 자국이 없음이라.
방금 전, 가공할 만한 대결과 바다를 건넌 지금의 모습을 보건대 수준을 측량하기 어려운 무림인이었고, 자리한 모두가 개인적으로 이자를 안다.
누군가에게는 부모요, 누군가에게는 친구,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랜만에 보는 형제 같은 이 아닌가?
그러니 이 만남은 예정되어 있었다 해야 할 터.
바다를 뛰어온 고수도 익히 아는 사실이라 하겠다.
하여 수염과 머리카락으로도 가릴 수 없는 번쩍이는 눈빛이 빛을 뿜는다. 그치지 않는 파도처럼 몰려오는 회환이 담겨 있었고,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미약한 기대감 또한 존재한다.
사내의 이름은 송유, 현 증산방주인 그를 강호동도들은 청해마도(靑海魔刀)라 부른다.
경상도를 대표하는 대한민국 최고수 중 하나다.
“아버지!”
“형님!”
청해마도는 자신을 부르는 친우와 아들을 살짝 돌아보며 고개를 잠시 끄덕였지만, 눈길만은 연화존자에게서 완전히 떨어지는 법이 없다.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그의 인생 전반에 걸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남자를 삼십여 년 만에 다시 보았는데.
그 또한 가슴속 실의로 지난 세월, 스스로를 가뒀었는데.
“…오랜만이오, 형님.
“그래.”
“여긴 어쩐 일이시오?”
짧은 물음에 연화존자는 애써 가볍게 답하지만, 그 또한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다.
둘 다 뭇 무림인들을 발아래 둘 절대고수이건만, 고작 이 짧은 문답을 위해 숨을 가다듬어야 한다.
“널 보러 왔다.”
이후는 잠시 침묵. 막간의 그 시간 동안 두 고수가 과거를 회상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젊음의 시절을.
이들이 처음 만났던 건 삼십 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때의 김철민은 지금과 같은 절대적인 고수가 아니었다. 재능이 충만하긴 했지만 인생에 많이 치이고 차여 급하게 군에 입대, 전역 후 국정원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
별로 마음에 드는 처지는 아니었다 하겠다. 입대와 입사는 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적이었던 데다, 나름 최선을 다했음에도 벗지 못한 굴레는 젊었던 김철민의 주변을 단단히 감싸고 있었다.
독재 정권의 감시와 의심, 사정 봐주지 않는, 가차 없는 재촉까지.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독재 정권 밑에서 일해야 한다는 게 무엇보다 괴로웠던 김철민은 기필코 이 모멸감을 갚으리라고, 언제고 이 땅에 정의를 이루리라 굳게 마음먹곤 했으니, 어쩌면 이 굴욕이야말로 그를 비할 데 없는 고수로 만든 원동력이었을 터.
한마디로 불의에 억눌리고 정의를 갈망하며 힘을 기르던 젊은 시절이 김철민의 청춘이었다 하겠다.
한편 인생이 불운한 처지였던 건 송유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당시 고작 이십 대 중반이었던 전 증산방주의 외동아들이었던 그 또한 본인의 의중과 상관없는 방향으로 인생이 돌아가고 있었다.
송유의 아버지이자 전 증산방주였던 대해일협(大海一俠)이 잠자리에 들었다 잠옷 차림으로 연행되는 수모를 겪는다.
하룻밤 사이 영문도 모르고 독재 정권에 끌려가 영어의 몸이 된 것이다. 전대 독재자가 최측근이었던 무림인의 손에 죽은 이후, 정권에 필요할 때면 벌어지곤 하던 무림 탄압의 일환이었고 총과 권력으로 핍박하는 권력의 윽박지름에는 고명한 무인조차 별 수 없었음이라.
고강한 무공과 넉넉한 성품으로 존경받던 대해일협이었건만, 변명의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했다.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개인의 재산을 제멋대로 강탈하던 독재 정권은 무림의 눈치 따위 보는 일이 없었다.
이에 방의 안주인인 어머니는 쓰러지셨고, 세상 부러울 것 없던 증산방의 후계자는 완전히 홀로 되어 백척간두 신세.
“형님 소식은 운하신권 어르신께 건너 들었소. 외국 생활은 마음에 드셨소?”
“사람 사는 데가 다 거기서 거기지. 별거 없다.”
