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23화 (23/175)

#23화

윤아영은 흑응이 보낸 세 사람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다만 미국과 아프리카 방면에서 활동하던 칠익회의 일원이라는 사실만 알았고, 그랬기에 그들이 제안한 사안에 대해 곤란함과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그들은 대한민국 검경의 수치에 대해 너무 쉽게 말을 꺼냈다.

인의 장막 속에 숨은 동방요선과 주화입마 후 종적이 끊긴 다도선객을 잡자고. 체포할 수 있게 힘을 보태 달라는 건 그런 의미였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진작 잡히고도 남지 않았을까?

“…쉽게 될 일이 아니란 건 알고 있을 텐데요. 아, 어려워서 피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하여 의문이 가득한 그녀의 질문에 다니엘 김은 예의 보기 좋은 미소를 띄우며 단언했다.

“두 놈 다 가능합니다.”

애석하게도 미국 사교계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과시하는 다니엘의 단언은 검사 윤아영에게 그리 미덥게 느껴지지 못했다.

이유는 몇 개가 있다.

우선 동방요선과 다도선객의 악명이 너무 높다.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 공권력을 우롱하듯 제대로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고 유유자적한 것들 아닌가?

이 악명이 비단 한국에서만 높은 게 아니어서 동방요선의 사이비 종교, ‘새 세상’은 대한민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맹위를 떨쳐 영국 같은 경우에는 따로 주의보를 발령할 정도.

한 번 죽었다고 알려졌다 다시 모습을 나타낸 덕에 자신의 추종자들에겐 재림 예수로,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에서는 죽여 마땅한 거짓 선지자로 유명한 동방요선은 말 그대로 지상을 거니는 요사한 신선이나 다름없는 바.

그 마수가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한편 다도선객은 어떤가? 그는 십오 년 전 국정원의 검거 작전 당시 주화입마에 준하는 큰 부상을 입었다고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과 대만, 중국 사이를 오가며 밀수와 납치, 인신매매, 방화, 폭행, 살인 등 온갖 범죄를 현재진행형으로 저지르는 악질 중의 악질이다.

이 두 무림인 범죄자의 존재야말로 대한미국 공권력의 치욕의 상징이며 검경의 수치라 말할 수 있겠다.

그렇게 건국 이래 최악의 무림인 범죄자로 손꼽히는 둘을 무슨 뒷마당 마실 나가듯 잡아 오자니, 아무리 연화존자의 수하들이라 한들 신뢰가 갈 리 없지.

연화존자 본인이 와서 잡자고 해도 믿음이 갈까, 말까 한 일 아닌가?

거기다 이 사람들, 바로 며칠 전에 한국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뭘 알고나 얘기하는 건지.

“제가 세 분의 제안에 믿음이 가지 않는 것에 다른 요인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저 또한 그 쓰레기들을 하루라도 빨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동방요선과 다도선객, 이 둘이 고강한 무인인 건 둘째치고 이들을 보호하는 조직이 크고 깊은 데다 숨겨져 있어요. 그 쪽에 힘을 쏟기엔 아직 국가무공원의 수사력이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처리해야 할 사건들이 많아요.”

영원히 그냥 두겠다는 말은 아니지만 국가무공원의 현재 역량과 업무를 고려하면 힘들겠다는 완곡한 거절에, 다니엘 김과 준호, 진호 형제는 미동도 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윤아영은 거기에 대해 크게 반응하지 않고 말을 이어 간다. 양심에 거리낄 것도 없는,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

그녀가 냉정한 현실을 얘기한다.

“다도선객은 그가 몸을 숨기고 있는 지역사회에, 동방요선의 ‘새 세상’은 중앙정부까지 추종자들이 암약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 윤아영의 말을 일단 경청한다.

혹은 관찰한다.

“동방요선의 사이비 종교가 외교적 문제로까지 비화되는 바람에 검경에서 잡으려고 이를 갈았지만, 중요한 정보들이 자꾸 유출되는 바람에 결국 실패했습니다. 즉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다면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걸 떠나 방해 받을 것도 감수해야 한다는 얘기죠.”

“다도선객은 어떻습니까?”

“그쪽은 작은 지역 사회적인 성질이 있어 외부의 접근을 경계합니다. 물론 그게 잡지 못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닙니다만…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라 그런지 폐쇄적인 건 사실이에요. 오죽하면 염전에서 사람을 잡아다 노예로 썼는데, 그걸 지역 특색이라고 판결 나온 일까지 있겠습니까?”

잠시의 침묵 후 입을 연 건 왜소하고 온몸을 꽁꽁 싸맨 남자, 진호였다.