무공에 대한 재능과 나이에 걸맞지 않는 진중함이 있긴 했지만 무림인으로서도, 사회인으로서도 햇병아리였던 송유는 증산방을 둘러싼 온갖 음모 속에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것이 당연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음이다. 속전속결로 치러진 재판 후 감옥에 갇힌 아버지의 무공이 끝내 전폐되고 말았다는 소식은 결정적이기까지 했으니, 추상 같던 전대 방주의 몰락으로 벌어진 이전투구에 결국 방은 해체 직전까지 몰렸다.
무림에서의 인망도, 지역 사회에서의 존경도, 대대로 쌓은 부도 권력 앞엔 아무것도 아니었다. 서슬 퍼런 독재의 칼날이 무서워 그 많던 강호의 협객 중 돕는 이 하나 없었으니, 무림의 도리란 언제나 찾기 어려운 법.
때마침 이 사실을 알게 된 김철민이 은밀히 운하신권에게 부탁하지 않았다면, 더불어 제 가산의 절반을 뚝 떼어 독재자와 그 측근들에게 헌납하지 않았다면 수백 년 역사의 증산방은 그날로 사라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안면조차 없던 사이이긴 했지만, 젊은 증산방주의 처지가 영 남 같지 않아 내린 결단이었다. 대해일협의 협의를 평소부터 흠모하기도 했었고.
두 사람은 그렇게 만났다.
이후 빼앗긴 이권을 되찾아 주고, 이미 그때부터 현천공을 창안하며 절정의 기량을 자랑하기 시작한 무공으로 수련을 돕고, 함께 독재 정권의 만행을 암중에서 방해하고, 힘을 합쳐 민주화 인사들을 지원하고, 복지 재단을 세워 약자들을 돕고.
그런 과정을 거친 두 사람이 의형제를 맺은 건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일.
“그래도 너희 부부에게는 고맙다. 둘이 갈라서고도 지금껏 같이 재단에 계속 돈을 보내고 있다면서? 그것 말고도 신경을 많이 써 준 덕분에 내가 없이도 큰 문제없이 아이들이 컸다고 하더라.”
“…형님이 해 준 게 얼마인데, 내 그 정도도 못 하겠소? 아이들도 눈에 밟히고, 좋은 일 아니오? 형님이 아니었어도 내 힘 닿는 데까지 도왔을 거요.”
송유는 모든 것을 포기했던 순간에 나타나 결정적인 도움을 준 김철민을 존경심 하나로 형으로 모셨고, 김철민 역시 뜻이 통하는 동지로 정의롭고 순수했던 송유를 친혈육처럼 여겨 동생으로 삼았다.
더불어 다짐했다, 이 옳지 못한 시절을 몰아낼 수 있게 같이 힘을 내자고, 비록 할 줄 아는 거라곤 작은 일신의 재주 밖에 없을지언정 이 힘을 옳은 일에 쓰도록 맹세하자고.
무림에 의와 협을 지키는 자가 드물다지만, 우리만은 변하지 말자고.
그리고 이 결의를 지켰다. 독재하에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도왔고, 정의로운 자들이 해를 입지 않게 손을 보탰다. 그 과정에서 송유는 증산방과 비슷한 위기를 겪었던 재벌가의 해체를 막고, 집안끼리 사돈을 맺기까지 했다.
힘들었지만 좋은 일도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무르익어 독재 권력을 몰아내는 길이 멀지 않아 보였고, 이루어지기까지 했지.
그러니 바라 마지않던 암울한 시절의 끝이 왔을 때, 두 사람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충돌이 일어난 것이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일까?
당시를 회상하며 입을 연 청해마도의 목소리는 흔들리고 있다.
“그래도 형님이 돌아오실 줄은 미처 몰랐소.”
그때, 독재자가 끝내 호헌 조치를 철폐한다고 선언한 그 밤에 나누었던 술잔을 기억한다.
지난 투쟁이 헛되지 않아 국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했으니 더 밝은 날만이 남지 않았겠냐며, 두 사람은 희망과 흥분으로 밤을 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간선제가 폐지되고 직선제로 선출된 다음 대 대통령이 전대 독재자의 둘도 없는 친구라는 사실에, 군부 쿠데타의 핵심 인물 중 하나라는 사실에 두 사람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절망감을 느꼈다.
그때 송유는 전부 죽이자고 했다.
염치도 없이 후보를 낸 쿠데타 세력도, 제 욕심으로 표를 갈라 먹은 정치인들도, 모두 죽이고 다시 세우자고 했다, 이건 우리가 꿈꿨던 미래가 아니었다며.
김철민은 거부했고, 조용히 대한민국을 떠났다.
“요즘도 가끔 생각하오, 형님이 떠나게 두지 말았어야 했고, 내 손으로라도 전부 죽였어야 했다고.”
과거를 회상하는 목소리는 여전한 짙은 후회로 떨린다.
“처음 그 작자가 대통령 후보로 나왔을 때는 비웃었고, 대통령이 되었을 땐 황당했소. 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웠소? 우리는 뭘 구하기 위해 그토록 투쟁했던 거요?”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니 떠나지 않았겠어?”
흘려 보내지 못한 이야기가 시간을 건너뛰어 흘러나온다.
솔직해진다.
“그렇다고 다시 칼을 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린 이미 모두 겪었어. 무림인의 손에 대통령이 죽는 일이 또 일어났다면, 그랬다면 이 땅의 무림인은 모두 죽었을 것이고 나라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졌을 거야.”
“그렇지만!”
의견이야 충돌했다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미워하는 건 아니다. 오늘의 이 만남을 보라. 그리움이 없었다면 파도와 달빛이 함께 하는 조우가 이토록 평화롭지 못했을 터.
이 하나만이 여전히 같을 뿐이다.
연화존자와 청해마도라 불리는 두 사람이 원했던 세상이 지금 모습은 아니라는 사실이.
“내가 원하던 대한민국은 그런 게 아니었소!”
크게 싸운 두 사람은 이후 국내와 국외로 행동 반경이 갈리지만, 행동의 양태만은 비슷했다.
두문불출하는 칩거.
연화존자는 해외를 떠돌다 한국이 IMF 구제 금융 사태를 맞이한 직후에야 조금씩 오고 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조국보다 바깥에 재산도, 사람도 많은 것이 그의 현실.
청해마도의 경우는 바로 방금 전까지도 거의 활동하지 않았다. 김철민이 한국을 떠난 후, 실의에 빠져 은거한 게 대부분이다.
이에 주변 사람들, 특히 그의 부인이 청해마도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지만 끝내 이루지 못해 이혼을 했고, 그 뒤엔 강호에서 모습을 감추다시피 했지.
물론 낭중지추라, 간혹 증산방의 위기에 한 번씩 몸을 일으켜 거드는 정도만으로도 청해마도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지난 삼십 여년의 생활이란 섬 속의 은거인이라 보는 것이 옳다.
“그래. 우리가 원하던 대한민국이 이런 나라는 아니었지.”
그러나 오늘부터는 그래선 안 된다.
“그래서 돌아왔다.”
연화존자의 주변을 맴돌던 쓸쓸함이 일순간 씻겨 나간다. 거대한 존재감이 다시금 기지개를 핀다.
“그때 이루지 못한 걸 이루려고.”
강호의 절대고수, 대한민국이 낳은 최강의 무림인이 다시금 뜻을 세웠으니, 그 옆에 오랜 전우가 함께함이 마땅한 바.
“다시 내 옆에 서거라. 지난날, 우리가 이루기로 했던 맹세를 다시 이루기 위해.”
청해마도는 말없이 내력을 일으킨다.
이 순간, 오랜만에 만난 의형제는 이심전심이라. 문답무용의 묘는 무림인의 덕목이며, 시간 속에 쌓인 먼지를 털어 내는 가장 좋은 방법일 터.
아니면 그냥 둘 다 흔한 강호인인 것일 수도.
청해마도의 손에서 별호와 달리 권법이 펼쳐진다. 지금은 해체하여 증산방에 흡수된 남해문의 절기, 남해칠권이.
가볍게 발을 굴렀을 때 이미 연화존자의 가슴팍으로 주먹이 쇄도하는 중이니, 힘도 속도도 강호일절을 논할 만했다.
놀란 바다가 흩어지는 것을 보라.
짙은 푸른빛의 내력이 그의 주먹에 맺혀 있다. 세상에 대한 실망으로 도를 내려놓은 도객의 손에선 어느새 쪽빛 꽃이 폈다.
하나 다음 순간. 검은 바다 위, 하얀 달빛 아래 때를 잊은 무지개가 떠올라 파도와 어둠을 쫓아낸다.
어둡던 하늘은 그것으로 눈이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