“검사님, 그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개좆같은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1초의 망설임 없이 나온 윤아영의 말에 세 사람의 눈썹이 꿈틀댔다.

그런 그들의 반응에 상관없이 윤아영의 말은, 역시나 더할 나위 솔직.

거침없이 흘러나오는 것이 아무래도 평소 생각임이 틀림없다.

“그건 판결도 아닙니다. 개소리죠. 노예 행위를 지역적 관습이라며 집행유예를 때려 버렸는데, 이게 법원 판결이 불법과 불의에 전폭적으로 협조한 것과 뭐가 다릅니까? 대한민국 법률이 지역적 관습 아래에 있기라도 하다는 겁니까? 그렇다면 정말 대단한 관습이네요. 엄청나요. 대체 그 판결 어디에 정의가 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판결문을 아무리 정독해 봐도 못 찾겠던데요. 심지어 1심에서는 한글을 모르는 피해자를 속여 받은 처벌 불원서를 검증조차 제대로 안 하고 반영했어요. 피해자는, 지적장애가 있었고요.”

말을 멈춘 윤아영이 감정을 추스른다.

“저 같으면 그딴 식으로 판결 내린 게 쪽팔려서 법률가 때려치고 농사나 지으며 지난 삶을 반성할 것 같은데, 판결 내린 판사들은 출세하여 잘만 먹고 살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윤아영 검사는 그 판결이 잘못됐다고 단언한다. 언젠가, 어느 밤인가 연화존자가 보았던 모습 그대로.

그리고 그 밤, 연화존자 김철민이 느꼈던 감정을 연화존자의 수하이자, 제자나 다름없는 사람들도 똑같이 느낀다.

연화존자께서 고른 이유가 있네, 행동이야 아직 몰라도 말하는 것만 봐서는.

이제 옷가지로 모습을 감췄던 진호가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고, 맨 얼굴로 이 젊은 여검사와 얼굴을 마주한다.

윤아영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틀어진 눈동자에서 똑바로 쏘아져 오는 시선을 느낀다, 그 안에 담긴 관심 역시도.

그리고 이제 대화는 키 큰 떠벌이, 준호 쪽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동방요선, 과 다도선객을 잡으려는 건 다른 게 아닙니다, 검사님.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죠. 네, 네. 그렇죠.”

윤아영은 경청한다. 흥미롭기 그지없다는 다니엘의 얼굴, 무표정한 진호라는 남자, 마지막으로 더듬대며 마구 떠들어 대기 시작하는 준호까지.

이제야 본심을 털어놓을 생각인가 보다.

“우리는 굴러온 돌입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 의 바깥에 있던 놈들이란 말입죠. 여기 계신 이 형님은 미국인이고, 저희 두 놈은 파양아, 출신입니다. 저희 칠익회의 다른 사람들도 뭐, 비슷합니다. 출세해서 성공하려면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이겁니다. 다들 연화존자의 자비, 속에 그나마 사람 흉내라도 하는 놈들 아니겠습니까?”

“…그런 분들이 모여서 뭔가를 하려면 압도적인 성과가 있어야 한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눈치가 좋으시군요, 검사님. 헤헤. 역시 배우신 분, 이군요.”

손가락을 불규칙적으로 떨고 예고 없이 눈썹을 위로 치켜세웠다 내리며 준호는 이야기한다, 자신들에게 이 성과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아울러 신생 국가무공원에 왜 동방요선과 다도선객이라는 전리품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서울상공인모임회를 박살, 낸 건 좋은 선전, 이었습니다. 그럼요. 그렇지 않았다면, 혈야쾌조 그 욕심, 많은 늙은이가 아니, 었다면 우리는 지금쯤 더 많은 방해, 에 직면했을 테니까요. 정치인, 재벌,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돈 좀 있는 쓰레기들, 이라면 국가무공원의 일에 한발 걸치거나 방해, 하고 싶었을 테죠.”

다음 순간, 준호의 눈빛이 불을 뿜는다.

“동방요선과 다도선객을 잡으면 우리는 좀, 더 확실한 힘, 영향력, 을 가질 수 있습니다.”

윤아영은 알아듣는다.

대중의 관심, 정치권에서 발휘할 수 있는 일종의 권력을 손에 넣게 될 거라는 말은, 못 알아듣기 힘들다.

그녀가 그리 좋아하는 종류의 권력은 아니다. 하지만 필요하다는 걸 부정할 만큼 순진하진 않다.

“연화존자께서 하실, 일에 대해 들으셨을 겁니다. 그와 같은 급격, 한 변화는 필연적으로 저항, 을 부릅니다. 당장 세 분이 폐관을 깨고 나오셔서 새로운 무공, 을 군에 보급하면 기존의 국가, 공인 문파들이 반발할 게 뻔하잖습니까? 그건 그리고 그나마, 작은 저항이 될 테죠.”

“동방요선과 다도선객을 잡는 게 거기에 대한 방패가 될 거다?”

“그렇습니다. 누구도 무너뜨리지 못한 잡범, 들의 소모임에 이어 최악의 사이비 교주와 최악의 국제 범죄자를 잡는다면, 맞습니다. 함부로 방해할, 수 없습니다. 자랑할 만한 성과는 그, 자체로 창이자 방패가 됩니다.”

윤아영은 음미해 본다.

말에는 틀린 점이 없다. 맞다. 국가무공원엔 더 큰 성과가 필요하다. 그들이 하고자 하는 무공을 통한 국가 개혁, 내공심법을 통한 쇄신을 이루자면 누구도 딴지를 걸 수 없는 압도적인 결과가 필요한 게 사실이다.

공고하게 바뀌지 않는 이 나라를 바꾸려면 그 정도는 있어야 한다.

“우리는 겨우 이 정도에, 발목이 잡혀선 안 됩니다. 고작 군대를 개혁하는 정도로 끝나선, 안 됩니다. 연화존자의 뜻은 그, 보다 높은 곳에, 있고 그, 보다 멀리 나아가야, 하며 결, 코 멈추는 일 없이 온전히 이루어, 져야 합니다.”

벌써부터 서울상공인모임회를 소탕한 것에 대한 폄하가 슬슬 오고 가는 것을 보라. 인간의 마음은 간사하여 남이 한 것을 깎아 내리며 스스로의 자존감을 채우려 들곤 한다.

아니면 필요에 의해서 옆에서 부추기던가. 연약한 인간의 마음이여.

“그리고 무엇보다 저희, 는 사람의 마음, 을 가지고 놀고 폭력으로 남, 을 괴롭히는 놈들을 싫어합니다. 아프리카에서도, 그런 놈들이 많았고 다, 없앴습니다.”

동방요선과 다도선객이라는 악질 범죄자들을 잡아 오는 건 그렇기에 유의미한 일이다. 두 범죄자를 체포하는 건 국가무공원이야말로 대한민국에서 무림인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일이고, 아울러 대중들의 관심과 지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니까 잡을 수만 있다면.

“…솔직히 말씀드려서 국가무공원의 제일 고수인 분들은 모두 자리를 비우신 셈 아닙니까?”

완곡한 이 표현은 세 사람에게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이 강골 검사께서 그래도 우리들 체면을 살려 주시려는구나, 한데 아직 믿음이 없구나.

“검사님 말씀은, 저희가 그리 미덥지 못하다는 말씀이시군요?”

다니엘의 반문에 윤아영은 침묵으로 긍정하니, 그가 하얀 이를 환히 드러내며 웃는다.

“현대사회 아닙니까? 꼭 무공이 강해야만 고수를 상대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인간은 도구를 씁니다.”

그의 말은 여전히 자신감이 넘쳤고.

“총에 맞거나, 칼에 찔리면 죽는 건 고수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사님.”

과묵한 진호는 한마디를 보탰다.

“검사님께서 딱히 엄청난 걸 해 주, 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저희가 잡아오면 기소나 제대로 해 주십사, 이렇게 찾아온 겁니다. 더불어 감사의,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 그랬고요.”

마지막으로 이어진 준호의 말에 윤아영은 의아함을 표시했다.

“감사의 인사요?”

“검사님 덕분에 연화존자께서, 저희의 스승님, 이자 아버지, 같은 분이 실의를 딛고 다시 세상에, 나오셨잖습니까?”

이 말은 그녀를 부끄럽게 한다. 김철민과의 첫 만남을 생각하면 그렇다.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리라고 윤아영은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튼 저희가 수사 중에 알게 된 사실들을 그때그때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참, 남미 쪽 팀원들과 공조를 할까 합니다. 검사님을 경호하는 인원들은 제외하고요.”

“…알겠습니다.”

“네. 그럼 수련 열심히 하십시오.”

그렇게 폭풍 같은 대화가 끝이 나고, 정신없던 순간이 끝난 다음, 윤아영은 깨달았다.

저들이 어떻게 동방요선과 다도선객을 잡을 건지, 그 방법을 미처 듣지 못했다는 걸.

그러나 의문은 오래 가지 않았다. 금방 알 수 있었으니까.

불과 며칠 뒤, 미국 하원이 대한민국 일부 지역의 염전 노예 관행에 대해 규탄하는 인권 결의를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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